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16화
“완벽한 수술은 아니었습니다.”
헤르탄이 상황을 부연해 설명했다.
“오른쪽 갈비뼈에 긁히는 바람에 간 끝이 조금 부서졌으니까요.”
“하지만 생명엔 지장 없단 거죠?”
“간은 신체 중에서 가장 재생이 빠른 부위니까요.”
어디선가 간은 70%가 부서져도 재생 가능한 유일한 부위라 들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 부서진 것 정도로는 별다르게 무리가 없는 것이다.
“해부학적 지식이 그리 깊지는 못합니다만. 간을 절반 떼이고도 살아 남은 회귀자들도 꽤나 많았습니다.”
헤르탄이 경험적으로 조언했다.
그러나 여린 면이 있는 퀸소히니베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양이었다.
“내 찰나의 실수 때문에 결국 그 성녀가 사망하게 될 것이야…….”
“비관적인 비약이 심하지 않냐?”
“그럼 평생을 내 서투른 손 때문에 후유증을 앓으며 살아갈 것이야.”
여의사에 얼마나 몰입했는지 의술적인 죄책감까지 느끼는 그녀였다.
내가 의외라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카티에랑 그렇게 앙숙이었으면서 걱정은 또 잘한다?”
“흥.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그렇지, 내가 설마 죽기까지 바랄까?”
퀸소히니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무룩한 그녀의 곁으로 블라이넨이 조용히 다가와 위로를 건네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역시 블라이넨만이 나의 슬픈 심정을 아주 잘 위로해 주는 것이야.”
“당신에게만은 꽤 눈이 가서요.”
“어머, 실은 나도…….”
어느덧 서로 호감을 표시해 가며 단란하게 가까워지는 두 여자의 모습에 고갤 휘젓고 난 카티에에게 다가갔다.
저장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그녀가 잔뜩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내가 아담한 그녀를 안아 들었다.
“딴 데 가자. 바닥이 차다.”
“대장, 나 아파요.”
“그러게 누가 함부로 간을 빼놓고 다니랬어? 하여간 미쳐서는.”
내가 핀잔을 주자 카티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얼굴을 붉혔다.
“그때는 내가 제정신 아니었어요.”
“그럼 지금은 제정신일까? 됐고 입이나 헹궈라. 담배 냄새 옮겠다.”
“이상하게 몸이 고될 땐 나이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요.”
“피워봐. 담배보다는 몸에 좋겠지.”
“내 입술의 향기를 점검해 봐요.”
그것은 아주 간단한 행위였다.
미련함 때문일까?
29살이나 처먹었는데도 입술 떼는 순간을 정하기란 왜 이리 어려운지.
내가 말했다.
“달아. 입 안 헹궈도 되겠어.”
“…….”
카티에는 가만히 나를 보다가 입술을 꼭 깨물고는 낮게 말했다.
“내려줘요. 나 걸을 수 있어요.”
“엄살이셨군?”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얼른 앞서서 걸어갔다.
보통은 수줍음 타거나 토라졌다 추측할 행위지만 느낌이 약간 다르다.
난 눈치에 있어서만은 다른 이들보다 꽤나 앞선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필사적으로 뭔가 참는 기색인데.’
지금 그녀가 속으로 무엇을 참고 있는지 그다지 이해하고 싶진 않다.
“캬앙!”
백야가 생간 저장고에 놓인 간들을 정신없이 먹으며 행복하게 짖었다.
뱃가죽이 찢어졌던 애완수는 진즉에 카티에한테 치료받은 이후였다.
[백야가 행복에 흠뻑 젖습니다.]
[현재 주인에 대한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백야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주인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나 간이 신선하게 보관되어 있었는지 호감도가 폭주할 지경이다.
간을 먹고 나서 애교가 많은 백야는 카티에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캬아앙.”
“아주 앙증맞은 여우네요.”
카티에가 픽 웃었다.
그녀가 백야를 치료하고 나서 부쩍 애완수들의 호감도를 얻은 것이다.
초화가 얼마나 크게 놀랐었는지 아직까지도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백야를 치료해 줬어. 카티에는 엄청 착하고 고마운 친구야.”
“친구. 그 단어, 오랜만에 듣네요.”
“……나는 카티에한테 정말 뭐라도 해줄 거야. 받고 싶은 것 있어?”
카티에가 미소 지으며 초화의 머리 끝에 달린 꽃봉오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래요?”
“……우리 엄마는 너무 많으니까.”
초화가 깊이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모라고 부를래.”
“…….”
졸지에 두 조카를 두게 된 카티에는 그리 밝은 표정을 짓진 않았다.
***
“어쩐지 대장과 그 블라이넨이 함께 다니더라니. 이상하다 싶었어요.”
내가 전생의 돌에 관해 설명하자 카티에가 이해하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회귀자도 낚지 못한 물고기를 낚아야 한다구요?”
“그래, 모든 과업을 완료해야 전생 관련 특전을 얻는다고 했으니까.”
카티에가 턱을 만지며 가늠했다.
“쉬운 듯하지만 무척 어려운 과업이에요. 120회차에서 인류가 낚아보지 못한 물고기라니. 어디 흔해요?”
“맞아. 그나마 낚시재능을 발견해서 무난하게 쉬울 줄 알았는데 마냥 그런 것도 아니더라고.”
저장고의 문밖으로 나오는데 어인들 시체가 수산물처럼 흩어져 있다.
헤르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 어인들 시체는 뭡니까?”
“아, 그게…….”
뒤늦게 철파 교주와 찾아온 이야기를 풀자, 카티에는 심하게 경악했다.
“대형종파에 대장의 정체가 탄로 났단 말이에요? 거기다 그 망할 화비가 대장을 직접 찾아왔다구요?”
그 오징어 대가리 이름이 화비였나?
“그래, 죽였더니 시체는 사라지고 머리칼 몇 올만 있던데.”
헤르탄이 부연해서 설명했다.
“철파 교주는 분신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상당히 상대가 까다롭죠.”
그가 화비가 남기고 간 머리칼을 살피면서 말했다.
“범철이 상대했던 어인은 화비의 분신이었을 겁니다. 본체보다는 약하지만 검술이 매섭고 강하지요.”
본체가 그 오징어 대가리보다 훨씬 강할 거라고?
확실히 거물은 약한 녀석이 없군.
난 골치가 아파서 머리를 긁었다.
‘불멸아귀 죽이는 것만 해도 고민인데 과업부터 종교까지 막막하군.’
하여간 여러 문제가 앞길을 막을 때는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게 좋다.
나와 전생에서 가장 연이 깊을 카티에가 합류했으니 앞으로 과업대기 시간은 더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얼른 두 번째 과업을 완료해야 다음 과업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되도록 바다에서 벗어나기 전에 아무도 잡지 못한 어류를 잡아야 한다.
카티에는 완벽한 기억력으로 전생을 더듬으며 말했다.
“회귀자 누구도 잡지 못한 어류라면 당연히 강력한 물고기겠죠. 이 근방에 사는 대형 어류 중에서는 ‘심해아가리’라는 아주 포악한 녀석이 있는데, 분명 그 녀석이라면 아무리 노련한 낚시꾼도 낚지 못했을…….”
그러나 그녀의 말은 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멈칫 멈춰섰다.
그리곤 어인들의 시체를 바라본다.
‘잠깐. 이거 설마.’
“대장?”
내가 혹시나 하며 대구 대가리 어인에게 낚싯바늘을 꿰고 대를 당겼다.
그러자 곧바로 문구가 떠올랐다.
[어인 도적, 동달을 120회차에서 최초로 낚았습니다.]
[두 번째 과업을 완료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씩 오릅니다.]
“과업 완료했어.”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인도 어류에 포함되나 보다.”
그렇다.
그 어느 회귀자도 낚지 못한 어류라면 강력함보다는 희귀함 아닌가.
이번 회차에서나 처음 어인으로 변한 회귀자라면 분명 그 누구도 낚아 보지 못했을 어류가 분명하였다.
블라이넨이 담배 연기를 훅 뱉었다.
“의외로 싱겁게 과업을 달성했군.”
“차라리 매번 이렇게 싱거웠으면 좋겠다. 어째 매일이 자극적이라서.”
내가 구슬프게 답했다.
어인들의 시체를 뒤졌지만 의외로 이렇다 할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도적만 착용할 수 있거나 약탈의 효율을 높이는 장비뿐인데?”
“우선 대궐과 생간 저장고를 점거하고 보물을 전부 털려 했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정대궐의 보물창고로 향하였다.
“이쪽이에요.”
용궁에 와본 경험이 월등히 많은 카티에가 길잡이를 맡았다.
그런데 국고로 통하는 비밀의 문.
늙은 거북이는 분풀이하듯 어인 시체에 대고 박치기를 하고 있었다.
“이잇! 이잇! 이 우라질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와! 응?”
“대궐의 보물창고로 들어갈 건데.”
그러자 늙은 거북이 움찔하며 나를 돌아보더니 쉰 목소리를 내었다.
“오, 오늘 인간님 덕에 처음 나쁜 놈을 물어봤습니다요. 다 늙고 비루해져서야 퍼뜩 깨달은 것입니다요. 정말 나쁜 놈은 뒤통수를 물어뜯을 필요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요.”
“화를 낼 줄 알게 됐다면 다행이네. 그런데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그러나 거북이는 비키지 않았다.
“이곳에서 무슨 보물이든 가져가시든 좋으십니다요. 제 주제에 어떻게 인간님들을 막겠습니까요? 거기다 가져가실 자격도 충분하십니다요.”
늙은 거북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인간님께 딱 하나. 정말 간곡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요.”
“부탁?”
“적색대륙에 제 아내가 있습니다요. 참 작고 가녀린 친구인데, 헤어진 지 꽤 되어 너무 걱정됩니다요. 그러니 이걸 전해주시겠습니까요?”
늙은 거북이 조심스레 내민 것은 웬 동그란 흑진주였다.
아직 받아들지도 않았는데 늙은 거북이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한다.
“아이구! 우리 마누라 손주들이랑 잘 지낼는지 너무 걱정입니다요!”
먼산바라기 주막도 그렇고, 왜 기러기 부부들은 죄다 내게 부탁이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흑진주를 받아들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전해줄게. 그러니까 이따가 우리가 육지로 돌아갈 수 있게 마차나 다시 준비해 둬.”
“아이구우! 감사합니다요! 그야 아주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요?”
늙은 거북이가 뛸 듯이 기뻐했다.
뭐, 실제로 전해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린 대궐의 보물창고에 입장했다.
***
애석하게도 국고의 보물은 대부분이 금품과 사치품으로 쌓여 있었다.
평범한 세상이라면 산더미 같은 황금과 진주에 팔자가 뒤바뀔 것이다.
그러나 화폐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물물교환이 주가 되는 120회차 세상에서 진정한 보물은 손에 꼽혔다.
카티에가 척 보고 말했다.
“실용적인 것들만 챙겨서 가져가야겠어요. 나머진 짐만 될 테니까요.”
퀸소히니베는 수많은 금덩이 속으로 뛰어들더니 행복하게 헤엄쳤다.
“이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야!”
저렇게 딱딱한 금속을 헤집고도 몸이 멀쩡하다니, 용의 비늘이 부럽군.
천천히 걸으며 국고를 살펴보았다.
국고는 멸해 버린 대궐과 다르게 피해를 입지 않아 정돈된 모습이었다.
나는 곧장 화려한 무기를 살폈다.
창, 철퇴, 장궁, 비수, 화살 등등!
그중에서 가장 많은 건 검이었다.
‘마침 적당한 검이 필요했었는데.’
단검만 쓰자니 손에 감질이 났다.
‘역시 내 손에는 장검이 딱이야.’
따개비가 덕지덕지 묻은 옛 검부터, 칼자루에 화려한 청석이 장식된 보검,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지만 칼날 대신 해초가 달린 검까지 있다.
카티에가 내게 다가와 블라이넨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몰래 속삭였다.
“전생에도 와본 곳이라 어느 검이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지 알아요. 대장한테 딱 맞는 검을 골라줄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내가 가져갈 것은 정해졌으니까.”
별의별 무구가 다 있었지만,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서 검을 골랐다.
SSS급 보물탐색재능!
어느 것이 가장 훌륭한 검인지는 딱 보기만 해도 바로 감이 잡혔다.
그래서 내가 주운 것은 바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길쭉한 조개였다.
「해감 되지 않은 맛조개」
못생긴 조개. 구워봤자 맛도 없다.
카티에가 날 가엾게 바라보았다.
“대장. 배고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