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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58화 (158/200)

나만 1회차 158화

거북이 알은 산산이 깨져 있었다.

헤르탄이 능숙하게 휘젓는 프라이팬 위에서 매혹적인 소리가 울렸다.

치이익!

오믈렛은 얼마나 위대한 음식인가.

20대 초반에는 귀찮아서 달걀 프라이나 해 먹었지만, 난 중반에 들어서야 오믈렛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계란말이도 나쁘지는 않지만, 오믈렛의 푹신함에 대적할 순 없다본다.

“역시 알은 어떻게 조리하든지 맛은 그냥 거기서 거기란 것이야.”

저런 맛 모르는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 녀석이 제일 많이 처먹냐?”

“흥. 내가 가장 많이 일했으니, 가장 많이 먹을 자격이 있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접시에 있는 마지막 오믈렛을 보며 욕심을 부렸지만, 노련한 카티에가 포크가 앞선 뒤였다.

“어머. 용이면서 손도 느리네요?”

“네년은 정말이지……!”

두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았고, 헤르탄은 맛좋은 다음 요리를 만들고 있었고, 난 밤하늘이나 바라보았다.

사막의 불가는 그토록 한가로웠다.

“드워프는 회귀자에게 우호적일 리가 없습니다. 만일 조우해서 전투가 벌어지면 상황은 악화될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어깨에는 요정이 앉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작은 요정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빨리 잡았는지 궁금한 눈치였다.

일부러 요정이 남긴 빛의 길을 따르지 않고, 우린 앞질러 이 녀석을 붙잡았다.

‘이 요정이 있어야 드워프와 우호적으로 접선할 수 있다고 했었지.’

요정을 데려가면 드워프와 접선하더라도 바로 적대하지 않게 된다.

“드워프의 주거지에 도착했을 때, 이 요정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까?”

“예. 이 요정을 데려간다는 건 드워프에게 우호적이란 의미입니다.”

신기루 사막의 폐허문명.

우리가 여기 도착해 요정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날마다 공포의 신기루가 덮쳤지.’

횡단하며 모래바람보다 두려운 것이 공포를 연상케하는 신기루였다.

첫 날에는 카티에였다.

“대장……! 제발 죽으려 하지 마요……. 자살하지 말라구요!”

멀쩡히 잘 걷던 그녀가 갑자기 착란을 일으키며 몸을 벌벌 떨었다.

우리는 결국 그날 반나절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녀를 간호해야만 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진정한 그녀에게 내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도대체 뭘 봤던 거냐?”

“그 회차. 대장이 자살해 버렸던 회차를 봤어요.”

나는 눈매를 조금 좁혔다.

“내가 자살했던 회차도 있었어?”

“우리를 지키려고 희생했었죠. 바보 같이. 우린 회귀하면 그만인데.”

카티에가 눈물을 닦으며 나를 껴안았고, 나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그때 내 유언은 뭐였냐?”

“유언을 남길 새는 없었어요. 그저 이 말이 끝이었죠. ‘너흰 죽지 마.’”

어째 너무 나다워서 암울한걸.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의 내가 죽은 얘기는 언제 들어도 새로웠다.

하여간 두려움의 신기루는 불규칙한 주기로 한 명씩 우리를 덮쳤다.

둘째 날 오후, 두려움의 신기루가 이번에는 헤르탄을 덮쳤다.

내가 그것을 알았던 것은 그가 걸음을 멈추며 땀에 젖었기 때문이다.

“전하. 검을 거두십시오.”

“뭐라고 했습니까, 헤르탄?”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헤르탄은 ‘지금 회차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강렬한 흥분을 담아서 말하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거두십시오! 말했잖습니까! 절대 싸우지 마십시오. 당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왕정도 무너집니다.”

헤르탄은 카티에처럼 정신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안정이 필요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그는 계속 혼잣말을 쏟아냈고,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헤르탄. 뭘 보았습니까?”

“그다지 설명하고 싶지는 않군요.”

나는 제법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 무덤덤한 헤르탄이 두려워하는 환상이 뭔지 궁금했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밤, 모두가 잠에 취했을 때 불침번을 서던 나는 그와 단 둘이서 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왕정이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왕정이요?”

“범철. 1회차의 시절, 저는 반역자였습니다. 이전 삶의 제게 있어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만인을 위한 절대왕정을 건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날 왕으로 만들었던 겁니까?”

헤르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45회차에서 범철을 왕으로 모셨을 때, 왕정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절대적인 왕정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숙원을 쓰면 되잖습니까?”

“범철. 내가 원하는 왕정에는 절대 외부요인이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설령 숙원이라도 말입니다.”

“고지식하지만 헤르탄답군요. 숙원을 거부하는 회귀자라니.”

“내가 원하는 국가란 ‘우리가 쌓아 올려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럼 왕정이 멸망하는 광경이 신기루로 나타났었던 겁니까?”

“그대가 죽을 때, 우리가 건국했던 국가는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내게 그것은 가장 끔찍한 공포입니다.”

날 바라보는 헤르탄의 눈빛에는 이번 삶에 보지 못한 슬픔이 보였다.

“제가 보았던 것은 그대의 죽음, ‘나의 왕의 죽음’이었습니다. 범철.”

카티에도, 헤르탄도 가장 보기 싫고 두려워한 광경은 내 죽음이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이 때론 누군가의 강렬한 슬픔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인연의 두 사람을 만날 수 있단 것에 솔직히 감사했다.

‘회귀는 싫지만, 그게 없었더라면 이 두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겠지.’

셋째 날, 두 번이나 신기루에 당한 우리는 걸음을 최대한 재촉했다.

다행히도 그날 정오, 우린 마침내 기름이 파묻힌 장소에 도달하였다.

채굴의 재능을 가진 내가 빠르게 삽으로 모래를 파자 마른 맨땅에 기름이 벌컥벌컥 올라왔다.

[신기루의 사막에서 신비로운 활력의 기름을 찾아냈습니다!]

[사막에서 손에 꼽는 보물발견!]

[머리칼에 기름을 바르면 사막 신기루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요리를 할 때 신비한 기름을 사용하면 요리 효과가 증대합니다.]

[신비한 기름을 다섯 통 마시면 ‘기름범람’마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내가 예상했던 기름 색과 다른데? 거무튀튀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무지갯빛이네요?”

우리는 땅에서 홍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기름을 필요한 만큼 채집했다.

특히 헤르탄은 유리병에 쏟아지는 기름을 가득 주워 담았다.

“요리할 때 쓰면 기막히겠습니다. 먹어도 해가 없는 수준이군요.”

우린 각 머리칼에 기름을 발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형체가 일정치 않아 길을 찾기 어렵던 사막의 지형이 순식간에 눈에 고정되어 보였다.

“이제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겠어.”

“내 소중한 머리칼이 기름으로 번들거리게 된 것이야.”

울상을 짓는 퀸소히니베를 뒤로 하고 우리는 폐허문명을 찾아 나섰다.

“신기루만 없다면 사막이라도 길을 찾는 건 내게 아주 쉬운 일이에요.”

카티에의 안내 덕에 우리는 헤매지 않고 폐허문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루 사막을 7일간 횡단하여 폐허의 고대문명을 발견했습니다.]

[체력 능력치가 1 오릅니다.]

[수수께끼의 영역입니다.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신기루 사막의 폐허문명!

겉이 닳고 뼈대만이 남은 석조건물이 모래가 낀 채 휑하게 있었다.

‘그렇게 여기서 요정도 찾아냈지.’

요정을 찾아낸 것은 자정쯤이었다.

오늘은 밤이 깊어 야영하기로 했고 내일부터 드워프 근거지로 향한다.

“하여간.”

나는 저편의 애완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오믈렛을 던져주었다.

내가 던진 오믈렛을 동그란 거북이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와 먹었다.

“쿠우왁!”

“오믈렛을 좋아하니까 다행이네.”

오믈렛을 만들겠다고 오는 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골이 당긴다.

‘이놈이 좋아하는 먹이 구한다고 사막독수리 둥지까지 뒤져야 했지.’

대형거북에게서 받은 알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일찍 부화하였다.

알에서 태어난 것은 황폐한 사막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새끼거북!

난 태어나자마자 이 녀석을 조련재능으로 바로 길들여버린 참이었다.

『파괴의 사막거북』

특이사항: 초대형 괴생명체의 자손.

힘: 13 체력: 11 민첩: 1 마력: 1 행운: 52

소지스킬: 물어뜯기(Lv1). 등껍질 숨기(Lv1), 행운의 포효(Lv1)

주인에 대한 충성도: ‘배고프다. 저 인간, 먹이 준다? 그럼 따라다닌다.’

현재 건강상태: 공복임(식욕왕성)

잠재력: S급(쳐다만 봐도 열등감!)

느긋하고 잠자는 것을 좋아하는 거북이. 성미가 게을러 활동하는 걸 귀찮아한다. 식욕은 아주 강력하다.

+거북이가 슬퍼하면 등껍질 내구력이 저하됨. 갈라지지 않게 주의!

+오믈렛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함.

*호감도를 쌓을수록 파괴의 사막거북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역시 그만한 덩치의 거북이의 새끼라 그런지 S급 애완수가 나왔군.’

적색대륙에 와서 새롭게 얻은 S급 애완수!

그런데 나는 거북이의 상태창을 살피다가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다.

‘행운 능력치가 이상하게 높은데. 이게 애완수 특성이랑 관련 있나?’

“캬아앙!”

백야는 거북이 등껍질 위를 뛰어들며 재미있게 놀았다.

반면 거북이는 그러든가 말든가 자기 먹이에만 아주 맹렬히 집중했다.

“……거북이 내 애완동물로 할래.”

초화는 수줍게 웃으며 귀여운 새끼 거북이한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배가 고픈 새끼거북은 그 손가락도 먹이라 생각했는지 꽉 물려고 입을 벌렸다.

“쿠르왁!”

“꺄아악!”

초화가 화들짝 놀라서는 내 등 뒤로 꾸물꾸물 얼른 다가와서 숨었다.

“…….”

한편 달귀는 낯이 없어 음식은 먹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잠을 자며 꿈을 꾸는 것으로 대체 가능했다.

[애완수 달귀가 좋은 꿈을 꾸며 영양분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행운이 1 오릅니다.]

역시나 환상 도깨비라 그런지 영양분을 보충하는 수단도 남달랐다.

‘어느새 A급 애완수를 둘, S급 애완수도 둘이나 모았군.’

다들 제대로 키우면 제 몫을 해내고도 충분히 남을 것이다.

나는 새끼 거북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련재능 덕분인지, 거북이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쿠롸아악.”

통통한 거북이의 동그란 머리는 쓰다듬기가 몹시 편했다.

“얘 이름은 동북이로 지어야겠다.”

“왜 동북이에요?”

“동그란 거북이잖냐.”

“대장은 늘 참 아저씨 같아요. 이름 짓는 센스나 말투 말이에요.”

“이제 서른인데 그런 말 들어야겠냐?”

그러고 보니 시간도 참 빠르다.

벌써 한 해가 가고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벌써 서른이라니.’

서른이라고 하면 엄청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막상 내가 서른이 되니 기분이 좀 묘한 데가 있었다.

‘하여간 제때 기름을 찾아서 다행이야. 내가 신기루를 보기 전에.’

다행히도 내게는 그들처럼 두려운 신기루가 덮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신기루를 봤다면, 나에겐 어떤 광경이 보였을까.’

내가 직접 검으로 죽였던 전부인?

그것도 아니면 카티에한테 살해당하는 나 자신?

나는 어느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내가 혼자만 남게 되는 것.’

아크 리치의 생명그릇을 훔치려 할 때, 나는 그런 미래파편을 보았다.

도대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불멸아귀가 내가 맞게 될 거라했던 ‘끔찍한 결말’과 관계가 있을까.

‘자꾸만 불길한 상상을 하게 되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늘 그랬지만, 사념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 따위 나에게는 없었다.

저문 태양이 오르며, 날이 밝았다.

***

“드워프 있는 곳, 내가 안내…….”

항상 말꼬리가 묻히는 버릇의 요정이 날아갔고 우린 그 뒤를 따랐다.

길을 안내하는 요정이 향하는 곳은 폐허문명의 지하였다.

‘역시 드워프라면 지하에 있겠지.’

적색대륙의 드워프는 땅을 무척 사랑하고 광맥에 집착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들의 주거지도 지하에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폐허문명 구석 건물에 들어가자 지하로 가는 숨겨진 계단이 드러났다.

‘이곳 아래에 드워프가 있다.’

우리가 계단 아래로 향하려던 때.

누군가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라? 여기에 우리 말고도 사람이 있네?”

적색대륙 억양에 흑색 피부를 가진 네 명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앞장선 남자가 요정을 흘깃 보더니 붙임성 좋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안내꾼 요정 루트로 오셨구나? 그럼 고생들 좀 하셨겠네요. 좀 더 편한 루트도 많이 있는데. 당신들도 우리처럼 한몫 챙기러 온 건가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계단에서 마주친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린 드워프를 찾으러 왔습니다.”

“드워프들이요? 이미 늦었어요.”

곡괭이를 든 회귀자가 말하였다.

“걔네, 이미 싹 다 죽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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