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37화
나는 빛나는 전생의 돌을 보았다.
‘이것을 쓸 ‘대상’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대상’에게 특전을 쓰기 위해선 우선 일행과 접선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전생의 돌로부터 떠오른 문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정 조건을 완료하고 전생관련 특전을 쓰면 추가보상을 얻습니다.]
[깊은 ‘인연의 힘’을 충족해 특전을 사용할 여력을 비축하십시오.]
[힘을 충족하면 위기 시, 전생의 돌이 각성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인연의 힘’을 비축하려면 연이 깊은 세 회귀자에게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각 행동은…….]
‘전생의 돌이 각성할 기회?’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히 모르겠지만, 일단은 얻어두는 것이 좋으리라.
불멸아귀는 심상치 않게 빛나는 전생의 돌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 돌, 불길하군. 마치 너처럼.”
당연히 상대해 줄 여유 따윈 없다.
진홍색 로브가 찢겼기에 나는 멀리 비행하거나 흑마법도 쓰지 못했다.
‘일행한테 접근하려면 불멸아귀의 시야로부터 최대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뼈가 박살 나 쓰러진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무리가 크다.
불멸아귀가 근육으로 한껏 이완된 팔을 내려치기 위해서 높이 들었다.
“계속 거슬리는군. 으깨져 버려라.”
주먹이 내 코앞까지 내려온 순간.
‘순간가속!’
[순간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요정장화가 가속 강화합니다.]
[속도 +95%! 지속시간 +3초!]
[6초간 공격력 500% 증가!]
아주 잠깐, 사방이 느리게 보였다.
그 틈에 나는 재빠르게 일어나서 불멸아귀의 시야로부터 벗어났다.
제한된 6초의 시간 동안, 나는 미친 듯이 모든 힘을 쏟아서 달렸다.
‘순간가속은 비장의 수단이지만.’
사용 이후 탈진에 가까운 후유증이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장거리 도주로는 그리 적합한 스킬이 아니었다.
하나 순간가속의 시간이 끝나고도.
나는 전혀 지치지 않고 쉼 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해골이라 탈진상태가 전혀 없군.’
언데드의 장점!
살아 움직이는 시체이기에 체력 소모라는 유산소 활동의 단점이 없다.
해골상태일 때는 인간일 때보다 몸이 가벼워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자식!”
불멸아귀의 분노에 찬 고성을 내지르며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편 나는 놈이 찾기 어렵게 일부러 활활 불타는 숲으로 뛰어들었다.
‘화산재가 튀고, 연기도 짙고, 불꽃이 뒤범벅이라 날 찾기 어렵겠지.’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대륙지배자의 난폭한 폭주가 계속 된다면 난 언젠가 덜미를 잡힌다.
뼈는 계속 떨어지고 의식은 흐리다.
‘일행이 있는 곳은 세 번째 거목.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고 있겠지.’
지금 불멸아귀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일행을 만나야 한다.
건틀릿에서 희푸른 빛이 퍼졌다.
곧바로 소환된 10인의 유령기사단!
「주인! 몰골이 왜 해골인가?」
「우리처럼 유령의 길이 아닌 언데드의 길을 택했나? 실망이 크다!」
“닥치고! 9명은 불멸아귀의 시선을 끌고, 1명은 내 일행을 찾아봐라!”
설령 불타는 숲속이라도 유령은 뭐든지 통과하며 빠르게 이동한다.
나의 명령에 10인의 유령기사단이 빠르게 흩어지며 사라졌다.
숲에는 불이 점차 번졌고, 모든 나무와 가지가 화산재에 덮여갔다.
[온갖 뼈가 가열되고 있습니다.]
[해골이기에 화산재로부터 호흡곤란의 페널티를 입지 않습니다.]
[복사뼈가 갈라졌습니다.]
타오르는 불꽃에 얼마 없는 뼈에도 점차 부담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저편에서 기마병 유령이 유령마를 끌고서는 나에게 다가왔다.
「저쪽에서 불도깨비를 보았다! 주인 일행인가, 아니면 몬스터인가?」
“일행이다. 안내해라.”
나는 불도깨비들과 접선하였다.
산이 뒤흔들리는 분화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활동 가능한 종족!
“해골! 천지에서 사는 마물인가!”
“진정해. 나라고. 범철이다.”
“허! 어쩌다가 그런 꼴이 됐는가!”
나는 서둘러 그들을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회귀자 셋은 보이지 않았다.
“카티에, 헤르탄, 블라이넨. 그 세 사람을 만나야 해. 다들 어디 있지?”
“갑자기 고암산이 분화해버려서, 거목을 쓰러뜨린 이후 헤어졌다!”
비환이 주위 곳곳을 가리켰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 탈출로를 확보하고 있다! 불멸아귀를 쓰러뜨려도 도망칠 길은 있어야 하지 않나?”
제기랄!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 가까이 있는 미별에게 다가갔다.
“업어줘!”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순간, 나는 미별의 공격을 검으로 쳐냈다.
그제야 미별이 나의 검술을 알아보고는 놀란 눈을 해보였다.
“어머. 범철. 너, 언제 해골 됐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회귀자 셋을 찾아야 한다고!”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용왕의 간이나 나한테 제대로 줘.”
구미호 미별은 나를 업고서 쏜살같이 천지를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블라이넨은 불타는 가지를 검으로 파헤치며 길을 개척해 가고 있었다.
“이 누님, 엄청 강해!”
달귀가 그녀의 검술에 감탄하였는지 그녀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내려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야!”
그리고 검이 나의 앞에 쇄도했다.
챙!
내가 기겁해 황급히 그녀의 검을 받아쳤다.
“너였나. 마물인 줄 알았군.”
블라이넨이 그제야 검을 거뒀다.
“무슨 볼일이지?”
미별에게서 내리고 서둘러 블라이넨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자신을 가장 많이 죽인 회귀자와 악수를 나눴습니다.]
[인연의 힘이 일부 충족됐습니다.]
“갑자기 웬 악수지?”
“그런 게 있어. 지금 당장 모두가 모여야 해. 네가 그 역할을 맡아라.”
블라이넨은 나를 빤히 보다가 순순히 나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렇게 하지.”
난 서둘러 미별에게 다시 업혔다.
“자, 다음으로!”
“흥. 너는 나를 수레로 보는구나?”
미별은 툴툴대면서도 다음 회귀자를 찾아서 재빠르게 이동하였다.
헤르탄은 분화 속에서 침착히 불도깨비들을 지휘하며 길을 만들었다.
그의 어깨에는 초화가 앉아 있었는데,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다.
“……사방이 불이야!”
불을 두려워하는 초화는 불타는 숲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헤르탄이 날 보더니 놀랐다.
“범철. 그 꼴은 뭡니까?”
“됐고. 우리 서로 포옹이나 하죠!”
[자신을 가장 오래 섬겨온 회귀자와 포옹하였습니다.]
[인연의 힘이 일부 충족됐습니다.]
내가 갑작스레 그를 껴안자, 헤르탄이 눈살을 깊게 찌푸렸다.
“범철. 해골의 상태에서는…….”
“그런 건 아닙니다! 하여간 블라이넨한테 가요! 모두 모여야 합니다!”
헤르탄은 군말 없이 고갤 끄덕였다.
난 다시 미별에게 올라탔고, 그녀는 달리다 천지의 중턱에서 멈췄다.
카티에는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대장! 결국 그 꼴이 된 거예요?”
“캬앙!”
백야도 그녀를 따라 함께 있었다.
그런데 헤르탄도 그렇고, 카티에도 그렇고 해골 상태인데 어떻게 나인지 한눈에 알아챌 수 있는 거야?
하여간 나는 땅에 내려서서 다급히 그녀를 곧바로 껴안았다.
카티에의 희고 검은 머리칼 사이에서 한 올을 떼어 이빨로 씹는다.
“대장? 미쳤어요?”
그러자 곧바로 문구가 떠올랐다.
[자신을 가장 많이 살린 회귀자의 머리칼을 씹었습니다.]
[인연의 힘이 완전히 충족되었습니다.]
[전생관련특전이 사용 가능하며 전생의 돌 각성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생관련특전 사용 가능!
바로 내가 원하던 문구였다.
힘겹게 조건을 충족하고, 우리는 일행이 밀집된 장소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모든 일행이 모여 있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가 못했다.
“불멸아귀가 오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쓰러진 백룡의 목을 쓸면서 저편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불멸아귀는 우리 근처로 다가왔다.
불타는 숲을 휩쓸면서 녀석은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천지를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다니! 몰상식한 것들이!”
불멸아귀는 나를 향한 악의를 사방의 불꽃보다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세 번째’의 ‘나’가 말한다. 네놈의 왼쪽 다리는 내가 씹겠다! ‘다섯 번째’의 ‘나’가 말한다. 네놈의 머리통은 내가 직접 터뜨려 없애겠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직접 불멸아귀에 맞서 섰다.
“불멸아귀.”
“네놈!”
불멸아귀가 곧장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나는 전생의 돌을 들었다.
‘내가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
불멸아귀의 머리가 비웃는 표정을 짓다가 점차 하나둘씩 굳어버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는지 놈의 표정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 빛……! 네놈, 설마! 안 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생의 돌이 내게 확실하게 가르쳐줬다.
내 손에 있던 빛이 내가 원하던 ‘대상’을 향하여 곧바로 나아갔다.
카티에가 자기 가슴에 꽂힌 빛을 양손으로 감싸 쥐고는 말하였다.
“나는 대장을 믿겠어요.”
[전생관련특전 대상이 ‘성녀, 카티에 로넬야드’로 설정되었습니다.]
[1~119회차 간 현재 나이의 모든 카티에 로넬야드를 복제합니다.]
[시공간의 문이 열립니다.]
허공에 특이하게 생겨난 문이 끼익, 열리더니 소녀들이 나타났다.
모두 같은 외모이지만 복장, 머리칼, 분위기가 각자 천차만별이었다.
이곳에 각 회차의, 그러니까 정확히 119명의 카티에가 소환되었다.
“저, 전부 똑같이 생겼다!”
“참 놀랍다! 전부 쌍둥이들인가! 태몽을 꾸느라 엄청 힘들었겠다!”
도깨비들이 경악하고 있었고, 나도 별반 다른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저게…… 다 전생의 카티에인가?’
흉터가 짙은 카티에도 있었고, 손가락이 몇 개 없거나, 웬 정원 가위를 손아귀에 든 카티에도 있었다.
1회차부터 120회차까지.
각기 다른 시간대의 그녀들이 하나의 적에 맞서기 위해 모여들었다.
불멸아귀가 거칠게 포효하였다.
“성녀가 이렇게 많이…… 그런다고 내가 물러설 줄 아느냐!”
반면에 120명의 카티에가 각자 침착하게 일제히 한쪽 손을 들었다.
하나둘씩, 끔찍한 빛이 여리기 시작하며 수백의 빛이 천지를 메웠다.
[최상위 기적을 발휘했습니다!]
[흰 손아귀가 적을 끌어갑니다.]
[적이 너무 강하고, 생명력이 넘쳐서 움직임만 잠시 봉쇄됩니다.]
빈사 상태의 적을 정체 모를 어딘가로 끌고 가버리는 기적, 흰 손아귀.
수천 개의 손아귀가 내려온다.
아크 리치조차 카티에가 사용한 흰 손아귀에 꼼짝 못 하고 봉쇄당했다.
‘지금의 불멸아귀는 잔 부상은 있어도 빈사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쓰이는 카티에의 기적은 ‘1회’가 아니었다.
[최상위 기적을 발휘했습니다!]
[흰 손아귀가 적을 끌어갑니다.]
[적을 봉쇄하는 흰 손아귀가 많아질수록 적은 무력해집니다.]
수없이 수명을 깎아 이루는 기적!
모든 전생의 카티에가 머리칼이 검게 변색 되도록 최상위 기적을 썼다.
‘전부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인가.’
한 번도 저항하기 어려운 성녀의 최상위 기적이 수천 번이나 쓰였다.
마침내 대륙지배자의 아홉 얼굴에도 일제히 공포가 어리고 말았다.
“아, 안 돼……! 읍…… 으읍!”
불멸아귀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맹렬히 저항하는 대륙지배자를 수십만의 흰 손아귀가 마구 뒤덮었다.
그리고 흰 손아귀에 뒤덮인 불멸아귀가 무엇인가 직감했는지 떨었다.
“사, 살려……! 끌려가기 싫……!”
아홉 개의 머리를 흰 손아귀들이 비틀며 저항할 수 없게 비틀었다.
끔찍한 광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크…… 커어……!”
땅끝에 굵은 손가락 자국을 파내며 불멸아귀가 격렬히 저항했으나, 수십만의 흰 손아귀를 이겨내진 못했다.
“크아아…… 악……!”
거부할 수 없는 기적에 대륙지배자가 어딘지 모를 빛에 끌려가 버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센 불멸아귀가 완전히 빛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지배자가 사라져버린 천지.
놀랍도록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