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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63화 (163/200)

나만 1회차 163화

나는 듣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적색대륙 지배자.

내가 쓰러뜨려야 할 최후의 적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자였다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자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 말대로야. 내가 소유한 비기에 의하면 그대는 분명 적색대륙 지배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당최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당장 떠오르는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굴려봤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도대체 적색대륙 지배자가 누구기에?’

일행 모두가 놀라서 내게 따지고 들었다.

“대장. 그게 무슨 소리죠? 이미 적색대륙 지배자의 정체를 안다구요?”

“아는 자들 중에서 수상한 자를 추려보십시오. 아주 희미한 심증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설마 내 노예가 최후의 적과 내통하는 사이였던 것이야? 꺅!”

배신을 의심하는 퀸소히니베한테 꿀밤을 먹여주고 난 한숨 쉬었다.

“하지만 전혀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데요. 그냥 그 대륙지배자 정체를 나한테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하네. 앞서 말했다시피 난 진위만 판단할 뿐이라서, 아주 명확한 답을 줄 수 없군.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기사단장 유령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건가. 망할.’

의문만 하나 더 쌓이고 말았다.

하여간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기사단장의 무덤이 어째서 드워프 지하에 있는 겁니까? 계속 궁금했는데 물을 기회가 없었군요.”

「왜냐하면 내 무덤을 만들어준 게 드워프들이었기 때문이네. 그들과 나는 술을 나눈 친우였으니까. 내가 그들을 구했고, 그들은 나에게 감사하며 이곳에 무덤을 만들어줬지.」

확실히 기사단장이라 그런지 생전의 기억은 가장 확실히 기억하는군.

“당신의 기사단이 도대체 생전에 어떤 존재였길래?”

「우리는 고대에 활동했다. 우리를 기억하는 자는 적겠지만, 당시에는 대륙을 호령하며 그 누구도 두렵지가 않았지.」

기사단장이 자신의 무성한 수염을 쓸면서 내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하여간 단원들을 모아줘서 고맙네. 이제야 성불이 가능해지겠어.」

“성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는 원래 현세에 머물러서는 되지 않을 영혼들. 그래서 언젠가는 모두가 여기서 떠나야만 한다네.」

성불.

그 단어에 유령기사단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기사단장이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선택은 너희들에게 맡기겠다. 명계로 돌아가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겠는가? 아니면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남아 뭔가를 더 해보겠는가.」

그래서 내가 미리 먼저 말했다.

“갈 거면 가라. 미련은 없으니까.”

「안 그래도 그럴 거다. 주인.」

“……그러냐?”

너무 깔끔한 답에 입술만 핥았다.

금발머리 여기사가 기사단장을 향해서 질문했다.

「성불은 명계로 영원히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겠군요?」

「그렇지. 현세에 돌아올 수 없다.」

모든 유령기사단원들이 서로 얘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론 나왔다.

「아직 20인이 모두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우리가 성불할 시기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단장. 우리는 끝까지 새 주인 곁에서 함께 하겠습니다.」

「제 삶의 끝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세상 끝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저희도 주인의 목표를 따라서 회귀를 멈출 때까지 달려보겠습니다.」

유령기사단장이 단원들을 바라보며 검을 길게 뽑았다.

「과연 생전 나와 함께 한 너희들답다. 우리의 이 선택이 후회가 없길 바라지.」

그것은 반투명했음에도 굉장히 고풍스럽고 후광이 빛나는 검이었다.

「전생의 기억. 너희가 유령이 돼서까지 내게 맡겨준 기억들. 그것을 지금 너희를 위해서 돌려주겠다.」

유령기사단원들이 일제히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리며 신음을 토했다.

「괴, 괴로워!」

「머리가 갑자기 복잡……!」

반투명한 그들의 혼에 색상이 덧입혀지는 듯싶더니 생전모습이 각자 잠깐씩이나마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더니 그들의 흐리멍덩하던 표정이 아주 근엄하게 바뀌었다.

「백혈기사단.」

「그것이 바로 우리 기사단의 이름이었다.」

[유령기사단 전원이 전생의 기억을 모두 떠올렸습니다.]

[공백의 시간을 뛰어넘어 백혈기사단이 지금, 재창설되었습니다.]

[모든 유령기사단원의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앞으로 편성되는 모든 유령기사에게 같은 강화효과가 적용됩니다.]

[모든 백혈기사단이 각기 전담하는 분야의 능력이 일취월장합니다.]

[기마병 다섯의 유령마는 앞으로 돌격 때마다 포효를 뿜습니다.]

[달빛의 창기사는 앞으로 첫 타격은 꼭 치명타를 입히게 됩니다.]

[햇빛의 활잡이는 쏘는 화살이 족족 뜨거운 불길에 휘감깁니다.]

[쌍방패 엘프병이 들고 있는 방패의 내구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

유령기사단의 강화!

여러 가지 강화효과가 추가되었으니 앞으로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령기사단장은 나에게 조그만 반지 같은 것을 던져줬다.

「그건 여기서 탈출할 수 있는 도구네. 도시에서 갇혔다고 했었지? 그걸 쓰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반투명한 반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자주 써대던 투명화 옵션의 밴시영애 반지와는 또 달라 보였다.

[드워프 수제 태엽반지]

효과: 심연에 갇힌 자에게 지상으로 향하는 선택지를 열어줍니다.

기계태엽반지는 만지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작은 태엽이 돌아갔다.

“몹시 독특한 반지인 것이야.”

과연 드워프 수제품이라 그런지 퀸소히니베도 관심을 보일 수준이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네. 새로운 주인이여.」

기사단장의 영혼이 나의 건틀릿에 새롭게 담겼다.

[소환 가능한 백혈기사단에 히든 멤버, 기사단장 엘이 추가됐습니다.]

[건틀릿의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기사단장은 즉시 통솔력을 발휘해 단원들을 유용하게 지휘합니다.]

[기사단장의 지휘력은 모든 단원들의 능력치를 20% 끌어냅니다.]

[다만 기사단장의 리더쉽이 너무 뛰어나면 유령기사단이 주인에게서 성불하려들 확률이 높아집니다.]

강화된 백혈기사단이 돌아가고, 카티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단장의 무덤도 찾고 보상도 얻었으니 다행이네요. 이젠 어서 여기를 나가서 돌아가도록 해요.”

“맞습니다. 지긋지긋하다고요.”

도시에 들어온 새에 얼굴이 30년은 늙은 샬이 고개를 구슬프게 끄덕였다.

나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이걸 쓰면 나갈 수 있다고 했지.’

내가 반지에 마력을 쏟아내자 반지가 요란하게 빛나며 번뜩였다.

기계음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심연에 개설된 방 중에서 한 곳을 택해 이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방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이 지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

그러자 기계음이 빠르게 대답했다.

[1과 2와 3중에서 하나만 선택해 주십시오.]

1, 2, 3?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혹시 앞으로 우리가 이전될 방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3이 좋겠다는 것이야.”

“어째서 말이냐?”

“숫자든 뭐든 일단은 무조건 많은 것이 좋은 것이야.”

상당히 미신적이고 무식한 발언이었지만 딱히 정보도 없기에 나는 3번을 택하였다.

그러자 반지의 기계태엽이 빠르게 돌아가며 기계음을 내었다.

[3번, 폐쇄의 방으로 이전됩니다.]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지식을 동반하길 바랍니다. 침입자들이여.]

순간, 무덤이 진동하였다.

이전이라고 하기에 순간이동 따위를 생각했지만 그게 전혀 아니었다.

무덤구조에 있는 태엽이 돌아가며 우리가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

“이, 이게 가능이나 한 겁니까?”

“드워프의 기술력이군요. 그들의 힘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드워프의 기술력?

그렇다면 이런 방을 만들어낸 것도 전부 드워프의 짓이었단 말인가?

하여간 방의 구조가 뒤바뀌며 관이 박살 나고 점차 반경이 좁아졌다.

“뭐, 뭐야? 이 방은?”

“점점 좁아지고 있잖아.”

우리가 서 있는 방은 발이나 간신히 디딜 수 있을 만큼 좁아졌다.

또한, 천장의 뚜껑이 열리더니 갑자기 금화와 보석들이 쏟아졌다.

“역시 3번을 뽑은 내 선택이 옳았던 것이야! 보석을 내게 주다니.”

퀸소히니베는 보석을 뺨에다 비비며 즐거워했지만, 나는 어째선지 꺼림칙한 기분부터 앞설 따름이었다.

“이 방, 어쩐지 수상해요.”

“맞습니다. 순순히 지상으로 올려다 주려면 방을 이런 구조로 뒤틀 필요 없이 그냥 길을 안내해 주면 됐을 텐데. 수상한 일이군요.”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앞에 붉은 문구가 떠올랐다.

[폐쇄의 방에 입장하였습니다.]

[노련한 드워프들이 제작한 특수한 방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목숨과 부가 갈리게 됩니다.]

[무사히 탈출하면 이곳의 보물을 모두 가지고 나갈 수 있게 됩니다.]

[8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무작위로 1명씩 사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잠시 멍해졌다.

나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비좁고 뜨거운 보물의 방을 돌아봤다.

“제한시간 안에 열쇠를 찾아서 나가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에서 모두 전멸하게 된다. 이거 맞지?”

카티에가 굳어진 얼굴로 끄덕였다.

“끔찍하네요. 무작위로 한 명씩 죽게 될 거라니. 처음 죽은 사람 빼고 모두를 백치로 만들겠다는 의미. 이건 정확히 회귀자를 겨냥한 함정이 틀림없어요.”

이런 함정까지 보자 감이 온다.

텅 비어 있던 도시.

갑자기 밴시로 부활하는 시체.

그리고 이곳 폐쇄의 방까지.

‘모두 회귀자를 저격한 함정이군. 이번 회차의 드워프들은 회귀자한테 끔찍한 원한을 품고 있는 거야.’

샬은 거의 절규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말했지만 여기서 죽으면 밴시가 된다니까요!”

탐사단 대원들이 허겁지겁 난리를 치며 방의 구석구석을 뒤지려 했다.

“열쇠, 열쇠부터 찾아야만 해!”

“저 문을 열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모두 여기서 밴시가 될 거라고!”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쇠는 찾을 필요 없습니다.”

“예?”

“나한테 재능이 있거든.”

카티에가 손가락을 튕겼다.

“하기야 대장한테는 잠금 해제 재능이 있으니까요. 대장이 못 딸 자물쇠는 이 세상에 전혀 없어요.”

“과연. 내 노예한테 보석 하나쯤은 줘도 나쁘지 않겠다는 것이야.”

퀸소히니베한테 쓴웃음을 지어주고 나는 열쇠 구멍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서 미리 만들어둔 락픽을 비집어 넣고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3분 가까이가 지났지만, 나는 문짝을 조금도 열지 못하였다.

어?

잠깐.

‘이거 왜 이래?’

나는 입술을 가만히 깨물고, 열쇠 구멍에 락픽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장. 시간이 없어요. 조금만 지나면 처형이 시작될 거라구요.”

“드문 일이군요, 범철. 평소에는 30초 내로 문을 따지 않았습니까?”

“역시 드워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문은 따기도 힘든 것이야?”

슬슬 다들 초조해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벌써 5분이나 흘러갔다.

이제 남은 시간은 채 3분도 되지 않았다.

“대장. 뭐해요? 시간 없어요.”

벌써 불안증이 도진 카티에가 나에게 재촉했지만, 난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뭐가요?”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덜그럭거리는 방문은 그대로였다.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창백한 얼굴로 일행을 돌아보았다.

“재능이 사라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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