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25화
우린 도깨비의 잔치판에 돌아왔다.
그때쯤 나는 낯이 없는 환상도깨비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넌 달걀귀신처럼 생겼으니까 이름을 달귀라고 지어야겠다.”
꽤 대충 지은 이름인데 달귀는 만족한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런 다음, 나는 백야랑 초화를 호리병에서 꺼냈다.
“캬앙!”
붙임성 좋고 활발한 백야는 호기심 있게 달귀에게 다가가더니 아무것도 없는 매끄러운 얼굴을 마구 핥았다.
“……!”
그러자 달귀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금세 백야를 쫓으며 함께 놀았다.
반면에 초화는 내 다리에만 꼭 붙어서 둘을 멀찍이 지켜만 보았다.
“……아빠. 쟤가 백야랑 친하게 지내.”
“새 애완수니까. 넌 같이 안 노냐?”
“……나, 어색해.”
나는 부끄럼이 많은 초화를 위해 몸을 낮추어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낯만 가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쟤를 봐. 낯도 없잖아.”
“……응.”
초화는 용기 내서 달귀에게 갔다.
그리고 소녀가 말했다.
“……네가 나보다 동생이야.”
“……왜 내 말 무시해?”
“…….”
“……난 너 싫어. 저리 가.”
저것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람.
황당한 표정으로 멀찍이 초화를 보던 내 앞에 문득 문구가 떠올랐다.
[상급조련의 효과로 초화(드리아드)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합니다.]
[애완수의 머리에 피어 있는 꽃봉오리에 관한 정보를 확인합니다.]
‘이건……?’
나는 초화의 꽃봉오리를 유심히 바라보며 예상 못 한 정보를 습득했다.
‘초화에게 이런 꽃이 피어난다고?’
한편 도깨비 연합은 자축하며 잔치를 즐겼지만, 불도깨비들은 흥겨움을 즐기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었다.
‘하기야 방금까지 서로 싸웠는데 쉽게 화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여간 내가 이러한 잔치판에 돌아온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불도깨비는 본래 타고난 강한 화력만큼이나 대장장이가 많습니다.”
헤르탄이 말했고, 카티에도 끄덕였다.
“맞아요. 특히나 불도깨비가 다루는 화염은 대륙 어느 대장간과 비교하더라도 가히 최고라고 뽑혀요.”
나도 확실히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전에서 불도깨비들이 보여준 화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래서 불멸아귀를 처치할 때 저들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이 중에서 대장장이가 누가 있지?”
나의 말에 소수의 불도깨비들은 눈치를 보다가 잔칫상에서 일어났다.
분위기에 휘말려 눈치 봤지, 실제로 다른 도깨비들과 다투고 싶지 않던 불도깨비들도 분명 있던 것이다.
“우리들이 대장장이다! 불도깨비들의 무구는 전부 우리가 만든다!”
20명쯤 되는 덩치가 큰 불도깨비가 나의 앞에 모여들었다.
“혹시 너희, 이런 것도 제련할 수 있냐?”
나는 아크 리치의 뼈를 내밀었다.
S급 대장장이 재료!
내가 내놓은 뼈다귀 더미를 보더니 불도깨비들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건 난생처음 보는 뼈다귀다! 이렇게나 결이 곱고 딱딱하다니!”
“이만큼 귀한 재료를 볼 수 있다니!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거냐!”
나는 간단히 말했다.
“아크 리치를 죽이고 얻은 뼈다귀다. 혹시 제련이 가능하냐?”
불도깨비들이 뜨악하며 경악했다.
“대륙지배자의 뼈를 제련하다니? 대장장이에게 그만한 영광도 없다!”
“무엇을 만들기를 원하는가?”
나는 고민하지 않고서 결정했다.
“리치의 뼈로 갑옷을 만들어줘.”
불멸자의 갑의가 파괴된 이후로 나는 마땅한 갑옷을 착용하지 못했다.
물론 그만큼 빠르게 검을 쓸 수도 있지만, 역시나 앞으로 있을 큰 전투에서 유용한 갑옷은 꼭 필요하다.
실제로도 아크 리치와의 결전서 불멸자의 갑의가 날 살리지 않았던가.
‘뛰어난 갑옷이 있어야 전투나 생존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불도깨비 대장장이들은 첫 반응에 비해서 표정이 시무룩했다.
“이만큼 아름답고 견고한 뼈다귀를 불에 제련하려면 연초가 필요하다!”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초? 담배가 왜 필요하단 건데?”
“우리 대장장이들은 담배를 태워야 제대로 열을 발산할 수 있다! 담배 없이는 효율이 오르지를 않는다!”
“우리 도깨비 대장장이에겐 담배가 석탄만큼이나 귀중한 필수품이다!”
“담뱃대에 담배를 채우고 연기를 빨아야 강력한 화로가 완성된다!”
담배를 피워야 제련이 가능하다니.
확실히 도깨비들이라 그런지 대장장이 질도 유별난 구석이 많군.
“그럼 담배를 가져와 피우면 되잖아?”
“하지만 이 산이나 근처 평원에서는 담배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피워본 지가 무척 오래됐다!”
그럼 어디 멀리 가서 담배 농가라도 뒤져봐야 하나?
그때 블라이넨이 품을 뒤적여 잔뜩 말린 담배를 수북하게 내놓았다.
“연초라면 내가 제법 있는데.”
불도깨비들은 블라이넨이 내놓은 담배를 보더니 엄청 좋아했다.
“오오!”
“이만한 담배라면 충분히 만든다!”
“이건 아주 지독한 품종이다! 이만한 양이면 충분히 제련 가능하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태울 수 있을 거다! 신나게 제련해 주겠다!”
저 품에 어떻게 저렇게 많은 담배가 들어가 있었던 거야?
내가 황당해서 물었다.
“너,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 거냐?”
“골초니까.”
“역시 너만 한 근성으로도 금연은 힘든가 보다?”
“딱히. 금연하려 해본 적 없을 뿐.”
하여간 저 녀석도 어련한 놈이야.
“제대로 된 갑옷을 만들어준다! 그만큼 우린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불도깨비 대장장이들이 갑옷을 만들어주는 건 화해의 표시기도 했다.
대장장이들이 자신들의 담뱃대에 담배를 채워서 담배를 뻑뻑 피웠다.
그러자 뜨거운 연기가 뿜어졌고 곧 망치, 노, 정 따위 연장 형태로 변했다.
저들은 놀랍게도 즉석에서 화염대장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와! 저것 봐! 끄아앙!”
“대장장이들 솜씨, 간만에 본다!”
잔치를 즐기던 도깨비들이 담배로 만들어진 대장간을 보며 환호했다.
그들은 연기로 만든 연장을 형체가 있는 것처럼 쥐고 뼈를 제련했다.
용광로는 따로 필요조차 없었다.
평범한 대장간과는 절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화기!
수 시간 동안 연기망치가 내려쳐지고, 따가운 불길이 치솟아 휘감겼다.
날카롭게 제련된 뼈마디를 고온의 불꽃이 이어주며 갑옷이 완성됐다.
“완성이다!”
불도깨비 대장장이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뼈 갑옷을 보여주었다.
『타오르는 지배자의 갑주』
206개의 리치 뼈다귀를 사용하여 제작된 갑옷. 식지 않는 검은 불꽃이 뼈를 감싸며 불사르고 있다.
+힘, 체력 총합 200 이상 착용 가능.
+폭발하는 흑염의 불꽃을 갑옷과 검술에 더하여 파괴력을 드높인다.
+체력 능력치 50% 증가.
*황색대륙지배자의 검은 마력이 깃들어 있음. 마법피해 65% 증가.
*모든 화염 피해 면역.
딱 벌어진 입을 얼른 닫았다.
순간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었다.
눈앞의 갑옷은 이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 훌륭한 무구였기 때문이다.
‘내구력은 불멸자의 갑의보다 못하지만, 성능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군.’
갑옷을 착용하자 불길이 몸을 감쌌지만, 뜨거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온몸에서 그치지 않는 활력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피를 쏟는 파멸의 망토도 어깨에 달자, 정확하게 갑옷과 합이 맞았다.
내가 녀석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
“잘 만들어줬네. 고맙다.”
그러자 대장장이가 머뭇거렸다.
“그…… 너를 죽이려고 했던 우리에게 악수를 해주는 건가?”
“뭐, 어때. 실제로 죽이고 죽은 것도 아니지 않냐?”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대장장이가 자기 손의 불꽃을 없애고 악수했다.
“우리야말로 고맙다. 용서해 줘서.”
“와아아아!”
도깨비들이 잔치를 벌이며 싸움이 끝나고 이뤄진 화해를 자축하였다.
“미안하다! 널 태우려 하다니!”
“끄아앙! 괜찮아! 나는 무사해!”
“형님! 술 받으시오! 미안했다!”
“껄껄! 고맙다!”
다들 단순한 만큼 화해도 빠르군.
거인도깨비 두령과 불도깨비의 두령도 서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 용무는 끝난 게 아니다.
나는 다른 도깨비들에게 보이지 않게 불멸자의 갑의 파편을 내밀었다.
“그럼 너희 이것도 제련해 줄 수 있냐? 갑옷까진 바라지도 않고 다른 소형 방어구를 만들어줘도 되는데.”
그러자 불도깨비 대장장이들조차도 혹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갤 저었다.
“이게 아주 매력적인 금속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우리가 이 금속을 녹일 순 있어도, 이만한 금속을 제련할 솜씨는 우리에게 없다!”
“너희 제련 솜씨로도 부족하다고?”
“그렇다! 이만한 금속을 제대로 제련하려면 최소한 적색대륙의 드워프 만큼은 손재주가 뛰어나야 할 거다!”
도대체 이 금속은 얼마나 다루기가 힘들기에 그렇게 평가받는 건지.
‘불멸자의 갑의 파편을 재가공하려면 결국 적색대륙에도 가봐야겠군.’
카티에가 요란스러운 잔치 소리에 양쪽 귀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하여간 갑옷도 만들었으니 이제 불멸아귀 원정에 대해 고민해 봐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천지’에서 병력을 따로 소집하거나 이들과 함께 다니든가 해야 합니다.”
도깨비들이 불멸아귀 원정에 합류하는 것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지만, 아직 이들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도깨비들을 합해 봐야 고작 3천 즈음. 최소한 5만의 병력은 필요한데.’
불멸아귀의 명확한 약점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 어쩌면 그보다 더욱 많은 병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어째 앞날이 갈수록 캄캄하군.
그런데 모두가 흥겹게 놀던 그때.
새파랗게 질린 어느 도깨비가 허겁지겁 내려와선 커다랗게 소리쳤다.
“꿈의 나무가 불타고 있다! 이, 인간들이! 인간 놈들이 쳐들어왔어!”
지배자의 갑주의 성능을 시험해 볼 기회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
꿈의 나무.
모든 도깨비가 탄생하는 장소.
두령들조차 건드릴 수 없는 곳.
그곳을, 회귀자들이 태우고 있었다.
“꿈의 나무에서 잠자는 도깨비들이 타죽으면 강제로 유산되어버린다!”
“누가 감히 꿈의 나무를 태웠나!”
“물! 얼른 물부터 가져와라!”
도깨비들이 경악하면서 외쳤지만 불을 낸 회귀자들은 가차가 없었다.
각기 복면을 쓴 놈들은 횃대를 들고 기름을 퍼부으며 나무를 태웠다.
심지어 몇 놈은 화염으로 일궈진 도술을 써대며 가지를 불로 덮었다.
태몽을 꾸던 도깨비들이 연기를 마셔 콜록댔고, 아기도깨비가 울었다.
거인도깨비 두령이 황급히 외쳤다.
“태몽을 꾸는 도깨비들을 구해라! 불도깨비들은 몸의 불부터 끄고 도와라!”
꿈의 나무는 단숨에 불을 진압하기 어려울 만큼 화기가 거세져 있었다.
도깨비들이 정신없이 가지에서 자고 있던 도깨비들을 업고 나온다.
이리저리 불이 옮겨붙으며 우린 매캐한 연기에 입을 소매로 막았다.
“망할, 물부터 찾아야겠어!”
“대장! 우선 뒷가지부터 꺼야 해요. 앞가지에는 불이 너무 심해요!”
“이 뒤쪽에 샘이 있습니다!”
“내가 날아서 도깨비들을 구하겠단 것이야!”
“우선은 돕겠어.”
그러나 놈들은 능숙하고, 재빨랐다.
목표를 끝마친 회귀자들이 부적을 내찢으며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비환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으억!”
“크러어엉!”
커다란 호랑이가 뛰어올라 비환의 목을 강제로 앞발로 내리쳐 눌렀다.
“그, 그만둬…… 커어억!”
그 커다란 비환의 몸을 짓누를 만큼 크고 강한 몸집의 대호大虎였다.
그리고 눈빛이 누군가를 향해왔다.
도깨비들이 태어나는 꿈의 나무가.
장렬하게 불타 버리는 그곳에서.
한 마리의 맹수가 날 바라보았다.
“간절히 뵙고 싶었어요. 스승님.”
거대한 호랑이가 날 보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