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36화
과연 불멸아귀의 힘이란 강력했다.
해골로 변한 난 놈의 발길질에 한방감도 되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그러나 불멸아귀의 어느 머리도 전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건 가짜군. 진짜는 어디 있나?”
당연한 소리였다.
지금 부서진 것은 ‘나’였지만, 결코 내가 아니었으니까.
저벅저벅.
불멸아귀가 자신을 아홉이라 하듯.
뼈로 이뤄진 나의 형상 아홉 명이 불멸아귀의 정면에 모여들었다.
불멸아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은 짓을 해대는군.”
아홉 명의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아홉이잖아. 그런데 나 혼자서 싸우는 건 불공평하지 않냐?”
어떻게 내가 여럿일 수 있을까.
진홍색 로브의 아이템 설명을 다시 살펴보자면 이런 옵션이 있었다.
『진홍색 로브』
죽음의 지배자, 아크 리치가 애용하던 진홍색 로브. 최상급 마나원단으로 짜여 있으며 찢기지 않는다.
+마나회복속도 75% 상승.
+마나 전체량 80% 증가.
+강대한 투기 발산.
+고유마법, ‘뼈 분신’ 사용 가능.
+모든 마법의 파괴력이 3단계씩 오르며, 흑마법은 추가 보너스 적립.
+장시간 착용하면 해골로 변함.
고유마법, 뼈 분신!
뼈로 이뤄진 내 분신을 소환한다.
평소에는 해골화가 두려워 쓰지 않았지만, 지금만은 물러설 수가 없다.
‘진홍색 로브에 붙어 있는 옵션이지만, 실제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군.’
방금 불멸아귀에게 한 명이 박살 났으니, 나를 포함해 아홉 명 남았다.
‘뼈 분신은 재사용대기시간이 길어 여기서 더 숫자를 늘릴 수 없다.’
지금 이뤄진 뼈 분신만을 데리고 불멸아귀를 상대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몸을 살폈다.
[지고한 해골로 변모했습니다.]
[체력, 마나가 크게 오릅니다.]
[모든 마법의 속성이 어둠으로 뒤바뀌며, 흑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진홍색 로브로 강화 가능한 마법의 경지는 최대 9서클까지입니다.]
‘가벼워.’
해골상태가 되자 몸이 가벼웠다.
또한, 모든 뼈에서 평소보다 훨씬 어둡고 깊은 마력이 넘치고 있었다.
‘언데드가 되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해골은 느낌이 또 다르군.’
비록 언데드가 되었지만, 온몸에서 끓어오르는 힘!
‘당연히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언데드라 당연히 신성력에 취약하고, 여러 가지 제약도 존재한다.
특히나 맛을 보지 못하고 통증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가 않은 기분.
‘역시 해골로서의 삶은 별로겠어.’
하여간 지금은 앞으로의 인생계획보다 불멸아귀에게 집중해야 한다.
‘이놈을 여기, 최대한 붙잡아둔다.’
날 뺀 다른 일행은 마지막 과업을 위해 세 번째 거목을 부수러 갔다.
그들이 세 번째 거목을 부숴야지만, 비로소 전생관련특전을 획득하고 불멸아귀를 쓰러뜨릴 수 있다.
‘과업을 완료하려면 절대 불멸아귀가 일행을 쫓아가게 둬서는 안 돼.’
뼈 손아귀의 마력을 끌어모은다.
갑주의 불꽃이 맹렬히 빛난다.
[타오르는 지배자의 갑주가 해골에게 공명해 효율이 올라갑니다.]
[검은 불꽃이 거세졌습니다.]
[공격력,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온몸에 흐르는 기운이 강력하다.
분신을 포함한 9명의 내가 불멸아귀를 향해서 동시에 마법을 썼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어둡고 탁한 마력이 불멸아귀를 향해 쏟아졌다.
[‘항거하는 검은 창’을 씁니다.]
[분신들이 본체를 따라 합니다.]
[뼈 분신은 본체보다 마력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충성심이 매우 높습니다.]
아크 리치가 사용하던 흑마법!
검게 내뻗은 창이 불멸아귀의 여러 머리에 적중하며 창날이 내리꽂혔다.
새까만 연기가 휩싸이며 불멸아귀의 비늘에 계속 공격이 들어갔다.
그러나 불멸아귀가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근육을 이완하자 꽂혔다 생각되던 창날들이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여럿이면 뭐가 다를 줄 아는가.”
불멸아귀가 강한 무력으로 팔을 휘두를 때마다 천지가 뒤흔들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콰아아앙……!
풍압과 힘으로 소나무가 꺾이고 땅이 지진이 나듯이 크게 흔들렸다.
지축을 흔들어버리는 강대한 무력!
난 기막힌 표정으로 놈을 보았다.
‘무슨 평타 한 번 치면서 충격이 대규모 폭발마법처럼 요란해?’
아크 리치는 그래도 마법을 시전할 때 대책이라도 짤 수 있었지만, 저 놈은 그런 과정도 없이 무자비하다.
‘망할.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연속해서 흑마법을 시전했지만, 불멸아귀는 포악하게 분신을 멸했다.
뼈 분신은 크게 저항했지만, 지배자의 힘에 무력하게 파괴될 뿐이었다.
대신 뼈 분신은 부서질 때마다 몹시 특수한 뼈다귀를 흘렸다.
내가 그 뼈다귀로 가까이 가자 내 육체에 착 붙으며 힘이 솟구쳤다.
[이범철의 3번 뼈 분신이 폭발하는 마력의 눈물뼈를 남겼습니다.]
[본체의 능력치가 향상됩니다.]
[뼈 폭발 주문을 각인했습니다.]
‘분신이 사망하면 내게 힘이 된다.’
당연하지만 분신을 합해도 난 불멸아귀에게서 긴 시간을 끌 수 없다.
백룡만큼 막대한 생존력이나 끈질긴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사용할 것은 뻔하다.
‘최고급 변수.’
회귀자 살해 재능을 이용해 파악한 불멸아귀를 죽이기 위한 변수들.
지금 내가 회귀한 저놈보다 유일하게 훨씬 앞서갈 수 있는 정보.
“모든 분신, 지정된 곳에 모여라!”
내가 소리치자, 뼈 분신이 일제히 천지의 중턱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멸아귀는 내가 하는 짓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한 곳에 모이면 오히려 우리를 퇴치하기가 편리할 테니까.
“멍청한 짓 하는군. 그게 회귀를 못 하는 네 녀석의 저열한 한계겠지.”
“글쎄. 과연 그럴까.”
갑자기 궁금하다.
해골도 웃으면 표정에서 드러날까?
나는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불멸아귀를 향해서 씩 비웃어 보였다.
“천재지변에 주의하라고.”
세 번째, 최고급 변수.
불멸아귀의 평타가 폭발마법 수준이라면, 난 천재지변을 불러오겠다.
해당 지점에 서 있는 뼈 분신들에게 나는 마력을 넣어서 폭발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바닥 지대가 붕괴되며 먼지 같은 화산재가 분출했다.
[정상의 심부를 건드렸습니다.]
[휴화산의 시기가 끝났습니다.]
[고암산의 분화가 시작됩니다.]
[천지가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금역의 화산폭발!
맹렬한 재앙이 벌어진다.
귀가 남아 있었다면 귀청이 끊어져 버렸을지도 모를 만큼의 굉음이다.
“이 개자식이…… 크허어억!”
불멸아귀를 집어삼킨 거대한 폭발의 충격에 나는 밀려서 부서졌다.
“크윽!”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갈비뼈가 깨지고, 두개골에 금이 가버릴 만큼 폭발의 충격이 컸다.
눈부신 폭발에 내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 떨어지며 마구 갈라져 댔다.
[강한 폭발피해를 입었습니다!]
[59%의 뼈다귀를 잃었습니다.]
[현재 두개골에 실금이 가 있습니다. 차츰 틈이 벌어질 것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크게 감소합니다.]
폭발의 충격으로 몸이 만신창이!
자세를 낮추고 나무를 붙잡는다.
‘내 예상보다 너무 폭발이 큰데?’
솔직히 좀 당황스럽다.
불멸아귀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이기 위해선 이만한 일격이 필요했지만.
‘이거, 다른 일행은 무사하려나?’
연이은 폭발에 천지가 흔들리며 붕괴되고 번뜩이는 빛이 강렬해졌다.
사방에 열기가 들어차고 숲엔 용암이 흘러들어 대형화재가 벌어졌다.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일고 있었다.
‘폭발이 멈출 기세가 없어. 아니, 오히려 방금보다 크게 터지겠는데.’
나는 자욱한 화산재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열기가 끔찍한지 아지랑이가 피어나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제아무리 언데드라도 개죽음이다.’
그렇게 판단한 난 몸을 일으켰다.
어찌나 지축이 흔들리는지 중심을 잡기도 어려워 자꾸 비틀대었다.
‘몸이 절반 넘게 날아갔군. 그나마 해골이 아니면 버티지도 못했겠다.’
다행히도 갑주가 보호해 주지 않았다면, 몸이 완전히 부서졌을 것이다.
‘우선 폭발지대에서 좀 떨어지자.’
잠시 후 마력을 써서 로브의 힘으로 부유한 뒤에야 한숨을 쉬었다.
‘해골이라 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분화활동이란 게 장난은 아니군.’
분신들의 폭발로 시작되어, 화산재와 함께 용암이 꿀렁이며 튀었다.
확실하다.
고암산의 분화가 시작되어 불멸아귀는 용암에 집어 삼켜져 버렸다.
심지어 나도 폭발지대에서 미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이만한 피해였다.
‘가까이 있었으면 아예 모든 뼈가 녹아버렸을 거야.’
[뼈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3%의 뼈를 추가 손실합니다.]
[서둘러 시체에서 뼈를 주워서 수복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릅니다.]
당연히 언데드라고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활공하면서 분신들이 폭발하며 떨어뜨린 뼈다귀를 주워 몸에 끼웠다.
[여덟 분신의 뼈(위턱뼈, 엉치뼈, 위팔뼈, 기절골, 지절골, 정강뼈, 쐐기뼈, 중족골)를 맞췄습니다.]
[끼워 맞춘 뼈가 여덟 개의 상급 흑마법을 제공하고 능력치를 올려줍니다.]
[끼워 맞춘 뼈가 적응되려면 제법 시간이 소요되어야 할 것입니다.]
[뼈의 갈라짐이 멈추었습니다.]
“후우……!”
나는 그제야 안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화산재가 거두어졌을 때.
나는 헛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하하…….”
그래, 이럴 줄 알았지.
나는 턱뼈를 악물었다.
화산재가 거둬지며 놈이 드러난다.
불멸아귀는 태연하게 살아 있었다.
“어리석은 것아. 이쯤은 가벼웠다.”
그 강렬한 대폭발에 휩쓸어지고.
화산재에 삼켜졌는데도 불구하고.
아홉 개의 머리 중 그 어느 것도 꺾이지 않고서, 녀석은 태연하였다.
온몸에 용암이 덕지덕지 묻어 있으나 아파하기는커녕 툭툭 털어낸다.
상처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마저도 그다지 깊지는 않았다.
‘저런 놈을 대체 어떻게 죽이라고.’
최고급 변수로 기습했는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살아 있을 수가 있다니.
새삼 왜 회귀자들이 회차목표를 앞두고 초반에 자살했는지 이해 갔다.
내가 어이가 없어서 씨근덕거렸다.
“제기랄. 용암까지 처맞아놓고 그렇게 당당하게 일어서기가 있냐.”
“‘아홉’의 ‘나’가 말한다. 네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 그러나.”
“그러나?”
“인정한다. 너는 충분히 강했다.”
동시에 불멸아귀의 주먹이 화살처럼 나의 몸에 쇄도하여 꽂혀버렸다.
“커억!”
순간적으로 방어마법과 결계까지 펼쳐 피해를 분산했는데도 깨졌다.
잠깐이지만, 의식이 희미해진다.
[타오르는 지배자의 갑주로 보호돼 뼈다귀 24%가 파괴됐습니다.]
[두개골 절반에 금이 갔습니다.]
[의식이 위태롭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이젠 너덜너덜해져 버린 내 육체.
불멸아귀는 느긋한 손놀림으로 나에게서 로브를 벗겨내었다.
“우선은, 그 로브부터 제대로 찢어 내야 네가 귀찮은 짓을 못 하겠지.”
진홍색 로브는 명색이 대륙지배자에게서 얻은 전리품이었다.
겉만 보자면 평범한 붉은 천이겠지만, 질기고 강한 내구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불멸아귀의 손가락에 나의 진홍색 로브는 산산이 찢겨버렸다.
쫘아악!
‘빌어먹을……!’
나는 입술을 씹으려다 문득 해골이라서 입술조차 없단 것을 깨달았다.
텅 빈 동공에 절망이 스친다.
진홍색 로브가 갈기갈기 내 찢겼다.
온몸의 뼈가 부서져 있다.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 실수했군.”
불멸아귀의 열여덟 눈이 날 본다.
“그게 무슨 소리지.”
희미한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다.
“지금에서 갈렸어. 로브를 찢는 게 아니라, 나부터 찢었어야지.”
쩌어어억……!
굉음이 들려온다.
세 번째 거목이 쓰러진 소리였다.
[세 번째 거목이 파괴됐습니다.]
[대륙지배자가 더 격노합니다!]
[베어 쓰러뜨린 거대수목(3/3)]
[마지막 과업을 완료했습니다!]
화산재와 용암이 들끓는 천지.
나는 돌멩이를 손에 쥐었다.
전생의 돌이 천지를 환히 밝힌다.
[전생관련특전을 획득합니다.]
[현재 세상은 120회차입니다.]
[대상을 선택해 이전 모든 회차의 각 인물을 복제해 소환합니다.]
[선택 가능한 대상은 현재 주위에 살아 있는 회귀자로 한정됩니다.]
“이제 끝을 보자. 불멸아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