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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35화 (135/200)

나만 1회차 135화

순식간이었다.

달귀의 ‘낯’은 바뀌어 있었다.

이목구비가 없는 안면이 녹아들고 뼈가 드러나 텅 빈 동공이 올랐다.

두개골을 갖춘 달귀가 텅 빈 동공을 신기해하며 손가락을 넣었다.

[빌려온 ‘낯’에 비하여 현재 애완수의 역량이 지나치게 낮습니다.]

[해당 대상의 능력치의 극히 일부의 일부만을 가져옵니다.]

[리치의 특성으로 인해 애완수에게 비상함, 영악함이 생겨납니다.]

[달귀가 아크 리치의 권능 중 극히 일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형성된 ‘낯’은 반나절 간 유지됩니다.]

달귀가 나에게 턱뼈를 달칵였다.

녀석이 뱉은 첫 마디는 이러했다.

“와, 죽인다! 머리가 뼈가 됐어!”

“캬앙?”

“……너, 무서워.”

백야는 뒤바뀐 달귀의 모습을 신기해했고, 초화는 아주 꺼림칙해했다.

그러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달귀가 똑 부러지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무서워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 생김새는 관련 없잖아?”

내가 황당해서 달귀를 보았다.

“너, 원래 그렇게 말이 유창했냐?”

“지금 그런 대화를 나눌 때는 아니잖아요, 아버지? 저걸 죽여야죠!”

달귀가 저 멀리서 날뛰고 있는 거목을 가리켰다.

하기야 그건 그렇지.

달귀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새로운 낯을 얻었더니 힘이 넘쳐! 당장에라도 날뛰고 싶을 만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아귀와 싸우는 백룡 쪽을 힐끗 곁눈질하고는 내가 빠르게 말했다.

“일단 네가 얻은 힘을 보여 봐라. 시간이 없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으랏차!”

달귀가 땅에 묻힌 바위를 들더니 주먹을 휘둘러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러곤 상당히 자랑스러워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죽이죠?”

“대단하긴 한데, 그게 끝이냐?”

“이게 다인데요?”

내가 황당해서 되물었다.

“너, 리치의 권능을 쓸 수 있잖아? 흑마법을 부리지는 못하는 거냐?”

달귀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나는 힘만 빌려오는데요!”

“…….”

힘 능력치만 빌려올 거라면 왜 마법사인 리치의 낯을 택한 거야?

‘하긴 그래도 아크 리치 능력치가 마력에 포화되어 있긴 하지만, 명색이 대륙지배자니까 약하진 않겠지.’

다음엔 전투에 관해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겠다고 느끼며 내가 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일단 너도 가서 거목과의 싸움에 참전해.”

“우아앗! 힘 싸움이다!”

달귀가 신나서 거목으로 달려갔고, 초화는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쟤는 성격 되게 특이해.”

“너도 개성이라면 만만치 않은데.”

“……아빠 닮아서 그런가 봐.”

어째 얘가 갈수록 말솜씨가 느네.

하여간 우리 모두는 광포하게 날뛰는 끔찍한 거목을 함께 상대하였다.

“이쪽이야! 나한테 덤비라고!”

“사, 라, 져, 라!”

달귀는 겁도 없이 앞에서 소리치다가 거대수목의 뿌리에 맞아버렸다.

“아프네! 그래도 일어날 수 있어!”

온몸이 아스러졌을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달귀는 바로 다시 일어났다.

정말 비이상적으로 강력한 맷집!

어찌나 힘이 센지 달귀는 혼자서도 거목의 기다란 뿌리를 뽑아버렸다.

‘괜히 S급 애완수가 아니로군.’

최대한 빨리 진행했지만, 거대수목을 죽이는 데 시간이 제법 소요됐다.

“모두 물러서십시오!”

콰아아앙!

헤르탄이 폭화초를 터뜨리자 큰 폭발력에 거목의 가지들이 부서졌다.

“콰아아악!”

퀸소히니베가 맹렬한 벼락을 토해 내자, 마침내 거목에도 불이 붙었다.

연속되는 공격에 흔들리는 기둥!

“크어어엇!”

그러나 광포한 거목도 절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요동의 거목이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적에게 공격당해 시들어버린 가지 마흔아홉 개를 떨어뜨립니다.]

[거목의 움직임이 굉장히 빨라지고 생존이 훨씬 질겨집니다.]

“너, 희, 전, 부, 죽, 인, 다!”

칼날 같은 잎사귀가 바람을 타고 우리의 살결을 베었고, 뿌리를 이용해서 대지에 거센 지진을 일으킨다.

“이, 잎사귀가 무슨 비수 같다!”

“억! 내 뺨이 베였다! 살려줘라!”

강력한 대형마물의 공격에 도깨비들 사이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다.

그나마 카티에의 빠른 치유가 아니었다면 사망자가 배는 나왔을 거다.

“이제는 더욱 신속해지고, 조금 다 치더라도 금방 낫게 될 거예요.”

그녀는 빠르게 축복을 걸면서 수천의 도깨비를 단숨에 강화시켰다.

“가자, 백야야!”

“캬아앙!”

미별과 백야는 축지법을 펼치며 거대수목의 뿌리를 마구 부러뜨렸다.

지진으로 대지가 요동쳐도 둘의 움직임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편 초화는 퀸소히니베 어깨로 뛰어서 자리를 옮겼다.

“……먹게 해줘.”

“초화라면 내 기력을 얼마든지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것이야.”

흡수해도 차고 넘치는 용의 기력!

[초화가 한계치의 150%가 넘는 기력을 과도하게 흡수했습니다.]

[전투력이 폭주하나 기력과 부하에 걸려 소화불량상태가 되었습니다.]

“우으…… 끅.”

초화가 볼록 튀어나온 배로 미식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벌을 소환했다.

평소의 통통한 꿀벌과 달리 사납고 아주 커다란 말벌 떼가 튀어나왔다.

위이잉!

말벌의 침에 쏘일 때마다 거목의 부위가 썩어들어 가며 파여 버렸다.

거대수목이 각종 공격에 괴로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크어어엇!”

마침내 내가 나서 마력을 쏟았다.

냉기의 숨결이 7서클 눈보라로 강화되어 거목을 덮쳐버렸다.

결국 거대수목은 꿈틀대다가 혼자서 시들고 말라 비틀어져버려 사망!

[학살의 거목이 쓰러졌습니다.]

[천지 붕괴확률이 늘어납니다.]

[고암산 분화가 앞당겨집니다.]

[대륙지배자가 더 분노합니다!]

[베어 쓰러뜨린 거대수목(2/3)]

마침내 두 번째 거목도 파괴 성공!

이제 남은 것은 천지 오른쪽 구역에 있는 마지막 세 번째 거목이다.

그러나 황급히 움직이려는 우리 발목이 잡혀버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크어어억!”

끔찍한 울음이 울려 퍼진다.

군데군데 비늘이 벗겨지고 깊이 상처를 입은 백룡이 쓰러져버렸다.

퀸소히니베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빠!”

어찌나 크게 다쳤는지 그 생명력이 강대한 용이 기절해 있을 지경이다.

불멸아귀가 그런 백룡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크게 분노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내가 못 보는 새에 거목을 부러뜨려?”

분노한 아홉 머리의 거인, 불멸아귀가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대기에 재가 휘날려 불멸아귀는 평소의 막대한 재생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멸아귀는 잔상만 있을 뿐 깊은 상처는 전혀 없다.

‘설마 백룡을 상대로도 저렇게까지 피해 없이 압도할 수가 있다니.’

아직 마지막 과업을 완료하지 않아서 ‘전생관련특전’은 얻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지금 바로 마지막 거대수목을 베어 넘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제기랄.’

나는 입술을 씹었다.

마지막 거목으로 향하는 길을 불멸아귀가 철저히 봉쇄해 막고 있다.

저 녀석을 넘어야만 마지막 거대수목을 베러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녀석이 꺼려하는 변수를 알고 있다. 그걸 최대한 활용해야 해.’

나는 회귀자 살해 재능으로 불멸아귀를 세차게 노려보았다.

“‘아홉’의 ‘나’가 함께 말한다! 너희를 당장 다 쓰러뜨려 죽이라고!”

불멸아귀의 아홉 포효에 천지가 흔들리고 모두가 귀를 막아야만 했다.

멍하니 있다가 귀를 막지 못한 자들의 귀에선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진짜 미쳐버린 무력이네.’

청색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용, 백룡마저 순수 힘만으로 꺾어버렸다.

황색대륙 지배자 아크 리치의 마력보다도 무시무시하고 괴악한 힘.

‘아크 리치와 달리 군세가 없는 이유를 알겠군. 혼자서도 막강하니까.’

지금에야 비로소 확신했다.

불멸아귀는 단일개체로 보자면 아크 리치보다 훨씬 강하고 위험하다.

저런 존재에게 이겨야 한다니.

당연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불멸아귀.”

그래, ‘지금 상황’에서는 불멸아귀에게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놈의 시선을 돌려버리고 마지막 거목을 베는 것.

정면승부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다.

“너의 몸에 대한 지배권은 아홉 머리 중 누가 가지고 있는 거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날 죽이겠다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정 죽는다면 아홉 머리 중에서 가장 높은 녀석에게 죽고 싶은데.”

불멸아귀의 각 아홉 머리가 비웃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고전적인 수법이군. ‘아홉’의 ‘나’가 서로 싸우기를 유도하는 건가? 과연 머저리나 할법한 발상이군. 절대 그럴 일은 벌어질 수가 없다.”

“네가 그만한 바보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알아. 그래서 묻겠다. 너희가 서로 동등한 위치면 몸의 지배권은 누구에게 있는 거지? 알고 싶군.”

“하, 그딴 질문 따위 대답할 의무가…….”

불멸아귀의 한 머리가 말하다가 불쑥 갑자기 다른 머리가 끼어들었다.

“‘세 번째’의 ‘나’가 말한다. 그건 당연히 나다. ‘네 번째’의 ‘나’가 어이없어한다. 내가 가장 높지. ‘일곱 번째’의 ‘나’가 비웃는다. 내가 권력이 세다! ‘첫 번째’의 ‘나’가 짜증 낸다. 왜 싸우는 거냐, 머저리들아!”

아홉 머리가 각자 말싸움하며 맹렬히 다투기 시작하였다.

내가 괜히 질문한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 최고급 변수!

[아홉 머리는 각각의 인격이 있습니다. 지배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게 하면 시선이 분산될 것입니다.]

‘뻔하더라도 가장 꺼리는 질문이라면 아홉 개의 머리가 다툴 수밖에.’

아홉 머리가 싸우는 동안, 당연히 시선은 분산되고 주의는 흐려진다.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다.’

내 신호를 정확히 알아들은 거인도깨비 두령이 비행의 요술을 펼쳤다.

그러자 도깨비들도 따라서 비행의 요술을 펼치며 세 번째 거목을 향해서 바람처럼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헤르탄이 나에게 속삭였다.

“범철. 괜찮겠습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요, 헤르탄. 당신이 아는 내가 쉽게 죽을 놈입니까?”

“알겠습니다. 부디 죽지 마십시오.”

날 뺀 다른 이들도 비행하는 도깨비에 타고 세 번째 거목에 향했다.

그사이 혼자 다투던 불멸아귀가 기겁하며 날아가는 그들을 보았다.

“‘첫 번째’의 ‘나’가 소리친다. 멍청이들아! 저기를 봐라!”

뒤늦게 불멸아귀가 이를 갈며 움직이려 했지만, 놈은 그러지 못하였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불멸아귀를 걷어차고 때려 공격했다.

나의 곁에 남은 도깨비들이 투명화 요술을 쓰고 방어해 준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보이지 않는다 해도, 불멸아귀에겐 상대가 안 된다.

“보이지 않으면 나한테서 당연히 무사할 거라고 착각을 하는 거냐!”

불멸아귀가 큰 팔을 움직이려 했다.

하나 순간 놈의 움직임이 멈칫한다.

“이, 이……!”

투명화를 이룬 도깨비들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나는 충분히 정신을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나의 마력이, 놈을 붙잡고 있었다.

‘잠깐. 그저 아주 잠깐이면 된다.’

나의 눈에 실핏줄이 선다.

내가 아주 힘겹게 웃어 보였다.

“가기는 어디를 가냐?”

“네, 네놈……!”

재능을 태우며 로브의 힘을 쓴다.

잠깐이지만, 불멸아귀가 꼼짝 못 할 만한 마력이 나의 손에서 뿜어졌다.

‘제기랄. 뭐 저렇게 힘이 강해?’

오래 붙잡아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진홍색 로브의 모든 성능을 지금 바로 이 순간 뿌리까지 뽑아 쓴다.’

나는 이가 뽑힐 것처럼 악물며 모든 정신을 놈을 봉쇄하는데 쏟았다.

그러자 정신없이 경고 문구가 나의 눈앞에 스치듯이 마구 떠올랐다.

[지나친 마력을 쓰고 있습니다.]

[해골화가 신속히 진행됩니다.]

[언데드의 기운이 폭주합니다.]

[이대로 폭주가 계속되면 남은 삶을 평생 해골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의 모든 살점은 말라버린다.

지나치게 몸이 가벼워지고, 손목과 발목, 그리고 온몸의 뼈가 드러난다.

온몸에서 언데드의 기운이 퍼진다.

완전한 해골화!

“으, 으허허헉!”

“제,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막대한 투기에 도깨비들의 투명화 요술이 풀리고 다리를 후들거렸다.

“모두 세 번째 거목을 베는 것을 도우러 가라. 여긴 내가 맡겠다.”

“그, 그래도 되겠나, 인간!”

“물론.”

내가 차디찬 투기를 내뿜으며 대륙지배자를 향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반면 ‘정지’가 풀린 불멸아귀도 놀라는 눈초리로 변한 나를 바라봤다.

“네놈…… 그 모습은……!”

생물의 경계까지 완전히 초월한 내가 낮고 음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정한 승부는 지금부터…….”

“닥쳐라. 새끼야.”

나의 몸이 짓밟혀 으깨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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