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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44화 (144/200)

나만 1회차 144화

‘엿 됐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레 시간제한이 생기다니.’

앞으로 3시간.

그 시간 내에 정확히 120회차의 카티에를 찾아서 선택하지 못하면, 나는 평생을 이곳에서 120명의 카티에랑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정신이 비틀린 카티에도 많아. 내 사지가 온전할 거라 볼 순 없겠지.’

스스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120명의 카티에가 나를 차지하려고 다툰다면 과연 내 몸이 성할까?

거기다 무엇보다 내가 회귀를 멈추기 위해선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저, 저기요.”

‘1회차 카티에’가 나를 불렀다.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나는 그제야 문득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당신, 이름이 뭐예요?”

그러고 보니 1회차 시절의 카티에라면 아직 나를 모를 것이다.

“범철이라고 불러. 그리고…….”

나는 조금 고민을 해보다 말했다.

“너는 나한테 반말해라. 그래야 다른 카티에하고 구별이 좀 가겠어.”

“뭐, 나는 크게 상관없어. 어차피 나도 너를 잘 모르는걸.”

120회차 카티에는 내게 늘 존대를 해왔다.

그래서 반말을 하는 카티에는 내게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단은 나랑 같이 다니자.”

“어째서? 1회차인 나는 회귀한 나보다 훨씬 능력이 부족할 텐데.”

“그래서 더 믿을만하지. 나도 1회차니까. 잔뼈 굵은 회귀자는 이득을 위해 배신도 많이 하는 법이거든.”

오히려 1회차의 순진한 카티에기에 조언자로 삼기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1회차 시절 카티에가 어땠는지 꽤 궁금하기도 하고.

‘물론 앞으로 3시간밖에 없으니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지만.’

급조하긴 했지만, 전략은 정했다.

진짜 카티에를 택하기 위한 내 계획에는 ‘1회차 카티에’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선 그녀와 말문을 텄다.

“1회차 시절의 네 얘기를 간략하게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듣는 거랑은 또 다르겠지. 넌 어떻게 살았어?”

“평범하고 괜찮게 살았어. 할머니도 성녀고, 어머니도 성녀였거든. 수도원을 나 혼자 맡아서 헌금도 걷고 매일 예배당도 청소하며 지냈어. 친구는 없었지만, 신앙심은 있었거든.”

나는 1회차 카티에와 같이 걸었다.

함께 대화하고 이야기할수록 그녀를 깊게 알게 되는 느낌이었다.

‘순진하고, 쾌활하며, 순수하다.’

본래 카티에의 메마르고 건조한 성격에 비해서 훨씬 생동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낯설었다.

‘원래 저 나이는 당연히 저렇지만.’

하지만 내게는 그런 ‘1회차 카티에’가 낯설 수밖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인류가 회귀했으니까.’

이제껏 외견은 어려도 속은 노인보다 독하고 늙은 경우를 자주 봤다.

한동안 외견에 걸맞은 나이를 가진 인간을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1회차 카티에’는 내게 있어서 어쩐지 그리운 인간상이었다.

‘회귀가 없던 시절에는 모두가 저랬으니까. 하여간 그보다도.’

우리는 폐가를 나와서 돌아다녔다.

곳곳에 카티에가 울면서 몸을 웅크리고 있거나 통곡을 하고 있었다.

“회귀의 끝이 보이지 않아…….”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만 해?”

“반복되는 삶은, 지겨울 뿐이야.”

극심한 트라우마에 먹힌 회귀자들.

1회차 카티에는 기가 막히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어이없어했다.

“진짜 내가 저러고 다녀? 미래에?”

“정확히는 회귀하고 나서부터겠지.”

“회귀란 건 끔찍하구나. 정말로.”

카티에가 내게 붙으며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말이야. 혼자 회귀 못 하는 걸 축복이라 생각한 적 없니?”

“회귀 못 하는 게 축복이라고?”

“응. 최소한 저렇게 끔찍하게 오래 살며 마음고생 할 필요는 없잖아.”

심오한 질문이군.

나도 가끔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최소한, 회귀를 못 하면 반복되는 삶에 고통받을 걱정은 없어지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이야. 네 친구, 지인 모두가 딴판인 사람이 됐어.”

“아…….”

“그리고 너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는 원수가 세상에 넘쳐나네? 수많은 광신도가 너를 섬기고 있고, 심지어는 너를 잡아먹어 신이 되겠단다. 그럼 너는 기분이 어떻겠냐?”

‘1회차 카티에’가 상상하며 질린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네 심정을 이해했어.”

“나도 아직까지 내가 미치지 않은 게 용하다 싶다.”

‘1회차 카티에’가 문득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질문하였다.

“그런데 너는 왜 120회차의 나랑 함께 다니려는 거니?”

“버림받은 세상에서 같이 회귀를 멈추고자 하니까.”

“아니. 그런 이유 말고. 혹시 120회차에 나랑 연인관계였나 싶어서.”

그 말에 나는 픽 웃고 말았다.

“글쎄, 120회차의 네가 일방적으로 날 좋아해 주는 것 같긴 했었는데.”

“우웩. 내가 너 같은 아저씨랑? 난 나중에 연하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거, 반응 참 섭섭하네.

“야, 생각해 봐. 네가 120회차까지 회귀하면 나보다 훨씬 연상이라고.”

“어, 그러네?”

‘1회차 카티에’가 어이없어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음이 나왔다.

건조하기만 했던 그녀가 저렇게 다양한 표정 짓는 걸 보니 신기할세.

솔직히 시인하자면 카티에가 나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호감은 안다.

카티에는 오랜 회귀 기간 동안 나를 보아왔고, 나와 가까이 지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 대해 안 것이 이번 삶에서 처음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아끼고 있고, 정말로 잃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소멸당하게 둘 수 없어.’

그나저나.

‘진짜 카티에를 찾으려면 수를 써야만 해. 그렇다면 적당한 게 있지.’

나는 품에 보따리를 꺼냈다.

선택의 방에 오기 전에, 헤르탄이 위급할 때 열어보라며 줬던 보따리.

‘지금이 위급할 때 아니겠어?’

나는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놀라운 물건이 들어 있었다.

보따리를 열자 난 펄쩍 뛰어올라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지만, 꽤 그럴듯한데.’

보따리에는 간략한 내용이 적힌 쪽지가 곱게 접혀 있었다.

[되도록 미친 짓 하십시오. 어지간한 짓은 카티에가 다 예상합니다.]

헤르탄의 명안에 감탄이 나온다.

‘참 절망적인 조언일세.’

나는 손안에서 그것을 구겨버렸다.

***

나는 멀리서 카티에들을 보았다.

100명이 넘어가는 카티에들이 어지럽게 밀집해 있는 평원의 중앙.

그녀들은 이제 내게 딱히 선택받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만 버티면 생존할 수 있어.”

“대장이랑 평생 함께 사는 거야.”

“회귀로 고통받을 바엔, 차라리 여기서 대장과 함께 사는 게……!”

참으로 왜곡된 애정이 가득한 발상들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0명이 넘는 카티에들을 보며 나는 새삼 카티에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삶들을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

‘육체적인 직업은 하지 않고, 평생 성녀로만 살았을 줄 알았더니만.’

자기 몸보다 커다란 검과 방패를 착용한 ‘검투가 카티에’.

기다란 창을 가지고 있는 ‘창병 카티에’.

그리고 알 수 없는 물약을 마셨는지 몸이 키메라처럼 기괴한 ‘괴물 카티에’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카티에는 지금까지 얼마나 다양하게 미친 짓을 하며 살아온 거야?’

이렇게 보니 1회차인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인생들이었다.

‘하여간 저런 카티에가 많으니 힘으로 제압하는 것도 꽤 어렵겠군.’

마법이 봉인 당했다고 그녀가 무력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여기서 120회차 카티에를 찾아내려면…….’

분명 적합한 계획은 있다.

‘꽤나 거칠고 힘든 방법이겠지만.’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티에.”

“어느 카티에? 저쪽? 이쪽? 아니면, 요쪽을 말하는 거야?”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이겠냐?”

‘1회차 카티에’가 볼을 부풀리고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농담도 못 하니?”

어찌 됐건 괜히 내가 ‘1회차 카티에’와 동행한 것이 아니다.

“저 카티에들한테 접선해 줘. 그리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캐와.”

“그런데 내가 왜 너를 도와야 해?”

“신앙을 믿는다고 했잖아? 다른 카티에들 못 봤어? 전부 회귀하며 제정신이 아니라고. 같이 살고 싶냐?”

“하기야 나도 저런 나하고 살아가느니 소멸당하는 게 낫겠어. 어머니께서 항상 그러셨거든.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에 가게 될 거라고. 너한테 선의를 베풀어줄게. 신한테 버림받아 지옥 가는 것보단 낫겠지?”

‘1회차 카티에’는 순진한 종교인답게 쉽게 설득을 당하고 걸어갔다.

그 틈에 나는 머리를 계속 굴렸다.

머리칼의 색깔로 카티에를 분간하는 것은 이제 할 수가 없게 됐다.

‘내가 만약 카티에였다면 무슨 방법으로 나에게 힌트를 줬을까…….’

숨어서 100명이 넘는 카티에를 관찰하며 그녀의 관점에서 추론한다.

그리고 잠시 뒤 ‘1회차 카티에’가 돌아왔다.

“일주일간 여기에서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대. 저기에서 흉터가 좀 있는 녀석들이 있지? 나끼리 싸우다가 저렇게 된 거야.”

“너희끼리 싸웠다고?”

“흰 머리칼의 나랑 싸웠대. 그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지 찾고 있고.”

나는 턱에 손가락을 대었다.

‘120회차 카티에는 다른 카티에와는 달리 혼자만 머리칼이 하얬다.’

가장 처음, 혼자만 구별되는 특징.

그 말은 즉, 이곳의 나머지 119명의 카티에들도 120회차 카티에가 누구인지 곧바로 눈치챘단 것이다.

‘이곳에서 120회차 카티에가 누군지 알았다면 다른 카티에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지.’

정신력이 약한 카티에는 있어도 바보인 카티에는 없기에 그만한 의미쯤은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멸망 카티에’가 밀가루로 자기 머리칼을 희게 해서 자신을 120회차인 것처럼 속이려 했던 거고.

‘그래서 다툼이 벌어졌던 거겠지.’

유일하게 흰 머리칼이란 말은 120회차 카티에가 쉽게 특정된다는 것.

그래서 내가 의식을 잃었던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는 싸움이 있었겠지.

다른 회차의 카티에들은 120회차 카티에를 처리해야 자신이 선택받을 확률이 조금이나마 더 높아지니까.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는 흰 머리칼을 하고 있는 카티에가 전혀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추리를 마친 나는 눈을 떴다.

이제야 알겠다.

저 중에서 내가 찾는 ‘진짜 카티에’가 누구인지 말이다.

‘이곳에서 내가 추측한 ‘유일한 특징’을 갖추고 있는 어떠한 카티에.’

나는 힐끔 남은 시간을 바라봤다.

[현재 남은 시간: 5분 12초.]

이제 선택마감까지 고작해야 5분!

늦으면 평생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확신을 갖고 발걸음 떼려 한 순간.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장. 영원히 함께하자고 말했잖아요?”

모든 카티에의 목소리는 같지만, 그 속에 담긴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특유의 뒤틀리고 불길한 분위기.

“안 돼!”

내가 소리쳤지만 때는 늦었다.

“꺄아악!”

‘1회차 카티에’의 목이 힘없이 꺾이며 픽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살해해버린 카티에가 나를 보며 웃어 보었다.

“나 말고 다른 년과 같이 있다니. 내가 그냥 두고 볼 줄 알았어요?”

“제기랄. 저 녀석도 너잖아!”

“달라요. 전혀. 설령 ‘나’라도 대장과 함께 있는 건 허락 못 해요.”

밀가루 묻은 머리칼을 산발처럼 풀어헤친 ‘멸망 카티에’가 날 보았다.

방금 내가 기절시킨 것 때문에 인중에는 코피 닦은 자국이 선명했다.

“앞으로 5분만 더 지나면 대장은 완전히 내 것이에요. 함께 살아요.”

“전형적이게 추잡한 악역이군. 네가 내가 아는 카티에가 맞나 싶다.”

“대장이라고 내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잖아요? 회귀를 하면 사람의 모든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에요.”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흐른다.

자기 자신마저 살해한 카티에라니.

정말 저 카티에는 미친 녀석이다.

‘멸망 카티에’가 찬웃음을 흘렸다.

“대장답지 않은 실수예요. 그러게 날 기절시키지 말고 죽였어야죠.”

“확실히 그럴지도. 하지만 그거 아냐?”

난 그녀를 향해 찬웃음을 흘렸다.

“넌 딱히 살아도 문제가 안 돼.”

“그게 무슨 소리…….”

‘멸망 카티에’가 눈살을 찌푸릴 때.

나는 이미 달려가고 있었다.

“붙잡아! 저기 대장이 있어!”

‘멸망 카티에’가 크게 소리쳤고, 다른 카티에의 눈빛에 불꽃이 튀었다.

“대장이 저기 있어!”

“사랑해요, 대장! 지켜줄게요!”

“이번에는 제발 날 버리지 마요!”

모든 카티에가 내게 달려든다.

‘멸망 카티에’가 고래고래 악을 썼다.

“5분! 5분만 막으면서 버텨!”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기적, 기적을 써!”

“수명을 아끼지 마! 묶으라고!”

카티에들의 손에 빛이 어렸다.

그러나 그녀들이 뿜어대는 끔찍한 빛은 내게 전혀 명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어떤 특수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요정장화가 가속 강화합니다.]

[속도 +95%! 지속시간 +3초!]

[6초 간 공격력 500% 증가!]

순간가속!

모든 카티에가 느리게만 보였다.

‘이건 마력을 쓰는 게 아니니까.’

흔히들 착각하지만, 순간가속은 마법이 아니라 육속의 반지를 모두 착용해야 얻는 세트 아이템 효과였다.

즉, 이곳에서도 사용 가능한 스킬!

카티에들이 폭풍처럼 뛰어가는 나를 보고는 마구 비명을 내질렀다.

“잡아! 기적이 안 닿으면 어떻게든 대장을 막아내라고!”

“손으로라도! 어떻게든 잡아!”

카티에의 인파 속으로 뛰어든다.

수백 명 소녀의 손에 붙잡혀 머리칼이 뜯기고 바지가 뜯기면서도.

나는 그녀를 향하여 손을 뻗었다.

“카티에!”

그리고 맞은편의 카티에 역시 나를 향해 뛰어오며 손을 내뻗고 있었다.

‘흰 머리칼의 특징을 없애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가진 그녀.’

머리칼이 모두 깎인 삭발 카티에.

그녀는 여기서 유일한 대머리였다.

내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회귀자를 선택하였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카티에 로넬야드의 해당 회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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