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19화
도깨비들 간의 전쟁!
전생의 돌이 내리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전쟁을 종식시켜야만 한다.
‘귀찮게도 꼬여 버렸군.’
하필이면 지금 대기시간이 만료되어 전쟁종식과업이 내려질 줄이야.
어찌 됐건 과업이 내려졌으니 상황부터 파악하고 해결을 봐야 한다.
우선은 내가 두령을 올려다봤다.
“무슨 소리입니까? 예언이라뇨?”
도깨비 두령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나먼 옛날부터 예언이 내려왔었다! 가장 재능이 뛰어난 마검사가 불도깨비를 멸족시킬 것이라고! 그래서 우린 그 마검사를 기다려왔다! 불길이 조금 강력하다고 자기들 일족만 챙기고 거만한 불도깨비와의 전쟁에서 승전하기 위하여!”
“그 불도깨비를 멸해 버릴 예언 속의 마검사가 바로 저라는 겁니까?”
도깨비 두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지가 쌓인 도깨비라면 척 봐도 자질이 딱 보이거든! 내 평생 자네만 한 재능의 마검사를 본 적 없군!”
갑자기 우리가 탄 배를 전복시켰던 불도깨비의 말이 떠올랐다.
-마검사! 여기, 마검사가 있다! 그 놈을 죽여야 된다! 없애버려야 해!
그래서 놈이 나를 습격했던 거군.
가장 재능 있는 마검사가 불도깨비를 멸한다는 예언 때문에 말이다.
카티에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속삭였다.
“대장. 설마 도깨비들 간의 싸움에 관여할 생각이에요?”
“어쩔 수 없어. 도깨비들의 전쟁을 종식시키라는 과업이 생겨났거든.”
“상당히 까다로운 과제로군요.”
헤르탄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확실히 쉬운 과업은 아닌가 보군.
하지만 과업이라서 두령의 부탁을 들어준다곤 해도 맨입은 곤란하다.
“내가 도우면 뭘 해줄 거지?”
“도깨비는 늘 보상을 확실히 한다! 무엇을 원하나? 감투? 금은보화?”
도깨비 두령이 큰 손을 올려내자 신기한 아이템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금은보화부터 시작해서 괴상하게 생긴 은비녀, 금가락지까지 보였다.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일단 너희의 전쟁부터 종결시키고 나서 생각해 보도록 하지.”
“과연 일의 순서를 아는 마검사다! 조금 뒤면 불도깨비들이 쳐들어올 때다! 의쇠와 알솔은 안내해 줘라!”
“알겠다!”
“끄아앙! 우리를 따라와!”
긴 뿔 도깨비와 외눈도깨비가 앞장서 걸어갔고 난 누군가를 돌아봤다.
“너도 갈 거지?”
“일단은. 널 따라가면 이상하게 수련도 잘되는 편이고.”
블라이넨은 잘 맞지는 않아도 함께 전투할 때만큼은 굉장히 든든하다.
다만 그녀는 선을 확실히 그었다.
“하지만 예전에 말했다시피 불멸아귀를 죽이는 것까지는 돕지 않아.”
블라이넨의 목적은 소년왕의 백치를 치료키 위한 약을 구하는 거다.
그래서 불멸아귀가 보관하는 약만 바라볼 뿐, 죽이는 것엔 관심 없다.
나는 그런 그녀에 관해서 조금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휘젓고 말했다.
“가보자고. 전쟁 끝내러.”
***
“우선 1차 수비전이다! 오늘 밤 불도깨비 놈들이 쳐들어올 거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싸울 연합이다!”
수많은 도깨비는 안개 낀 평원에서 전쟁을 앞두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투를 준비하기보다는 대부분이 잠들어 있었다.
“커허어어어…… 커, 커! 드르렁!”
“까드득! 까득!”
코를 골고 이빨을 가는 도깨비들의 잠버릇에 귀가 거슬릴 지경이다.
뭐야? 전쟁 전에 잠이나 처자고.
“군기가 너무 빠진 것 아니야?”
그러나 카티에가 고개를 저었다.
“몽전夢戰이에요.”
“몽정夢精이라고?”
카티에가 날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대장. 귀가 먹었어요?”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 정말 몽정이라고 들렸는데.”
“실은 나도 그렇게 들린 것이야.”
퀸소히니베도 의아한 표정을 짓자 헤르탄이 말했다.
“도깨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피와 목숨이 오가는 현실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들은 꿈을 이용해서 싸우죠. 그래서 보통은 도깨비들 간의 전쟁을 몽전이라고 부릅니다.”
“꿈을 이용해 전쟁을 벌인다고요?”
헤르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쟁은 힘이 강한 쪽이 아니라 꿈을 잘 꾸는 쪽이 승리합니다.”
“꿈을 잘 꿔야 이기는 전쟁이라니. 별 희한한 싸움이 다 있는 것이야.”
나도 퀸소히니베의 생각과 같았다.
“도대체 꿈을 뭘 어떻게 이용해서 싸울 수 있다는 겁니까?”
“꿈을 이용한 싸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범철이 살인마에게 쫓기는 꿈을 꿨다고 칩시다.”
“예. 그래서요?”
“도깨비는 그 살인마의 힘을 현실에서 실현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나는 꽤나 놀랐다.
꿈에서 나온 허상의 힘을 현실에서도 발휘할 수 있다고?
“그건 완전히 무적 아닙니까? 신이 되는 꿈을 꾸면 신이 되는 거잖아요.”
“물론 당연히 실현화에는 각기 자질에 따라서 한계가 존재합니다. 수면자가 꿈을 어떻게 느꼈느냐에 따라서도 발현 수준이 크게 갈리지요.”
퀸소히니베가 입을 벌려 감탄했다.
“도깨비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런 능력을 쓸 수 있는 것이야?”
“아니에요. 특정한 장소에서만 가능하죠. 저런 요지경 같은 곳에서.”
블라이넨이 담뱃대를 물고 가리킨 평원에는 희한한 안개가 흘렀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넓은 평원이 일정하지 않고 일그러져 보였다.
[요지경瑤池鏡에 입장했습니다.]
[생리현상이 필요 없고 꿈을 실현화 가능한 몽환적인 공간입니다.]
하기야 몽환적인 영역 같긴 하군.
“도깨비들이 몽전을 벌이기 위해서 미리 요술을 쳐 놓은 거예요. 저만 하면 꼬박 사흘쯤은 유지되겠네요.”
“그런데 꼭 이렇게 번거롭게 싸워야 해? 무력으로만 겨뤄도 될 텐데.”
“꿈을 얼마나 잘 꾸느냐는 것은 도깨비들의 자존심이에요. 도깨비들은 힘이 센 자보다 신기한 꿈을 많이 꾸는 자를 훨씬 동경하거든요.”
그래서 저 도깨비들이 전쟁을 앞에 두고도 편히 잠만 자고 있는 거군.
하기야 꿈은 내 맘대로 꿔지지 않는다.
최대한 많이 자서 그나마 좋은 꿈을 노려보는 게 최선이려나.
수비전에 앞서서 깨어 있는 소수의 도깨비들이 웬 보따리를 나눠줬다.
“이게 뭐냐?”
“꿈 구슬이다! 보따리를 든 주인한테 각자 구슬이 생긴다! 수량은 최근 60일 동안 꾸었던 꿈으로만 한정되어 있으니 재주껏 활용해 써라!”
내가 홀쭉한 주머니를 받아든 순간, 놀랍게도 구슬이 수북이 쌓였다.
꿈 보따리에는 기묘한 구슬이 들어 있었는데 색깔이 가지각색이었다.
‘붉은색, 회색, 그리고 밤색까지. 어째 죄다 희한하게 알록달록하군.’
난 그중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이건……?’
신기하게도 구슬을 들여다보자 내가 꾸었던 꿈이 다시금 회상되었다.
누군지 모르게 얼굴만 희끄무레한 회귀자가 나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전생의 원수한테 살해당하는 꿈.’
구슬은 손으로 만져만 봐도 꿈의 대략적 효과도 직감할 수 있었다.
‘별로 썩 개운한 느낌은 아니군.’
카티에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대장. 어떤 꿈이 보여요?”
“원수한테 내가 살해당한다. 넌?”
“안됐네요. 난 손 잡는 꿈이에요.”
“누구랑?”
“절세미인이요. 회귀하면서 보아온 여자 중 제일 아름다운 미녀예요.”
카티에가 저렇게 극찬을 할 정도라면 정말 보통 미녀가 아니었나 본데?
그런데 어째선지 카티에가 나를 빤히 보며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왜 웃어? 내 이빨에 뭐 꼈냐?”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흐음, 보통 저런 경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던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보통 ‘길몽’은 여려 축복. ‘흉몽’은 강력한 저주. ‘악몽’은 공포를 다뤄요. ‘잡몽’은 속성이 정해져 있지 않아 무작위적인 효과가 꽤나 크구요. 드물지만 ‘음몽’, ‘예지몽’, ‘자각몽’도 각기 특수한 효과가 있어요.”
“몽전에서 일반적으로 실용적인 꿈은 당연히 ‘악몽’ 입니다. 꿈꾼 사람 본인이 가장 실감 나게 느끼니까요.”
알솔과 의쇠가 우리를 신기해했다.
“끄아앙! 우리가 얘기해 주려고 했던 건데 너흰 벌써 다 알고 있네!”
“꼭 미래를 알기라도 한 것 같다!”
퀸소히니베는 텅 빈 보따리를 보고는 아주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매일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는 바람에 구슬이 전혀 없는 것이야.”
“진심으로 부럽다. 이런 세상에서 고민도 없이 숙면할 수 있는 네가.”
“흥. 용에게 숙면은 강제적인 것이야. 나라고 설마 고민이 없을까?”
“됐고. 일단 후방으로 빠져 있어.”
헤르탄이 몽전에 앞서 경고했다.
“다들 명심하십시오. 몽전에서 우리가 아는 상식이란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가만히 있자니 입이 근질거렸는지 의쇠가 우리에게 충고해 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유의해라! 요지경에서는 죽더라도 저 구역에서 추방만 당할 뿐이다! 그러니 몽전에서는 마음껏 깽판을 쳐도 된다!”
그 말에 나는 손을 풀었다.
‘뭘 해도 죽지 않는 전쟁이니 마음껏 날뛰어도 상관없다는 소리군.’
알솔도 한마디를 덧붙였다.
“끄아앙! 그리고 전쟁에서 공적치를 많이 쌓으면 두령이 선물도 줘!”
그럼 활약할수록 보상이 크겠군.
우리에게 보따리를 나눠줬던 도깨비가 꽹과리를 시끄럽게 두들겼다.
“다들 일어나! 불쟁이 놈들이 온다!”
“쯔으으읏!”
“아이고! 잘 잤다!”
도깨비들이 기지개를 켜거나 하품을 하고는 각기 제자리로 움직였다.
저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듯 싶더니 붉은 점 수백 개가 엄습했다.
멀리서만 봐도 눈알이 따가울 만큼 이글거리는 열기의 도깨비들이었다.
[하급 불도깨비 300마리의 습격!]
[어느 한 마리도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방어하십시오.]
“불쟁이 놈들이다!”
“전부 끝내버려!”
가지각색의 도깨비들이 저편에서 돌진해오는 불도깨비한테 달려간다.
도깨비들의 전쟁에 딱히 지휘나 배열, 그런 것은 전혀 존재치 않았다.
‘정말 이끌리는 대로만 싸우는군.’
뭐, 적들도 마찬가지이니 상관없나.
불도깨비들은 화기를 내뿜으며 돌격해 아군도깨비들을 마구 태웠다.
그러나 나는 냉담하게 평가했다.
‘배에 쳐들어왔던 그놈보다는 덩치가 작군. 화기도 훨씬 약하고.’
내가 조개에 소금을 팍 뿌리자 길고 예리한 칼날이 철컥 올라왔다.
그리고 내 방향으로 거칠게 돌격해 오는 넓적한 불도깨비에게 달렸다.
“인간 놈도 있었군! 죽어라!”
불도깨비의 전신은 항상 화염으로 이글거려서 쇠붙이는 녹을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불도깨비를 검으로 베었을 땐 칼날이 흐물흐물 녹았다.
그러나 난 빠르게 뛰어 스치듯 불도깨비 가슴을 힘차게 베어버렸다.
“아악!”
가슴을 베인 불도깨비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모으곤 형체가 사라졌다.
[하급 불도깨비를 베었습니다.]
[적을 요지경에서 쫓아냈습니다.]
[공적치가 조금 올랐습니다.]
용왕의 국검은 쇠붙이지만 화기에 절대 훼손되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용궁까지 다녀온 보람이 있군.’
불도깨비를 얼마든지 베어도 무방!
내가 불도깨비를 벨 때마다 놈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사라졌다.
‘베고 찢어도 요지경에서 쫓겨나갈 뿐이니 마음껏 사냥하기 간편하군.’
내가 베어버리는 불도깨비 숫자가 늘어나자 놈들도 내 존재를 눈치챘다.
“웬 인간 놈이 건방지게 강하다!”
“어쩔 수 없다! 이르지만 꿈을 써 버리자!”
한 불도깨비가 노란색 구슬을 깨뜨리자 커다란 야채들이 마구 굴러 나왔다.
[불도깨비 감배가 거대호박이 구르는 잡몽(하급)을 꿨습니다.]
[불도깨비 책강이 거대가지가 구르는 잡몽(하급)을 꿨습니다.]
[불도깨비 톱발이 거대당근이 구르는 잡몽(하급)을 꿨습니다.]
잡몽.
우리들이 가장 흔하게 꾸는 꿈.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개꿈이다.
굴러가는 커다란 야채들이 도깨비들을 마구 짓밟으며 뭉개 버렸다.
그러나 요지경의 경계 밖까지 굴러간 호박은 그대로 없어지고 말았다.
꿈을 실현화시킨 요술은 요지경을 벗어나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꿈 효과는 여기서만 유지되는군.’
아군도깨비들도 상처를 입고서 요지경에서 마구 도망쳐 사라졌다.
“어이고!”
“분하다!”
불도깨비들은 거대 야채에 화염을 더하고 빠르게 굴려 아군을 뭉갰다.
“크하핫!”
“얼른얼른 도망쳐라!”
“너희들한테 악몽을 선사해 준다!”
우리한테 악몽을 선사하겠다고?
불도깨비들이 이쪽으로 뛰어온다.
카티에가 다급히 소리쳤다.
“대장, 위험해요!”
그러나 나는 피하지 않는다.
적들에게는 아주 불행하게도.
요즘 내가 악몽에 너무 시달렸다.
“악몽은 이런 게 바로 악몽이지.”
붉은색 구슬 세 개를 부숴 버린다.
[전생원수에게 죽는 악몽(상급)!]
[회귀자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투기가 되어 반경을 에워쌉니다.]
[신도에게 먹히는 악몽(상급)!]
[잡아먹힐지 모른다는 불안이 검에 배어들어 포식을 갈구합니다.]
[고환 씹어 먹히는 악몽(상급)!]
[불알이 깨물려 터지는 공포가 쳐다본 대상에게 엄습합니다.]
평생을 뜨겁게 타오르는 불도깨비들이 나에 의해 모조리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