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54화
난 지금 상황이 꽤 당황스러웠다.
평소 나를 노예 취급하던 거만함은 어디 가고 퀸소히니베가 주인 모시듯 나에게 저자세를 취해온 것이다.
그녀의 혓바닥이 스치고 간 귓바퀴에서 아스라한 매혹이 느껴졌다.
“너, 지금 도대체……?”
“발가락도 핥아드릴까요, 주인님?”
“뭐?”
“심기에 거슬리셨나요? 주인님. 아니면 다른 곳? 더 은밀한…….”
퀸소히니베의 눈빛이 어딘가로 향하기 전에, 카티에가 날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가 웃으며 말하였다.
“사실 용 고기는 맛있어요. 대장.”
“……뭔 소리냐.”
“특히 저녁거리로 아주 그만이죠.”
카티에는 차분하게 퀸소히니베를 ‘동료’에서 ‘식재료’로 격하시켰다.
“오늘 저 용을 잡아서 탕을 끓일까요, 아니면 상을 차릴까요?”
“……한 마리로 잔치 열기엔 고기가 부족할 테니 일단 보류하자고.”
우스갯소리로 답했지만, 지금 퀸소히니베가 정상 아니란 건 알겠다.
한편 언제나 침착함을 잃지 않는 헤르탄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퀸소히니베.”
“흐히…… 주인님……!”
하지만 퀸소히니베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혼잣말만 중얼댔다.
헤르탄이 한 번 더 그녀를 불렀다.
“퀸소히니베.”
“히……?”
짜악!
헤르탄이 그녀의 뺨을 한 대 갈겼다.
그의 표정이 무심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잠시 파악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뺨을 맞은 퀸소히니베는 여전히 헤벌쭉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헤르탄. 후환이 두렵지 않아요?”
내가 경악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자 헤르탄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에게 덜 아프게 죽는 법은 차고 넘치도록 경험해 알고 있습니다.”
“농담 마요. 그러다가 퀸소히니베한테 진짜로 맞아 죽게 될 겁니다.”
헤르탄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사실 용 고기는 꽤 맛있지요.”
“…….”
우리 퀸소히니베는 참 믿음직스러운 회귀자 동료들을 둬서 든든하겠군.
“퀸소히니베는 아무래도 약에 취한 것 같습니다. 통증에 반응이 없군요.”
“약이요?”
헤르탄이 철창을 가리켰다.
“퀸소히니베는 용입니다. 그런 강력한 존재를 이런 철창에 가둘 수 있단 건 말이 되지 않지요. 아마 약을 복용시켜 여기 가둔 것 같습니다.”
카티에가 흐리멍덩한 동공의 퀸소히니베를 가까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끝을 들어 그녀의 젖은 입술 향기를 맡곤 고개를 끄덕였다.
“망울꽃을 개량했네요. 독성은 없어도 환각증세가 격렬할 거예요. 약도 치사량 가까이 투여했네요. 이럼 누구에게나 복종하고 싶을 테죠.”
내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 저 몽롱한 상태에서 약을 깨게 할 수는 있는 거냐?”
“이만한 상태라면 내가 치유할 수 있어요. 아직 초기라 중독되지 않았고 용이라 면역력도 아주 강해요.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겠지만요.”
후,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역시 퀸소히니베가 용인 이유가 있지.’
강대한 용이기에 잠시 팔아넘겨도 무사할 거라 믿었다.
어디서든 생존력 하나만큼은 최고이니까.
‘그나마 약에 취했을 때 우리가 와서 다행이군. 서두르길 잘했어.’
카티에는 빛을 머금은 손으로 약에 취한 퀸소히니베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러다 그녀가 멈칫하였다.
“아, 잠시만. 깜빡한 게 있네요.”
“흐히……?”
카티에가 잠시 치유행위를 멈추더니 퀸소히니베의 뺨을 때렸다.
짝!
내가 깜짝 놀라서 서둘러 물었다.
“뺨은 왜 한 대 더 때려? 설마 약에 너무 취해서 의식이 깨……?”
“그냥 한 대 때려보고 싶어서요.”
“…….”
“뭐, 어차피 내가 한 대 때린다고 이 용이 아파하기나 하겠어요?”
그녀는 퀸소히니베가 내 귀를 핥았던 게 무척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팔꿈치가 몹시 아팠다.
“난 또 왜 꼬집어?”
“그냥 한번 꼬집고 싶어서요.”
“…….”
아니면 그냥 내가 싫어서 그런가?
하여간 시간이 흘러 치유는 마쳤고, 퀸소히니베의 동공이 돌아왔다.
“끝났어요. 몸에 남은 약의 독소는 거의 사라졌네요. 인간이었다면 이런 치유도 불가능한데, 과연 용의 면역력은 초월적이네요.”
머릿결을 흐트러트린 퀸소히니베가 이마에 손을 짚으며 신음을 흘렸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이야?”
우리는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의 표정은 심상치 않아졌다.
“…….”
퀸소히니베는 팔짱을 끼고 등을 돌리며 잔뜩 심통 난 티를 내었다.
내가 그녀에게 먼저 다가갔다.
“야, 퀸소히니베.”
“어머, 너는 누구인 것이야?”
“널 구하러 온 친구이시지.”
“감히 주인을 팔아먹는 노예 따위, 난 두었던 기억조차 없는 것이야.”
“나를 핥으며 몸을 조아리던 용도 딱히 주인이라 부르긴 어려운데.”
퀸소히니베가 곧장 날 노려보며, 자신의 붉어진 한쪽 뺨을 가리켰다.
“내가 모를 줄 안 것이야? 감히 누가 약에 취한 새에 날 친 것이야?”
“믿어 봐. 내가 때린 건 아니야.”
“누가 때렸는지는 중요치 않은 것이야. 어서 내 노예가 주인을 위해 자진해서 한 대 맞으라는 것이야.”
“오냐. 그래서 화가 풀린다면야, 나는 너를 위해 희생할 수 있…….”
짝!
난 결국 뺨을 한 대 맞고 말았다.
으으윽, 아파라.
“흥. 감히 주인을 노예로 팔아버린 벌인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통쾌하게 말하였다.
나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슬프다. 친구한테 처맞으니까.”
“흥, 엄살은.”
자기가 때려놓고도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는지, 퀸소히니베는 내 붉어진 뺨을 손으로 살살 문질러줬다.
“힘 조절했으니 딱히 아프지도 않을 거면서. 진심으로 쳤으면 내 노예 목이 완전히 돌아갔을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새침하게 내 붉어진 뺨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댔다.
내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여간 설명 좀 해줘라. 네가 팔린 지 길어봐야 6시간쯤 지났는데 어쩌다가 신전 지하까지 끌려왔냐?”
얘기는 간단하게 요약되었다.
퀸소히니베는 마차로 이동되다가 납치당해 이곳 신전에 오게 됐다 한다.
“도중에 납치를 당했다고?”
“터번을 쓴 인간들이 노예상을 죽이고 약에 취한 날 납치한 것이야.”
랍비들이 퀸소히니베를 납치했다니.
그녀가 노예로 팔린 걸 어떻게 금세 알고 그런 행위를 벌였던 걸까?
“약에는 어떻게 취했던 거냐?”
“중간에 녀석들이 줬던 음식에 약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은 것이야.”
“그걸 의심도 없이 먹었다고?”
그러자 퀸소히니베가 변명하듯 내 시선을 피했다.
“당연히 난 입도 대지 않으려 했던 것이야. 그런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적색대륙 음식이었고, 또 탈출하려면 기력도 회복해야 하니까…….”
하여간 용이기에 다행히도 인간과 달리 약물효과가 오래가진 않았다.
“내가 내 노예보고 주인님이라 부르다니. 그런 굴욕도 없는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꽤나 억울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히죽 웃고 말았다.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네 주인인 게 훨씬 어울리…….”
짝!
으윽, 아이고, 아파라.
***
“퀸소히니베를 구했으니, 드워프와 접선하러 가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우리가 적색대륙에서 해야 할 최우선 목표는 드워프와 만나는 것이다.
‘현재 드워프 종족은 회귀자를 적대해 몸을 숨기고 있다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드워프와 접선하기 위해서는 요정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펜타그램으로 ‘경로’는 파악할 수 있지만, 요정은 드워프의 적의를 소실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빛의 길을 따라 날아간 요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빛의 길과 역방향으로 왔습니다. 다시 상층에 돌아갈까요?”
“아뇨.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암흑상가 쪽으로 올라가죠.”
우리는 드넓은 암흑상가에 왔다.
다시 보아도 신전에 이런 지하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비하군.
그곳에는 부랑자들이 마약을 갈구하며 갖은 상가에 애원하고 있었다.
퀸소히니베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인간들, 무척이나 피폐해 보이는 것이야.”
나 역시 같은 감상이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함이 들었다.
“저런 마약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겁니까? 전생이 보이는 약이라니.”
“‘황제’는 아주 드높은 강자이자 마약을 제작, 유통하는 큰손입니다.”
마약을 다루는 황제라니, 독특한 회귀자로군.
“괴조랑 만났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그 ‘황제’란 자가 대체 누굽니까?”
“적색대륙 거물입니다. 45회차에서 ‘회귀자를 통치한 왕’보다 높은 명칭으로 일컬어지는, 그 오만함에 비견되는 천재성을 지닌 인물이지요.”
과거, 회귀자의 왕이었던 나보다 높은 명칭으로 불린다니.
헤르탄이 저렇게까지 말할 수준이라면 정말 보통이 아니란 거겠지.
그런데 난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회귀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단 몸 상태는 돌아오게 됩니다. 약을 하기 전의 깨끗하던 육체로.”
하기야 마약에 중독돼도 회귀하면 몸 상태는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까.
“그러면 회귀하면 마약중독도 낫게 되는 겁니까?”
그러나 헤르탄은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몸 상태는요. 그러나 대다수의 회귀자가 결국 다시금 마약에 손대게 돼요. ‘회귀하면 중독이 나으니까 괜찮겠지’라는 식의 마음으로.”
“하, 그렇습니까?”
“중독의 주요한 원인은 마약의 유해성보다, 몸에 익은 습관이니까요.”
회귀해도 끊지 못하는 것이 마약이라니.
정말이지 끔찍한 중독성이로군.
하여간 우리는 요정을 찾겠다고 굳이 빛의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요정을 찾으려면, 굳이 길을 찾을 필요 없이 바로 여기로 오면 되니까.’
펜타그램의 ‘이득 경로’!
나는 암흑상가에서 무엇을 해야 최단의 이득을 얻을지 인지하고 있다.
‘굳이 빛의 길을 따라갈 필요 없지. 너무 느리니까. 지름길로 간다.’
우리는 찬찬히 상가를 거닐었다.
“이곳에 요정을 빠르게 찾아갈 수 있는 아이템이 존재해. 그건…….”
나는 일행에게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하는 아이템에 관해 가르쳐주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해당 아이템을 찾아 상가를 살폈다.
암흑상가는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았으나 갖가지 상점이 존재했다.
‘회귀자의 세상에서조차 금지된 물품이라니. 도대체 어떤 게 있을까?’
어지간히 정신 나간 회귀자조차 꺼리는 물건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난 찬찬히 상가의 물품을 살폈다.
「꼬마 밴시를 불러오는 소환지.」
「사고를 마비시키는 융단.」
「기억력을 감퇴시키는 독약.」
‘대부분은 정신교란 물품이로군.’
회귀하더라도 몸 상태는 돌아오지만, 정신상태는 그대로 유지가 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회귀로 정신이 마모되고 마약중독에서도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암흑상가의 상인들이 씨근덕거리는 어조로 우리를 가볍게 유혹하였다.
“이봐. 형씨. 물건 좀 보고 가라.”
“생각해 봐. 회귀하면서 이런 물건 본 적 있어? 평생 가도 못 볼걸!”
“어느 회귀자도 손에 넣지 못한, 이번 회차에서만 볼 수 있는 물품!”
“다른 회귀자를 저주하고 싶나? 이것만 쓴다면, 설령 그놈이 회귀하여도 끊임없이 엿 먹여줄 수 있다네!”
그러나 난 그들을 그냥 지나쳤다.
대부분 그럴듯해 보이는 물품이지만, 그 효능은 그다지 좋지가 않다.
‘모습만 그럴듯한 불량품이 많군.’
당연히 대부분의 아이템은 문구가 떠올라서 성능을 속일 수는 없다.
……라는 식의 고정관념을 이용해 상인들은 교묘히 사기 치고 있었다.
‘내구력이 엉망이거나, 제약이 있거나, 쓰면 곧바로 저주를 받는.’
그런 문구에 숨겨져 있는 각종 부작용들이 나의 눈에는 훤히 보였다.
‘보물 탐색 재능, 그리고 고급감정 스킬이 있으니까.’
이제 어지간한 물건은 딱 보기만 해도 가치가 감별되고 견적이 나온다.
일행도 암흑상가의 여러 상품을 살폈지만, 딱히 손에 짚지는 않았다.
“저 융단이 꽤 탐이 나는 것이야.”
“멍청이가 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요. 저주받은 물품이니까요.”
“대부분이 회귀자에게 해가 가는 상품 위주군요. 복수에 좋겠습니다.”
난 상가의 상품을 꼼꼼히 살폈다.
‘이곳에서 요정과 만나고, 앞으로의 진행에 도움이 될 아이템을 얻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픽 웃음이 나왔다.
‘회귀자가 늘 이런 기분이었을까.’
펜타그램의 효과로 미리 ‘이득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어쩌면, 회귀자가 평소에 진행하는 루트와 같다.
모든 지식을 바탕으로 최단기간에 간단하게 최상의 보상을 취하는 것.
버림받은 회차에서 오래 살수록 나와 회귀자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됐어. 지금은 현재에 집중하자.’
지금 그런 감상에 말릴 때 아니다.
마지막 대륙지배자를 죽이고 회귀를 멈추기 위해, 나에게는 망설일 순간 따위 주어질 수가 없으니까.
‘고급감정.’
SSS급 보물탐색 재능과 더불어 스킬까지 발동시켜 훑으며 감정했다.
그러다 나의 걸음이 바로 멈췄다.
‘아니, 저건?’
감히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원래 찾던 물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멈춰 설 수밖에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만한 ‘보물’을 저따위 곳에 전시해뒀다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향하여 손을 뻗어 손아귀에 쥐었다.
“너무 만지지 마시오. 팔리지 않는 상품이어도 때 묻으면 닦아야 해.”
상점의 주인장은 ‘그것’을 별 가치 없는 물품으로 여기는지 나의 행동을 보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약간 구경하고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 순간.
“잡아라!”
“침입자들이 저곳에 있다!”
위의 계단에서 터번을 두른 여러 랍비가 분노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제기랄, 벌써 들킨 건가?
그때 카티에가 상가에 걸려 있던 그림을 양손으로 짚고는 소리쳤다.
“대장! 찾고 있던 물건이 이 풍경화가 맞아요?”
“야! 그건 파는 물건이란 말이야!”
그녀가 훔쳐서 든 그림은 우리가 요정에게 닿게 해줄 아이템이었다.
나는 달려가서 그녀의 손아귀에 있는 풍경화를 가져가 양손으로 들었다.
“너희 먼저 가! 난 나중에 간다!”
“하지만 대장!”
“가라니까!”
카티에가 결국 마지못해 풍경화로 먼저 뛰어들자 몸이 훅 빨려버렸다.
“지금 그림 속에 들어간 것이야?”
“다른 장소로 전이한 거야. 너도 얼른 가. 그림에 뛰어들면 된다고!”
퀸소히니베가 놀란 표정을 짓다 정신 차리고 풍경화 속으로 들어갔다.
헤르탄은 고개를 내저었다.
“끝까지 돕다가 가겠습니다.”
“걱정 마요. 내가 마지막에 남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헤르탄은 고심했지만 내 표정을 보더니 한숨 쉬고 풍경화로 들어갔다.
“부디 무리하지 마십시오. 범철.”
찌익!
사람이 한 명씩 들어갈 때마다 풍경화의 도화지가 조금씩 찢어졌다.
펜타그램의 경로를 통해 이것이 어떤 아이템인지는 파악하고 있다.
‘앞으로 단 한 명만 들어가면, 풍경화는 완전히 찢겨버리고 만다.’
내가 얼른 그림에 들어가려 할 때.
[신기루 풍경화가 수용인원을 채워 내구력이 한계에 다다릅니다.]
[제한대기시간이 걸렸습니다.]
[180초, 179초, 178초…….]
‘빌어먹을!’
나는 소금을 뿌려 검을 뽑았다.
3분 동안 저 랍비들의 마술로부터 살아남아 풍경화를 지켜야만 한다.
‘경로’를 보는 페널티로, 현재 나의 마법은 봉인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3분. 혼자서 버틸 수 있을까?’
이쪽으로 다가오는 랍비는 수십.
아직 마술을 쓰는 적과의 전투는 그다지 익숙해지지 못했다.
하나 마른침을 삼키는 것도 잠시.
뜻밖에도 나와 대치상황에 놓인 랍비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가장 고풍스러운 터번을 두른 노인이 앞으로 나와서 나와 눈을 마주했다.
“내가 이곳의 권위자요. 솔로몬을 모시는 영광스러운 대랍비지. 유일하게 ‘황제’와 연락을 취하는 자이기도 하고.”
대랍비는 경전 어딘가에 쓰여 있을 법한 자기 종교의 구절을 읊었다.
“솔로몬께서 이르시되, 전지전능한 신은 유일하게 하나만이 존재한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다른 대륙에서 당신이 신으로 모셔지는 걸 알고 있소. 그래서 우리에게 당신은 아주 불경한 존재요.”
대랍비가 싱긋 웃어 보였다.
“이 외딴 대륙에서조차 당신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칠 만큼 유명하지. 범철.”
“그래서 지금 그런 나랑 붙겠다고?”
나는 칼자루를 세게 쥐었다.
대랍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오.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뭐?”
“우리는 분수를 아오. 회귀자도 척살하는 그 범철과 맞붙겠다니? 우리는 쓸데없는 회귀는 피하고 싶소.”
그건 오히려 나로서도 환영이다.
사실 마법이 봉인 당해 있기에 붙어도 내가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는 것은 나에게도 당연히 이득이었다.
그런데 그때, 대랍비가 충격적인 말을 건네었다.
“무엇보다 ‘황제’께서 당신을 직접 만나러 간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순간 소름이 끼쳤다.
뱃길에서 괴조가 습격한 것부터 의심스러웠는데.
“……황제가 꾸민 일인가?”
“눈치가 좋군.”
대랍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용을 납치했던 것도, 그분의 명에 의해서였소. ‘황제’께선 전부 아시지.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의 행동을 예견하고 있단 건가?
랍비들이 킬킬 비웃음을 날렸다.
“기대하시오. 당신은 전생을 통틀어 최악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오. 적색대륙의 ‘황제’한테 말이지.”
대랍비의 눈빛이 사악하게 빛났다.
“당신에게 희망은 없소. 하지만 어쩌면 또 모르오. 지금 투항하면 다시 살 수 있을 기회를 얻을지도.”
“너희 지금 뭘 잘못 알고 있는데.”
그래서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었다.
“난 한 번만 살아. 등신들아.”
내가 등을 돌려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나를 몰래 기습하려던 세 명의 랍비의 가슴이 동시에 찢겼다.
‘쓸데없는 회귀는 싫으니 날 건드리지 않겠다고? 웃기는 연극이지.’
애당초 그럴 거면 랍비들을 병력으로 이끌고 올 이유 따위는 없었다.
대랍비가 눈매를 세우고 돌변했다.
“쳐 죽여! 절대로 놓치지 마라!”
랍비들이 흥분해 경전을 펼쳤지만, 난 이미 풍경화에 뛰어든 직후였다.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나의 고환이 으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