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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20화 (120/200)

나만 1회차 120화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사방 천지가 회귀자고 전생의 원수가 넘쳐나며 내 고환마저 위험하다.

도대체 어떤 일반인이 이런 세상을 악몽조차 꾸지 않고 견디겠는가?

‘난 특히 밴시들의 노래까지 들어서 악몽 꾸는 빈도가 아주 잦았지.’

어디 더군다나 그뿐인가.

최근 거친 전투 후에 매번 기절한 덕택에 괴상한 환상까지 보아왔다.

‘돌이켜 보니 나도 꽤 불안정한데.’

이런 정신상태로 참 잘도 버텼다.

회귀자처럼 미쳐가는 걸지 모른다.

언젠가는 단숨에 무너져 버릴지도.

그래도, 지금만은 버텨야 하지 않겠나.

“후.”

물론 회귀자도 악몽을 꾸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피폐한 정신상태를 고려하면 나보다 횟수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귀자와 내가 꾸는 악몽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회귀자에겐 죽음의 공포가 없다.’

회귀자는 나와 다르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차피 죽으면 회귀할 뿐이니까.

기껏해야 정신까지 닳게 해버리는 회귀나 밴시에 대한 악몽일 것이다.

‘수면자가 실감 나게 꾼 꿈일수록 사용되는 꿈의 효력이 증가한댔지.’

그럼 본인의 하나뿐인 목숨이 위협받는 악몽만 한 것이 없지 않겠나.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전생 탓에 회귀자가 나를 노려오는 공포 또한.

오로지 나만 꿀 수 있는 악몽이다.

“으, 으허허헉!”

“사, 상급 악몽을 3개나? 대체 얼마나 괴롭게 사는 건가, 저 인간!”

“으, 윽! 오지 마! 저리 꺼져라!”

걷기만 했을 뿐인데 수백의 불도깨비가 주저앉아버렸다.

주인 잃은 거대 야채가 방향을 주체 못 하고 요지경을 벗어나 사라졌다.

고작 세 개의 상급 악몽을 썼을 뿐인데 불도깨비들이 무력화되었다.

‘이놈들의 수준이 하급이라서 쉽게 겁에 질리는 것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악몽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현실기반 공포이다.

언제든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훨씬 공포가 진득한 것이다.

걷는다.

그저 조용히 시선만 마주해도 불도깨비는 마주하지 못하고 조아렸다.

“허억! 허어억!”

어느 불도깨비는 호흡곤란이 왔는지 숨을 헉헉댔고, 다른 도깨비는 창백한 얼굴로 오줌을 지려 버렸다.

다가선다.

웬 수컷 불도깨비가 눈물을 흘리며 사타구니 그걸 필사적으로 막았다.

“터, 터뜨리지 마!”

“나도 꿈에서 그 공포를 느꼈지.”

휘두른다.

내가 칼로 놈의 목을 베어버렸다.

[하급 불도깨비를 베었습니다.]

[적을 요지경서 쫓아냈습니다.]

[공적치가 조금 올랐습니다.]

“히익!”

“사, 살려주세요! 제발요!”

불도깨비들이 울며 내게 애원한다.

요지경에서 베어도 실제로 죽진 않지만 그만큼 겁에 질린 것이다.

사실 기분이 좀 씁쓸하기는 하다.

놈들이 느끼는 공포는 평상시 내가 악몽을 꾸며 느꼈던 공포와 같았다.

‘악몽을 꿀 때마다 이렇게까지 공포를 심하게 느꼈던 건가. 내가.’

티 내지는 않았지만 자고 일어날 때마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일이 많았다.

가끔은 회귀자의 미친 짓에 현기증 올라오거나 구토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절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난 두려워해선 안 됐으니까.

그래야만 내가 회귀자들에게 버림 받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테니까.

날 두려워하는 불도깨비들을 본다.

뭐랄까, 평소 애써 외면하던 나의 어두운 일면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으하하핫! 대단하다! 저 마검사!”

“과연 두령님이 데려온 인간이다!”

하급 불도깨비들이 무력화되자 도깨비 연합도 반격을 시작하였다.

도깨비들의 손에서 노란색, 하얀색, 검은색 구슬이 차례로 깨어졌다.

[뚱보도깨비 볼퉁이 앞니가 산토끼 보다 길게 자라는 잡몽(하급)을 꿨습니다.]

[대감도깨비 쌈배가 땅에서 금전 줍는 길몽(하급)을 꿨습니다.]

[외다리도깨비 동간이 고뿔에 걸리는 흉몽(하급)을 꿨습니다.]

귀에 쩔그렁거리는 소리가 스친다.

길몽은 아군의 행운을 증진시켰고 흉몽이 불도깨비들을 약화시켰다.

“콜록! 콜록!”

“푸에이취!”

독감 걸린 것처럼 콧물을 뿜어내며 기침하는 불도깨비들!

특히 우스운 건 잡몽의 효과였다.

앞니가 우스꽝스럽게 길어진 뚱보 도깨비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갔다.

“앞니로 물어 쓰러뜨려 준다! 콱!”

“으아악! 저리 가라!”

불도깨비가 비명을 지르며 흉악한 앞니를 피해서 헐레벌떡 도망쳤다.

나는 픽 웃음이 다 나왔다.

‘전쟁이라 해서 참혹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웃긴 면도 있군.’

확실히 해학적인 도깨비들 싸움이라 그런지 괴상망측한 측면이 많다.

고뿔에 걸린 데다 겁에 질린 불도깨비는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

[하급 불도깨비를 쫓아냈습니다!]

[요지경에서 모든 불도깨비를 쫓아낼 때까지 전쟁은 계속됩니다.]

[곧 2차 방어전이 시작됩니다!]

“와아아아!”

“못된 불쟁이 놈들을 혼내줬다!”

도깨비 연합이 얼쑤얼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첫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나는 몸을 감싸고 있던 공포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10분이 경과했습니다.]

[악몽이 끝났습니다.]

‘꿈의 사용 시간은 10분 정도인가.’

한 번 싸워보니 대충 감이 온다.

‘꿈’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몽전에서 최대한 아끼는 것이 유리하다.

정해진 수의 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형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 전쟁은 실감 나는 꿈을 많이 꾼 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다.

‘딱히 꾸고 싶다고 원하는 꿈이 꿔지는 것도 아니니 재능싸움이로군.’

어째서 도깨비들이 좋은 꿈을 꾸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몇몇 불도깨비들은 나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분명 첫 싸움인데 이렇게 몽전에 적응을 잘하는 인간은 처음이다!”

“대단한 마검사다! 소질이 있다!”

“끔찍한 악몽을 저렇게 많이 꾼다니! 도깨비로서 엄청나게 부럽다!”

저놈들 칭찬이야, 놀리는 거야?

헤르탄이 나에게 충고했다.

“범철. 초반부터 상급 악몽을 남용하면 후반까지 버티기가 힘듭니다.”

“괜찮아요. 스물 몇 개 더 있어서.”

“……이래저래 힘겨웠나 보군요.”

헤르탄이 나를 동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자 카티에가 얼른 다가와서는 나에게만 들리게 비장히 속삭였다.

“대장 고환은 내가 지킬 거예요.”

“그것참 너무 위로가 되는구나.”

“있어 봐요. 잘 쓰다듬어줄게요.”

“침착해봐. 그건 범죄가 아닐까?”

“어차피 딱히 싫어하지 않을 거잖아요? 나는 다 알고 있어요. 대장.”

“……넌 날 너무 잘 알아 탈이다.”

꿈이 없어 소외당한 퀸소히니베는 침울히 앉고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나도 꿈을 꿔보고 싶은 것이야.”

“꿈이 없다고 좌절할 것 없어요.”

“흥. 블라이넨은 이미 꿈이 있으니 나의 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이야.”

블라이넨이 그녀를 차분히 보았다.

“그럼 함께 꿀래요?”

“뭐?”

“같이 꿈을 꿔볼래요?”

블라이넨이 그녀에게 손 내밀었다.

두 여인이 서로를 가만히 보았다.

퀸소히니베는 뺨을 아주 살짝 붉히고는 그 손을 살며시 맞잡았다.

“블라이넨은 참 믿음직한 것이야.”

거참 못 봐주겠군.

그런데 그 순간, 평원이 울렸다.

[중급 불도깨비 500마리 습격!]

[어느 한 마리도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방어하십시오.]

[‘풀이’ 권능을 보유한 불도깨비 전사가 1마리 포함되어있습니다.]

평원 너머에 몰려오는 붉은 선.

하급 도깨비에 비해서 월등히 덩치가 클 뿐만 아니라 화기도 거셌다.

“하급 불도깨비들이 당했다!”

“우리의 부하들의 복수를 해주자!”

맹렬히 돌진해오는 불도깨비를 향해서 모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붉은색 구슬을 꺼내 든다.

이번에도 상급 악몽을 세 개나 사용하자 강력한 공포심이 깃들었다.

[전생의 부인에 관한 울분이 힘으로 변환되어 근력을 올려줍니다.]

[회귀의 차이서 오는 열등감이 적에게 증표 찍어 피해를 높입니다.]

[제자가 자신을 죽일 거란 불안감이 적들 기세를 누그러뜨립니다.]

온갖 부정적이고 어두운 꿈이 나를 휘감자 훨씬 전투력이 증대되었다.

그러나 중급 도깨비들은 하급보다 용감하고 쉽게 기가 죽지도 않았다.

“물러서지 마라!”

“저놈들을 끝내 버려!”

싸우기에 앞서서 카티에가 알려줬던 정보를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똑같은 꿈도 수면자가 느낀 감정에 따라 실현화 규모가 달라져요.’

나에게 악몽이란 현실 자체였다.

왜냐하면 지금 현실이 악몽이니까.

난 악몽을 휘감은 칼로 다가오는 중급 도깨비를 쉽게 도륙 내버렸다.

[중급 불도깨비를 찢었습니다.]

[적을 요지경서 쫓아냈습니다.]

[공적치가 적당량 올랐습니다.]

[중급 불도깨비를 찔렀습니다.]

[적을 요지경서 쫓아냈습니다.]

[공적치가 적당량 올랐습니다.]

…….

물론 내가 싸울 동안 일행도 그저 가만히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세 사람도 정신피폐한 회귀자답게 이따금 악몽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모두가 붉은색 구슬을 깨뜨렸다.

[블라이넨이 평생의 호적수에게 무시 받는 악몽(중급)을 꿨습니다.]

[카티에가 사랑하는 자에게 흉터가 생기는 악몽(중급)을 꿨습니다.]

[헤르탄이 섬겨온 자가 자기 요리를 거부한 악몽(중급)을 꿨습니다.]

“…….”

어째 죄다 나랑 관련된 악몽이냐.

하여간 중급 악몽을 꾼 일행도 공포심이 강화되어 전투력이 올랐다.

우리가 선두에 서서 불도깨비를 휩쓸자, 도깨비 연합도 기세를 올렸다.

“인간들이 저렇게 열심히 싸운다!”

“꿈 좀 꾸는 놈들이구나!”

“우리도 질 수 없다! 나아가자!”

도깨비 연합이 각종 길몽과 잡몽을 쓰면서 불도깨비와 맞서 싸웠다.

평범한 도깨비보다 힘과 불꽃이 월등히 강한 불도깨비지만, 우리의 기세에 밀려 나갈 수밖에는 없었다.

[불도깨비 화책이 진흙탕을 진탕 구르는 흉몽(중급)을 꿨습니다.]

[쇠뿔도깨비 의쇠가 진흙투성이의 육체를 깨끗이 정화하는 길몽(중급)을 꿨습니다.]

난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 놀랐다.

‘비슷한 꿈을 꿨다면 이렇게 서로의 효력을 상쇄할 수도 있군.’

놈들이 흉몽을 쓰더라도 재빠르게 길몽으로 저주를 상쇄하고 회복!

의쇠가 기세등등해서 외쳤다.

“몽전이라면 우리도 꽤 겪어봤다!”

아군의 기세가 한없이 치솟았지만 몇몇 도깨비는 눈물을 잔뜩 흘렸다.

“엉엉엉! 일하기가 너무 싫다!”

“세상이 너무나 고되고 외롭다!”

“부모님이 꿈에서 돌아가셨다!”

구슬픈 잡몽을 사용한 도깨비들!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쏟아낸 눈물이 홍수처럼 범람하며 불도깨비의 불꽃을 꺼뜨려 버렸다.

“끄아악! 이놈들 너무 비겁하다!”

“정정당당하게 힘으로 싸워라!”

하지만 도깨비 연합은 기세등등했다.

“몽환의 전쟁에서 정정당당이란 것이 말이나 되나! 이게 몽전이다!”

“싸우자! 이기자! 처음으로 불쟁이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시간이다!”

중급 불도깨비들마저 우리의 화력에 계속 밀려서 전멸까지 당도했다.

‘이제 저놈이 마지막이군.’

최후까지 생존한 도깨비 하나.

워낙 민첩하고 힘이 강력해서 다른 놈들과 달리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도깨비 연합이 놈을 크게 비웃었다.

“포기해라! 중급 불도깨비면 기껏해야 꾸는 꿈도 딱 그 수준이겠지!”

“네놈은 우리 상대가 못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크으…… 크아아악!”

마지막 남은 중급 도깨비가 꿈틀대더니 갑자기 붉은 구슬을 깨뜨렸다.

[불도깨비 힘발이 높은 옥상에서 떨어지는 악몽(상급)을 꿨습니다.]

[특정한 꿈에 ‘풀이’ 권능을 사용해 ‘거인화’ 요술이 시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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