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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38화 (138/200)

나만 1회차 138화

상황이 그저 조용한 건 아니었다.

천지는 여전히 불타고 있었으니까.

나무는 불타고, 대지가 조금씩 갈라지고, 불꽃이 타닥이며 번져간다.

“…….”

그러나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불멸아귀가 ‘기적’으로 소멸되자 모두 현실감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누군가 세찬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하나둘씩.

각자의 표정에 환희가 들어찬다.

처음 시작된 함성을 따라 외친다.

“와아아아아아!”

“불멸아귀를 쓰러뜨렸다!”

“우리가 마침내 승리한 거다!”

도깨비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감싸 안고 기뻐하였다.

미별은 펄쩍펄쩍 뛰는 백야를 품에 안고는 한숨 쉬며 미소 지었다.

“여우구슬은 안 부서지고 끝나서 다행이네. 휴.”

모두가 승전을 기뻐하고 있을 때.

난 그 분위기에 동조하지 못했다.

1회차부터 120회차까지, 저 한편에 모인 각 회차의 카티에를 보았다.

다들 한계까지 기적을 써서인지 한 움큼을 빼면 거의 머리칼이 검었다.

[정해진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120명의 카티에 로넬야드가 ‘선택의 방’으로 이전됩니다.]

[오직 전생의 돌 소유자만이 선택의 방에 입장할 권한이 생깁니다.]

[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그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20명의 카티에가, 몸체가 흐릿해지며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중 한 카티에가 날 돌아봤다.

“대장. 이젠…….”

“기다려.”

‘내가 아는 카티에’를 바라보았다.

여러 카티에가 있었지만, 나는 정확히 120회차의 카티에를 알아봤다.

분명하고, 확신을 담아서 말하였다.

“내가 너를 찾아갈 테니까.”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나의 카티에’가 어렴풋이 웃었다.

“기다릴게요. 이번에는 내가.”

그리고 카티에가 모두 사라졌다.

퀸소히니베가 놀라서 물었다.

“성녀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이야?”

“괜찮아.”

나는 사라진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뼈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구할 방법은 있으니까.”

헤르탄도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범철?”

“예.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나는 애완수들에게 다가갔다.

애완수들은 놀란 눈으로 날 봤다.

“캬앙?”

“나는 그래도 머리만 두개골이 됐는데, 아버지는 다 뼈만 남았네요?”

“입조심 해라. 말에도 뼈가 있다.”

“윽!”

달귀의 머리에 꿀밤을 가볍게 한 대 때리고 나는 초화에게 다가갔다.

초화가 나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아빠. 아프지 않아?”

“내가 안 무섭냐? 해골이 됐는데.”

“……아니. 아플까 봐 걱정만 돼.”

나는 초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애완수의 눈물을 살며시 닦아준다.

[초화와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현재 주인에 대한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부푼 꽃봉오리가 개화합니다.]

‘예상보다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연히 시기가 딱 들어맞았군.’

초화의 부푼 꽃봉오리에서 세 송이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주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놀란 눈빛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의 몸에 변화가 일었다.

[뼈살이꽃이 피어납니다.]

[주인에게 효과가 적용됩니다.]

새하얀 뼈살이꽃이 만개하자, 나의 갈라지고 떨어진 뼈들이 붙었다.

[살살이꽃이 피어납니다.]

[주인에게 효과가 적용됩니다.]

살살이꽃이 피자 나의 앙상한 뼈에 살결이 차며 피부가 재생되었다.

동시에 뜨거운 공기가 닿는 감촉과 숨을 쉬기 힘든 기색이 느껴졌다.

[피오를꽃이 피어납니다.]

[주인에게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빨간 피오를 꽃이 피자 내 몸에 혈색이 돌았다.

세 송이 꽃이 만개하고 지는 동안 나는 완벽히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어째서 해골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로브를 한계까지 썼겠는가.

‘상급조련의 효과로 꽃봉오리의 정보를 미리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지배자와 결전을 앞둔 시점에 초화와 놀아준 것도 호감도를 높여서 꽃을 일찍 개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빠. 이젠 안 아파?”

“그래. 더 이상 아프지 않아.”

나는 초화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맙다. 초화야.”

“……응.”

초화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되찾아 다행입니다, 범철. 다만 느긋할 시간은 없는 것 같군요.”

헤르탄의 말에 나는 끄덕였다.

천지의 분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퀸소히니베가 걱정하며 말했다.

“아빠는 아직 숨이 붙어계시니 곧 있으면 깨어날 수 있으실 것이야.”

그건 다행이었다.

불난리 속에서 저렇게 커다란 백룡을 우리가 데려갈 수 있을 리 없다.

내가 점차 불길이 타오르는 천지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

“탈출할 길은 있는 거냐?”

비환이 고개를 꽤 크게 끄덕였다.

“걱정 마라! 이미 탈출로는 확보해 뒀다! 우리 불도깨비들이 앞서 길을 파헤칠 테니까 뒤따라만 오면……!”

모두가 이곳에서 탈출하려 할 때.

순간 천지가 뒤흔들렸다.

쿠응……!

“뭐, 뭐야?”

“갑자기 충격음이?”

다들 큰 충격에 넘어지고 말았다.

분화활동이 시작된 천지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진동이 울렸다.

그러나 이번엔 대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 충격을 받았다.

소름 끼치는 기분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쿠우웅……!

방금보다 더 큰 충격음이 울린다.

불멸아귀는 사라졌다.

그러나 누구도 불멸아귀가 사망해 능력치나 보상을 얻지는 못하였다.

아무도 그런 문구를 보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쿠우우웅……!

불멸아귀는,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다음 충격음이 울렸을 때, 허공의 보이지 않는 벽이 찢어졌다.

쿠우우웅! 쩌저저적!

분명하다.

허공에서 ‘균열’이 벌어졌다.

커다랗고 검고 상처 입은 손이 저곳의 ‘틈’을 조금씩 벌리고 있었다.

쩌저저적……!

“뭐야!”

“저게 무슨 일인가! 갑자기……!”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무엇인가 깨지는 듯한 파열음이 터졌다.

쨍그랑!

“크아아아악!”

‘균열’에서 거친 포효가 터져 나왔다.

익숙하고 낯익은 음색.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쳐 오른다.

내가 이를 갈면서 검을 쥐었다.

“모두 피해!”

그러나 기습은 너무나 재빨랐다.

‘균열’에서 튀어나온 검은 주먹이 도깨비 떼를 노려 정확히 가격했다.

그리고 주먹이 노린 건 도깨비뿐만이 아니라, 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큭!”

나는 누군가에게 붙잡혀 거칠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눈을 뜨자 헤르탄이 보였다.

“무사하십니까. 범철?”

헤르탄이 내 어깨를 쥐고 말했다.

제기랄, 피하라고 말한 건 나였는데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아버렸군.

일순간, 주먹에 처맞고 목숨을 잃거나 정신을 잃은 도깨비가 수백.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허공이 찢어지면서 주먹이 날아왔다!”

근육이 터질 듯이 팽창한 양손이 ‘균열’을 찢으며 열어젖히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막아라! 넘어오게 둬서는 안 돼!”

모든 도깨비가 화염과 요술을 쏟아서 ‘균열’을 비집은 손을 공격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균열’을 최대한 열어젖힌 불멸아귀가 이쪽 세상으로 넘어와 버렸다.

녀석이 미치광이처럼 소리쳐댔다.

“저곳…… 저곳은 너무 끔찍해! 내가 무엇을 보았단 말인가! 이 빌어먹을 자식들! 찢어서 죽여 버린다!”

불멸아귀가 넘어오자마자 찢어졌던 ‘균열’이 빠르게 메워진다.

순간 불멸아귀의 뒤편에 보이는 외딴 세상을 보고선 나는 경악했다.

저 끔찍한 곳이 흰 손아귀에 끌려가면 도착하는 ‘다른 세상’인가?

그러나 잠깐 보인 다른 세상의 풍경은, 균열이 닫히며 금방 사라졌다.

“날, 날 감히 이 꼴로 만들어-!”

끔찍한 외딴 세상에 이끌려갔던 불멸아귀는 완전히 피투성이였다.

아홉 개의 머리 중 무려 세 개가 잘려버렸고, 무참하게 잘린 목이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커다란 상처와 핏물로 범벅돼 있었다.

‘하기야 그런 세상에 갔었으니.’

나는 혀가 바싹 타는 걸 느꼈다.

그나마 불멸아귀였기에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죄다 갈기갈기 찢어 버려주마-!”

불멸아귀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피를 흩뿌리고 살결이 까지면서 불멸아귀는 천지의 모든 것을 주먹으로 부수고, 발로 휩쓸기 시작했다.

“크어어억!”

“내, 내 몸이!”

불멸아귀에게 짓밟혀 도깨비 떼가 수없이 목숨을 잃기 시작하였다.

가만히 입술을 씹는다.

……어쩔 수 없군.

“다들 도망쳐! 싸우지 마라!”

“으아아아악!”

천지의 호수가 들끓고 있고 숲에 번진 불길은 이제 재워질 틈이 없다.

120명이 모인 카티에의 기적은 불멸아귀에게 대적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륙지배자는 돌아왔다.

저렇게 폭주하는 불멸아귀에게 맞서려고 했다간 전멸밖에 답이 없다.

‘불멸아귀는 나중에 와서도 잡을 수 있어. 다만 지금 전멸하면 끝이야.’

평소에 비하면 빈사에 가까운 상태라고는 할지라도, 백룡이 기절한 지금, 우리에게 놈을 쓰러뜨릴 화력은 없었다.

“한 놈도, 놓치지 않는다-!”

불멸아귀가 숨을 한가득 삼키며 충격파를 일으키는 포효를 내뿜었다.

[빈사 상태의 불멸아귀가 남아 있는 체력을 태우며 크게 포효합니다!]

[불멸아귀의 생명력이 대폭 하락하며 목젖을 커다랗게 부풀립니다.]

[천지의 생물체가 혼이 담긴 포효에 기력을 빼앗기며 기절합니다.]

[포효를 맞은 대상은 의지에 따라 기절의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꺄아앗……!”

도깨비, 애완수들, 그리고 퀸소히니베까지 차례로 의식 잃고 쓰러졌다.

나도 순간 고막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의식이 희미해지던 찰나.

“이걸 받아. 시간이 없어서 한 명한테밖에 못 주겠어.”

순간 나의 손에 무언가 쥐어졌다.

그것은 바로 여우구슬이었다.

미별은 지친 기색을 보이며 나에게 정기가 흘러넘치는 구슬을 맡겼다.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당혹스러웠다.

어째서 나에게만 구슬을?

그러나 되물을 틈조차 없이 미별은 포효에 기력이 빨려 기절해버렸다.

[미별에게 여우구슬을 넘겨받았습니다.]

[인간이 한계까지 감당할 수 있는 여우구슬의 개수는 1개 입니다.]

[상당한 기력을 보충하게 되어, 기절의 위기로부터 벗어납니다.]

[여우구슬이 당신을 위기에서 지킬 때마다 내구력이 감소합니다.]

힘을 주는 여우구슬은 당장에라도 깨질 것처럼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이것마저 나의 손에서 깨져버리면 나는 생존할 수가 없게 된다.

‘제대로 위기인데. 제기랄.’

살갖이 타들어 가고, 천지는 불타고 있으며, 폭주하는 지배자가 날뛴다.

누가 보아도 나에게 승산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난 멀리 있는 불멸아귀를 보았다.

‘망할.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리고 그때 그 순간.

-나아가라. 멍청한 놈아.

“어?”

내가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다.

그러자 속삭임은 한 번 더 들렸다.

-포기할 거냐? 회귀를 멈춰야 네가 바라는 세상도 돌아오지 않겠냐.

순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언젠가 들어보았던 것처럼 익숙했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내가 이계가 아닌, ‘원래 세상’에서 듣던 것인데?

“할아버지?”

그리고 곧 눈이 따가워졌다.

화아악!

전생의 돌이 빛나며 떠오른다.

그 빛을 정면에서 본 순간부터.

내가 뭘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불멸아귀.”

나는 대륙지배자에게로 걸어갔다.

“도망치지 않겠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되었으니까.

내가 다시금 불멸아귀를 바라봤다.

녀석이 나를 향해서 포효하였다.

“네놈!”

“내가 끝을 보자고 했었지?”

전생의 돌이 허공에서 날아든다.

그리고 그게 나의 가슴에 박혔다.

푹!

그러나, 전혀 아프지 않았다.

두근대는 심장의 박동이 벅차진다.

[전생의 돌이 몸속에 박힙니다.]

[각성기회를 소모하였습니다.]

[모든 회차를 통틀어 전성기 시절의 이범철의 힘이 몸에 깃듭니다.]

[45회차, 철가면의 왕으로 군림하던 이범철의 힘을 불러옵니다.]

[전성기의 권능을 습득합니다.]

[10레벨 마스터 스킬을 획득합니다. ‘검의 대제’, ‘마검술사’, ‘철의 육체’, ‘혈’, ‘불세출의 검’…….]

[9레벨 스킬을 획득합니다. ‘왕의 결계’, ‘삶의 경계’, ‘생명의 맹약’…….]

유일하게 회귀자를 다스렸던 왕!

모든 회귀자가 두려워하던 전성기 시절의 힘이 완전히 내게 깃들었다.

그저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빈사의 불멸아귀 못지않은 위압이 깃든다.

“네놈, 그 힘은……!”

“이제, 끝을 볼 시간이야.”

대답해 줄 가치가 없었다.

붙잡은 검을 세차게 휘두른다.

천지의 불길이 칼날에 따라 꺼지고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찢겨버렸다.

휘이이이익!

나의 검이, 하늘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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