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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52화 (152/200)

나만 1회차 152화

“만약 내가 인간이었다면 분명 세계제일의 노예상인이 됐을 것이야.”

난 퀸소히니베를 용으로 태어나게 한 신의 자비심에 깊이 탄복했다.

본인을 노예상인이라 소개한 빼빼 마른 사내의 이름은 콘이었다.

“다들 회귀자겠지만, 노예시장은 처음이지? 이방인은 척 보면 알아.”

콘은 친화력이 강하고 그에 맞는 자신감도 겸비한 상인이었다.

즉, 사기꾼일 확률이 몹시 높았다.

헤르탄이 나에게 귀띔해주었다.

“노예시장으로 가면 드워프와 접선시켜주는 인물을 볼 수 있습니다.”

“어, 적색대륙에는 별로 와본 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카티에가 말했다.

“저와 헤르탄은 각자 이곳 노예시장에서 팔렸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콘과 함께 가면 노예시장에 접촉하기가 편하니 이용하자는 거로군?”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얘기를 나누는 우리 셋과 달리, 퀸소히니베는 제법 신나 있었다.

“인간들이 노예를 어떻게 다루는지 가끔씩 궁금하긴 했었던 것이야.”

“별게 다 궁금하다. 그런데 어째 평소보다도 좀 신나 하는 것 같다?”

“왜냐면 이 도시는 좀 활기가 있는 것이야. 이제껏 다른 장소들보다도.”

하기야 그렇기는 하다.

청색대륙 도시도 종교적 신앙심 때문에 자살률은 몹시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적색대륙의 도시만큼 웃음기가 많고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적색대륙 모든 도시가 이런가?”

“아니. 이곳처럼 몇몇 도시만이 유별나게 그렇지.”

콘은 짧게 대꾸하고 시끌벅적한 시장의 구석진 뒷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곧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

“잠시 기다리게.”

그가 독특한 손동작을 맺으면서 뭐라고 중얼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막다른 길, 굳게 닫혀 있던 벽이 열리며 비밀공간이 드러났다.

“이곳은 회귀자들 사이에서도 알고 있는 자가 몇 없는 희소한 곳이지.”

콘이 자랑스럽게 말하며 앞장섰다.

‘참 회귀자스러운 길 안내로군.’

노예시장은 진부하게도 철장, 비명, 채찍이 공존하는 청아한 장소였다.

불에 달군 인두로 낙인을 새기고 있는 노예도 보였고, 발목에 사슬이 묶여 완전히 체념한 노예도 보였다.

노예의 종족은 참으로 다양했는데, 개중에는 커다란 트롤부터 자그마한 체구의 호빗까지 보이고는 하였다.

그런데 그들을 살피다가 나는 유독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째 인간한테만 속박이 심하군. 저거, 사지에 쇠사슬 묶은 거야?”

콘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로 자살하면 안 되거든. 인간은 금방 회귀하려 들어서 상품가치가 모든 종족 중에서도 가장 낮지.”

하지만 사지를 묶인 노예에게 딱히 재갈은 물려 있지가 않았다.

“혀 깨물어 자살하면 어쩌려고?”

그러자 콘이 날 이상하게 보았다.

“회귀자 맞나? 혀 깨문다고 사람이 어떻게 죽어? 그건 헛소문이지.”

퀸소히니베는 처음에 보였던 흥분과는 달리 노예시장에 오고서부터는 조금 가라앉은 표정을 지었다.

흥이 식은 것 같기도 하고,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장소에 기가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어째서 증표를 남기는 것이야?”

“아, 인두로 지지는 것 말인가?”

“아무리 노예라도 필요 이상 고통을 줄 필요는 없는 것이야.”

“필요하니까. 낙인이 없으면 어떻게 노예가 누구 것인지 구분하나?”

콘의 태연한 말에 퀸소히니베는 제법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너도 예전엔 노예 제법 험하게 다루지 않았냐? 반란까지 당했다며?”

“……그래도 난 함부로 인두로 지지거나 고문하지는 않았던 것이야.”

“그래도 노예를 부리던 입장에, 딱히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 않냐?”

“…….”

퀸소히니베는 혼자 생각할 것이 많은지 잠시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콘이 크게 소리쳤다.

“이봐, 쌸!”

쌸이란 꽤나 유별난 이름을 가진 사내는 콧수염을 기른 뚱보였다.

“이제야 왔어? 뭐 이렇게 늦었나?”

“걱정 말게. 이분들 견학시키면서 상품들은 쫙 털어먹고 올 거니까.”

쌸은 우리를 슥 보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끄덕이곤 일에 몰두했다.

“경매가 시작되는 곳은 저편이니까, 나를 따라서 잠시 걸읍시다.”

우리는 그를 뒤따라서 걸었다.

난 노예시장을 보며 쓰게 웃었다.

‘누군가 혼자만 회귀자였다면 여기서 가장 유능한 노예를 샀을 테지.’

그러나 모두가 회귀자이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노예가 누군지 알고 있기에 독점은 불가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의문이 생겼다.

“모두가 정보를 알고 있는데, 경매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나?”

“아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콘이 멈추며 돌아섰다.

그가 퀸소히니베를 보며 웃어 보였다.

“아가씨, 용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바로 발뺌했다.

그러나 콘은 한 발짝 다가왔다.

“뭐긴. 그 특이한 말투하며, 오만한 동작. 무엇보다 규격 외의 미모.”

나는 본능적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경매는 언제 시작되는 거지?”

“경매는 없어. 회귀자들 사이에서 무슨 연유로 경매 따위를 하겠어?”

나는 지친 미소를 짓고야 말았다.

‘역시나. 무슨 회귀자가 초면에 친절하게 노예시장을 구경을 시켜줘?’

회귀자도 등쳐먹는 회귀자라니.

숨어 있던 자들이 칼을 쥐고 튀어 나왔고, 우리는 순식간에 둘러싸였다.

“나는 이곳에서도 가장 경력이 높지. 그래서 남들과 눈이 다르다고.”

콘은 주머니에 왼손을 쑤시곤 오른손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그 행동의 의미는 바로 알게 됐다.

저 손이 내려지는 순간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할 것이다.

“비늘 한 점. 날개 한쪽 없어도 난 척 보면 알아. 내가 회귀하며 인간으로 변신한 용을 몇 번 봤는데.”

콘은 여유롭게 턱을 두드렸다.

“댁들이 무슨 이유로 용과 함께 다니며 여행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으르렁거리는 퀸소히니베를 탐욕스럽고 끈적한 눈빛으로 봤다.

“난 최초로 용을 길들여보고 싶었지. 노예로 말이야. 넌 내 것이야.”

우리는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슬쩍 곁눈질했지만, 노예시장에서 콘의 부하는 대략 30명 남짓이다.

‘일부러 노예시장에 데려온 걸 보면 이들 말고도 부하가 더 있겠지.’

무려 용을 포획하려는 회귀자였다.

노예시장 큰 손인 콘이 우릴 굳이 여기 데려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퀸소히니베는 꼭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모두 죽여 버리고 나갈 것이야.”

나는 퀸소히니베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둬.”

“내 노예가 날 지키겠단 것이야?”

콘이 씨근덕거리며 웃었다.

“눈물 나는 전우애로군. 하지만 그런 것은 회귀하며 질리도록…….”

“얼마 줄 거냐?”

“뭐?”

내가 녀석을 향해서 턱짓했다.

“얼마 줄 거냐고.”

“대장?”

카티에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입은 열지 않았지만, 헤르탄조차 미묘한 표정을 짓긴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날 의아한 표정으로 봤다.

“내 노예가 설마……?”

놈들이 착각한 것은 이거였다.

거래를 주도하는 것은 바로 나다.

내가 삐딱하게 턱을 까닥였다.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준다면, 너희에게 기꺼이 이 용을 넘기겠다.”

“…….”

나는 퀸소히니베를 팔아넘겼다.

***

동료를 팔아넘기는 것은 슬프지만, 그만큼 제법 쏠쏠한 이득을 얻는다.

어째서 그 많은 배반자가 있겠나.

그것은 배신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멋진 거래였소.”

“당신이야말로.”

“…….”

목줄이 채워진 퀸소히니베가 처량하게 끌려가고, 우린 악수를 나눴다.

콘은 내게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도 제법 악당이군. 그렇게 가차 없이 동료를 팔아넘기는 면모는 회귀자 사이에서도 흔하지가 않지.”

“원래 뒤통수 때리는 게 취미라.”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가 킥킥대며 웃어 보였다.

“덤으로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것이 있는데, 특별히 가르쳐주겠소.”

“뭐가?”

“그 펜타그램, 드워프 일족의 증표요. 내가 좀 경력 높은 노예상이라서 딱 알아볼 수 있지.”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드워프의 증표라고?”

“본인도 몰랐던 거요? 하기야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회귀자 사이에서도 몇 없을 것이 분명하긴 하겠지만.”

내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콘은 나에게 진심으로 충고까지 해주었다.

“천한 드워프가 새기는 증표를 왜 인간이 지녔는지 모르겠지만, 숨기는 것이 좋을 거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퀸소히니베를 가둬둔 노예마차가 출발하고,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카티에가 나를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역시 대장이에요. 언제 그 용을 팔아먹나 했는데 이렇게 치졸하게 마무리를 지을 줄은 전혀 몰랐어요.”

“비꼬는 거냐?”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동료를 팔아넘겼다.

배신해서, 그저 이득을 본다.

그것이 일반 회귀자의 루트겠지만.

‘나는 상황이 좀 다르지.’

나의 왼손으로부터 악마의 펜타그램이 붉은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대륙지배자를 죽이고 획득한 펜타그램의 새 기능이 발동합니다.]

[회귀자들조차 알지 못하는 최상의 ‘이득경로’를 파악합니다.]

당연하지만, 퀸소히니베를 지금 팔아넘긴 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펜타그램이 나에게 알려주는 ‘이득경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드워프에게 도달하는 데까지 최상의 이득 경로.]

현재 펜타그램이 표시하는 이득 경로는 그것이었다.

이것 이후로 이득 경로가 계속 표시될지, 아니면 시간 차를 두고 잠시 사라질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었다.

‘너무 펜타그램에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늘 도움이 됐으니까.’

하여간 나는 펜타그램을 보았다.

‘내게 조력하는 키 작은 자.’

역시 전부터 의심했지만, 그의 종족이 바로 ‘드워프’일지도 모르겠다.

카티에가 골똘히 의문을 가졌다.

“도대체 그 키 작은 자는 누구일까요? 대장에게 재능을 선물하고, 120회차에 변수마저 일으킨 자라니.”

“글쎄다. 직접 만나면 알 수 있겠지.”

나는 손등의 펜타그램을 보았다.

콘은 이것을 드워프의 고유한 증표라고 말하였다.

‘펜타그램과 조력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드워프들과 접선할 필요가 있겠군.’

나는 퀸소히니베를 팔아넘기고, 노예시장에서 획득한 ‘물건’을 보았다.

“그러니까,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내가 손아귀의 그것을 바라보았다.

바로 오래된 항아리.

물론 나는 미친놈이 아니기에 단순한 골동품에다가 말을 걸 리는 없다.

뚜겅을 열자, 항아리에서 연기가 뿜어지며 무언가 소환됐다.

“명령을…….”

아주 작은 아이의 모습이지만 하반신은 연기에 감싸져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요정노예’였다.

적색대륙의 요정은 독특하게도 숲이 아니라 골동품에서 서식했다.

“이 요정이 우릴 드워프와 접선하게 해줄 거예요. 원래는 노예시장을 뒤집어엎는 루트로 가야 했는데, 퀸소히니베를 팔아서 쉽게 얻었네요.”

나는 항아리에서 빠져나온 요정에게 말했다.

“드워프 종족의 거주지를 찾고 싶다.”

“알겠…….”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끝부분은 제대로 듣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현재 목표로는 드워프도 만나야 하고, 퀸소히니베도 구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진행해버릴 참이었다.

“그럼 가 보자고. 뒤통수치러.”

이득 받고 팔아넘긴 동료를 다시금 놈들에게서 돌려받으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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