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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31화 (131/200)

나만 1회차 131화

다음 날 아침.

우린 각자 기다란 밥상에서 백룡이 내놓은 찬을 먹으며 식사 중이었다.

“아가씨가 내 딸 애인이오?”

“예. 회귀자이기도 하고요.”

“오래 가시오. 헤어지지 말고.”

“확답은 못 드려요. 거짓된 약속을 했다가 죽은 적이 너무 많거든요.”

“그러든가. 사실 내 딸도 실수로 태어났어.”

“…….”

어쩐지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퀸소히니베를 뒤로 하고, 나는 현재 우리가 가진 목표를 설명했다.

“저희는 불멸아귀를 죽이려고 합니다. 백룡께서도 부디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턱을 괴고 저 앳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왜 항상 치장할 때마다 인간 소년의 모습을 하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왜긴? 어려 보이고 싶어서야. 고귀한 용이라도 세월에 장사 없거든. 알겠나? 이래 봬도 늙었다는 거지.”

백룡의 언변은 깔끔하고 우직했다.

“오래 산 것은 곧 강하다는 증표. 특히나 용의 경우에는 더하지. 그런데 이 세월에 다져져 강력한 용을, 자네는 너무 쉽게 얻으려 하는군.”

어찌 보면 날카로운 지적이다.

내가 침착히 물었다.

“연세가 몇이십니까?”

“4천 살쯤 먹었던가. 아마도 가장…….”

내가 턱짓했다.

“블라이넨. 올해로 몇 살이지?”

“5,672살. 웬 약물 때문에 수명이 뒤죽박죽으로 변했던 삶도 있어서.”

“…….”

백룡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싱긋 웃으며 의표를 찔렀다.

“회귀자 앞에서 나이 자랑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아도 가당찮습니다.”

“지금 내게 충고하는 건가. 미물.”

“부디 새겨들으셔야 할 겁니다. 현존하는 인류에서 그나마 가장 인간다운 놈이 해드리는 충고니까.”

우리의 대화에 도깨비들은 밥을 씹다가 체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논리가 막힐 때 내가 상대방을 논파하는 방식은 간단하고 통쾌하지.”

“뭡니까?”

“영원히 잠재워주는 것.”

그 한 마디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앳된 소년은 턱을 만지작거린다.

“그냥 여기서 다 죽여 버릴까.”

도깨비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대륙에서 손꼽힐 강자인 백룡에게 있어서 우린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퀸소히니베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백룡은 수염도 나지 않은 매끄럽고 흰 턱을 쓸며 태연히 말했다.

“어째 이 인간이 날 이용하려는 것 같아서 말이다. 회귀가 멈춰진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미물이 여러 번 살았든지, 살지 않았든지 나에겐 그저 미물일 뿐인데.”

소년의 몸집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비늘이 돋고, 허리가 쑥 늘어나며, 발톱과 수염이 자라며 거대해진다.

‘용!’

청색대륙의 용은 황색대륙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날개는 없으나, 굵고 기다란 몸집의 동양의 용은 너무 강력해 보였다.

너무 커서 형체가 짐작되지도 않는 새하얀 백룡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헛짓거리로 날 이용하는 미물은 위험하지. 그냥 죽이는 것이 낫다.”

고막이 찢어버릴 듯이 큰 목소리.

그저 보기만 해도 숨이 멎는다.

그 순간.

“저는 바로 이전의 삶에서 당신을 죽이려다, 전멸당한 기억이 있어요.”

모두가 숨을 죽일 때 입을 연 사람은 바로 카티에였다.

“그래서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는 충분히 알아요. 지배자를 제외하면 가히 청색대륙 최강의 생명체죠.”

그녀의 어조는 침착하고 정연했다.

“하지만 회귀가 계속되면, 언젠가 당신을 죽일 인간도 나올 거예요. 누구도 처치 불가능하다 여기던 아크 리치를 대장이 해치운 것처럼.”

“허, 아크 리치? 네가 그런 몬스터를 죽였다고?”

백룡의 시선이 나에게로 왔다.

난 식은땀에 젖은 턱을 쳐들었다.

“예. 당신을 죽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그러자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하하하!”

고막이 찢길 것처럼 커다란 웃음.

백룡이 킬킬 웃어대며 말했다.

“딸아. 설명을 해보거라. 왜 저들을 내가 살려줘야 하는 것이냐?”

퀸소히니베가 떨면서 말했다.

“사, 살려주지 않으면…….”

“않으면?”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진심으로 소리쳤다.

“이들을 살려주지 않으면, 앞으로 영원히 아빠를 보지 않을 거예요!”

“그러냐.”

곧바로 백룡의 모습이 작아지더니, 다시 미소년으로 되돌아왔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룡이 졸린 눈으로 하품하였다.

“나는 딸을 몹시 사랑하지. 어느 아버지가 딸의 애원을 무시하겠나.”

아니, 저거 그냥 퀸소히니베가 처음부터 떼썼으면 됐던 것 아니야?

하여간 체할 뻔한 식사가 끝나고, 다들 이곳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

내가 모두에게 말했다.

“모든 준비는 마쳐졌어. 위험할 따름이지만. 이제, 천지로 향하자고.”

백룡은 한 마디 덧붙이며 눈꺼풀을 살며시 감았다.

“그리고 나의 둥지 뒷정리는 저 도깨비 새끼들이 알아서 끝내놓도록.”

도깨비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

천지.

불멸아귀가 서식하는 금역.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주 높고 검은 산을 힘겹게 올라가야만 했다.

[금역, 고암산에 들어섰습니다.]

[극악한 마물이 서식합니다. 잠들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조심하십시오.]

[진귀한 약초가 숨겨져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천 년의 세월이 깃든 약초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시커먼 땅의 산.

그저 길목에 들어서기만 해도 위험한 분위기가 대번에 느껴졌다.

‘이곳의 정상에 천지가 있다.’

강력한 마물들이 도사리는 금역.

당연히 3천이라는 소수 인원으로 오르기엔 무리가 있는 위험지대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회귀자가 있다.

“이곳에는 와봤던 기억이 있어요. 왼쪽으로 가면 기생버섯에 감염된 도적 떼가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

카티에가 길 안내를 맡았다. 덕분에 우리는 몬스터를 만나지 않고 산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의 심부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문구가 떠올랐다.

[고암산에 대륙지배자의 강력하고 사악한 마魔가 도사리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고암산에서 사망한 모든 회귀자는 회귀할 수 없습니다.]

[마가 낀 금역입니다. 모든 종류의 부적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서 죽으면 회귀할 수 없다.

이번에도 대륙지배자의 영역에서 회귀불능의 페널티가 생긴 것이다.

카티에가 눈살을 깊이 찌푸렸다.

“또다시 이변이네요. 전생에 왔을 때는 이런 문구가 전혀 없었는데.”

나는 세 회귀자를 돌아보았다.

“너희, 괜찮아?”

“어차피 각오했던 바예요. 대장.”

“이번 삶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최후까지 범철을 따르겠습니다.”

“딱히 죽어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재 우리 인원에서는 셋을 빼고 회귀자가 없다는 것.

‘아군이 갑자기 정신적 충격을 받을 일은 없겠군.’

“오늘은 여기서 노숙해야겠습니다. 다들 강행하느라 몹시 지쳤군요.”

헤르탄의 조언에 따라서 나는 모든 일행이 쉴 수 있도록 하였다.

뛰어난 도깨비는 비행의 요술을 쓸 줄 알았지만, 극히 일부였고 그마저도 오래 쓰지는 못해 걸어야 했다.

험준한 산을 오르는 강행군에 알솔이 낑낑대며 꾀병을 부렸다.

“끄아앙! 너무 발이 아파! 불멸아귀랑 싸우기도 전에 죽어버리겠어!”

“엄살 좀 그만 피워라! 지금은 한 시가 급한 상황이 아닌가!”

두령은 엄살을 피우며 군기를 꺾는 도깨비들은 엄히 문책해 꾸짖었다.

‘확실히 급하기는 하지.’

범파와 철파, 두 대형종파는 우릴 놓치고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들은 우리를 추적해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할 것이다.

‘아니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에게 강요를 거듭하거나.’

어둡고 음험한 산기슭에서 하는 야영은 오싹하고 섬뜩한 분위기였다.

헤르탄은 능숙히 불을 피우고 손재주 좋은 도깨비를 골라 조를 배정해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서 배급했다.

“인원이 많고 조리할 요리는 많아, 맛은 포기하고 양만 맞췄습니다.”

“아니에요, 헤르탄. 이만한 솜씨도 훌륭하죠. 역시 회귀자입니다.”

나는 그에게 엄지를 들어주고, 일행이 노숙하는 자리로 가보았다.

미별은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이며 잠들어 있었고, 백룡도 퀸소히니베의 무릎에 누워서 편히 잠자고 있었다.

‘강한 생명체들이라 그런가. 대륙 지배자가 사는 산에서도 잘 자네.’

백룡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다.

물론 단순히 잠에 깊이 빠진 게 아니라 동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백룡은 딸을 위해 동면기임에도 억지로 깨어났다.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다.

‘한 번 깨어나면 딱 24시간만 활동하고 잠드는 제약이 있다 했었지.’

백룡은 불멸아귀와의 결전에서 몹시 중요한 병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그를 깨우는 것은 불멸아귀를 대면했을 때가 적절할 것이다.

한편 카티에는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쓰다가 날 보곤 빠르게 감췄다.

“너, 뭐 쓰고 있었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장.”

아까 뭘 적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간에.’

지배자와의 결전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충분히 자두는 것이 좋겠지.

나는 거죽을 깔고 한참을 누워 있다가 옆 사람을 향해서 몸을 틀었다.

“안 자냐? 불침번도 아니면서.”

어두운 그곳, 불가에서 블라이넨의 높은 코끝이 발갛게 빛나 보였다.

“너는 날 믿고 싸울 수 있다 했지.”

“그랬지.”

“왜 이번 삶의 너는 날 믿을까.”

“자문하지 마. 나한테 물으라고.”

블라이넨이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너는 나를 좋아하나?”

또한, 나도 아주 진지하게 답했다.

“아니. 네가 날 싫어하는 것만큼 나도 너를 싫어하지.”

“아니었나.”

블라이넨은 땅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럼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군. 왜 굳이 날 믿으며 함께 싸우는 거지?”

잠시 입을 다물다, 내가 중얼댔다.

“내가 널 믿는 건 죽기 싫어서야.”

“죽기 싫어서라고?”

“친해지면 왠지 안 죽일 것 같아.”

“죽기가 싫나?”

“몰라서 묻냐? 참 회귀자스럽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껏 날 수 없이 죽였겠지만.”

그녀와 나의 시선이 맞닿는다.

“이번 삶만큼은 날 살려라, 블라이넨. 그게 내가 너를 믿는 이유다.”

블라이넨은 뭔가 망설였다.

“나는…….”

그러나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스승님, 기억하십니까.”

도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을까.

어느새 검을 쥔 잘생긴 남자가 검을 쥔 채 불가를 보며 앉아 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너……!”

“잘도 숨겼군. 기척을.”

나와 블라이넨이 검을 내 쥐었다.

어떻게 포위망을 뚫었는지, 화비는 태연히 우리의 불가에 앉아 있었다.

카티에가 화비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분명 대형종파가 추격할 수 없는 루트만 택해서 달려왔어요. 대체 어떻게 우리를 찾아냈죠?”

“수법이 얄팍하군, 성녀. 기억력이 완벽하다고 내 머리를 얕보진 마.”

화비가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대형종파의 교주다!”

“겁도 없이 여길 쳐들어오다니!”

도깨비들이 모여들고, 수백의 불과 살기가 모조리 그를 향해 노려졌다.

그러나 화비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분신이군.”

“예. 맞습니다.”

화비는 자신에게 이글대는 불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날 보았다.

“기억하시냐고 여쭈었습니다.”

“뭘 말이지?”

“제가 스승님께 처음 검을 배울 때 말입니다.”

화비가 전생을 회상하듯 시선을 조금 내려서 불가를 응시하였다.

“비록 한 삶이었지만 반평생 스승님 밑에서 검을 휘두르며 살았습니다. 혹독했지만 꽤나 즐거웠습니다.”

“내 팔다리를 자를 만큼 말이지?”

“스승님. 전 스승님을 기억합니다. 함께 마시고, 함께 울었던……. 반평생을 함께 했던 나의 스승이시여.”

화비의 눈이 천천히 내게로 왔다.

그리고 나는 놀랐다.

녀석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왜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십니까.”

숨이 턱 막혀온다.

지독하게 어이가 없었으니까.

화비가 나에게 낮게 질문하였다.

“왜 나를 기억해 주지 않으십니까.”

“네가 기억할 필요도 없어서겠지.”

난 곧장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나에게 집착하는 회귀자가 하는 소리란 매번 형식이 똑같을까.

“제발 다들 내 탓 좀 그만해라. 내가 기억하기 싫어서 안 하냐? 회귀를 못 하니까 전생의 기억도 머리에 없지.”

내가 놈을 향해서 냉담히 말했다.

“지금 네가 하는 짓은 화풀이다.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왜 추억을 잊어버렸냐며 다그치는 것과 같다고.”

화비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웃었다.

“화풀이…… 맞습니다. 어쩌면 그런 걸지 모릅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한 신이자 존경하는 스승이니까.”

사랑이라.

나는 회귀자의 사랑 방식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사랑은 절대 팔다리를 자르거나 강간하지 않는다.

“할 얘기는 끝이냐?”

“저는 앞으로도 스승님을 믿습니다. 스승님은 저의 신이시니까요.”

화비는 결론을 지었다.

“그러니 철파를 택하십시오. 날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신인, 나의 스승이 내릴 판단입니다.”

“선택은 이미 내렸을 텐데. 나는 블라이넨을 택했다. 너희가 아니야.”

“그럼 번복하십시오. 다시 한번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철파를 택하여 옳은 종파임을 증명해 주십시오.”

더 이상은 들어줄 가치가 없었다.

내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크허어엉!”

커다란 호랑이가 화비를 덮치며 머리통을 그대로 뜯어서 던져버렸다.

당연히도 화비의 분신은 연기를 내며 사라졌고 머리칼 몇 올만 남겼다.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맹수의 두 눈동자가 번뜩 내게 향했다.

“스승님. 선택하실 것은 저예요.”

한쪽 발 없는 호랑이가 매혹적인 목소리를 냈고, 나는 짜증을 냈다.

“범파 교주냐.”

“예. 그 결정은 분명 잘못됐어요. 범파를 버리고 고작 검사를 택하다니. 스승님은 너무 어려서 그래요.”

“큰 호랑이! 꿈의 나무를 태웠던 그 빌어먹을 호랑이다!”

비환을 포함한 도깨비들이 즉시 이랑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이랑은 태연하게 웃었다.

“번복하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리고 도처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맞습니다. 번복하십시오.”

화비의 목소리였다.

풀숲, 저편, 어둠, 산등성까지.

일백 명의 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스승님을 막겠습니다. 스승님을 빼고 모두 척살하겠습니다.”

“불멸아귀를 잡기는커녕, 회차목표를 이뤄 회귀도 멈출 수가 없겠죠.”

두 교주의 얼굴에 비소가 담겼다.

동시에 도깨비들이 마구 소리쳤다.

“회귀자다! 회귀자들이 몰려온다!”

“이, 이놈들 도대체 몇 놈이냐!”

“당했다! 미리 와 있었던 거다!”

대형종파가 우릴 마구 에워쌌다.

도망칠 퇴로는 완전히 막혀버렸다.

신도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저들을 격퇴하라!”

“범철 님을 감싸 도는 악의 무리!”

“이단은 전부 퇴치해 버리자!”

교주들에게 세뇌당한 신도는 나 말곤 전부 이단으로 몰아 죽이려 했다.

수십만의 병력에 둘러싸인 아군!

‘제길. 이러다 불멸아귀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전멸을 당해 버리겠군.’

여기서 완전히 발목을 잡혀버렸다.

헤르탄이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범철.”

“왜 그럽니까?”

“그동안, 미천해 죄송했습니다. 유언은 죽을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

카티에는 핑 도는 눈물을 참으며 내 옷깃을 꼭 쥐고 작별 인사했다.

“대장. 그동안 즐거웠어요. 이런 식으로 삶이 끝날지는 몰랐지만요.”

반면 퀸소히니베는 작게 속삭였다.

“나는 날 수가 있는 것이야. 차라리 다 버리고 함께 도망을…….”

“아주 좋은 생각인걸요.”

블라이넨이 유심히 끄덕였다.

나는 한숨 쉬며 고개를 휘저었다.

왜 이렇게 다들 포기가 빠른지.

“다들, 죽음을 준비하긴 이른데?”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헛소리가 일상이니 웃지 않을 수가 없군요.”

화비가 비웃음을 날렸고, 난 고개를 휘저으며 항마의 각등을 꺼냈다.

고암산에 도착하고부터 각등은 환한 보라색 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숨겨진 성능이 해금되었으니까.’

그러자 이랑이 곧장 낄낄거렸다.

“이미 알아요. 항마의 각등에는 고암산에 도착하면 해금되는 숨겨진 성능이 있지요. 하지만 스승님, 저희도 회귀자입니다. 그런 저희가 아이템의 숨겨진 성능도 몰랐을까요?”

상당히 근거 있는 비웃음이었다.

그래서 나도 놈들을 비웃어줬다.

“나에겐 각등만 있는 게 아니라.”

진홍색 로브를 뒤집어쓰며, 각등을 움켜쥔 내 손에 마나를 확 모은다.

내 모든 마나가 각등에 쓸려갔다.

“이전 삶에 없던 재능도 있거든.”

[항마의 각등이 고암산에서 숨겨진 특수한 성능을 발휘합니다.]

[축적된 마나가 소진됩니다.]

[1,000명분의 마나를 태웁니다.]

[313,217명을 강제 추방합니다.]

[금지령에 해당되는 313,217명은 20일간 고암산에 오르지 못합니다.]

각등에서 눈부신 광휘가 발광한다.

그리고 눈이 깜빡할 사이였다.

비명도, 흔적도 없이.

수십만의 대군이 곧바로 사라졌다.

“적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건가!”

도깨비들이 놀라서 주위를 봤다.

저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도가 사라져 적 본진에 덩그러니 남겨진 두 교주가 놀라선 경악했다.

“뭐, 뭐야! 나의 신도들이!”

“스승님이 어떻게 마법을……!”

모든 대형종파가 추방되어버렸다.

상황은 바뀌어버렸다.

이제 독 안에 든 것은 두 교주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볼까?”

이제 사제의 연을 끊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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