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43화
이계의 인류를 멸망시켰던 카티에.
앞에 있는 그녀는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카티에일지도 모른다.
“……몇 회차냐.”
“98회차. 세상은 내가 멸했어요.”
“왜지?”
나는 그녀의 단검을 주시했다.
이곳은 마법마저 봉인 당한 장소.
내가 그녀에게 검으로 제압당할 것 같지는 않지만, 방심하진 않겠다.
“답해봐. 왜 인류를 멸망시켰지?”
“회의감이 들어서죠.”
카티에는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오더니 단검을 허리 뒤로 감췄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의 가슴에 고개를 푹 파묻어버렸다.
“대장.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회귀를 멈춘다고 과연 세상이 예전 그대로 돌아오게 될까요?”
“그래. 돌아오게 될 거다.”
나의 대답에 카티에가 비웃었다.
“왜 확신하는 거죠?”
“무슨 의미지?”
98회차의 카티에는 지독할 만큼 냉소적이고 허무에 찌들어 있었다.
“혹시 청색대륙에 들렸었나요?”
“나를 모시는 종교가 있던데.”
“맞아요. 대장을 신으로 모시는 회귀자들. 그런데 과연 그들이 회귀가 멈춘다고 바로 정상인이 될까요?”
“…….”
나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바로 정상인이 될 수는 없겠지.”
“그래요. 언젠가, 회귀자들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어요. 과연 이 자들이 회귀가 멈춘다고 올바르게 살려 할까? 그렇게 인간이 선한 존재인가?”
카티에는 내 가슴에 코를 박았다.
그녀가 나의 체취를 맡고 있었다.
“인간은 악하고 추해요. 회귀가 멈춘다고 돌아올 리 없죠. 난 그것을 98회차에서야 제대로 인지했지요.”
“그래서 인류를 멸망시켰냐?”
“네. 내가 살던 회차에서, 내 모든 동료도, 대장도 모두 어떤 거물의 손에 죽었어요. 내 곁에 없었어요. 오로지 혼자 남은 나는 미쳤어요.”
카티에가 왼손을 쥐었다 폈다.
끔찍한 빛이 희미하게 일렁인다.
그녀는 수명을 깎아 먹는 기적을 손장난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루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파멸했어요. 위험한 보물을 쓰고서, 수명을 깎아 기적을 폭주시켜가면서까지 말이죠.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였으니까요.”
그녀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대장. 스스로 의문이 들지 않았어요? 회귀를 멈추는 것. 그런다고 세상이 과연 돌아올까요? 불확실한 목표를 위해서 노력할 바엔 스스로 여생을 즐기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카티에가 던진 말은 지금 그녀가 쥐고 있는 단검보다도 날카로웠다.
나도 그녀처럼 스스로의 목표에 회의가 들던 순간이 없진 않았으니까.
나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120회차의 카티에는 여전히 회귀를 막기 위해 나와 움직이고 있다.”
회귀를 멈추는 것.
버림받은 120회차에서, 나와 카티에는 그것을 위해 여행하고 있었다.
“언젠가 너의 그런 생각도, 회차가 지나면서 바뀌게 된다는 의미지.”
그러니, 나는.
믿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귀가 멈추면, 세상은 돌아온다. 일상도 돌아온다. 난 그렇게 믿어.”
지독히도 그리웠으니까.
인류가 회귀해오기 이전.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던 일상이.
“우리의 신념은 서로 상반됐네요.”
카티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 서로 대립할 수밖에요.”
나는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하나 ‘멸망 카티에’의 끔찍한 빛이 내가 휘두르는 검을 느리게 했다.
“기적이냐? 수명을 꽤 썼을 텐데?”
“계획 따위는 포기했어요. 앞으로 얼마나 살든 말든 관계 없다구요.”
마법을 쓸 수 없는 선택의 방이지만, 기적을 쓰는 것은 가능하였다.
‘멸망 카티에’의 몇 올 남지 않은 흰 머리칼이 빠르게 검어진다.
“내가 죽기 직전까지 기적을 써서라도 대장은 이곳에 남아야만 해요.”
‘멸망 카티에’가 위험한 빛을 발산했다.
도대체 무슨 기적을 쓰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 빛은 기괴하였다.
‘절대 기적을 쓰게 둬선 안 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 남겨지면 회귀를 멈추는 것은 고사하고 이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당연히, 기적을 쓰는 그녀를 막으려면 아주 간단한 방법밖에 없다.
나는 발로 괴석의 부스러기를 차서 카티에의 왼손을 부러뜨려버렸다.
“아앗……!”
기적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불릴 만큼 강력하지만, 약점이 존재한다.
‘왼손을 다쳐서 쓸 수 없게 되면, 성녀는 기적을 쓰지 못하게 된다.’
동시에 느려져 있던 나의 손이 본래 속도로 돌아왔다.
“크웃!”
카티에가 눈매를 좁히며 단검을 들었지만, 나는 이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챙!
불멸아귀를 죽이고 난 뒤로 나의 몸은 훨씬 가벼워지고 더욱 강해졌다.
카티에의 단검술은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나에게 비하지는 못했다.
그녀가 손아귀에서 단검을 놓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런……!”
카티에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차디찬 목소리로 응수했다.
“네가 검으로 날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
가까이 다가가 눈을 바라본다.
내가 그녀의 목에다 칼을 겨눴다.
“나를 죽일 건가요?”
이곳에서 죽으면 소멸할 뿐이다.
각 회차에서 복제되었던 인간이니 회귀는 고사하고 존재가 멸해진다.
막상 죽기는 두려웠던 것일까.
‘멸망 카티에’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여줘요.”
그것은 예상 밖의 발언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봤다.
카티에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다만 동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서 날 죽여줘요. 그걸 원해요.”
애처롭게 젖은 눈물이 흐른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는데도.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슬펐다.
“여기서, 대장의 손으로.”
카티에의 얼굴이 젖어 일그러졌다.
회귀의 트라우마로 망쳐진 그녀.
“내 외롭고 미친 삶을 끝내줘요.”
난 대답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꺄악!”
칼의 코등이에 안면을 처맞은 카티에가 코피를 흘리며 기절해 버렸다.
굳이 원하는 짓은 해주지 않겠다.
내가 쓰러진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네 삶을 끝내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야.”
***
외딴 암석지대.
나는 벽에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
설마 인류를 멸망시킨 카티에와 조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설마 머리칼 색깔까지 숨겨가며 날 속이려는 카티에가 있을 줄은.’
과연 카티에는 만만치가 않았다.
피 묻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카티에를 떠올리자 새삼 소름 끼쳤다.
‘그게 진짜로 카티에였다고?’
제아무리 회차마다 별의별 삶을 다 살았다고는 해도 끔찍한 인성이다.
인류를 멸망시킨다니.
회귀자임을 가정하여도 제정신으로는 감히 할 수도 없는 미친 짓이다.
‘하여간 머리칼 색깔도 확신할 수 없어. 어떻게 진짜 카티에를 찾지?’
깊은 고민이 들지만 태평하게 가만히 고뇌만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은 몸을 숨겨야겠어.’
방금 그녀처럼 위험한 발상을 가진 미친 카티에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자칫 기적을 잘못 맞게 되면 나는 평생 ‘선택의 방’에 남아야 하리라.
‘선택의 방’에는 평원을 제하고도 낡고 비루한 흉가가 파다했다.
나는 그중 아무도 없을 법한 흉가를 택해서 남몰래 들어가 숨었다.
‘일단은 생각을 좀 정리해 보자.’
이곳에는 120명의 카티에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올바른 120회차의 카티에를 선택해야만 한다.
잘못된 카티에를 선택해 데려가면 진짜 120회차 카티에는 소멸된다.
‘거기다가 이제는 추가로.’
몇몇 미쳐버린 카티에들도 있다.
만약 그녀들에게 잘못 걸리게 되면 평생 여기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재빠르게 기둥 뒤로 숨었다.
‘이미 집에 누군가 있었던 건가?’
그것은 폭행의 현장이었다.
세 명의 카티에가 한 명의 카티에의 머리채를 붙잡고 때리고 있었다.
“대체 왜……. 잘못했……! 꺄악!”
“다 너 때문이야! 너로 인해 모든 고통이 전부 시작된 거라고!”
“그래, 너만 없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고통받을 일은 없었어!”
“너 혼자만 깨끗하면 그만이야?”
세 명이 질책하며 한 명을 때린다.
난 맞고 있는 카티에를 보자 불쌍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좀 의아했다.
‘뭐 저렇게 호구처럼 맞고 있어?’
카티에가 좀 울보에 정신이 불안정한 면이 있기는 해도 명색이 회귀자다.
명석한 그녀가 답답하게 저항도 못 하고 처맞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카티에가 맞고 있는 꼴을 보니까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군.’
나는 참지 못하고 맞고 있는 카티에를 구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다들 저리 꺼져.”
세 카티에가 놀라서 말했다.
“대장? 하지만 그쪽의 나는…….”
“내 칼솜씨는 잘 알고 있지? 너희 모두 날 나보다 잘 파악할 테니까.”
나는 폭행당한 카티에를 보았다.
눈두덩이가 시퍼런 데다, 코피도 줄줄 흘리는 것이 상처가 무척 심각해 보였다.
카티에가 이렇게 카티에를 잔인하게 패다니, 기분이 심히 괴악하군.
“잔인한 것들. 이렇게 심하게…….”
폭행을 주도한 카티에가 나에게 상관하지 말라는 투로 코웃음 쳤다.
“상관 마요. 어차피 나니까 쌍방폭행도, 일방폭행도 아니라 자해에요.”
“꽤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팍!
나는 칼 귀퉁이로 카티에들의 뒷목을 때려서 마구 기절시켜버렸다.
“세상에 검을 이길 논리는 없지.”
“꺄아악!”
세 카티에가 모두 정신을 잃었다.
예전에 블라이넨이 하던 짓을 따라 해본 건데 그럭저럭 잘 먹히네.
‘하여간.’
나는 맞고 있던 카티에를 살폈다.
얼굴은 멍투성이에 눈 밑에 상처가 찢어져서 아주 오래 갈 듯싶었다.
아무리 정신이 일그러졌어도 자기 자신을 이렇게까지 패버리다니.
“괜찮냐? 제길. 저 망할 자식들, 뭘 이렇게나……. 아, 어차피 쟤네가 너고, 네가 쟤네니까 욕이 되나?”
“당신…… 누구예요?”
“뭐?”
난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카티에가 나를 모른다고? 내가 물었다.
“너, 몇 회차냐?”
“회차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몇 번 회귀했냐고.”
“회귀가 뭔데요?”
계속되는 엉뚱한 되물음.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설마 혹시…….
“너, ‘1회차’냐?”
***
1회차.
나처럼 전혀 회귀하지 못한 상태.
“회귀요? 앞으로 세상에서 그런 재앙이 벌어진다구요? 그리고 당신은 유일하게 회귀 못 하는 인간이고?”
믿기지 않는다는 카티에의 표정을 보자, 난 괜스레 기분이 기묘해졌다.
‘전혀 회귀하지 않은 카티에라니.’
카티에는 많이 다쳤지만, 딱히 울거나 하지 않고 침착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이제껏 만난 카티에들보다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유일하게 반복되는 회귀로 정신이 망가지기 이전의 회차이니까.’
나는 순진무구한 카티에를 보았다.
나와 같은 ‘1회차’.
반복되는 회귀로 고통받기 이전, 순수한 정신을 갖추고 있는 그녀.
‘다른 카티에들과는 이질감이 느껴져. 그래서 폭행을 당했던 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자니까.
어찌 보면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이제껏 오직 나만이 인류에서 현존하는 1회차였으니까.’
그래서 회귀하지 않은 인간을 보자 괜스레 반갑고 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만 있을 시간 따위는 없지.’
나는 잡상을 떨쳐내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왜 나한테 본인 회차를 밝힌 거지? 네가 선택받아야 생존할 수 있잖아? 자신을 120회차라고 속일 수도 있었을 텐데.”
“꼭 그래야만 해요?”
‘1회차 카티에’는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선택받으면 ‘당신과 함께 여행하던 나’는 소멸되고 말겠죠. 여기서 나 하나 살자고 누굴 해하는 거짓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신께서도 용서치 않으시겠죠.”
맙소사.
듣기만 해도 고구마를 잔뜩 먹은 것처럼 속이 무거워지는 발언이다.
저런 청결한 성격이라니, 간단한 거짓말도 하지 않는 그녀가 낯설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참 회귀자스럽지 않다. 살려면, 너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이득이 꼭 그렇게 중요한가요?”
“당연하지.”
그러자 카티에가 가볍게 웃었다.
그녀가 저렇게 맑은 표정을 짓다
“당신은 1회차라고 했는데, 어쩐지 회귀자보다 더 회귀자 같아요.”
윽, 괜히 정곡을 찔린 기분이군.
나는 변명하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회귀자에게 이기려면 그래야 해.”
피비린내 나게 버림받은 세상이다.
1회차라서 호구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긴 생각해 보면 내가 원래 이렇게 호구기피증이었던가.’
세상이 바뀌며, 나도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그런 순진하고 선한 그녀가 도리어 나는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1회차란, 저런 것인데도.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었을 때, 나의 눈앞에 빠르게 문구가 떠올랐다.
[선택을 보류한 지 5시간이 넘게 흘러 ‘선택장애’ 판정을 받습니다.]
[선택의 방이 ‘선택장애’를 가진 당신을 매우 혐오합니다.]
[3시간 이내에 ‘선택’을 하지 않으면 평생 돌아가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