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53화
우리는 퀸소히니베를 태운 마차가 떠난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작은 요정이 근거지에서 빛을 그리며 날아갔고, 우린 그걸 따라갔다.
요정이 알려준 빛의 끝에 드워프의 근거지가 존재할 테니까.
“회귀가 시작되고 시간이 꽤나 경과됐으니 드워프 종족은 이미 회귀자를 무척 적대하고 있을 겁니다.”
이종족은 회귀할 수 없다.
그래서 유일하게 회귀 가능한 인류와는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드워프 종족과 접선할 때 요정이 필요한 겁니까?”
“예. 드워프는 회귀자를 적대해 항시 비밀장소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정의 도움을 받는 것이고요.”
요정이 사람이 많은 시내를 지나서 하늘을 뽈뽈거리며 비행하였다.
그냥 시내 한복판을 걷는 와중에도 귀에 웃음과 잡담이 끊이질 않았다.
“아우. 오늘 저녁에 소 한 마리 잡으려고 하는데 집에 놀러오겠나?”
“아이고! 형님. 같이 배 터지고 회귀해서 다음 회차로 가시렵니까?”
“꽃 팔아요! 회귀자도 보지 못한, 사막에서 피어난 멋진 꽃이랍니다!”
“주말에 청소할 분 구합니다! 모래를 덜고 깨끗한 시내를 만들어요!”
사람 냄새가 나니, 도리어 어색하군.
당연하지만 요정의 특수한 불빛은 그것을 불러낸 우리에게만 보였다.
빛의 길 끝에 어느 건물이 보였다.
“저곳은 어디입니까?”
척 봐도 화려한 양식의 궁전.
고급스러운 의복을 착용한 자들이 두꺼운 책을 들고 저곳에 드나들었다.
“저곳은 신을 모시는 신전입니다. 랍비들이 사교하는 장이기도 하죠.”
“신이라면 무슨 신 말입니까?”
헤르탄은 뺨에 열쇠 문신이 새겨져 있는 남자의 조각상을 가리켰다.
“솔로몬. 적색대륙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추앙받는 회귀자입니다.”
“회귀자를 신으로 모신다고요?”
“그리 놀라울 것 없습니다, 범철. 우리가 신을 모시기 위한 조건은 의외성과 차별성만 충족되면 되니까.”
하기야 나도 유일하게 1회차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신으로 모셔졌다.
“그럼 솔로몬은 왜 신으로 모셔지죠?”
“그는 적색대륙 역사상 가장 유능한 마술사였습니다. 그의 마술은 천재지변을 일으켜 건기의 사막에 홍수를 범람하게 할 정도였답니다.”
카티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몬은 강하고, 유능한 회귀자였대요. 그러나 지금은 자취를 감췄죠. 이곳 신화에서는 하늘로 승천했다거나 죽은 자들의 나라로 갔다고 전해지지만, 난 크게 믿지 않아요.”
지금은 실종되어버린 회귀자가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니.
정말 120회차에선 별의별 종교가 다 성행하고 있군.
‘하여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드워프를 만나려면 우린 신전으로 향해야 한다.
“설마 드워프와의 접선장소가 저런 곳에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군요.”
“하지만 신전은 평범한 복장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요. 랍비들도 격식을 차려야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예요.”
그때 내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거라면 마침 괜찮은 게 있지.”
난 예전, 달의 폐성에서 입었던 파티복을 오랜만에 배낭에서 꺼냈다.
“이 옷, 오랜만이군요.”
“그러게요. 그 신비로운 유랑자가 열었던 파티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고 보니 유랑자가 떠올랐다.
차원을 돌며 인과율을 비트는 자.
‘언젠가 나와 서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장담했었지.’
뭐, 정말 지켜질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우린 뒷골목에서 옷을 갈아입기로 하였다.
난 카티에를 배려해 멀리 떨어지려 했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곧장 옷을 갈아입으며 속옷을 드러냈다.
“……괜찮냐?”
“회귀하면서 우린 볼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예요. 대장.”
“나는 기억에 없어, 인마.”
하여간 파티복을 차려입었다.
격식을 차리며 신전으로 걸어간다.
“기후에 맞지 않아 엄청 더운데.”
“목이 답답하군요. 벗고 싶어요.”
“드레스 자락이 모래에 끌려요.”
출입문부터 융단이 깔려 있었다.
대륙 간의 문화가 달라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신전의 문지기는 우리를 슥 훑어보곤 딱히 막진 않았다.
문턱을 넘고서야 나는 소매를 걷고 옷깃을 풀어헤치며 한숨을 돌렸다.
‘신전 아니랄까 봐 엄청나게 화려하군. 벽에다 금칠이라도 해댄 건가.’
비록 인조였지만 반짝이는 보석이 석벽에 박혀 있고, 실내도 널찍했다.
당연히 처음 오는 곳이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걸어갔다.
“범철. 그곳은 빛의 길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과 역방향입니다.”
헤르탄이 나의 어깨를 잡으며 지적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퀸소히니베는 여기 갇혀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드워프와 접선하려면 이쪽이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대장? 회귀자인 우리도 이 신전은 잘 몰라요.”
“그야 펜타그램이 알려줬거든.”
지금 이 순간에도 악마의 펜타그램을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악마의 펜타그램이 ‘이득경로’를 계산하여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드워프와 접선하고, 퀸소히니베를 구할 수 있는 최단이득경로.’]
[경로표시 동안 마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어 마법이 불가합니다.]
[‘이득경로’는 한 번 사용하고, 일주일 후에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최단시간에 이득을 볼 수 있는 경로가 눈에 붉은 궤적으로 표시됐다.
그러자 카티에가 기막혀했다.
“이득경로를 계산할 수 있다니. 회귀한 것보다 강한 능력 아니에요?”
“아니. 이것도 제약이 있기는 하더라고. 그다지 자주 쓸 수는 없어.”
‘경로’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나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거기다 재사용대기시간이 일주일이나 되어 무척 길기도 하고 말이다.
‘거기다 어디까지나 ‘경로’만 표시해줄 뿐이니까.’
그 경로로 이득을 손에 쥘 수 있는지는 순전히 나에게 달린 것이다.
“그 펜타그램 정체가 궁금해요. 120회차에 처음 나온 변수답네요.”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조력자의 정체.’
이곳, 적색대륙에서 나는 그것을 반드시 알아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퀸소히니베를 구하고 드워프 일족과 접선해야만 해.’
내가 걷자 랍비로 보이는 터번을 두른 중년이 나를 곧바로 막아섰다.
“이보시오. 이곳은 관계자나 상위 랍비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헤르탄.”
그가 빠르게 랍비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내가 칼자루로 랍비의 뒤통수를 때리며 기절시켜버렸다.
축 늘어진 랍비를 바닥에 놔뒀고, 망을 보고 있던 카티에가 끄덕였다.
“아무도 보지 않아요. 들어가요.”
나는 퀸소히니베가 갇혀 있는 곳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젖히려고 했다.
철컥!
당연하게도 철문이 엄중히 잠겨 있었다.
하지만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SSS급 잠금 해제 재능.’
이럴 때를 대비해 쇳조각으로 만들어둔 락픽으로 철문을 여는데, 채 10초의 시간도 소요 되지가 않았다.
깜깜한 계단이 나타났고, 난 펜타그램의 뜻대로 그곳을 내려갔다.
‘노예로 팔려갔던 퀸소히니베가 어째서 신전의 지하에 있는 걸까.’
경계하며 계속 계단을 내려간다.
딱히 지하를 지키고 있는 경비나 돌아다니는 인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깊숙한 지하에는 보다 끔찍하고, 암울한 광경이 도사리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야?”
예상보다 훨씬 넓은 지하에는 특이하게 생긴 상점들이 존재하였다.
무엇인가 진하면서도 기묘한 향기가 어렴풋하게 코를 자극한다.
그러나 그런 향내 속에서 만신창이인 몸으로 신음하는 자들이 있었다.
“약……. 내게 약……을 줘.”
“한 번 더, 그 광경을 보고 싶어!”
“제발! 제발 팔아주세요!”
헤르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이 약이 유통되는 근원지였군요. 여기가 바로 암흑상가입니다.”
“암흑상가요?”
“회귀자의 세상에서조차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물건을 파는 장소입니다. 과거에 전부 없어졌다고 여겨졌는데, 윤회수뇌부가 사라지고 치안이 없어진 통에 다시 등장하였군요.”
그렇게 유쾌한 장소는 아니로군.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습니까? 척 봐도 괴로워 보이는데.”
“저들은 ‘중독자’이니까요.”
“중독자요? 뭐에 중독됐는데요?”
“대장.”
카티에가 내게 부연해 설명했다.
“이 도시에서는 마약이 성행해요.”
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회귀자로 가득 찼지만, 너무 예상 외로 활기와 행복이 가득하던 도시.
“……아편이냐?”
“그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독성도 극심한 약물이죠. 빠질 뻔한 경험이 있어서 알아요. 저 마약은 오로지 회귀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거예요.”
“회귀자만을 위한 마약이라고?”
카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자극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는 지하상가의 중심부를 가리켰다.
“저 마약은 회귀자에게 모든 회차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삶’을 보여 줘요.”
“가장 행복했던 삶을 보여준다고?”
카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로 마모된 인간이 웃을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그녀의 어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했지만, 나는 어쩐지 슬펐다.
과거가 그리워서, 현재가 괴로워서, 전생을 다시 보는 약에 의존한다니.
‘하기야 회귀가 끝나지 않는 세상에서 화목한 도시란 있을 수 없지.’
이곳의 회귀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었는지 알겠다.
그들은 회귀로 망가지지 않았던, 가장 행복했던 환상을 봤던 것이다.
‘그런 약에라도 의존을 하지 않으면 저들은 행복할 수 없었으니까.’
난 씁쓸하게 암흑상가를 바라보다가 그들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여긴 일단은 그냥 지나치자. 퀸소히니베는 이보다 더 아래에 있어.”
***
가장 깊은 지하 마지막 층에 1명의 노예를 수용한 철창이 존재했다.
그 노예를 수용한 철창 앞에는 당연하게도 감시역이 버티고 있었다.
“침입자다!”
“여기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런 유사시의 전투를 대비해 우린 이미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철창을 지키던 랍비들은 머리에 기름을 뿌리거나, 두꺼운 경전을 펼치며 내가 처음 보는 마법을 썼다.
“열세의 뿌리여. 적을 덮치소서!”
“적의 시야를 말미가 덮으리라!”
촉수나 꼬리 따위가 소환되어 우리의 목과 발목을 감으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그리 강하진 않아 랍비를 전부 처치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저것들이 방금 쓴 것은 뭡니까?”
“마술입니다. 적색대륙의 마법인데, 신앙을 요구하는 특이한 술법이죠.”
하여간 랍비를 깔끔하게 쓸어버린 우리는 그들이 지키던 철창을 살폈다.
딱 1명 들어갈 법한 철창에 머리칼이 풀어헤친 미인이 혼자 있었다.
“퀸소히니베?”
“멍청한 용. 우리가 왔어요.”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그러나 철창 너머의 그녀는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대답도 안 하였다.
나는 곧바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삐쳤군.’
하기야 노예로 팔아넘겼는데 토라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미안했어. 너도 알고 있겠지만, 목적을 이루려면 어쩔 수가 없었어.”
뺨 한 대 맞거나 세게 얻어맞을 각오하고 내가 사과하며 다가갔다.
“…….”
그러나 철창에 갇혀 있는 퀸소히니베는 여전히 대답 따위는 없었다.
“지금 열어줄게. 바로 나와.”
내가 잠긴 문을 간단히 따버렸다.
끼익-.
철창문이 열리는 순간.
손이 콱 날아온다.
당황해 물러서지만, 이미 늦었다.
“큭!”
막강한 괴력으로 날 벽까지 몰아붙인 퀸소히니베가 숨을 몰아쉬었다.
엄청난 힘으로 몸을 짓누르는 바람에, 강제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당신 미쳤어요?”
카티에가 놀란 눈으로 분노하며, 손에서 끔찍한 빛을 일으켰다.
“퀸소히니베. 우리는 당신을 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헤르탄도 언뜻 당황했는지 주먹을 빠르게 움켜쥐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그러나.
‘……뭐야?’
어이가 없어서 힘이 풀렸다.
퀸소히니베의 표정을 본 것이다.
그녀는 침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너, 왜 그래……?”
그러나 소름 끼치는 감촉이 앞섰다.
카티에가 비명을 내질렀다.
“대장!”
얼굴을 붉힌 퀸소히니베가 내 귀를 핥으며 순종적으로 몸을 조아렸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