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50화
“회귀자의 무덤이라고요?”
“이곳의 또 다른 이명이지요. 코끼리 묘비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언젠가 술집에서 들어본 적 있다.
코끼리 묘비墓碑.
코끼리들은 죽을 순간이 되면, 본능적으로 특정한 장소로 가게 된다.
그래서 비싼 상아가 산더미처럼 쌓인 그곳을 ‘코끼리 묘비’라 부른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코끼리 묘비는 전설 속 일확천금의 명소와 같았다.
“하지만 전설로만 불리는 장소라고 알고 있는데, 실존했던 겁니까?”
“그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코끼리 묘비. 온갖 상아가 쌓여 있지요.”
“하, 여기가요?”
확실히 주위에는 사막의 모래에 파묻혀 풍화되어가는 뼈가 수북했다.
퀸소히니베는 모래에 얼룩진 상아를 툭툭 털어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이게 상아인 것이야? 꼭 어금니처럼 뾰족하게 생긴 것이야.”
상아는 황금과 그 가치가 맞먹는 초호화 재료 중 하나였다.
카티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폐와 달리 상아는 120회차에서도 가치가 전혀 떨어지지 않은 물품이에요. 특히 적색대륙에서는 상아로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면 품질도 우수하고 효과도 뛰어나거든요.”
“그럼 우린 수지맞은 것 아니야? 상아나 몇 개 주워가 이득 보자고.”
그러나 헤르탄은 고개를 내저었다.
“말했다시피 이곳, 코끼리 묘비의 다른 명칭은 회귀자 무덤입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이곳에서 평범한 회귀자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
카벨 선장은 높이서 추락해 부서져 버린 배의 잔해를 보며 혀를 찼다.
“회귀자 무덤이라면 적색대륙 중부 지역이오. 예상과 다르지만, 그 괴조 덕분에 훨씬 일찍 도착했군, 허!”
사막 한가운데 꽂혀버린 배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고, 우린 낙오됐다.
그럼 여기서 지금부터 힘을 모아서 조난물이라도 찍어야 하는 건가?
나는 헤르탄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회귀자 무덤이라고 했었죠? 설마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밴시’가 나오니까요.”
역시, 그랬나.
헤르탄이 말을 꺼낸 동시에 선원들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당연하게도 밴시는 회귀자에게 있어 천적이라 볼 수밖에 없으니까.
“이곳에서 밴시가 출현하는 것은 밤으로 한정되어 있어요. 해를 봐선 앞으로 수 시간밖에 여유가 없어요.”
“제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카벨 선장이 마른침을 삼켰고, 카티에는 턱에 손가락을 짚었다.
“보통은 절대 여기서 생존할 수 없어요. 내가 ‘평범한 회귀자’였다면.”
“그, 그 말은?”
“내가 기적을 쓰면 반나절은 유령의 침입을 버틸 수 있는 장막을 형성할 수 있어요. 우선은 마땅한 구역을 찾아 그곳에서 밤을 버텨요.”
우리는 때아니게 사막을 걸었다.
노을의 햇빛이 깃드는 사막의 모래는 저 하늘만큼이나 붉게 반짝였다.
헤르탄이 빠르게 살펴보고 말했다.
“이쪽 능선이 좋겠습니다. 함부로 지대가 무너질 리도 없고, 쉽게 눈에 띄는 지역도 아니군요.”
카티에의 왼손에 끔찍한 빛이 여려 수십 미터 반경을 결계로 감쌌다.
어느덧 노을이 완전히 지고 밤이 되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는 유지될 거예요. 평생 백치가 되고 싶지 않다면 함부로 결계 밖으로 나가지 마요.”
카벨 선장과 선원들까지 포함해 우리의 인원은 대략 열 명 남짓했다.
카티에가 펼친 기적의 장막은 널찍해 열 명이서 자기에도 충분했다.
내가 그녀의 머리칼을 살폈다.
“기적. 너무 자주 쓰지 않았냐?”
“걱정 마요. 대장. 아직 수명의 여유분은 충분하니까.”
사막의 밤은 몹시 추웠다.
어찌나 기온이 낮은지 퀸소히니베조차 움츠러들며 어깨를 감쌌다.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사막이란 것은 변덕도 참 심한 것이야.”
헤르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피워야겠습니다. 하지만 사막이라서 장작으로 쓸 것이…….”
“아, 그거라면 이게 있죠.”
나는 청색대륙을 떠나오면서 비환이 나에게 건네줬던 화로를 꺼냈다.
불도깨비의 화로!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이 그곳에서 아주 매섭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화기를 약간만 조정해 주면.’
화로에서 한창 타는 숯덩이 몇 개를 꺼내자 불꽃이 아주 적당해졌다.
“이제는 몹시 따스해진 것이야.”
그런데 그때, 울음소리가 울렸다.
뿌우우우우우-!
“이게 무슨 소리야?”
“쉿. 얌전히 보고 있어요. 대장.”
모두가 숨을 죽였다.
풍화되어가는 상아에서 반투명한 코끼리가 일어나 코를 높게 들었다.
그것은 바로 코끼리 밴시였다.
뿌우우우우우-!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뼈에서부터 코끼리 밴시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밴시들은 어째선지 일심동체인 것처럼 합심해 어딘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우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기적으로 친 장막 때문에 우리의 존재를 인식 못 하고 있는 거예요.”
하여간 코끼리 밴시라면, 일반 밴시보다 훨씬 정신붕괴가 셀 것이다.
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 대륙의 밴시는 코끼리냐?”
“뭘 놀라요? 예전에 아크 리치가 되살린 용의 밴시도 봤으면서.”
하기야 그건 그렇지만, 묘하군.
눈에서 피를 뿜으며 사막을 날뛰는 밴시 코끼리 떼는 무척 기괴하였다.
거기다 환한 달빛을 받아서일까.
그 풍경은 아스라한 사막의 경관처럼 흠뻑 기괴스러운 마력이 느껴졌다.
코끼리 밴시를 구경하는 것도 잠시, 우리는 무료함에 빠졌다.
“아이고. 먼저 자겠소. 피곤하이.”
카벨 선장과 뱃사람들은 낮에 있었던 소동 탓에 금방 잠들었다.
한편 헤르탄은 장막이 있음에도 표정이 목석처럼 굳어져 있었다.
“밴시를 앞에 두고도 태평히 잠들다니. 과연 뱃사람은 담이 세군요.”
헤르탄의 반응만 봐도 회귀자가 얼마나 밴시를 두려워하는지 알겠다.
‘그런 걸 보면 밴시 떼에 둘러싸이고도 날 구한 블라이넨도 대단해.’
지금쯤이면 녀석도 황색대륙에 도착했겠지?
하여간 밤잠도 그다지 오지 않아서 우리 일행은 함께 불침번을 섰다.
그리고 카티에가 날 척 바라봤다.
“밤도 적적한데, 배에서 하던 얘기나 마저 할까요? 뭐예요, 대장?”
“뭘 말이야?”
“대장이 마지막 대륙지배자를 죽이면 빌고 싶은 숙원. 그게 뭐예요?”
모두가 나를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그 시선에 난 괜스레 턱을 긁었다.
“그냥, 뭐.”
나는 뻔한 대답을 내뱉었다.
“지금처럼 누구도 죽지 않는 것?”
퀸소히니베는 딱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소박한 것이야. 일생일대의 숙원이 고작해야 그런 것이야?”
“난 원래 그런 욕심이 별로 없어.”
그냥 나의 천성이 그러했다.
괜히 이계에 와서 10년간 아무런 모험도 없이 도시에만 머물렀겠나.
“회차 목표를 이루기까지 다들 죽지 않았으면 해. 그냥 그것뿐이야.”
내 목소리가 상당히 진지함을 띄자 헤르탄도 흥미롭단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말입니까?”
나는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 세 사람이 죽고 없어져 버리면, 이곳에는 나만 남을 것 같아서.”
나는 문득 하늘을 보았다.
밤처럼 조야한 달이 떠 있었다.
“회차가 버려진 것처럼, 나도 여기에 버려질까 봐. 그게 좀 무서워.”
나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으니까.”
사막의 밤이란 꽤나 조야해서 괜스레 감성적인 면을 자극하고는 한다.
사실,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속마음을 표현한 것은 오랜만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생명그릇이 숨겨져 있던 인과율 교차 공간에서 난 여러 예지를 봤다.
그중에서도.
그곳에서 보았던 아주 슬픈 미래.
‘어쩌면.’
바꾸고 싶지만.
바꾸려 하지만.
모두는 아닐지라도, 오직 나만은 아주 슬픈 결말을 맞이할지 모른다.
“단지,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내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회귀자들이 돌아오고, 세상이 버림받은 것은 내게 있어 재앙이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회귀가 멈추든, 멈추지 않든. 얼마 안 있으면 이 여정도 끝이니까.”
이제 마지막 대륙지배자만 남았다.
우리가 그것의 사냥에 성공하든.
아니면 실패하여 모두 죽게 되든.
여정은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화로의 불꽃이 타닥였다.
“이젠 우리가 다 함께 보낼 밤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카티에였다.
“회귀가 멈추고도 같이 여행해요.”
불현듯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되겠냐?”
“딱히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질리지 않겠어? 마지막 삶에서까지 나와 함께 다닌다는 것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전혀 질릴 이유 없으니까요.”
헤르탄은 턱을 괴고서 웃었다.
“저 역시 그것만은 동감입니다. 세상은 워낙 넓어서 아직 회귀하면서도 못 가본 곳이 천지입니다.”
퀸소히니베도 얼른 끼어들었다.
“괜히 나만 빼놓진 말란 것이야. 여행은 너희와 할 때만 즐거우니.”
우린 각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다들 불가의 빛에 뺨이 붉었다.
그리고.
콰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게 무슨 소리죠?”
카티에가 곧바로 경계심을 세웠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콰아앙……!
누군가가.
기적의 장막을 파괴하고 있었다.
***
“이, 이게 갑자기 뭔 소란이오!”
태평하게 잘만 자던 카벨 선장이 부스스한 머리로 깨어나 기겁했다.
카티에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기적의 장막은 평범한 검으로 부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적이 평범한 검을 들고 있지 않다는 소리겠지.”
내가 검을 들고 땅을 박찼다.
당연하지만, 장막이 부서지면 밴시가 쳐들어와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헤르탄이 곧바로 나를 따르려 했다.
“범철. 돕겠습니다!”
“됐어요. 회귀자가 밴시 주위에서 제대로 활동할 수나 있겠습니까?”
나는 서둘러 장막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모래투성이 로브를 뒤집어 쓴 거한이 장막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묘한데?’
거한은 자신의 체격에 어울리는 매서운 검과 방패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장막을 때리고 있는 것은 검이 아니라 바로 방패였다.
‘왜 멀쩡한 검은 놔두고, 방패로 장막을 부수고 있는 거지?’
하여간 이해할 시간 따윈 없다.
“멈춰!”
내가 달려가며 소리치는 순간, 방패 날이 휘둘러진 것은 순식간이다.
“끄흑……!”
방패 날이 가슴팍에 꽂혔지만, 뼈 갑옷이 불타며 그 타격을 방어해 줬다.
그러나 나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에 움찔하며 숨을 잠깐 멈췄다.
‘무슨 힘이 이렇게 무지막지해?’
아니, 나도 불멸아귀 죽이고 엄청 성장했는데 뭐가 저렇게 강하지?
간신히 버티고 선다.
내가 로브로 인상착의를 가리고 있는 괴한을 사납게 노려봤을 때.
전혀 예상 밖의 문구가 떠올랐다.
《롬》
설명: 불세출의 검사. 인류에 현존하는 세 명뿐인 최정상 칼잡이다.
*고급감정(Lv3)을 사용해 대상에 대하여 조금 더 정보를 입수합니다.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거물이며 누구도 갖지 못한, 자아보존의 방패와 명검을 독점한 적색대륙의 전사.
‘롬?’
기가 막힌 정보에 입이 벌어졌다.
‘불세출의 검사인 동시에 거물.’
현존하는 세 번째 불세출의 검사.
불세출의 검사로도 강한데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능력까지 갖췄다고?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단순히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밴시들이 떠도는 지역이다.
그런데 어째서 회귀자가, 아무 두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단 말인가.
‘회귀자가 어떻게 밴시 소굴에서?’
그 블라이넨조차 밴시 앞에선 제 발을 태워서 간신히 정신을 갖췄다.
하나 그보다 강한 코끼리 밴시 떼 근처에서도 녀석은 멀쩡해 보였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밴시를 이끄는 회귀자가 있다고, 블라이넨한테서 듣기는 했었지만.’
설마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저런 강자와 마주할 줄 전혀 몰랐다.
적색대륙 억양이라 조금 낯설지만, 소름 끼치게 사나운 어조가 들렸다.
“너는 죽게 될 것이다.”
“그러든가.”
나의 뒤편에서 맹렬하게 솟구친 벼락이 녀석을 태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