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32화
항마의 각등으로 대군을 추방했다.
당연히 SSS급 마법재능과 진홍색 로브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진홍색 로브는 마나의 총량과 회복속도를 폭발적으로 늘려주니까.’
카티에가 놀라선 곧장 속삭였다.
“대장. 그 로브가 강력한 건 알지만,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예요?”
“뭐, 나도 아주 생각이 없진 않아.”
나는 진홍색 로브를 벗었다.
이번엔 허벅지가 줄어든 느낌이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버리자, 두 교주는 각기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제기랄!”
화비는 백 명의 분신들과 진을 이뤄 검을 휘두르며 퇴로를 만들었다.
반면에 이랑은 인간으로 돌아왔다.
“과연 스승님이세요. 멍하니 있으면 나도 모르게 뒤통수를 맞네요.”
“넌 도망칠 시도도 안 하냐? 여기에 너 곱게 안 죽일 놈들 많은데.”
원한이 짙은 도깨비들은 이랑을 보면서 아주 이를 갈고 있었다.
거인도깨비 두령이 호통을 쳤다.
“저 인간을 산산이 찢어 죽여라!”
당연하지만 고암산에서 사망하면 회귀할 수 없다.
그러나 이랑은 당돌하게도 몰려드는 도깨비 떼를 향해 뭔가 꺼냈다.
“이걸 벌써 쓰게 될 줄은 몰랐군요. 전부 모으느라 120회차 동안의 내 전생지식을 모두 써야 했는데.”
[회귀계의 거물, 이랑이 고유의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인간 가죽을 사용해 잠시 고대 청색대륙의 ‘위인’을 부활시킵니다.]
[‘장엄한 신선’, ‘불굴의 도사’, ‘역전의 파계승’, ‘괴력의 씨름꾼’, ‘신속정확 궁수’, ‘혼돈의 백정’.]
이랑이 흩뿌린 여섯 개의 가죽에서 여섯 명의 인간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위인의 가죽이라고?’
품속에 항상 인간 가죽을 들고 다니면서 그걸 실체화할 수도 있나?
그리고 달려든 도깨비 떼가 바람처럼 날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크어억!”
“뭔가 저놈들은!”
“수는 우리가 많은데 엄청 세다!”
‘위인’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지 6명의 인간들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신선’은 산사태를 일으켜 도깨비들의 습격을 무너뜨렸고, ‘백정’은 도깨비들을 산 채로 찌르며 돌격했다.
‘씨름꾼’, ‘파계승’, ‘궁수’는 수많은 도깨비를 죽였고 ‘도사’는 위인들에게 축복을 불어넣고 상처를 치유했다.
‘강력하고 조합이 잘 짜여 있어.’
개개인이 저마다 수백의 몫을 하는 데다 조합이 훌륭해 상대가 어렵다.
카티에가 도깨비들을 치유하며 외쳤다.
“이랑을 죽여야 해요! 그래야 모든 위인이 가죽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나 이랑은 여섯 명의 위인들 가운데서 보호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녀는 도깨비들의 공격을 방비하면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헤르탄이 그물함정 씨앗을 던지며 소리쳤다.
“가죽의 부활 시간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이랑은 산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간을 끄는 겁니다.”
“안 그래도 요즘 너무 피곤한데, 꿀 같은 단잠을 저게 방해를 하네.”
잠에서 막 깨어난 미별이 짜증 내며 위인들을 돌풍처럼 공격했다.
그러나 위인들은 상처는 입어도 냉정히 대처해 쉽게 죽지가 않았다.
나는 흘깃 백룡을 보았다.
그는 소음이 시끄러운 산속에서도 세상모르고 편히 잠들어 있었다.
동면 중인 백룡을 깨운다면 당연히 이랑 따위는 단숨에 휩쓸 수 있다.
‘아니. 백룡은 불멸아귀와의 결전을 위해서 지금 깨우면 안 돼.’
동면하는 백룡을 깨우면 24시간 활동하고 다시 긴 잠에 빠져버린다.
그러니 백룡 없이 놈을 잡아야 한다.
나는 도깨비들의 습격을 방어하며 이랑이 움직이는 구간을 살펴봤다.
‘설마 저 두 놈?’
순간 소름 끼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렸다.
“퀸소히니베! 날 좀 태워줘!”
“알겠다는 것이야. 그런데 왜?”
“설명은 나중에! 하늘 높이 가라.”
퀸소히니베가 나의 허리를 꽉 안고서 하늘 높이까지 날아올랐다.
고암산 주위, 사방으로 흩어져가는 화비의 분신들이 내 눈에 띄었다.
‘교주들을 이대로 놓쳐버리면 다음에 내게 반드시 복수하러 올 거다.’
심지어는 불멸아귀를 싸운 직후를 노려서 나를 습격할지도 모를 일!
하늘에서 예리한 눈초리로 각지로 도망치는 화비의 분신들을 훑었다.
‘찾기 힘들게 멀리 골고루 흩어졌군. 본체는 어디에 있는 거지?’
빠르게 훑다가 중간 부근쯤에서 어느 화비를 볼 때 정보가 떠올랐다.
《화비》
설명: 일생신교 철파의 교주. 과거 범철의 제자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고급감정(Lv3)을 사용해 대상에 대하여 조금 더 정보를 입수합니다.
+스승을 매우 존중한다. 범철의 ‘수제자’로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오이와 생굴을 몹시 좋아하며, 명검에 관한 전생지식이 특화되어 있다.
SSS급 회귀자 살해재능!
용궁서 경험했듯 분신에겐 절대 회귀자 살해재능이 발동되지 않는다.
회귀자 살해재능이 발동되는 것은 오로지 적이 본체였을 때뿐!
“저놈이 바로 본체야!”
“과연 내 노예는 유능한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곧장 내가 가리킨 화비를 향해서 방향을 틀어 내려갔다.
그녀가 나를 놓자마자 나는 떨어지며 화비를 향해 검을 내려찍었다.
챙!
“큭!”
곧장 공격을 흘려낸 화비의 본체는 충격에 튕겨 맞고 바닥을 굴렀다.
‘그 짧은 새에 방어를 하다니.’
과연 용궁에서 보았던 분신보다는 본체가 훨씬 강하고 만만치 않다.
한편 도깨비들의 협공을 받던 이랑도 위인 하나를 잃고서 접근하였다.
힘이 부쳤는지 그녀가 악을 썼다.
“네가 싫지만 도망칠 때까진 협력해야겠어! 우선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 그건 내가 해야 할 소리다!”
이것이 내가 염려하던 상황이었다.
‘두 거물이 살아남기 위해서 임시적인 협력관계가 될 줄이야.’
지금껏 거물 하나만 척살하는데도 죽을 뻔했는데 둘을 상대해야 한다.
나는 곧장 아군에게 소리쳤다.
“분신들과 위인들은 도깨비들이 처리해라! 저 두 놈은 내가 맡는다!”
“그러면 내 노예가 위험해지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눈썹을 세우며 바로 반대했지만,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어차피 저 두 놈은 나만 노려.”
“눈치도 참 좋으십니다. 스승님.”
화비가 날카로운 검을 곧게 휘둘러 세우며 나에게 서슴없이 걸어왔다.
외팔의 이랑도 피를 흘리며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삼자지간 대련은 처음인걸요?”
난 조개에 소금을 뿌리고, 용왕의 국검을 뽑으며 놈들에게 걸어갔다.
항마의 각등을 쓰느라 마나를 소진했기 때문에, 마법은 쓸 수 없었다.
“자. 제자들아. 검을 겨뤄보자고.”
“그 말을 기다렸어요. 스승님.”
“기필코 당신을 찢고 말겠습니다.”
각자 한 마디씩 쏟은 뒤.
복잡한 인연의 우린 검을 맞댔다.
챙!
이랑은 외팔인데도 검을 쓰는 솜씨가 담백하고 힘이 꽤 실려 있었다.
나는 턱 끝까지 치미는 칼끝을 곧바로 받아쳐 내고 한 걸음 나아갔다.
‘전생에서도 외팔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건가? 저것마저 노련하다니.’
반면에 화비는 강력하고 감정적이나 결코 실수는 내보이지 않았다.
흥분에 취했다면 실수가 보이게 마련인데, 녀석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릎을 노려온 검을 튕겨내었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과 목숨 걸린 승부라니! 이렇게 짜릿할 수가!”
화비가 숨을 토해 칼을 휘저었다.
이랑도 온몸에 잔상처가 마구 긁혀지며 뺨이 붉게 물들었다.
“동감이에요! 즐거워요! 검을 맞대고 싶었어요! 스승님과 이렇게나!”
세 자루의 검이 격을 나누었다.
튕겨내고, 받아치고, 몰아치고.
최소한 이 순간만큼, 우리 셋은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즐거워하는군. 이놈들. 진심으로.’
아주 순간이지만.
이들이 제자였단 것이 실감 났다.
어쩌면, 이들은 그저 이렇게 나와 검을 맞대는 것이 소망 아니었을까.
‘완전히 변태가 따로 없군.’
수 없는 회귀자를 보아서 익숙하다.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제자라고 봐주지는 않아. 이번 삶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니까.’
이전에도 말했지만.
전생으로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전 부인 하나면 충분히 족하였다.
두 제자와 나는 검을 맞부딪힌다.
“왜……?”
“어째서……!”
두 제자가 이를 악문다.
그러나 나의 검은 현란해졌다.
두 제자의 검도 맞춰 신속해졌다.
그러나.
아주 조금씩.
종유석의 물방울에 바위가 깎여내리듯, 굉장히 느릿한 속도였지만.
나의 검이 두 교주의 검을 앞섰다.
칼날에 피가 적신다.
허벅지를 깊게 베인 화비가 숨을 토하며 이를 악물었다.
“전생보다 검술 실력은 퇴보했는데, 내가 분신으로 직접 확인했는데!”
칼날에 살이 스친다.
옆구리를 찔린 이랑이 살짝 비틀대다가 자세를 잡으며 악을 썼다.
“망할! 왜 우리가 밀리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두 제자의 검을 쉴 새 없이 받아치고 압도하며 말했다.
“그동안 난 놀기만 한 줄 아냐?”
두 회귀자에게 당혹감이 깃든다.
내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줬다.
“나도 피눈물 나게 노력했어. ‘누구’를 보고 꽤 자극받았거든.”
이래서 세상이 참 더러운 거다.
재능 있는 놈이 노력까지 하니까.
그리고, 난 세상에서 가장 더럽게 누리는 놈이 될 것이다.
화비가 검을 떨면서 물었다.
“도대체 그동안 또 얼마나 노력을 했기……?”
화비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뒤에서 튀어나온 ‘누구’께서 냉혹한 검으로 그의 팔을 잘라버렸으니까.
“끄아악!”
화비가 피를 쏟으며 비명을 질렀다.
대형종파를 대신하여 선택한 검사.
적일 때는 까다롭지만, 아군일 때만큼은 그녀만큼 든든한 자가 없다.
블라이넨은 감흥 없이, 말없이, 그리고 자비 없이 화비를 몰아붙였다.
“제기랄! 그만둬! 오지 말라고!”
그가 뒷걸음질 치며 한쪽 팔로 검을 휘저었지만, 균형은 뒤틀렸다.
내가 블라이넨의 칼질에 합세했고, 이랑도 화비의 곁에 붙어 저항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검의 호흡은 나와 블라이넨 쪽이 훨씬 능숙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 그랬어? 우린 고백에, 잠자리도 나눈 사이라.”
내가 검을 올려쳤다.
챙!
결국은 화비가 가장 먼저 탈진하여 손아귀에서 검을 놓쳐버렸다.
“하, 하지 마십쇼! 여, 여기서 죽으면 회귀도 못 하고 진짜 죽음……!”
나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저었다.
“사제와의 연은 여기까지다.”
푹!
나의 검이 화비의 가슴을 찢었다.
[회귀계의 거물, 철파 교주 화비를 완전히 처치했습니다!]
[철파 교주를 직접 죽였습니다.]
[그의 검을 불로 뭉근히 녹여버리면 신화등급 칭호를 얻게 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8씩 오릅니다.]
[거듭된 애완수 살해, 종파의 교주 살해로 악명이 극심합니다.]
[또다시 악행을 저지르면 앞으로 여정에 여러 페널티를 받습니다.]
화비가 죽자, 이랑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더니 단념하고는 칼을 놨다.
“됐으니 죽이시죠. 스승님 검에 맞아 죽는 것도 이상적인 죽음이니.”
“됐다.”
그러나 나는 검을 거두었다.
그러자 이랑이 눈물을 글썽였다.
“……스승님. 저를 살려주시는 건가요? 전생의 인연을 잊지 않고?”
“내가 언제 살려준다고 했냐?”
“예, 예?”
나는 블라이넨에게 턱짓하였다.
“야. 쟤는 네가 죽여.”
“그러지.”
그러자 이랑이 비명을 내질렀다.
“저를 죽이시면 능력치도 오를 거예요! 그런데 보상마저 포기하고 그냥 저를 두시겠다고요? 죽더라도 제발 스승님 검에 죽게 해주세요!”
“안 돼. 교주 두 놈 다 죽이면 악명이 너무 높아서 페널티 생겨.”
“꺄아아아악!”
[회귀계의 거물, 범파 교주 이랑을 완전히 처치했습니다!]
[범파 교주 살해를 도왔습니다.]
[민첩이 5 오릅니다.]
두 교주를 살해했다.
블라이넨이 두 시체를 내려다봤다.
“끝났군.”
“아니야.”
“무슨 소리지?”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지.”
숨을 몰아쉬며 뺨의 피를 닦는다.
두 교주가 죽자 위인도 분신도 모두 사라져서 소멸되어버렸다.
두 시체로부터 눈을 떼며 난 고암산의 아득한 정상을 올려다보았다.
“다음은 청색대륙 지배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