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29화
어찌 보면 허를 제대로 찔렸다.
설마 수십만 군세가 둘러싸인 상황에서 나를 대놓고 납치할 줄이야.
지나칠 만큼 무모하고 대범하지만, 감히 누구도 예상 못 한 발상이다.
“모두 진정해라! 범철 님 앞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무례란 말이냐!”
광기에 휩싸인 신도들 사이로 한 노인이 나와서는 내게 무릎 꿇었다.
그가 엄숙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신식회의 교주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범철 님을 먹기 위해, 곳곳에 흩어진 신식회 전원을 소집했습니다!”
저 늙은 노인이 신식회 교주인가?
하기야 범파와 철파도 모인 마당에 신식회가 소집되지 않을 리가 없다.
내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그래서 나로 미식회라도 열려고?”
“당연히 만찬을 벌이려 합니다.”
무릎 꿇은 신식회의 교주가 나를 향해서 간곡히 질문했다.
“그래서 범철 님께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 저희가 범철 님이 주신 육신을 어떻게 분배해서 먹어야 합니까?”
기가 막혀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면 나는 진즉에 객사해 버렸을 텐데.
“누구 마음대로 나를 잡아먹어? 내 몸 먹으라고 허락한 기억 없는데.”
“허허허. 범철 님은 신이시잖습니까? 당연히 나실 때부터 저희에게 그 은총을 베풀도록 오신 겁니다.”
참으로 진솔한 감탄이 나오는군.
내가 앞에서 말하는데도 정확히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걸러 듣다니.
과연 세상의 정신 엇나간 종교인들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자식이다.
“개소리 말고 내 몸에 손대지 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가 무엇 때문에 모였는데요? 결단을 내려주시지 않으면, 저희가 판단합니다.”
저렇게도 협박을 할 수가 있군.
내가 끝까지 답해주지 않자, 교주는 내게 올라와 귀담아듣는 척하고는 신도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범철 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끼리 싸우라. 그리고 최후에 살아남은 1인에게만 내 육신을 제공하겠노라.”
그러자 신식회의 신도들이 광란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두 들었어? 이곳에서 살아남는 자가 범철 님의 육신을 먹게 된다!”
“와아아아!”
신식회 신도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심지어 감격을 주체하지 못해 서로 싸우기 시작하며 피를 흘려댄다.
단검으로 다른 이의 몸을 찍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맹렬히 다퉜다.
“범철 님의 몸은 내 차지야!”
“발가락은 내 거야! 통풍 있다고!”
“허파는 제발 나한테 줘요! 딸아이가 회귀할 때마다 피 기침을 해요!”
“멍청하기는! 피 기침이 나으려면 기도를 먹여야 할 것 아니야!”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생각하였다.
‘저 미친 회귀자 새끼들.’
광기.
저것은 틀림없이 저열한 광기였다.
날 모시는 회귀자들이 들어찬 이곳에는 지독한 광기가 들어차 있었다.
‘돌겠네.’
날 먹고 싶어 하며 다퉈대는 신도들을 보니 깊은 현기증이 느껴졌다.
“최후의 1인이 가려질 때까지, 범철 님은 안전한 곳에 모시겠습니다.”
교주는 생존자가 아니면 나에게 손 댈 수 없게 날 멀리 격리시켜 뒀다.
교주의 손에 바퀴 달린 형틀이 밀어지는 동안, 내가 그에게 말했다.
“영악하군.”
“뭐가 말입니까?”
“신도들은 저렇게 싸우게 두고, 혼자서 나를 먹으려는 속셈이잖아.”
신식회 교주의 주름진 얼굴에 너무나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신의 몸은 독식해야만 의미가 있지요. 나눠 먹어봐야 뭐하겠습니까? 제가 다음 신이 되려면 범철 님을 전부 먹어야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회귀자란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독식이라면 환장하고, 수단과 방법을 전혀 가리지 않는 냉혈한.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왜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
“의심이라니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너희 신이 너무 쉽게 잡혔잖아.”
분명히 허를 찔린 상황이다.
그러나 남들과 약간 다른 것은.
나는 ‘일부러’ 허를 찔린 것이다.
“고맙다.”
“……무엇이 말입니까?”
“일부러 죽이기 좋게 모여 줘서.”
이제 ‘그 방법’을 쓸 시간이 됐다.
내가 아주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별!”
***
우매한 중년의 이름은 대점이었다.
오른쪽 뺨에 큰 점이 있어서 대점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정작 본인은 그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차라리 대길이라 지어 줄 것이지. 대점은 또 뭐람. 괜히 놀림 받게.’
대점에게는 아내가 한 명 있었다.
사실 첫 아내는 아니었다.
전 부인이 회귀로 인하여 정신이 나가버리고, 새 장가를 든 것이니까.
‘이번에야말로 나가서 범철 님의 고환을 확 따서 삼켜버리고 오리다.’
‘이번에 가면 또 언제 와? 상식적으로 신 먹는다고 정말 신이 될 수 있겠어? 헛짓 그만하고 그냥 있어.’
아내는 지루하지도 않은지 회귀하며 이번 삶에도 주막을 운영하였다.
거기다 주막 이름은 또 청승맞게 ‘먼산바라기’라 짓는 것은 또 뭔가.
대점은 자신의 대의를 알아주지 않는 아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거참. 대장부의 포부에 괜히 토 달지 마시오. 가끔 돌아올 테니까.’
하여간 아내에게 호언장담했던 대로, 대점은 신식회의 일원이 되었다.
회귀 속에서 그의 위대한 목표는 범철의 고환을 따먹는 것이었다.
“으, 으헉!”
그러나 회귀하면서도 늘 뒤처졌던 그에게 지금 상황은 너무 힘겨웠다.
최후까지 생존한 자에게만 범철 님을 먹을 기회가 있다니!
피가 흩뿌려지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난장판에서, 대점은 기가 죽었다.
‘으으. 살벌해 죽겠다. 조금만 나댔다가는 이번 삶은 바로 쫑나겠네.’
수천의 신식회가 신을 먹기 위해서 신도끼리 동굴에서 싸우고 있다.
제아무리 회귀자지만 대점마저 소름 돋을 만큼 광란의 광경이었다.
‘이, 이렇게 무섭고 끔찍한 거였나? 내가 들었던 신식회란 단체가?’
대점은 저들의 광기에 반감마저 느끼고는 살기 위해 시체들 사이를 기었다.
‘죽은 척하자. 일단은 시체 사이에 숨고 나중에 혼자 도망치면 돼.’
눈을 감고 숨을 한껏 죽인다.
“으억!”
“죽어라!”
“신을 먹는 것은 나야!”
비명과 피, 광란의 함성, 광신도들.
대점은 두려워 몸을 덜덜 떨었다.
죽어봤자 회귀하지만, 막상 죽을 때가 되자 이번 삶이 너무 아쉬웠다.
어째선지 대점의 눈앞에 한 여자가 아른거렸던 것이다.
‘……기다려 줄까? 이번 삶에도.’
회귀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죽기 싫어.’
이번 삶은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회귀하면서도 미치지 않고, 집에서 용케 기다려 주는 아내가 있잖은가.
대점은 울적해하며 깊게 후회했다.
‘제길. 그렇게 미련하고 고마운 여자를 두고 내가 왜 집을 나왔을까.’
회귀하면 후회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다.
수 없는 회귀는, 수 없는 후회를 낳는다.
“이놈, 여기 살아 있다!”
한 신도가 몸의 떨림을 참지 못한 그를 보고서 검을 높이 들었다.
대점이 흠칫 놀라서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사, 살려줘! 제발!”
그리고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어, 어?”
대점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신도들이 모두 멈칫하며 정지한다.
거기다, 각자 아랫배가 파여진다.
‘뭐, 뭐야?’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는 형체가 돌풍처럼 수천의 신도를 휩쓸었다.
촤악!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고작 몇 초 만에.
다들 쓰러진다.
‘죽었어.’
모두가 죽었다.
자신만 빼고 모두 죽어버렸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점이 당황해 눈을 돌리자 저편에 못 보던 여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역시, 피로 회복에는 간이 최고야.”
피로 젖은 소복을 입고 눈물점이 있는 미녀였는데, 소름 끼치게도 간을 쌓아 두고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서, 설마 방금 신도들의 간을?’
그 짧은 새에 간을 빼먹는다니.
저런 짓이 가능한 생물체는 청색대륙에서 오직 단 한 마리뿐이었다.
‘구미호.’
대점은 두려워서 치를 떨었다.
“하암. 피곤하네. 졸리고. 귀찮아.”
구미호는 혼자 중얼대다가 갑자기 대점에게 눈을 획 돌렸다.
“뭘 봐. 복상사하고 싶어서?”
순간적으로 혹했다.
하나 대점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나, 나는 이번 삶을 살아야만 해. 지, 지, 집에서 아내가 기다린다고.”
그러자 구미호가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이를 홀릴 듯이 따스한 미소.
“걱정 마. 내 친구가 뺨에 큰 점 있는 남자는 살려두라고 했으니까.”
뺨에 있는 점 때문에 살려줬다고?
이건 뭐,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나?
상황판단이 안 돼서 머릿속에 별의 별생각들이 마구 휘몰아치던 때에.
“당신, 아내가 주막하고 있지?”
대점은 목소리가 들린 곳을 봤다.
저편에서 피에 젖은 사내가 빼앗겼던 짐을 챙기고는 걸어왔다.
그리고 대점은 자신의 턱이 빠지지는 않을까 고민할 위기에 처했다.
“으, 으어어! 시, 시, 신……!”
대점이 경악스러운 방언을 터뜨리기도 전에, 사내가 낭심을 걷어찼다.
“어억!”
“남의 고환 딸 생각 말고, 집 돌아가서 아내나 도와라. 종교 버리고.”
대점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조, 종교를 버리라고요? 시, 신께서 어째서 그런 말씀을……?”
“신도한테 잡아먹힐 뻔한 내가 신으로 보이냐? 차라리 내 눈에는 헛짓하러 집 나간 남편 기다려 주는 아내가 훨씬 위대하고 멋진 신인데.”
“제, 제 아내를 어떻게……?”
사내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절대 일생에 오지 않을 순간이다.
“나를 믿지 마. 믿더라도 곁에서 너를 사랑해주는 아내나 모시라고.”
대점은 무릎을 꿇고 벌벌 떨었다.
그 사내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베어 버릴 것처럼 칼을 대고 세웠다.
“그러지 않으면 네 불알은 내가 떼어가겠다. 지금 한 짝 떼어갈까?”
대점은 기겁하며 얼른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요! 지당한 말씀이시지요!”
“말만으로 약속을 지키려는 거면 그만둬. 네 아내를 알고 있으니까.”
대점은 몸을 숙여 마른침 삼켰다.
그새 간을 모두 먹은 구미호가 폴짝 뛰어와서는 사내의 곁에 붙었다.
사내가 걸어가며 물었다.
“내가 시킨 일은 해놓았지?”
“당연한 소리를 왜 하니? 넌 약속대로 용왕 간이나 마저 내놓으렴.”
“시킨 일 잘했는지부터 확인하고.”
“흥. 하여간 철저하시기는.”
사내와 구미호가 밖으로 걸어간다.
대점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봤다.
강렬한 햇빛이 몰려드는 출구를 나가기 직전, 범철은 잠깐 멈춰서 말했다.
“아내한테 전해라. 밥값 갚았다고.”
자신이 섬겨온 신은, 그렇게 눈부시게 떠나가 버렸다.
***
오늘의 날씨는 심각히 쾌청했다.
기온은 차가워도 햇빛은 화창하다.
그래서 나와 구미호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햇살에 눈이 따가웠다.
“여기가 벌판에서 먼 곳이냐?”
“아니, 벌판은 꽤 가까이 있어. 인간의 걸음으로 치자면 20일 쯤?”
“……그게 어딜 봐서 가깝냐.”
“내 걸음으로는 가까운데?”
구미호가 어여쁘게 키득거렸다.
한숨 쉬며 빼앗겼던 짐을 살피던 나에게 문득 항마의 각등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는 대충 봐서 몰랐는데, 이런 기능이 숨겨져 있었다니.’
SSS급 보물탐색재능으로 항마의 각등을 살피다 마나를 불어넣는다.
‘나중에 유용하겠군. 하여간.’
머릿속으로 시간을 대충 계산한다.
“난 일행에게 서둘러 돌아가야 해. 길은 구미호인 네가 알고 있겠지?”
“어머, 내 이름은 미별이라니까.”
“알았어. 미별아. 얼른 가자고.”
“내가 연상인데?”
“가실까요, 누님?”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미별은 멀뚱히 서 있었다.
“안 오고, 뭐해? 시간 없어.”
미별은 내 다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자기 가슴을 탁탁 때렸다.
“어휴, 걷는 꼬락서니만 봐도 답답해. 같이 걸어주자니 못 견디겠다.”
미별이 몸을 돌리고는 낮게 앉아서는 나를 향해서 등을 보여줬다.
“자!”
“밟아달라고? 거참, 취향 하고는.”
“너는 이럴 때도 농담이 나오니?”
미별이 황당해하며 등을 두드렸다.
“업히라고. 내가 훨씬 빠르잖아?”
“도중에 떨어뜨리는 건 아니지?”
“걱정 마렴. 낭떠러지는 없으니까.”
미별이 나를 업고 뛰기 시작하자, 순간 나는 혀를 씹어버릴 뻔했다.
“으아악!”
미칠 듯한 칼바람이 뺨을 베어버리고 주위의 광경이 섬광처럼 지난다.
다리가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끊어진 절벽을 척척 뛰어넘어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양 종파가 위치한 벌판의 절벽에 있었다.
“자, 도착!”
“……너, 운송업 할 생각 없냐. 수레 하나만 끌고 다녀도 떼돈 벌겠다.”
“됐고, 나중에 간이나 내놔.”
미별이 킥킥대며 나를 내려놓았고, 난 토할 것 같아 입을 틀어막았다.
‘일개 짐승이 낼 만한 속력이 아냐.’
구미호가 어떻게 대륙 전체를 누비고 다닐 수 있는지 이해가 가는군.
“대장! 걱정했어요!”
“그래, 고맙다. 헤르탄, 준비는요?”
“예. 준비는 마쳐졌습니다.”
높은 절벽 위에서 나는 두 종파가 함께 싸우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범처럼 용맹하게!”
“철처럼 강고하게!”
두 대형종파의 세력이 서로의 무기를 맞대며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다툼을 멈추고 있던 신이 없어져 버렸으니까.
“범파를 모두 척살해라! 신에게 선택을 받는 것은 단연코 우리다!”
“철파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놈들이 없어야 우리가 선택받아!”
나와 면식이 있는 범파의 장로 오삭과 철파의 환관무사 가울도 부하들을 지휘하며 서로 검을 맞대었다.
“고자새끼가 어디서 감히 덤벼?”
“성불구라고 본인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은 편견인데?”
검과 검이 맞대 붙으며 피가 튄다.
각 종파의 교주, 이랑과 화비가 각자의 힘을 쓰며 사납게 공격했다.
“범파 교주가 맹수를…… 크억!”
“분신이다! 철파 교주의 분신!”
철파교주는 거의 백 명에 가까운 분신으로 현란한 검술을 뽐내었다.
반면에 커다란 호랑이들은 철파 소속 회귀자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맹수도 분신도 일백은 되어 보여.’
하여간 이대로 가만히 두면 두 세력이 부딪쳐 공멸해 버릴지 모른다.
‘그건 안 돼.’
이들이 종파의 전부는 아니었다.
두 대형종파의 공멸은 곧 청색대륙의 인구 대부분의 죽음을 뜻한다.
청색대륙의 인구가 거의 사망해 버리면, 회귀를 멈추더라도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턱이 없다.
내가 노리개를 쥐고서 소리쳤다.
“다들 싸움을 멈춰라!”
당연히 수십만 병력이 전쟁 중에 말 한마디에 싸움을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고, 전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신도들이 그들이 모시는 신의 목소릴 들었다면 상황이 다르다.
“범철 님이시여!”
“어떻게 이토록 금방 돌아오셨지?”
“과연 신이시다! 하기야 신이 그렇게 가볍게 납치당할 리가 없겠지!”
종교는 개연성도 참 간편하네. 신이라서 가능했다고 하면 되니까.
내가 엄숙하게 소리쳤다.
“다들 무기를 내려두어라. 난 너희에게 싸움을 허락한 기억이 없다.”
그러자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놨다.
우리는 군세로 뚫고서 양측이 대립하는 벌판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일생의 신이시여……!”
“이렇게 가까이 신을 뵙다니…….”
큰 원을 그리며 수십만의 병력이 나를 둘러싸며 경배하듯 지켜봤다.
그리고 양측에서 한 명씩, 두 종파의 교주가 나를 향해서 걸어왔다.
“스승님. 오직 제가 수제자입니다.”
“저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명백히 범파의 화력이 철파보다 우위에요.”
두 교주는 서로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리고 둘 모두 악을 쓰며 외쳤다.
“스승님의 검을 제대로 물려받은 것은 바로 저입니다!”
“아니요! 저열한 변명입니다! 저야말로 스승님의 유일한 제자예요!”
“정 못 미더우시다면 저희끼리 시합을 붙여보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 중에서 스승님 다음으로 검을 가장 잘 쓰는 검사는 바로 저예요!”
그러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여전히 노리개를 쥐고 있었으므로, 목소리는 크게 확장되었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지들 입으로 제자라 우겨대는 억척스러운 것들아.”
내가 가볍게 턱을 까닥였다.
“지금 이곳에서 선택을 내리겠다. 불멸아귀와 함께 대적할 화력을.”
“……!”
두 제자가 즉시 무릎을 꿇었다.
마른침을 삼키고 긴장해 날 본다.
신도들이 놀라서 웅성거렸다.
“범철 님이 대륙지배자와 함께 싸울 화력을 데려가신다는 것은……!”
“올바른 종파를 택하신다는 거다!”
“조용히 해! 이제 말씀하신다!”
수십만의 청중이 숨을 죽인다.
어느 때보다 고요해진 바위벌판.
‘반드시 최후까지 함께하며 불멸아귀와 싸워야 할 화력. 그것은.’
품에 있는 전생의 돌을 쥐어본다.
현재 모든 상황을 가정하였을 때.
가장 이득 볼 수 있는 답은 하나.
‘간단하지.’
나의 걸음은 제자들로부터 떠났다.
“스, 스승님!”
“어, 어디로?”
두 교주가 그런 내게 당황할 때.
내가 그 사람에게 몸을 조아렸다.
수십만의 시선이 하나에게 향한다.
“그녀야말로 날 가르친 스승이자, 너희 둘의 경지를 넘어선 검사다.”
타고난 재능, 막대한 기연도 없이.
오로지 검만 바라보며 노력한 자.
내 목소리가 벌판에 울려 퍼졌다.
“범파, 철파 모두 버리겠다. 블라이넨만을 택해, 불멸아귀와 싸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