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39화
회귀자들이 세상에 출현하고서부터 항상 궁금하였다.
대체 회귀자들이 그토록 경외하던 ‘전생의 나’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현재, 그 답을 쥐고 있다.
‘역대까지의 전생에서 가장 전성기에 근접했던 나의 힘.’
검만 쥐고 있지만, 그 이상의 힘과 공포가 내 손에 가득 쥐어져 있다.
칼자루를 꽉 쥔다.
지금 내가 쥔 것은 그저 검이 아니라 천재(天災)며, 지변(地變)이고, 재앙(災映)이었다.
‘왜 회귀자들이 그렇게 날 두려워하고, 경외했는지 이젠 알 것 같군.’
딱히 순간가속은 발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몸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세상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찼다.
‘평상시에도 순간가속을 쓴 것처럼 사방이 느리다니. 하긴 이러니까 회귀자도 학살하고 왕까지 해 먹었나.’
이것은 그야말로 신적인 육체였다.
분명히 수많은 회귀자와 싸우고, 이겨나가며 정점을 이룩했을 강함.
‘이번 삶의 나와는 비교도 안 돼.’
과거 나를 잡아먹으려 했던 사냥꾼 덕돌은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이 과거부터 믿은 범철은 하늘을 가르고 벼락도 찢을 수 있다고.
처음엔 터무니없는 미신이라 여겼지만, 지금이라면 조금 믿어보겠다.
‘설마 진짜 가를 수 있었을 줄은.’
거칠고 우글우글한 구름이 내가 휘두른 검에 양편으로 갈라져 있었다.
내 검에 하늘과 땅이 갈라져 파헤쳐졌고, 불멸아귀는 끝에서 베였다.
간신히 치명타를 모면했으나 녀석의 상처에서 검은 피가 터져버렸다.
“네, 네놈…… 갑자기 어떻게?”
어눌하던 전과 달리 놀란 목소리.
방금까지 이성을 잃었던 녀석이 조금 전 내 일격으로 정신을 차렸나보다.
나는 한 발짝, 적을 향해 걸었다.
단순히 걸었을 뿐인데도 바닥이 파스락 대며 금이 가면서 부서진다.
‘진홍색 로브를 착용했을 때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높은 위압감이야.’
전생의 나였다고 모든 회차에서 이만한 강함을 이룩하진 못했을 거다.
45회차, 철가면의 왕.
역대 회차에서 유일하게 왕으로 군림했다던 전성기 힘이기에, 나는 지금처럼 강력한 저력을 얻은 것이다.
“꺼져라-! 크아아앗!”
아홉 개, 아니, 여섯 개의 머리에서 포효가 치솟으며 나에게 돌진한다.
불멸아귀는 아크 리치처럼 화려한 흑마법은 없지만, 기본적 힘이 셌다.
녀석도 그저 바보는 아니기에 그저 단순무식하게 돌진해오지는 않았다.
[불멸아귀가 갑옷화를 시전합니다.]
[비늘철찰갑이 구성됐습니다.]
불멸아귀의 온몸에 있던 비늘이 근육처럼 부풀고 갑옷 형태로 변했다.
어찌나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지 어지간한 요새가 내게 돌격하는 느낌이다.
“후우.”
나는 숨을 잠깐 들이켜고서 앞발로 중심을 잡고 힘차게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검을 따라서 일궈진 무시무시한 풍압이 불멸아귀를 베어냈다.
카가가각!
불멸아귀의 강한 비늘갑에 일격이 닿자 귀를 깎는 파찰음이 일었다.
“크윽!”
불멸아귀의 여섯 머리가 하나 같이 놀란 눈동자를 하며 내게 물러섰다.
일시적이지만 풍압만으로도 하늘을 갈라냈던 나의 검술이다.
제아무리 불멸아귀라고는 하나 지금의 난 무시 받을 수준이 아니다.
‘확실하다.’
비록 일 획이지만 놈은 베여버렸다.
당연하지만, 누구도 평상시의 대륙지배자를 단신으로 이길 수는 없다.
그것은 설령 전생의 나라 할지라도.
그러나 현재 불멸아귀는 확실히 너덜너덜하고 명백한 빈사 상태였다.
머리통 세 개를 잃고, 온몸은 피투성이며, 포효로 체력까지 바닥이다.
허공에 재가 휘날려 재생도 불가!
‘지금, 나와 놈의 저력은 비등해.’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더욱 가했다.
[‘세 검술’을 동시 발동합니다.]
[쥐는 검의 내구력이 최대치가 됩니다.]
[칼날 주위의 미세한 공기마저 미친 듯한 절삭력을 지니게 됩니다.]
[‘회전’의 힘이 부여됩니다.]
카각! 카가각! 카가가각!
검이 울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칼날 주위에 공기가 매섭게 회전하며 모든 것을 찢을 듯이 울어댄다.
그러나 불멸아귀도 내게서 물러나지 않고 미친 듯이 맹공을 가했다.
“크아아앗!”
놈의 두 팔이 여러 개가 되는 것처럼 미친 듯한 연타를 퍼부었다.
그러나 순간가속을 쓴 것처럼 체감 능력이 올라간 내게는 느려 터졌다.
나는 전성기 시절 내가 익힌 모든 검술로 미친 듯이 맹공에 반격한다.
[24연격을 선사합니다.]
[17연격 대형 치명타!]
[철찰갑 하복부가 부서집니다.]
비늘갑옷을 단숨에 부술 수 있던 건 내 검이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최고급 변수를 꿰뚫고 있어서다.
[불멸아귀의 전투패턴은 하복부부터 붕괴시키면 쉽게 무너집니다.]
네 번째 최고급 변수로 인해 난 불멸아귀 약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요리조리 피하며 휘두른 나의 검에 비늘갑옷이 금이 가자, 불멸아귀의 여섯 머리가 크게 노하며 외쳤다.
“‘첫 번째’의 ‘나’가 말한다! ‘그것’을 사용한다! ‘네 번째’의 ‘나’가 말한다. 미쳤군! 그걸 쓰면…… 닥쳐라! 다른 머리들! 지금이 기회다!”
불멸아귀의 첫 번째 머리가 외치자 다른 머리들도 마지못해 수긍했다.
나는 그사이 무수히 불멸아귀를 베려 했으나 놈의 방어는 딱딱했다.
‘제기랄. 생명력이 뭐 저리 질겨?’
동시에 두꺼운 비늘갑옷이 투둑대며 떨어지더니 분해되기 시작했다.
[비늘철찰갑이 해제되었습니다.]
[불멸아귀의 생명력 연속 감소!]
[지배자의 힘이 신속해집니다.]
순간, 불멸아귀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놀라서 시선을 휘저었을 때, 주먹이 내 앞으로 와 있었다.
[‘왕의 결계’가 발동되었습니다.]
[피해가 상당 부분 줄어듭니다.]
[결계가 파괴되었습니다!]
결계가 발동되었음에도 끔찍한 충격에 입에서 피가 울컥 튀어나왔다.
‘망할! 힘만 센 게 아니라 속도까지 올려버리네. 저 미친 자식이!’
전성기의 힘을 끌어온 지금의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이런 나조차 몰아 붙이는 저놈은 얼마나 사기적인가.
생명력을 소모하여 갑옷을 풀어헤친 불멸아귀의 온몸이 검붉어졌다.
“네놈은 나를 머리끝까지 화나게 했다.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불멸아귀는 자신만의 ‘순간가속’을 발동시킨 것처럼 무척 신속해졌다.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전성기 시절인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속도!
나는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천지를 붕괴시켰지만, 불멸아귀의 민첩한 공격에 농락당하듯이 처맞았다.
[‘철의 육체(Lv10)’이 대륙지배자의 공격을 완화시킵니다.]
[‘꺼지지 않는 삶의 잔불’이 죽을 뻔한 위기에서 당신을 구합니다.]
[‘삶의 경계’가 위험한 공격을 예지했으나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전성기 시절 내가 익힌 고레벨 스킬이 아니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처맞으면서도 검을 휘저었지만 불멸아귀는 죄다 피해버렸다.
내가 피를 머금고 이를 악물었다.
‘놈을 잠깐 멈추게 할 수 있다면.’
그럼 이쪽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검을 쥐고, 놈을 향해서 휘두른다.
용암이 튀기고, 허공이 뒤흔들린다.
파멸해가는 천지.
우리가 죽을 듯이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러나 나는 모르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나는 밀리고 있다.
불멸아귀는 갈수록 빨라지고 나는 점차 칼을 휘두르는 것이 느려졌다.
‘우습네. 제기랄.’
자조적인 웃음이 튀어나온다.
싸울수록 나만이 지쳐가고 있다.
설마 내가 칼싸움에서 늘 이겨오던 패턴으로 놈에게 패하게 될 줄이야.
[‘생명의 맹약’이 소모되었습니다. 한계점의 생명력이 유지됩니다.]
[‘잡초의 반항’이 발휘되었습니다. 생존력이 최대한으로 개방됩니다.]
[‘생존저항’이 발동되었습니다. 최악의 위기서 간신히 생존합니다.]
수많은 방어의 권능이 발동했지만, 나의 몸은 상처만 입어버릴 뿐이다.
필사적으로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잡으려 했지만, 전혀 잡히질 않았다.
부상과 멍 자국, 상처, 그리고 온몸이 점차 피범벅이 되어간다.
그리고 절망적인 문구가 떠올랐다.
[모든 방어권능을 소실했습니다.]
[여우구슬이 깨져버립니다!]
쩌저적…… 쨍그랑!
“커헉!”
순간적으로 몸이 뒤로 밀려난다.
난 반사적으로 검을 역수로 바닥에 처박고 떠밀려지는 충격을 견뎠다.
뱃가죽이 찢어져서 피가 떨어졌다.
[커다란 부상을 입었습니다!]
[과다출혈상태입니다.]
[생명력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내게 끝을 보여준다고 했나? 어이가 없군. 내가 네게 끝을 보여주지.”
제기랄, 빌어먹을, 망할!
칼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벅차다.
시선이 희미해질 만큼 힘겨울 때.
‘안 돼.’
모든 걸 포기해야 할까 싶던 찰나.
나의 눈에는 그들이 스쳤다.
기절한 일행들.
‘죽게 하지 않아. 이번 회차에서.’
헤르탄, 퀸소히니베, 그리고 나를 도와준 다른 모든 이들까지 합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카티에.’
불멸아귀를 쓰러뜨리고.
나는 그녀를 구하러 가야만 한다.
“불멸아귀.”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나?”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금 검을 쥐었다.
“내가 네놈을 죽이겠다. 회귀를 멈추기 위해서.”
불멸아귀가 날 저열히 비웃었다.
“그 태도는 좋다! 포기하지 않으니. 과연 어째서 ‘키 작은 자’가 네 놈을 택해 재능을 줬는지 알겠군!”
나와 불멸아귀가 맹렬히 맞부딪쳐 갈 때, 놈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누가 뒤에서 녀석을 잡은 것이다.
내가 이를 악물고 그쪽을 보았다.
“달귀!”
[대륙지배자의 ‘낯’을 빌려 애완수가 포효기절내성을 갖췄습니다.]
[달귀가 자신의 저력을 쏟아부어 불멸아귀를 속박하고 있습니다!]
“끄아아, 끄아아앗!”
달귀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악을 쓰며 불멸아귀를 붙잡고 있었다.
‘힘만 빌려온 줄 알았더니, 권능을 빌린다는 게 그런 의미였나.’
S급 애완수임을 감안해도 대륙지배자를 봉쇄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기야 아크 리치의 낯을 빌렸기에 저만한 행위가 가능했던 것이리라.
“꺼져라-!”
불멸아귀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주먹으로 달귀를 세차게 내려쳤다.
“꾸억!”
달귀는 곧장 나가떨어져 의식을 잃어버렸지만, 충분히 제 몫을 하였다.
지금 나에게 불멸아귀를 쓰러뜨릴 틈을 완벽하게 주었으니까.
내가 큰 동작으로 검을 늘어뜨리자, 불멸아귀가 회피자세를 취했다.
“어림없다! 빌어먹을 1회차여!”
달귀를 덕에 틈이 벌려져 느리긴 해도, 불멸아귀 회피속도는 민첩하고 끔찍해서 공격을 맞출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나의 검은 직선으로도, 사선으로도 베이지 않을 것이다.
공간왜곡!
‘밤새워 연습을 해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아서, 쓰지 못한 기술이지만.’
아크 리치 때는 절반은 행운으로 명중했지만, 솔직히 부정확하였다.
아무리 연습해도 공간왜곡은 도저히 능숙하게 다룰 수가 없어서, 그동안 전혀 쓰지를 못했던 기술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감각은 초월적으로 예민하고 검의 궤도까지 읽는다.
‘알 수 있어. 나의 검이 어디로 뻗어서, 어디로 날아가 꽂히게 될지.’
잠시나마, 검의 극에 달한 현재.
공간왜곡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
불멸아귀의 표정에 경악이 깃든다.
“너, 너……!”
“누가 마법은 못 쓴다고 했냐?”
전생의 전성기의 힘을 갖춘 지금도 난 모든 재능을 활용할 수 있었다.
비장의 순간을 위해 아껴둔 비기.
내 팔에 마나원천 괴력술이 깃든다.
마지막 최고급 변수!
[불멸아귀는 머리는 아홉 개지만, 급소인 심장은 오직 하나입니다.]
꿈틀대는 괴력을 품고 뛰어들었다.
“뒤통수는 피해주마. 너무 많으니.”
나의 검은 신속한 회피에도 불구하고 불멸아귀의 심장을 꿰뚫어냈다.
콰지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