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51화
당연하지만, 일행에서 밴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만이 아니었다.
“저놈은 뭐하는 인간인 것이야? 밴시가 있어도 전혀 두려움 없다니.”
퀸소히니베!
회귀할 수 없는 용이기에 그녀도 전혀 밴시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녀가 입에서 내뿜은 벼락이 롬을 태워버리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예전보다 전격이 더 거세졌다?”
“어디 불멸아귀를 죽이고 내 노예만 성장했을까?”
퀸소히니베는 입에서 연기를 담배 피우듯이 훅 뱉고는 눈매를 좁혔다.
“그런데, 아직도 멀쩡한 것이야.”
나는 롬을 바라보았다.
모래로 얼룩진 흰 로브가 타닥이며 불타더니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벼락을 맞은 불세출의 검사는 전혀 다치지 않고 서 있었다.
‘로브에 전격이나 대형스킬을 막아 주는 기능이라도 있었던 건가?’
칼자루를 꽉 내쥐었다.
로브가 떨어지자 인상이 드러난다.
새까만 피부를 지닌 남성이었다.
‘체격이 어째…… 엄청나게 크군.’
롬의 몸집은 심지어 그 헤르탄조차 훌쩍 뛰어넘는 키와 골격이었다.
거인이나 야만전사가 아닐까 의심될 만한 거구에다, 눈빛도 날카롭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너도 전생에서 원한이 있냐? 왜 자꾸 죽게 될 거라고 말하는 거야?”
그러나 롬은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양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문 양의 검과 고고한 방패가 빛났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이 일순간 뛰었다.
저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속도!
눈꺼풀을 잠깐 깜빡할 사이, 녀석의 방패가 나를 짓누르듯 덮쳤다.
“크윽!”
방금 일격을 나눠봤기에 방패 날을 받아치려는 시도는 하지도 않았다.
내리치며 들어온 방패를 뒷걸음질 치며 아슬아슬하게 피해 손을 뻗었다.
‘화기의 뱀!’
대륙지배자를 죽이고 나서 내 마법의 경지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뱀처럼 교란하게 일렁인 불꽃이 롬을 노려 형이상학적이게 쏘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롬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화르륵!
여러 면에서 뻗어간 불꽃을 롬의 화려한 검이 빈틈없이 막아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받아치는 행위가 아니라, 정말로 ‘방어하는 행위’였다.
‘도대체 뭐야? 저놈의 싸움법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계속 방패로는 공격만 하고, 검으로는 방어만 하고 있다.
‘불세출의 검사라면서, 그 검술을 전부 방어에만 몰아 쓰고 있잖아?’
내가 이제껏 검을 쥐며 배워온 모든 상식이 거부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런 기상천외한 싸움법인데도, 대체 왜 이렇게 강한 거야?’
롬은 방패와 검을 반대로 쓰면서도 우리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내가 검과 마법으로 공격하고, 퀸소히니베는 간간이 벼락을 토했다.
그러나 롬은 엄청난 괴력과 반사신경으로 우리와 자웅을 겨루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능력치는 내가 훨씬 앞설 텐데?’
거기다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화등급 칭호, ‘거물에게 저항하는 파괴자’!
[1. 거물을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2. 거물의 특수한 능력이 당신에게는 별 효과를 미치지 못합니다.]
셋이나 되는 거물을 죽이고 획득한 그야말로 거물의 대항마적인 칭호!
나는 평소보다 30%나 상승한 전체능력치로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롬은 내가 휘두르는 검을 모조리 받아내 방어하고 있었다.
내가 능력치로 훨씬 앞서는데도 서로 비등한 이유는 하나뿐일 것이다.
‘저 검과 방패. 절대로 평범한 무구가 아니야.’
화려한 장식부터 그렇고, 절삭력과 내구력이 척 봐도 끔찍한 수준이다.
강력한 아이템으로 무장한 녀석은 가히 1인 군단이라 봐도 무방했다.
‘불세출의 검사. 그리고 거물.’
두 명성 높은 호칭을 가진 자가 얼마나 강력한지 난 몸소 깨달았다.
‘확실히, 저놈은 강하다. 하지만.’
그러나 이미 말했다시피.
우리 일행에서 밴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거든.
허리춤의 호리병 뚜껑을 열어젖혔다.
“캬아아앙!”
“……아빠, 나 졸려어.”
“…….”
세 애완수 백야, 초화, 달귀가 나의 주변에 차례로 소환되었다.
주위의 코끼리 밴시가 울부짖든 말든 애완수와는 전혀 관련 없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들도 인간이 아니라 딱히 회귀할 수 없는 처지니까.
“저놈이 장막을 깨게 둬선 안 돼! 전부 공격해서 막아!”
세 애완수가 즉각 명령을 들었다.
백야가 두 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축지법을 썼고, 초화는 꿀벌을 소환했으며, 달귀는 말없이 돌격하였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뱉으며 롬은 자신을 공격하는 애완수를 막았다.
당연하지만 세 애완수의 공격을 막는 것도 방패가 아니라 검이었다.
그러나, 난 오히려 그때를 노렸다.
“네가 왜 회귀자의 천적인 밴시를 두려워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담청색 투구를 머리에 썼다.
그 순간, 몸에 힘이 끓어올랐다.
타격술을 3단계 올리고 완력, 각력, 정력을 80% 증진시키는 무구!
“네가 거물일지는 몰라도, 나는 너에게 있어서 분명한 천적이거든.”
나는 롬을 향해 빠르게 돌진했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이 검을 들어 올리며 방어태세를 취했으나, 나는 그것보다 재빨랐다.
내 머리가 롬의 가슴에 내꽂힌다.
혼신이 담긴 박치기!
[적에게 박치기를 날렸습니다.]
[담청색 구중 투구에 의해 보너스가 적립되어 치명타를 입힙니다.]
“커헉!”
담청색 구중 투구의 효과로 롬의 거구가 날아가 버렸다.
그는 모래구덩이에 꽉 박히고도 한참을 깊게 파묻혀서 쓰러져버렸다.
난 숨을 몰아쉬며 놈을 노려봤다.
‘제길. 번거롭게 만드네.’
그러나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롬은 다시금 일어섰다.
“저놈, 불사신인 것이야?”
용조차 경악할만한 생존력이었다.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렀는지 녀석의 입술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안 되겠어. 회귀자 살해재능을 발동시켜서라도 당장 끝을 봐야…….’
그 순간.
롬의 날카로운 시선이 날 노렸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롬이 모래에 검을 역수로 꽂았다.
파아앗!
검이 일순간 검붉게 빛나더니, 롬의 형체가 일렁이며 사라져 버렸다.
녀석이 사라진 사막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투구를 서둘러서 벗었다.
‘도대체 뭐였던 거야. 그놈은.’
그런 의문을 느끼다가 나는 문득 머리가 멍해지듯 아픈 것을 느꼈다.
[담청색 구중 투구를 단시간 착용했습니다.]
[인격이 약간 흔들렸습니다.]
‘……조심해야 해.’
아크 리치의 진홍색 로브처럼 구중 투구도 성능만큼 부작용이 심했다.
자칫 오래 착용했다간 나의 인격이 아홉 개로 늘어나게 될 테니까.
뿌우우우우-!
코끼리 밴시가 코를 높이 들면서 일제히 울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나는 사막의 달빛을 받으며 질주하는 혼들의 움직임을 잠시 지켜봤다.
***
다음날.
아침이 되고 밴시가 사라지자, 우리는 바쁘게 사막을 횡단하였다.
밤이 돼서 밴시나 롬이 또 나타나기 전에 여기를 벗어나야 했으니까.
“그런데 회귀자가 어떻게 밴시를 이끌 수 있는 거야? 말이나 돼?”
밴시를 베었던 블라이넨조차 몸을 마구 떨고 무척이나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그 롬이라는 녀석은 두려워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헤르탄이 고개를 내저었다.
“롬은 밴시를 이끄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을 친구로 여기지요.”
“예?”
“아마도 우리를 공격했던 것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우리가 밴시를 처치하러 왔다고 오해했던 거겠지요.”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회귀자가 밴시를 친구로 여긴다고?
개가 고양이, 원숭이와 죽마고우였다는 소리보다 훨씬 신빙성 없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회귀자가 밴시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친구로 둔다고요?”
내 표정을 본 카티에가 덧붙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백치거든요.”
***
우리는 다행히도 저녁이 될 즈음, 사막 중소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기루나 모래바람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지름길을 택했던 덕분이다.
“설마 당신이 여기서 길 안내를 해줄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걸요.”
카벨 선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유능한 선장에게 길을 찾는 솜씨야 기본이오. 설령 육지일지라도.”
선장의 고물나침반은 용케도 우리를 안전하고 빠른 길로 안내하였다.
‘사막의 도시라.’
보통 사막의 도시라면 어여쁜 무희가 춤을 추고, 야자수 열매를 파는 왁자지껄한 시장에, 웃음과 수다가 가득한 곳을 주로 상상해 왔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굳이 되새김질하며 직시하는 것도 슬프지만, 이곳은 버림받은 회차다.
내가 익히 아는 일상적인 풍경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로 갔을 때 난 놀랐다.
‘뭐야?’
어여쁜 무희가 춤을 추고, 시장에는 야자수 열매를 팔았고, 왁자지껄한 도시에 웃음과 수다가 가득했다.
누가 봐도 평화롭고 평범한 도시.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여기, 정말 120회차 맞지?”
“의심 가면 확인시켜 줄까요? 대장이랑 잠자리를 가졌던 횟수는…….”
“크흠! 알겠어.”
하여간 회귀자의 세상이라 믿기 힘들 만큼 활기가 가득한 도시였다.
‘역시 문화권이 다르기는 하군.’
적색대륙의 인종은 모두 피부가 검고, 대부분은 얇은 천 옷차림이었다.
거기에 늙은 사람들이 아주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꽤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네?”
“경전을 든 랍비들이에요. 청색대륙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여러 종교가 성행하고 있거든요.”
종교라는 말에 나는 괜스레 신물이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색대륙에서 신으로 모셔지며 겪었던 고생길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여간 카벨 선장 일행은 이곳에서 우리와 헤어지기로 하였다.
적색대륙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겠다는 애초의 약속은 지킨 셈이니까.
“나중에 떠날 때 우릴 찾으시오. 물론 그때까지 댁들이 무사하다면.”
“우리가 재회할 때까지, 술에 취해 회귀하려는 시도나 하지 마십쇼.”
날이 늦고, 여독도 쌓였기에 우린 묵을 수 있는 여인숙부터 찾았다.
그런데 중소도시는 의외로 규모에 비해 묵을 수 있는 장소가 적었다.
“적색대륙은 여인숙 비용이 다른 대륙보다 현저히 비싸요. 대장.”
“왜, 회귀하면서까지 숙박업에 몸 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러냐?”
“그보다 다들 회귀에 지쳐가면서 사막을 모험하는 사람들이 꽤 드물어졌거든요. 오죽하면 이곳 회귀자 사이에서 이런 말도 돌까요? 죽음이 두렵지 않아도 더위는 두렵다.”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군.
우리는 도시 번화가 구석에서 어렵게 여인숙을 잡고 숙박했다.
물과 숙박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쌌지만, 나는 보물 박에서 나온 귀중한 보물 한 개를 척 넘겼다.
“하루 묵겠습니다. 특히 물은 잔뜩 제공해 주십쇼. 샤워해도 좋을 만큼.”
여관주는 황송한 얼굴로 날 보더니 곧바로 알맞은 서비스를 마련했다.
우리는 모래투성이인 몸을 깨끗하게 씻고서 1층 홀에 모였다.
식탁에 둘러앉고 내가 말했다.
“우선은 드워프를 찾고 싶어. 그들한테 부탁해야 할 것이 많거든.”
당연히 우리의 마지막 목표는 적색대륙 지배자를 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드워프들을 만나서 꼭 마쳐야 할 볼일이 있으니까.’
우선, 유령기사단 무덤을 찾고, 불멸자의 갑의조각도 제련해야 한다.
헤르탄이 앞으로의 일정을 계산하는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럼 적색대륙 지배자를 찾는 것은 그 이후가 되겠군요.”
“그래요. 우선 드워프를 만나서 최상의 장비부터 선점하고 싶거든요.”
이윽고 술과 식사가 나왔지만, 나는 턱을 괴고 테이블만 두드렸다.
“대장. 뭔가 걸리기라도 해요?”
“이 도시의 사람들 말이야.”
나는 아까부터 걸리던 걸 말했다.
“왜 다들 행복해 보이는 거지?”
슬프지만, 그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회귀자란, 쉽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곳의 도시민들은 내가 지금껏 만난 회귀자들과 뭔가 다르다.
그러자 카티에가 낮게 질문하였다.
“반복되는 삶에 지친 회귀자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노예지!”
곧바로 호탕한 대답이 들려온 것은 엉뚱하게도 외딴 테이블이었다.
내가 눈매를 좁혔다.
“무슨 말입니까, 노예라니?”
빼빼 마른 사내가 벌떡 일어서더니 입술을 핥으며 속사포처럼 말했다.
“사실 내가 노예상인이거든. 그리고 마침 거래가 코앞이라서. 억양만 봐도 알겠소. 다른 대륙에서 왔지? 그것도 적색대륙은 초행길일 테고. 먼 길 온 김에 둘러보고 가지 않겠소? 회귀자의 노예시장 말이오.”
우리 모두 경계의 눈초리를 했다.
오직 단 한 명만 빼고.
퀸소히니베가 너무나 흥미롭단 표정으로 상인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지금 당장 가도 괜찮은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