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56화
사막이 붕괴되는 느낌이었다.
모래바닥이 지진 난 것처럼 요동치며 우리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야!”
“땅이 치솟고 있습니다!”
“뭐라도 붙잡아! 휩쓸린다!”
다량의 모래가 파도처럼 쏟아지고, 우리는 그 급류에 휘말려버렸다.
“꺄아악!”
신장이 작은 카티에가 모래에 푹 파묻혀 가장 깊이 휩쓸려버렸다.
“제기…… 퉷!”
입을 열자마자 모래가 덮쳐온다.
저대로 그냥 두면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어 카티에는 질식한다.
당장 움직이려 했지만, 모래에 파묻힌 몸은 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우리 일행 중 가장 최장신이 구세주처럼 움직였다.
헤르탄의 그 몸집으로도 휩쓸린 모래로부터 당장 빠져나오진 못했다.
그러나 그가 드루이드로서 가진 성장의 힘은 사막에서도 발군이었다.
“다들 이걸 붙잡으십시오!”
헤르탄이 던진 씨앗이 모래에서부터 넝쿨이 되어 길게 성장해 얽혔다.
휩쓸려가던 카티에와 나, 퀸소히니베가 각자 그 넝쿨에 휘감겼다.
입과 눈에 모래가 쓸리는 걸 한참 참아내자 마침내 급류가 멈췄다.
“쿨럭! 다, 다들 괜찮아?”
“배, 배가 모래로 가득 찬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배를 감싸며 죽을 것 같단 표정으로 헛구역질을 하였다.
반면 카티에는 창백한 얼굴로 바닥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죠? 설마 우리 발밑에 이런 괴물이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커서 한눈에 다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땅에서 솟구친 것이다.
헤르탄이 모래바닥을 쓸어 딱딱한 생명체의 몸체를 확인하고 말했다.
“거북이군요.”
“예?”
“거북입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것은 거대한 등껍질입니다.”
말이 끝나마자 등껍질에 숨겨져 있던 거북의 큰 머리가 쑤욱 나왔다.
괴생물의 정체는 사막거북이었다.
우리가 땅이라 딛고 있었던 것은 이 거북의 등껍질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제 삽질하다가 막혔던 암반이 바로 이 녀석의 등껍질이었군.’
사막 전체가 들어 올려진단 착각이 들었을 만큼 거대한 초대형거북!
하지만 등딱지가 갈라지고 주름이 깊은 것을 봐선 꽤 늙은 것 같았다.
내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적색대륙은 괴조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왜 이렇게 큰 괴물이 많아?”
그런데 뜻밖에도 거대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너희는 어째서 아까부터 자꾸 날 보고 괴물이라 부르는 것이지?”
우리는 모두 기겁해버렸다.
설마 대형거북이가 우리 얘길 듣고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우리가 하는 소리가 들립니까?”
“너희의 작은 목소리를 놓칠까. 나는 신기루 사막의 모든 걸 듣는다.”
아마 보통 거북이가 아닌 것 같군.
헤르탄이 침착하게 물었다.
“적색대륙의 초대형 생물들에 대한 괴담은 익히 들어왔지만, 설마 당신처럼 거대한 거북이 신기루 사막에 서식하는 줄은 전혀 몰랐군요. 어째서 지금 모습을 드러내신 겁니까?”
초대형거북의 목소린 꽤 느릿했다.
“내가 지배하는 사막에 하늘의 주인이 방문했으니, 당연한 것이다.”
초대형거북은 저편에서 여길 주시하는 괴조를 세게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난 두 괴물의 덩치를 비교해 봤는데, 그 크기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두 괴물의 규모가 비슷하다면, 어쩌면 이건 기회가 될지도 몰라.’
마침 괴조가 우리를 노리지만, 상대할 방법이 없어 곤란한 처치였다.
내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 저 괴조의 출현이 거슬려 모습을 드러내신 것입니까?”
그러자 느긋한 음성이 답하였다.
“그렇다. 저 녀석이 심기에 거슬리는군. 하지만 싸우진 않으려 한다.”
“어째서 말입니까?”
“내 지역에 침범한 것은 분명하나, 내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싫다. 녀석이 늙어 죽기를 기다리겠다.”
순간 나는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 괴조가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요?”
“죽으면 패하는 것이고, 살면 이기는 것이다. 그러니 난 저 녀석보다 오래 살아서 승리하겠다는 것이다.”
카티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만한 괴조가 자연사하려면 최소 몇십 년은 걸릴 텐데요?”
“나는 인내심이 강한 편이다.”
“…….”
이건 뭐, 괴짜에 가까울 만큼 참 거북이스럽고 철학적인 싸움법이군.
하지만 당연하게도 괴조가 늙어 죽길 기다리다간 우리가 먼저 죽는다.
“카라아아악-!”
대형괴조는 갑작스레 나타난 거북이를 보고 놀랐는지 경계하고 있다.
대치상황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다.
위에서 대화하는 우리 일행을 눈치채고 언제 덤벼올지 모르는 거니까.
“거북이시여. 부탁이 있습니다. 우린 저 괴조를 죽이고 싶습니다.”
“죽여 달라고? 초면에 참 과하군.”
대형거북이 코웃음을 치자, 카티에도 나서서 간곡히 요청하였다.
“어떻게 안 될까요?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뭐든 하겠어요. 우리 일행에는 회귀자도 둘이나 있거든요.”
“회귀자?”
대형거북이 혹하는 목소리를 내자, 내가 재빨리 설득에 들어갔다.
“저희 일행은 회귀자도 죽이는 1회차, 회귀한 성녀, 산적 드루이드, 그리고 애완용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러자 퀸소히니베가 즉시 으르렁댔다.
“마지막 말은 취소하란 것이야. 고귀하고 역사에 이름 남을 용이겠지!”
그러자 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메마른 사막에 유희를 불어넣는 친구들이군.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내가 원하는 의뢰를 해결해 준다면, 기꺼이 너희 소원을 이뤄주겠다.”
“뭘 의뢰하려고 그러십니까?”
“바다로 가다오.”
“바다…… 말입니까?”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의뢰인가.
사방이 사막인데 바다에 가달라니.
대형거북의 의뢰는 불가능을 넘어서 놀리는 것에 가까운 말이었다.
헤르탄이 질문했다.
“바다에는 왜 가달라는 겁니까?”
그러자 대형거북의 느릿한 목소리가 심히 우울해졌다.
“지금 청색대륙 바다에 남편이 가 있다. 말하다 보니 또 우울해지는군.”
“얼굴이 보고 싶은 겁니까?”
“아니. 그 자식이 나한테서 가져간 패물을 꼭 찾고 싶어서 그런다.”
“…….”
대형거북은 찾고 싶은 패물을 상상하는지 눈을 감고 꿈꾸듯 말했다.
“영롱하고 귀한 흑진주인데, 나한테는 반드시 꼭 필요한 물건이지.”
청색대륙 바다까지 다녀오라니.
애당초 불가능한 의뢰였다.
하나 세상엔 불가능한 확률조차 뚫어버리는 기연이 존재하는 법이다.
“혹시 설마…….”
그러나 나는 곧바로 배낭 구석에 꿍쳐놓았던 흑진주를 꺼내었다.
“이걸 말하는 겁니까?”
즉시 등껍질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대형거북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네가 어떻게 그걸!”
***
“바다 하니까 용궁이 생각나더라.”
대형거북이 하는 소리를 계속 듣고 있자니 뭔가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불현듯 용궁에서 일하던 늙은 거북이 맡긴 물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바로 이 동그랗고 커다란 흑진주.
‘적색대륙에 제 아내가 있습니다요. 참 작고 가녀린 친구인데, 헤어진 지 꽤 되어 너무 걱정됩니다요. 그러니 이걸 전해주시겠습니까요?’
녀석이 이걸 꼭 전해 달라 했었지.
‘아니, 근데 어딜 봐서 저 커다란 거북이가 작고 가녀리다는 거야?’
아내 사랑도 너무 지극하면 보는 시선까지도 뒤틀리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피어나도 뭔 말이든 듣는 거북 앞이니 구태여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딜 봐서 저 거북이가 작고 가녀리다는 것이야?”
“…….”
나는 퀸소히니베를 노려봤고, 퀸소히니베는 고개를 척 들 뿐이었다.
“너, 자꾸 눈치 없이 말할래?”
“하, 내 노예는 주인이 그런 것도 생각 못 했을 것 같은 것이야?”
그러자 사막거북이 크게 웃었다.
“내 남편이 내게 하는 말은 알고 있으니 그리 기분 상하진 않는다.”
“용맹하고 오래 산 생물은 자신의 덩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야.”
과연 용답게 거대생물의 심리를 잘도 파악하고 계시군.
카티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여간 운이 좋았어요. 설마 이곳에서 만난 사막거북이가 용궁서 일하던 늙은 거북의 아내였다니. 덕분에 우리도 이제 한시름 덜었네요.”
그러나 나는 그 말에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글쎄, 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
나는 펜타그램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이것을 통해 이득경로를 보아서였다.
‘어쩌면 이조차도.’
내가 강해져 목표를 이루길 바라는 조력자가 판을 짜놓은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서둘러 드워프와 조우해서 그 조력자의 정체를 알아야 해.’
재능을 선물한 조력자는 대륙지배자들에게 ‘키 작은 자’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분명히 드워프들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몹시 높을 것이다.
“아무튼 나에게 흑진주를 전해준 너에게 심히 감사의 말을 표한다. 혹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하라.”
“그렇다면 저 괴조를…….”
“범철.”
헤르탄이 나의 말을 끊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가 저편을 가리켰다.
“저곳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순간 나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어째서 이제야 보인 것일까.
거북이 등껍질 위에 탄 우리처럼.
괴조의 위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
남자는 옆으로 태평히 누워 있었다.
괴조 위에서 저렇게 누워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의 머리칼이 휘날리는 것을 보아 바람에 감싸져 있었다.
‘정령?’
하지만 저만한 정령술을 익힌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소도시의 술집에 가끔 정령사가 들려 한탄했던 적이 있다.
정령은 워낙 까칠하고 머리가 좋아서 다루는 것이 전혀 쉽지 않다고.
그런데 저 남자는 정령을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쉽게 다루었다.
‘하여간 로크 위에 타고 있단 건.’
로크가 딱히 거슬려 하지도 않고, 그 남자를 떨어뜨리려 하지 않는다.
‘저건 설마…….’
내가 크게 소리쳐서 물었다.
“너는 뭐냐?”
그러자 남자가 평탄하게 답하였다.
누가 들으면 자기 집 안방에 있다고 착각할 것처럼 한적한 어조였다.
“이 귀엽고 자그마한 새의 주인.”
그 대답에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형괴조가 크게 울었다.
“캬라아.”
그것은 방금처럼 패기에 찬 포효가 아니라 애교가 섞인 울음이었다.
그걸 보니 내 추측이 확실해졌다.
‘길들였다고? 저런 대형생물체를?’
SSS급 조련 재능을 갖춘 나도 저만한 대형생물을 길들이긴 힘들다.
아니, 오랜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저런 괴물을 조련할 수나 있을까?
“그렇다면…… 네가 그 ‘황제’냐?”
“난 때론 그렇게 불리기도 하지.”
황제.
롬과 마찬가지로 적색대륙의 거물이자, 우리 배에 로크를 습격시킨 자.
‘설마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황제가 날 직접 대면하러 오겠다고 했던 대랍비의 말은 전해 들었었다.
다만 설령 로크에 탑승했다 하더라도 녀석은 날 너무 빨리 쫓아왔다.
‘우리의 경로를 완벽히 읽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놈이 이렇게 빨리 날 따라온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어떻게 나의 행동반경을 저렇게 완벽하게 유추할 수 있는 거지?’
적색대륙으로 항해하던 배를 습격했던 것도 그렇고, 위험한 놈이다.
그런데 카티에의 불안증이 터져버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대장. 이곳은 위험해요. 저 남자가 있는 이상…… 너무 위험하다구요.”
그녀는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나는 서둘러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안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가야 해요,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어서, 이곳에서.”
헤르탄의 눈도 불안정하게 떨렸다.
아니, 뭐냐고.
감정표현이 진하지 않은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남자라니.
‘대체 저 녀석이 뭐하는 놈인데?’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거물.
지금껏 많은 거물과 강적들을 만나 봤지만, 회귀한 이들이 이만큼 감정 표현이 격했던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저 녀석이 위험하단 건가.’
난 날선 눈길로 녀석을 주시했다.
“넌 뭐 때문에 날 따라왔지? 그리고 왜 계속 우리를 방해하는 거냐?”
“이렇게 직접 만나 얘기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회귀 못 하는 친구.”
“회귀를 못 한다고 얕봐선 곤란한데.”
나는 칼을 날카롭게 세웠다.
“지금까지 나를 만났던 거물들은, 전부 죽었거든. 그것도 참혹하게.”
“어쩌다 그렇게 됐지?”
“뭐, 회귀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재능들이 더 뛰어나서 그랬나 보다.”
그러자 황제가 고개를 휘저었다.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군.”
“뭔 소리냐?”
“SSS급 재능.”
누워 있는 황제가 느긋이 웃었다.
“그 드높은 자질을 갖춘 게 인류에서 네놈 하나뿐일 거라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