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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48화 (148/200)

나만 1회차 148화

바닷바람이 뺨을 시리게 때린다.

아스러지는 소금기의 향을 맡으며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능력치 창.”

이름: 이범철

칭호: 크레스의 영웅, 거물을 멸살하는 자. 화살의 비를 뚫는 모험가…….

보유재능 - 검술(SSS), 마법(SSS), 회귀자 살해(SSS), 잠금 해제(SSS), 보물 탐색(SSS), 낚시(SSS), 조련(SSS)

힘: 150 체력: 133 민첩: 137 마력: 111 행운: 93

나는 갑판에서 편하게 앉아 손아귀의 장기알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능력치는 대충 고른 편이군.’

마력이 상대적으로 아쉬운 면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검을 자주 썼으니까.

‘칭호도 이만하면 괜찮은 편이고.’

두 대륙지배자를 살해하고 여정을 겪으며 나도 참 많이 성장하였다.

‘그래 봐야 갈 길이 멀지만.’

손아귀에 품은 장기알을 꽉 쥔다.

‘길과 흉이 교차하는 장기알.’

용궁에서 훔쳐온 보물 중 하나였는데, 별 특별한 효과가 있지는 않다.

‘높이 던지면 당장 닥쳐올 경사나 재난을 곧바로 점지해 준다.’

나는 장기알을 한 움큼 집어서 갑판에다가 던져보았다.

그러자 장기알들이 일정하게 흩어지며 어떤 글자의 표식이 되었다.

대흉大凶

하기야 내가 그러면 그렇지.

나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하, 망할 인생.”

청색대륙의 항구에서 출항한 지 어느덧 세 달째에 접어들었다.

우리의 범선은 해적도, 괴물도, 재난도 만나지 않은 채 순항 중이다.

‘순항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적색대륙까지 세 달쯤 남은 건가.’

이제야 절반을 건너온 셈이다.

세 달이나 배에서 지냈더니 아주 좀이 쑤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보물 박에서 얻었던 귀한 아이템들은 아직 써보지도 못하고 있고.’

나는 품에서 금화를 꺼내 손아귀에서 굴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 참 더럽게 안 가네.”

내가 그렇게 한탄을 했을 때, 옆에서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 동조했다.

“내 노예도 주인처럼 인생이 너무 괴로워 미쳐버릴 지경인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어찌나 많이 울었는지 눈이 부르트고 눈시울이 붉었다.

내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너, 아직도 우울증 걸려 있냐? 헤어졌던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래?”

“지금 그게 실연에 슬퍼하는 주인에게 노예가 할 소리인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사납게 말했고, 나는 어쩐지 안쓰러운 표정이 지어졌다.

“블라이넨이 그렇게 좋았었냐?”

“전혀! 이제 와서 보면 왜 그런 여자랑 사귄 건지 모르겠단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곧바로 부정하였다.

보통 전 애인은 다 저렇게 말하지.

그때 내가 내 뒤통수를 탁 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블라이넨이 가기 전에 너한테 전해 달라면서 쪽지 하나를 줬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그, 그게 정말인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두 눈을 부릅뜨고 나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내가 진지하게 말하였다.

“아니, 거짓말이야.”

“…….”

내가 히죽 웃었다.

“아직 못 잊은 것 맞구만. 뭘.”

그러자 당연하게도 퀸소히니베는 날 죽이기 위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난 외딴 바다에서 객사하지 않기 위해 갑판을 열심히 내달렸다.

‘헛짓거리라도 하지 않으면 이 지루한 배 위에서 도통 할 게 없다니까.’

갑판에서의 살벌한 추격전 끝에 나는 마침내 선실로 숨는 데 성공했다.

건너편에서 외다리 선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팍 노려보았다.

“거, 얌전히 좀 다니시오.”

“낚시까지 못하게 하면서 뭘.”

“재능 넘치는 댁이 낚시할 때마다 바다에 대형괴물이 출현하잖소! 이 배마저 침몰하는 꼴은 절대 못 봐!”

카벨 선장은 훌륭하게 배를 몰았지만, 나를 꽤 불안해하는 듯하였다.

나참, 예전 배도 나 하나 때문에 침몰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내가 그리 크지 않은 선내를 걷는데, 눈앞에 키 큰 거한이 보였다.

“오늘도 활기차군요, 범철. 날씨도 추운데 갑판에 있었던 것을 보면.”

“배에서만 지내려니 좀이 쑤셔 죽겠습니다. 카드나 치겠습니까?”

그러자 헤르탄이 희미하게 웃었다.

“바라던 말을 이제야 꺼내는군요.”

카드게임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두 명보단 세 명이 재밌는 법이다.

내가 몸을 돌려서 나를 뒤쫓아 달려오는 퀸소히니베를 바라보았다.

“야, 됐고. 카드게임이나 하자고.”

“내 노예가 미친 것이야?”

“으억!”

내가 퀸소히니베의 주먹에 배가 찢길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긴 끝에야, 그녀도 이번 판에 끼게 되었다.

헤르탄이 착착 카드를 섞었고, 나와 퀸소히니베에게 패를 나눠줬다.

“판돈은 말린 과자로 가겠습니다.”

“배에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었습니까? 어찌 보면 돈보다 귀한데요?”

“몹시 구미 당기게 하는 것이야.”

우리가 서로의 패를 탐닉하는 사이, 야심 찬 카드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와 퀸소히니베는 결국 동시에 카드 패를 내던지고 말았다.

“제길. 어째 한 번을 못 이기네.”

“헤르탄은 게임의 괴물인 것이야.”

아니, 나도 꽤나 치는 편인데 어째 한 판을 못 이기는지 모르겠군.

“제 실력은 하류에 속합니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니에요?”

“다만 범철의 카드게임 패턴은 52 회차 즈음에 전부 외웠으니까요.”

“…….”

“참고로 저는 카티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하여간 이래서 회귀자란.

우리 과자를 모두 독점한 헤르탄은 퀸소히니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퀸소히니베는 욕심이 너무 심하군요. 베팅할 때 너무 무모합니다.”

“하지만 과자가 걸려 있는 것이야!”

“판돈은 때론 아껴야 합니다. 작은 승리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하죠.”

그것은 담담한 어조였지만 패자에게는 독설만큼 뼈저린 말이로다.

“범철도 회차마다 같은 버릇이 있군요. 판마다 몸을 너무 사립니다.”

“죽으면 끝인데, 그걸 안 사려요?”

“그 판을 진다면, 또 새로운 판이 있습니다. 재시작하면 되잖습니까.”

결국 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선내의 그물침대에 픽 누워버렸다.

“나는 그런 건 좋아하지 않아요.”

“범철은 1회차니까요. 카드게임 플레이는 본인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헤르탄은 깔끔한 성격답게 카드를 정리했고 독점한 과자를 퀸소히니베에게 양보하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만일 내게 친오빠가 있었다면 분명 헤르탄 같은 남자였을 것이야.”

“과찬입니다. 퀸소히니베.”

퀸소히니베가 과자를 우물대며 행복해했고, 얘기는 잡담으로 흘렀다.

당연히 이야기 주제는 머지않아 다다르게 될 적색대륙에 관해서였다.

“서서히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륙지배자만이 남았군요.”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 리치와 불멸아귀를 쓰러뜨리며, 드디어 마지막 지배자만 남았다.

적색대륙 지배자만 쓰러뜨리면 회귀를 멈추고 숙원을 이룰 수 있다.

“적색대륙 지배자의 정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죠, 헤르탄?”

“그렇습니다. 대륙지배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 정체에 관한 이야기는 각양각색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죠?”

“인류는 회귀하니까요. 이전 회차에 적색대륙 지배자에게 사망했던 이들은 줄곧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의 말이 엇갈립니다. 끔찍한 괴물을 봤단 자도 있고, 멋진 여성을 봤다는 자가 있는가 하면, 명석한 거인에 휩쓸렸단 자도 있습니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대륙지배자.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어 공략난이도가 가장 극악이나 다름없다.

‘불멸아귀는 최소한 전투스타일과 외견의 정보라도 대충은 알았는데.’

어째 갈수록 여정이 어려워지냐.

역겨워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군.

“헤르탄이 직접 적색대륙 지배자와 마주했던 경험은 없었습니까?”

“적색대륙은 세 대륙 중에 가장 살아온 경험이 적은 곳이니까요. 카티에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헤르탄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적색대륙에는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소수의 강자들이 있습니다.”

나는 좀 희망적인 질문을 해봤다.

“하지만 이번 회차는 버림받지 않았습니까? 그 어지간한 강자들 중 대부분은 자살하지 않았을까요?”

회귀 인류를 통제하던 윤회수뇌부.

하나 그들이 공식적으로 삶을 ‘포기’함으로써 이번 회차는 버려졌다.

헤르탄은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십시오. 범철. 회차목표를 이루려는 ‘선량한 자들만’ 죽었습니다. 악하거나 무정부 상황을 즐기는 강자는 얼마든 있습니다. 혹은 그에 신경을 쓰지 않는 소시민이거나.”

그것참 절망적이군.

“특히 적색대륙의 두 거물은 지금까지 조우한 거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심으로 위기를 맞을 만큼.”

퀸소히니베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렇게 강력한 거물들이 있는 것이야? 고귀한 용도 패할 만큼?”

“물론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멸할 가능성도 꽤나 높습니다.”

헤르탄은 늘 덤덤하게 말하지만, 저 내용이 항상 충격적이란 말이지.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회귀자.

세상엔 총 여섯 명의 거물이 있다.

그중 우리는 네 명의 거물과 조우했고, 그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렀다.

그런데 적색대륙에는 그들보다 훨씬 강력한 거물이 도사리고 있단다.

그러다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그런데 회귀할수록 강해지는 거물들의 능력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뭐, 지금 대답해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내가 구슬프게 퀸소히니베를 봤다.

“그나마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같이 회귀 못 하는 처지니 말이야.”

“흥. 내가 애인이랑 이별했다고 이때 괜히 꼬리 치지 말란 것이야.”

“뭐, 인마?”

“흥. 내가 틀린 말을 한 것이야?”

“안 되겠다. 와봐라.”

내가 어이없이 웃으며 퀸소히니베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려고 할 때.

갑자기 선실의 문이 발칵 열렸다.

“나만 따돌리고, 여기서 자기들끼리만 놀고 있었던 거예요?”

하양과 검정이 뒤섞인 단발머리의 미인이 팔짱 끼고 우릴 노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날 노려보는 건가?

헤르탄이 재빠르게 양손을 들었다.

“카드게임은 범철이 하자 했습니다.”

“내 노예가 주범인 것이야.”

“야, 네가 멀미로 자주 고생해 납둔 거지, 누가 누굴 따돌리고…….”

그러나 나의 해명은, 끊겨버렸다.

“됐어요.”

카티에가 예리한 눈빛을 보냈다.

“이제 과외시간이니까요.”

***

“적색대륙은 우리와는 쓰는 언어가 달라요. 아주 멀리 떨어진 대륙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죠.”

지루한 항해의 나날 속에서 카티에는 매일 시간을 투자해 우리에게 적색대륙의 언어에 관해 교육해 줬다.

표기법부터 시작해, 발음, 억양, 단어의 의미까지 많은 것이 달랐다.

완전기억능력을 갖춘 그녀였기에 우리에게 매일 교육이 가능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통합어에서 약간 비틀린 수준이라,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래도 상당히 까다롭긴 해서, 나는 펜촉을 굴리며 멀미까지 느꼈다.

퀸소히니베도 머리를 끙끙 싸맸다.

“난 공부할 기분이 아닌 것이야.”

그러나 카티에는 언어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몹시 단호한 교사였다.

“핑계 대지 마요. 애인이랑 헤어졌다고 평생 우울하기만 할 건가요?”

“역시 네년은 회귀자라 내 마음 따윈 전혀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야.”

“나도 수많은 이별을 겪었어요. 하지만 좌절하고만 있어서는 평생 다시 일어서지 못해요. 잊으라구요.”

설마 자기만 빼놓고 카드 놀이했다고 이렇게 복수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적색대륙에서는 야자수를 ‘야자스’라고 부른다고?”

“비슷하지만 발음 끝을 늘어뜨려야 해요. ‘야자스-’. 다시 불러 봐요.”

“‘야자스-’”

“아주 좋아요.”

카티에는 나의 발음을 지적하고는 얇은 다리를 꼬았다.

“그런데 너, 요즘 나한테 뭘 숨기고 있지 않냐?”

내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자 카티에는 일부러 시치미를 떼는 듯했다.

“뭘요?”

“평소에 나 몰래 뭐 쓰고 있지?”

“어머. 무슨 소리예요, 대장?”

카티에가 계속 모른 체를 했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녀가 가끔 선내에서 필기장에 뭔가를 쓰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청색대륙에서도 가끔 뭘 쓰는 것 같더니. 요새 비밀일기라도 쓰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비밀일기를 남들한테 빤히 들키게 쓰겠어요?”

하기야 그건 그렇지만.

카티에는 나의 찜찜한 의혹을 가장 매혹적인 말로 종결지어 버렸다.

“이제 수업은 이걸로 끝이에요. 다들 회화는 어느 정도 하게 됐네요.”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펜을 집어 던졌다.

확실히 파도가 잔잔해도 선내에서 글씨를 보는 것은 고역이긴 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3달 후면 적색대륙에 도착하게 된다.

‘적색대륙의 지배자마저 죽이게 되면, 나는 회차목표를 이루게 된다.’

처음에는 가능할까 싶었지만, 어느새 점차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다.

회귀를 멈춘다는 것이.

‘정말로 회귀가 멈추게 된다면.’

그 무엇이라도.

한 가지 숙원을 빌 수 있게 된다.

“세 사람한테 하나 묻고 싶은데.”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선내의 랜턴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만약 우리가 정말 회귀를 멈춘다면, 숙원은 뭘 이뤄보고 싶어?”

퀸소히니베는 꿈꾸듯이 말하였다.

“평생을 보물에 파묻혀 살고 싶단 것이야. 나만의 독립된 둥지에서.”

참 퀸소히니베스러운 숙원이로군.

“헤르탄은요?”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봤습니다.”

헤르탄은 고민하는 듯싶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굳이 숙원을 이뤄야 한다면, 한 여자나 만나게 해달랄까요.”

“여자요?”

의외의 대답에 나는 좀 놀랐다.

헤르탄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었다.

“어느 회차에서 잠깐 스쳐 간 연인이죠. 절세미녀였습니다. 범철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릴 수준이었죠.”

나는 의외여서 꽤나 놀라버렸다.

그 덤덤한 헤르탄의 숙원이 이성에 관한 것이라니, 제법 흥미롭군.

그런데 왜 카티에가 자꾸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너는 숙원이 뭐냐?”

“나는 숙원이 없어요.”

“없다고? 정말 아무것도?”

“그냥…… 이대로가 좋으니까요. 좋은 사람끼리 함께 여행하는…….”

카티에의 말에 우린 서로를 봤다.

함께한 동안 고생도 참 많았었다.

혼자였다면, 버티지 못했으리라.

“이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늙어 죽고 싶어요. 더 이상 회귀하지 않고 말이죠. 참 별것 없지만, 나를 위한 숙원이니까. 그저 그것뿐이에요.”

카티에가 나를 척 올려다보았다.

“그럼 대장은요?”

“나?”

“당연하죠. 설마 혼자서만 그냥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아니었겠죠?”

“나도 내 노예의 숙원이 궁금한 것이야. 역시 주인을 위한 것이겠지?”

“확실히, 저도 궁금하긴 합니다. 범철의 숙원은 회차마다 달랐으니까.”

확실히, 고민 안 해본 게 아니지.

나는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숙원을 이룬다면…….”

선내가 크게 기운 것은 그때였다.

끼이이잉!

“으아아악!”

우리는 한바탕 내굴렀다.

천장과 바닥이 뒤바뀌는 탓에 온갖 물건이 구르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뭐지, 배가 암초에 부딪힌 건가?

나의 그런 추측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헤르탄이 빠르게 말했다.

“배가 어디 부딪친 것 정도로 이렇게 심각하게 뒤집히진 않습니다.”

“그럼 무슨 일인 거죠?”

카티에가 안면을 쓸면서 신음을 낼 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바로 노호한 카벨 선장이었다.

“배가 전복하고 있소! 이래서 당신이랑 한배를 타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세 달 동안 무난하게 항해 잘했는데 갑자기 배가 전복하다니.

나는 배가 뒤집히는 통에 깨물려서 피가 나는 입술을 꾹 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탈출해야겠군요. 배에 바닷물이 많이 들어찼습니까?”

“아니!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지. 뒤집혀 전복하긴 하는데, 반대요!”

카벨 선장이 시퍼런 얼굴로 믿을 수 없는 소리를 한 것은 그때였다.

“지금 배가 하늘에 뜨고 있단 말이오!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어째서 나의 운세가 ‘대흉’인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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