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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49화 (149/200)

나만 1회차 149화

랜턴이 죄다 깨져버려 선내는 침몰한 유령선처럼 어둡고 엉망이었다.

항해를 책임져온 몇 안 되는 선원들도 뛰어나와 우리들과 접선했다.

“선장님! 이게 무슨 난리입니까!”

“갑판에 있던 녀석들은 전부 바다로 추락해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뒤집힌 천장을 밟으며, 갑판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문을 열자마자 세찬 바람이 몰아치며, 뒤집힌 갑판이 한눈에 보였다.

나는 눈부신 햇빛 사이로 드러난 광경에 경악하고야 말았다.

‘진짜 배가 뒤집혀 날고 있잖아?’

뒤집힌 배는 격하게 흔들리며 하늘을 빠른 속도로 주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어느 날 바다에 있는 것이 질려 날게 된 것은 아니었다.

‘새?’

이 작지 않은 배를 뒤집어 하늘에 이끄는 것은 바로 거대한 새였다.

어찌나 형체가 큰지 내 눈에 들어 오는 것은 발톱이 전부일 수준이다.

우리 배는 엄청나게 거대한 새의 발톱에 쥐어져 납치당하고 있었다.

“제기랄. 도대체 뭐야, 저 새는? 청색대륙 백룡보다도 더 크잖아?”

설마 살면서 용보다 큰 짐승을 보게 될 줄이야.

퀸소히니베가 새의 크기를 가늠하고는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 무척 건방진 새인 것이야.”

헤르탄이 척 보자마자 입술을 깨물고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골치 아픈 괴조군요. 로크(Rok)라 불리는 전설적 비행 몬스터입니다.”

“전설적 비행 몬스터요?”

하기야 저 크기면 그럴 만도 하다.

크기가 얼마나 큰지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저 새는 도대체 얼마나 크기에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겁니까?”

“로크의 주식은 코끼리입니다.”

“…….”

코끼리도 잡아먹는 괴조라니.

카벨 선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어쩌다 전설에나 나오는 괴조가 우리 배를 노린 거요? 아무리 재수가 옴 붙었어도 이건 너무하잖소!”

카티에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눈매를 좁혔다.

“로크가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 ‘황제’가 우릴 노리고 있단 의미겠죠.”

“그렇습니다. 곤란하게 됐군요.”

내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황제요?”

“적색대륙에는 그만큼 강대한 인물이 있습니다. 회귀자의 세상에서조차 ‘황제’라는 호칭으로 불릴 만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나 큰 전설의 새를 길들여서 부린다고?

나의 황당해하는 반응은 개의치 않고 카티에는 빠르게 계산을 하였다.

“일단 우리를 당장 죽일 생각은 없나 봐요. 납치해가는 것을 보면.”

“그건 그렇습니다. 목적이 무엇인지 섣불리 추측할 수는 없지만요.”

한편 뱃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선내의 선원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선장님!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대로 끌려가실 생각이십니까?”

용맹한 카벨 선장은 선원들의 혼란에도 수준급의 결단력을 선보였다.

“거기 너! 당장 주방 좀 갔다 와라.”

“주방이요? 지금 거기를 왜……?”

“거기 안락사용 독약이 있다! 그걸로 죽고 얼른 다음 회차로 가자고!”

회귀자스러운 비책을 제시한 선장에게 선원들은 입을 모아 감격했다.

“과연 선장님이십니다!”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독약. 이거 말하는 겁니까?”

내가 조그만 약병을 품에서 꺼내자 카벨 선장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주방 갔을 때 척 보이더군요. 내가 보물을 탐하는 재능도 있어서.”

“고맙소. 덕분에 수고를 덜었…….”

나는 회귀자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독약이 든 약병을 깨뜨렸다.

쨍그랑! 화르륵!

손아귀에서 마나의 불꽃이 오르며 수많은 환약들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카벨 선장이 기겁했다.

“지금 뭐하는 짓이오!”

“아무도 내 앞에서는 자살 못 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삶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뱃사람들까지 잃으면 답이 없으니까 말이지.

“그럼 어쩌란 말이오! 저런 큰 새를 죽일 수도 없고! 이대로 바다에 떨어져 죽자니 후환이 두렵고! 추락사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나 있소?”

확실히 카벨 선장의 말은 옳았다.

대형 괴조에게 배를 납치당하는 상황에서 우린 모든 것이 무력하였다.

로크의 눈에 우리 인간은 그저 배도 안 차는 먹잇감에 불과할 테니.

설령 괴조를 죽이는 데 성공해도 상공에서 떨어져 추락사할 뿐이다.

‘조련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지만.’

조련을 얻었던 초창기, 참새를 애완수로 삼았다 살해한 경험이 있다.

난 그때의 페널티 탓에 조류의 호감도를 올리기가 쉽지 않아졌다.

‘거기다 저만한 초대형 몬스터라면 조련하는데 엄청난 먹이가 들겠고.’

그렇다면 지금 나올 답은 하나뿐.

‘로크가 우리 배를 다시 해수면 위에 내려놓도록 유도해야만 한다.’

나는 달빛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배에서의 낚시는 금지라고 했었지만, 지금만큼은 어겨야겠습니다.”

“낚시? 이렇게 드높은 하늘에서 갑자기 무슨 물고기를 낚겠단 거요?”

카벨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품 속에서 미끼를 꺼내서 꿰었다.

‘보물 박을 깼을 때 나온 아이템.’

당연하지만 지렁이나 떡밥 따위로는 대형 괴조의 시선을 끌 수 없다.

낚싯대 끝에 꿰인 것은 밝은 금화!

「역전사냥꾼의 금화.」

대형 마물만을 사냥하던 사냥꾼의 애장품. 오래된 시구가 적혀 있다.

+성미가 흉악한 몬스터나, 초대형 몬스터의 시선을 유혹하는 데 유용하다.

+금화 단면 그림을 대상의 먹잇감으로 변화시키면 효과가 증가한다.

‘코끼리가 주식이라고 했었지?’

나는 로크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금화 단면을 코끼리로 변화시켰다.

카벨 선장이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보았다.

“지금 저 괴조를 낚겠다는 거요?”

“정확히는 낚아 올리기보다 비행을 유도하겠단 겁니다. 고도가 최대한 낮아졌을 때 배를 바다에 떨어뜨리도록 말이죠.”

“하, 헛소리군. 천년의 세월을 낚은 낚시꾼도 그딴 짓은 못할 거요.”

그러자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당신도 알겠지만, 난 대형괴물을 낚는 데 상당한 재능이 있습니다.”

“……진짜 1회차 맞소, 당신?”

카벨 선장은 기가 질렸단 표정이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대형괴조를 낚시하려면 나도 하늘을 날아야 한다.

“퀸소히니베. 부탁한다.”

그러자 퀸소히니베가 턱을 짚었다.

“잘못해서 죽으면 어쩌는 것이야?”

“그럼 회귀 못 하는 사이니까 사이 좋게 저승길 나란히 걷는 거지, 뭐.”

결국 그녀가 체념하고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내 노예가 함께 걸어준다면, 최소한 그 길이 외롭진 않겠단 것이야.”

내가 낚시할 준비를 마치자 헤르탄과 카티에가 내게 도움을 주었다.

“퀸소히니베와 몸을 덩굴로 연결시켜 드리겠습니다. 이러면 추락 없이 낚싯대를 휘두를 수 있을 겁니다.”

카티에는 날 가볍게 올려다보았다.

“대장은 어쩜 그렇게 기상천외한 기행을 잘 떠올리나 모르겠어요. 대장이 회귀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아닐까요?”

“됐고. 기적이나 걸어줘, 인마. 지금 상황에서 도움 되는 것 있지?”

“됐고. 죽어 오지나 마요. 대장.”

퀸소히니베가 나와 함께 날아올랐고, 난 긴장되는 마음으로 낚싯줄을 길게 빼서 대를 힘껏 던졌다.

‘당연히 상공에서는 바람 탓에 낚싯줄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카티에의 기적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다행히도 바람의 저항을 받지 않게 해주는 기적도 존재했다.

‘괜히 기적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니까.’

물론 그만큼 카티에의 수명을 소진하기에 절대 자주 써선 안 되지만.

휙!

낚싯대를 던지자 로크의 눈앞에 반짝이는 코끼리 금화가 아른거렸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저 큰 괴조의 눈에 작은 금화가 들어올 리 없다.

‘하지만.’

여러 재능을 일정 경지까지 끌어올린 난 이전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내가 쥐고 있는 것은 낚싯대였지만, 쓰이는 재능은 한 개가 아니었다.

[SSS급 낚시 재능이 대형 괴조 로크에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SSS급 조련 재능이 상급에 이르러 합성 시너지를 발산합니다.]

[낚시와 조련의 합성!]

[해저, 용암, 산성액. 어디서 낚시하든 낚싯대가 상하지 않습니다.]

[만물낚시를 사용하면 물고기 이외 몬스터도 쉽게 낚게 됩니다.]

[만물낚시로 낚아 올린 생물은 손쉽게 길들일 수 있게 됩니다.]

[재능합성의 시너지는 각 재능의 경지와 상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재능의 합성, 만물낚시!

‘공간왜곡 이후로는 처음으로 생성된 재능의 합성이로군.’

‘공간왜곡’은 잠금 해제 재능과 마법 재능이 합쳐 이뤄진 합성이었다.

반면에 ‘만물낚시’는 그야말로 어디서든, 무엇이든 낚기 위한 스킬!

‘만물낚시’를 사용하자 낚싯줄과 찌가 옅고 고고한 황금빛을 띠었다.

“카라아아악!”

대형괴조가 귀청이 찢어지도록 크게 울더니 상승궤도를 비틀었다.

‘반응한다.’

나는 식은땀이 느껴지는 손아귀로 낚싯대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퀸소히니베. 낮게 날아라.”

“저딴 새대가리한테 먹히면, 용에게 그만한 망신이 없을 것이야.”

새파래진 퀸소히니베가 괴조의 비행에 맞춰 조금씩 고도를 낮췄다.

비행이 느려서도, 그렇다고 대놓고 앞에서 날아 눈에 띄어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우린 괴조에게 부딪치거나 그대로 먹힐 것이다.

‘확실히 새대가리가 맞긴 하구나.’

로크는 어찌 보면 순진하다 싶을 만큼 멍청하게 금화를 쫓아왔다.

‘만물낚시는 그저 낚시성공확률만 올려주는 것이 아니군.’

낚싯바늘에 달린 금화가 춤을 추며 로크의 눈동자를 마구 유혹하였다.

해수면에 발톱이 닿을 만큼 고도가 낮아졌을 때, 난 주먹을 꽉 쥐었다.

‘됐어.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배가 바다 위에 떨어져도 괜찮아.’

물론 배가 엎어진 채로 바다에 떨어지면 그대로 전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화에 정신 팔린 놈의 발톱은 조금씩 배를 안정적이게 놨다.

그런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해 나는 온몸에서 땀을 흘리며 집중하였다.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배를 쥔 발톱이 느슨해가는 찰나.

이변이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카라아아악-!”

로크가 갑자기 포효하더니 사방의 공간이 마구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뭐야?’

괴조의 모든 깃털이 희게 빛나고, 상공에서 마법진이 크게 그려졌다.

대기가 일렁이는 충격에 퀸소히니베의 날갯짓도 크게 흔들려버렸다.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이야!”

“나인들 알겠냐!”

당황한 우리 둘이 소리쳐댈 때. 눈 앞에 예상치 못한 문구가 떠올랐다.

[로크가 장거리로부터 주인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전달받았습니다.]

[전설적 괴조가 시공간을 찢어 다른 대륙으로 비행을 시작합니다.]

‘시공간 비행?’

사방의 공간이 끊기는 듯싶더니 어느덧 먼 거리가 이동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이 3초 간격으로 지속되며 우리는 계속 이동되었다.

‘순간이동? 이렇게나 빠르게?’

바다가 스치고 우리는 순식간에 다른 해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속도의 장거리 순간이동!

로크에게도 신체적 부담이 갔는지 깃털이 빠지고 날갯짓이 느려졌다.

‘여기는…….’

토할 것처럼 어지러운 순간이동이 끝났을 때, 입가에서 모래가 씹혔다.

온몸이 뜨겁다 못해 따가울 지경.

거센 햇빛에 두 눈이 탈 것 같다.

밑을 보자 광활한 사막이 있었다.

“바다가 일순간에 사막이 되어버린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놀랐고, 나도 이 상황이 경악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놀라움에 경직될 여유조차 없이 로크는 또 날아오르려 하였다.

‘안 돼! 또 날아오르려고 하잖아!’

이를 악물고 낚싯대를 휘저었지만, 재수 없게 모래바람이 마구 불었다.

모래에 시선이 가려진 로크는 미끼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안 돼! 이대로 날아오르면 다신 자력으로 지상에 내려오지 못해!’

나는 이를 악물며 헤르탄이 몸에 감아준 덩굴을 자르기 시작했다.

“퀸소히니베! 저쪽으로 던져줘!”

“지금 여기서? 죽겠다는 것이야?”

“괜찮으니까, 빨리!”

망설이던 퀸소히니베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나를 힘껏 던져버렸다.

떨어지며 칼자루를 힘껏 쥐었다.

난 로크의 발톱을 향해서 무게를 신고 검을 역수로 내리꽂았다.

“캬라아아아악!”

로크가 괴성을 내지르며 배는 여전히 놓지 않은 채 발톱을 꽉 닫았다.

그러나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화기의 뱀!’

내꽂힌 칼날에 불꽃이 차오른다.

불멸아귀를 죽이고 상승한 마력을 발동시키자 로크의 발톱이 불탔다.

로크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배를 떨어뜨렸고 나도 그에 같이 떨어졌다.

“으아아악!”

난 소리 지르며 낮은 고도에서 떨어져 모래덩이에 푹 파묻혀버렸다.

그런 나를 모래덩이에서 빼준 것은 바로 헤르탄이었다.

“괜찮습니까, 범철?”

모래를 칵 뱉고 눈살을 찌푸렸다.

드넓고 광활한 붉은 모래사막.

황량한 환경에 그냥 보기만 해도 생명체가 살아가기 힘든 구조 같다.

로크는 이곳에 우릴 떨어뜨리고 그대로 하늘로 떠나가 버렸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예정보다 서너 달이나 일찍 도착했군요. 이곳은 적색대륙입니다.”

“예? 그러면 좀 힘들기는 했어도 시간을 절약했으니까, 좋은…….”

“결코, 아닙니다. 여기는 절대 살아서 벗어날 수 없는 장소이니까요.”

헤르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회귀자의 무덤입니다. 미치지 않고는 생존할 수가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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