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60화
다들 놀라고 있을 새조차 없었다.
으흐우우우……!
죽은 회귀자의 혼이 밴시가 되어서, 우리를 곧바로 덮치려고 하였다.
“란! 란이 당했어!”
“죽으면 밴시가 되어버린다고?”
“도, 도망쳐! 란이 밴시가 됐어!”
탐사단이 밴시가 된 일행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제 발에 넘어졌다.
“대, 대장!”
“밴시……!”
카티에와 헤르탄도 핼쑥한 얼굴이 되어서 전투불능상태에 빠졌다.
‘제기랄, 이래서 회귀자는.’
내가 입술을 씹고 소리쳤다.
“퀸소히니베! 목 없는 기사는 네가 처리해라. 밴시는 내가 맡는다.”
“바로 알아들었다는 것이야.”
나와 퀸소히니베는 회귀를 할 수 없기에 밴시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따라서 지금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우리 둘뿐!
‘화기의 뱀!’
나는 밴시가 되어버린 탐사단 단원을 향해서 마법의 불꽃을 쏘았다.
그러나 이리저리 뻗어가는 화기의 뱀으로도 밴시가 되어버린 단원을 명중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급 밴시의 회피력!
“으아아악!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너는 란이 아니야!”
눈물을 흘리며 뒤로 버둥대는 샬의 등을 밴시가 노리고 움직여 들었다.
하나 내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후우욱!”
한기의 숨결을 내뱉자 상급 밴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나는 마법의 불꽃을 쏘아서 상급 밴시를 깨끗이 소멸시켰다.
[상급 밴시를 처치했습니다!]
[지능이 1 오릅니다.]
“어떻게 인간이 밴시한테……?”
샬이 나를 놀란 표정을 보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렸다.
“퀸소히니베! 그쪽은?”
“아무리 죽이더라도 기사가 자꾸 혼자서 일어나버리는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아예 맨손으로 목 없는 기사의 몸뚱이를 찢어버렸다.
하나 기사의 썩은 육체는 아직 신경이 남은 것처럼 마구 펄떡였다.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마구 재생하는 갑옷 파편과 징그러운 몸뚱이들!
“이놈은 시체 파편도 남겨서는 안 되겠어. 전부 불태워 버려야 해.”
내가 기사의 시체조각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린 후에야 재생이 멈췄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표정은 다들 굳어 있거나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에서 죽으면 밴시가 된다.’
도대체 지금 이 지하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헤르탄도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해괴하군요. 회귀자는 보통 유령으로 탄생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죽는 즉시 회귀하니까요. 회귀자가 죽고 유령으로 뒤바뀌는 경우는 몹시 이례적인 경우나 가능합니다.”
하기야 그것도 그렇겠군.
“인간이 죽어서 밴시가 되어 소멸한 경우도 회귀가 가능한 겁니까?”
“스켈레톤이나 좀비 따위로 종족을 변환시킨 회귀자도 사망하면 다들 회귀를 했으니 가능은 할 겁니다.”
카티에가 눈물 자국이 남은 뺨을 쓸며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밴시는 위험해요. 하마터면 다들 백치가 될 뻔했다구요.”
한 남성대원이 부들부들 떨면서 격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제기랄!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요! 사망하면 밴시가 된다고? 이런 도시에서 어떻게 버티라고!”
“이봐, 진정 좀…….”
샬이 말리려 했지만, 그 남자는 당장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옥상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흔들리나 싶더니, 추락해 버렸다.
[핏빛의 도시가 비웃습니다.]
[추락사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잃지 못합니다.]
“끄아악!”
높은 건물에서 떨어진 남자는 문구대로 생명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상까지 회복되진 못했다.
그는 사지가 그대로 부러진 채로 악을 쓰며 엉엉 울었다.
“죽여줘! 이딴 도시에서 빨리 벗어 나고 싶어! 누구든지 좋으니까 빨리 나를 여기서 회귀시켜 달라고!”
“제기랄, 이 정신머리 나약한 놈아! 너도 죽어서 밴시가 되고 싶나? 누구라도 죽으면 몽땅 백치 행이야!”
그나마 단장인 샬이 심지 굳게 사지가 망가져 버린 대원을 추슬렀다.
카티에가 치유의 빛이 휘감긴 손으로 추락한 대원의 몸을 어루만졌다.
“당장 치료는 힘들겠지만, 이걸로 응급조치는 될 거예요. 정자세로 있으면 뼈가 붙을 테니 안정 취해요.”
샬이 뒤늦게야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밴시한테서 우릴 구해주신 것도요.”
그는 유일하게 탐사단에서 그나마 안정된 정신을 유지하는 자였다.
탐사단의 대원들은 모두 밴시에 대한 공포로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 당신과 저 아름다운 여성분은 밴시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 같던데요?”
“하, 그것은 내가 위대한 용…… 읍.”
“우리 둘이 꽤 인내심이 셉니다.”
퀸소히니베의 말을 중간에 막아버리고 나는 대충 둘러대었다.
‘신분이 노출되어 좋을 건 없어.’
퀸소히니베는 용이란 이유로 노예가 될 뻔했고, 난 청색대륙에서의 경험 탓에 이름 밝히는 걸 꺼렸다.
헤르탄이 현기증을 느꼈는지 이마를 짚고 신음을 흘렸다.
“죽으면 밴시가 되는 도시. 이곳에 절대 오래 있을 수는 없겠습니다.”
“내 생각도 같아요. 우선은 탈출할 방법부터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누구나 죽으면 밴시가 된다.
도시 천지에서 언데드가 습격한다.
이곳은 회귀자의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1회차였다.
“누군가 죽으면 밴시가 되어 사태가 악화됩니다. 일단 여러분은 이곳 건물에 숨어 있어요. 기사가 쳐들어 와도 누가 죽는 일이 없도록. 인원 분산되는 일도 없게끔. 알겠죠?”
“그럼 대장은요?”
“도시를 살펴봐야겠어. 여기서 나가려면 근처를 곳곳이 탐색할 수밖에 없겠지.”
카티에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 괜찮겠어요, 대장?”
“누가 나 혼자 간다고 했냐?”
나는 나처럼 회귀하지 못하고 밴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동료를 보았다.
퀸소히니베가 새침하게 물었다.
“결국 나도 함께 가는 것이야?”
“응. 너도 밴시에 약하진 않잖아.”
“흥. 내 노예가 정 그리 사정사정하니 함께 가주긴 하겠단 것이야.”
하여간 어련하실까.
“죄송합니다. 우선 밴시에 대한 후유증을 극복할 때까지는 이 건물에서 안정을 취하고 지키겠습니다.”
창백한 회귀자들을 놔두고서 우리는 시체들의 거리로 걸어 나왔다.
거리에는 목 없는 기사들이 수없이 배회하고 있었는데, 그 숫자는 대략 수십 마리에 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숨어서 놈들을 지켜보며 그 규모와 행동패턴을 파악해 보았다.
“저놈들도 죽으면 신체부위가 맞물리며 재생되겠지. 까다롭군.”
“내 브레스로 확 쓸어버리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야?”
“안 돼. 자칫 그러다 실수해서 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그러자 내 말에 퀸소히니베가 조금은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역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은 내 노예밖에 없는 것이야.”
그러나 그런 퀸소히니베의 오해(?)와는 달리, 나는 순수한 걱정이었다.
‘퀸소히니베가 죽으면 용의 밴시가 나올 텐데, 감당할 수나 있겠어?’
아크 리치 때와의 전투에서 보았던 용의 밴시는 위용이 대단했으니까.
그런 녀석이 튀어나왔다간 회귀자는 모조리 백치가 되어버릴 것이다.
‘일단 적의 규모부터 파악해야 해.’
우리는 소리가 들려도 기사에게 노출되지 않을만한 뒷골목으로 숨었고, 나는 그곳에서 호리병을 열었다.
“꾸라아악!”
사막거북, 동북이가 소환되었다.
‘애완수도 회귀를 못 하니 밴시에 대한 두려움은 느끼지 않으니까.’
동북이는 엉금엉금 기어서는 머리를 올려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미안하지만, 지금 먹이는 없어.”
“꾸로록!”
동북이가 크르렁 울었지만, 나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우선 이곳의 수상한 장소를 탐색해 봐야겠어. 그걸 네가 체크해 줘.”
동북이가 둥그런 머리를 크게 끄덕이더니 모래를 파고 땅 밑으로 갔다.
보통 거북이라고 하면 느리다는 편견이 앞서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막거북이만큼은 달랐다.
‘사막거북이에게 드넓게 펼쳐진 모래란 바다와도 같다.’
사막거북의 특성.
바다를 헤엄치는 거북처럼 모래에 침투한 동북이는 고속 이동한다.
어지간한 두더지보다 빠른 스피드!
‘역시 S급이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제 몫을 하잖아.’
동북이는 땅 밑을 헤엄치다가 도시 근방을 순회하고서 내게 돌아왔다.
“어땠냐?”
“꾸왁!”
동북이가 몸을 뒤뚱대며 크게 울었지만, 당연히 언어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어딘가 수상한 곳을 찾았으면 크게 울고, 찾지 못했으면 작게 울어.”
“꾸라와악-!”
동북이가 우렁차게 울었다.
당연하지만 소리를 크게 낸다면 몬스터에게 들킬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저것들은 다르지.’
나는 멀리서 배회하는 목 없는 기사 유령들을 지켜보았다.
목이 없기에, 저들은 아마도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난 얼추 그들의 패턴을 파악했다.
‘기사유령은 목이 없다. 그래서 청각, 후각이 없고 뭔가를 파괴하려는 본능에만 따르며 움직이지.’
요컨대 기척만 내지 않으면 기사유령을 피해서 움직일 수가 있다.
“수상한 곳을 발견했다면,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 줘라.”
“꾸라왁!”
동북이가 용감한 발짓으로 앞장서서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하였다.
퀸소히니베는 그런 동북이를 아주 탐이 나는 눈빛으로 지그시 보았다.
“거북이는 잘만 끓여 먹으면 몸보신에 아주 그만이란 것이야.”
“내 애완수 잡아먹을 생각 마라. 이 야만적인 용아.”
“흥. 그냥 해본 소리라는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고개를 휙 저었지만 포동포동한 동북이를 보는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여간, 바로 저기로군.’
길 안내를 해준 동북이를 호리병에 다시 넣고 나는 저편을 바라봤다.
기사유령들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는 바로 도시 광장이었다.
시설은 번화한 광장이었으나 빛이 없고 유령이 휘돌아 을씨년스럽다.
도시 광장의 중심에 시계탑이 있었는데, 아주 커다란 종이 달려 있었다.
‘아까 도시에 크게 울려 퍼졌던 소리가 바로 저 시계탑의 종이었군.’
기사유령들의 배치와 움직임을 보아하니 시계탑의 주위를 돌고 있다.
“꼭 저 종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야.”
나도 퀸소히니베의 의견과 같았다.
‘저 종과 언데드의 출현이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아까부터 종이 울릴 때마다 도시에는 몬스터가 계속 출현하고 있다.
‘그럼 몬스터 출현의 근원인 저 종을 부수면 해결되지 않을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가자. 퀸소히니베.”
“내가 브레스를 연사할 수 있는 건 3발까지이니 꼭 명심하란 것이야.”
우린 광장의 중심에 쳐들어가 목 없는 기사유령을 마구 소멸시켰다.
기사유령들이 즉시 격노하여 영혼 칼을 빼 들었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
유령기사단 소환!
내가 내뻗은 건틀릿에서 광휘가 뿜어지며 유령기사단이 소환되었다.
‘오크기사와 척후병이 늘어났군.’
새롭게 편성된 오크 유령기사 둘!
「공용어는 익숙하니 걱정 말라.」
「힘쓰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라.」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이 유령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슬프다.」
불멸아귀를 죽이며 2명의 인원이 늘어, 12인 기사단이었다.
“저 기사들을 쳐 죽여라.”
내가 소리쳤지만, 의외로 유령기사 들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주춤댔다.
「주인. 이곳이 낯설지가 않다.」
「어째 그리운 기운이 느껴진다.」
「맞아요, 주인님. 제 동생도 그렇다고 해요. 왜 눈물이 나려 하죠?」
「온전치 않았던 살아생전 기억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뭐지? 저 반응들은?’
나는 의아했지만, 유령기사단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기사유령을 퇴치하는 기사유령!
「이놈들은 목도 없는 것이 감히 기사를 자칭하며 나선단 말인가?」
「어이가 없군. 모두 죽어라.」
「주인의 명을 따르겠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장소는 이상하다.」
나도 마법을 쓰고, 퀸소히니베도 브레스를 내뱉으며 합세하였다.
광장의 목 없는 유령기사들이 퇴치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꽤나 놀랐지만, 패턴을 알고 나니까 그리 무서울 것도 없군.’
모든 유령기사를 퇴치하고 나자, 또다시 시계탑의 종이 크게 울렸다.
[평온의 종이 울렸습니다.]
[휴식시간이 10분 주어집니다.]
[도시, 라메티카르에 드리워진 핏빛의 광기가 조금은 옅어집니다.]
우리가 한시름 덜려던 찰나.
저편에서 예상치 못한 자가 보였다.
‘저건?’
나는 황급히 퀸소히니베의 손목을 붙잡고 뒤쪽 샛길로 숨어버렸다.
“왜 그러는 것……? 읍.”
내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그녀가 옴짝달싹하며 내 손을 깨물려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물고 잘 들어. 지금부터 조용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부 다 죽어.”
퀸소히니베가 놀라서 끄덕였다.
저편에서 우리 말고도 또 다른 인간이 비척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회귀자였다.
난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삼켰다.
‘저 자식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분명 예전에 내가 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