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115화 (115/200)

나만 1회차 115화

스승님.

나를 저런 호칭으로 부를 만한 회귀자는 내가 알기로는 단 둘뿐이다.

“……일생신교의 교주냐?”

“예.”

오징어 대가리 어인이 즉각 답했다.

“범파냐. 아니면 철파?”

“저급한 잡범과 비교치 마십시오.”

그럼 철파의 교주로군.

전생에서 내 사지를 절단한 제자.

보통 미친놈은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 물고기 대가리가 되면서까지 날 뒤쫓아 올 줄은 전혀 몰랐다.

“오징어 대가리를 하다니. 어느 신부댁에 함을 팔 처지에 놓인 거냐?”

“과연 헛소리도 여전하십니다. 지나치게 무탈하셨던 모양이네요.”

오징어 대가리 어인은 나의 근황을 가볍게 단정 짓고서 말했다.

“신도들을 데려올 수 있었지만 단 둘이서만 뵙고 싶었습니다. 스승님.”

“딱히 재회의 술잔이나 기울이려고 날 찾아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술판을 원하시면 차리겠습니다.”

“안주는 네 대가리가 적격이겠군.”

오징어 대가리가 어깨를 움찔했다.

곧 뭔가 낮고 기괴한 소릴 내었다.

잘 들어보니 그것은 웃음소리였다.

“늘 느끼지만 어느 회차는 변하지를 않으십니다. 그래서 스승님을 뵐 때면 즐겁습니다. 회귀자로서 변치 않는 사람을 만나는 건 드무니까.”

어인의 중저음만 아니었다면 꽤 유쾌하게 들렸을지도 모를 어투였다.

게다가 오징어 대가리라서 도저히 이 대화에 적응하지를 못하겠어.

내가 짜증 나는 투로 빈정거렸다.

“면상이 오징어라서 표정을 읽기도 어렵다. 원래가 그따위로 생겼냐?”

“예. 저는 실제로도 못생겼어요.”

쉽게 감정의 동요도 하지 않는다.

궤변으로도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회귀자라면 꽤나 상대가 어려운데.

내가 놈을 경계하며 물었다.

“전생에서 네가 나의 사지를 절단했었다고 들었다. 그거 왜 그랬냐?”

오징어 대가리가 엄격히 지적했다.

“정확히는 삼지절단이었습니다. 왼팔은 어깨 근처까지 남아서 완벽한 절단이라고 보기 힘들었으니까요.”

미친 소리에 현기증이 날 것 같군.

“사지는 삼지든 그건 중요치 않아. 왜 스승이라는 나를 했냐는 거야.”

“스승님을 정말로 존경하니까요.”

저 자식은 스승에 대한 존경을 사지 절단해 표현하는 취미라도 있나.

“제가 전생에서 스승님 사지를 벨 수 있었던 것은 약물에 의한 효과와 함께한 동지들 덕분이었습니다.”

오징어 대가리가 회상하며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허무하더군요. 남에게 의존해 이룬 목표란 원체 허무합니다. 목표란 건 스스로 혼자 노력해 쟁취해야만 보람 있는 거죠.”

오징어 대가리가 비장하게 말한다.

그래 봤자 외관이 오징어 대가리라는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지만.

“그래서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아무것에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검만을 사용해 당신을 꺾고 싶습니다.”

기가 차서 웃음도 안 나온다.

블라이넨도 그렇고, 이놈도 그렇고.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나를 정당히 검으로 꺾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정직하게 검만 써서 나를 죽였다 치자. 그러면 네가 뭐를 얻는데?”

“회귀자에게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수많은 회귀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징어 대가리가 확고하게 말했다.

“저는 스승님의 뒤를 이어 불세출 검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베겠다는 거냐?”

“제 실력을 입증해야 하니까요. 스스로에게.”

장엄한 영웅이 된 오징어 대가리라.

그것참 동화로도, 괴담으로도 써먹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따로 없다.

“교주란 놈이 모시는 신한테 함부로 도전하고 살해한다 해도 되냐?”

“스승이시여. 당신은 내 신입니다. 그래서 일생신교가 탄생했고 당신 함자를 따서 철파를 창설했습니다.”

오징어 대가리가 칼자루를 쥐었다.

“살아가는 모든 삶이 스승님에 대한 사랑, 나의 신을 향한 신앙심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죽이고 싶어요. 당신을 죽여 삶을 완성하겠습니다.”

정말 보통 또라이가 아니다, 이놈.

“그런데 신을 살해한 교주를 과연 신도들이 가만히 놔두기나 할까?”

“누가 알겠습니까.”

오징어 대가리가 양팔을 펼쳤다.

놈이 다시금 말했다.

“스승님. 누가 알겠냐는 말입니다.”

그래, 이곳에는 목격자 따윈 없지.

녀석이 세력을 거동하지 않고 혼자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청출어람. 스승님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단어입니다. 그 단어를 스승님을 죽여 몸소 실현시키렵니다.”

참으로 신묘한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제자인 오징어 대가리가 진지하게 날 죽여서 뛰어넘고 싶단다.

제아무리 120회차 세상이 미쳤다지만 선을 미친 듯이 넘어서는군.

“내겐 ‘수제자’가 너 말고 또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범파 교주도 너랑 같은 사상을 가진 미친놈이냐?”

그러자 처음으로 오징어 대가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눈썹도 없지만 대충 느낌으로) 고개를 휘저었다.

“제가 스승님의 ‘수제자’ 입니다. 누구도 그 사실을 거부할 수 없어요.”

어째, 생각보다 반응이 민감한데?

그보다 철파의 교주를 만났으면, 나는 꼭 얻어야 할 정보가 있었다.

“듣자니 범파와 철파 중에서 누가 옳은지 나한테 선택받으려고 전쟁을 일으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건 걱정 마세요. 그리고 범파와 철파가 아니라, 철파와 범파입니다.”

참 우스운 일이다.

신도들은 날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고 두려워하며 벌벌 기는데, 교주라는 작자가 나를 죽이겠단다.

‘도대체 이 미친 종교는 얼마나 모순점이 많은 건지.’

전형적인 사이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손아귀에서 단검을 날카롭게 한 바퀴 굴렸다.

이놈과 블라이넨은 경우가 다르다.

블라이넨은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녀석이지만, 이 자식은 종교를 창설하고 날 죽이려는 영악한 회귀자다.

당연히 살려둘 이유 없는 것이다.

“경계가 빠르시군요.”

“네가 나한테 호의적이라면 애완수를 베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일부러 옅게 베었습니다. 싸우기 전에 이렇게 대화를 하기 위해서.”

거기까지가 대화의 종착역이었다.

내가 목을 찌르기 위해 달려들었고, 놈의 장검이 기습을 받아쳤다.

단검을 쉴 새 없이 휘두른다.

그러나 놈은 빈틈없이 받아쳤다.

“아까부터 보면서 쭉 느꼈었는데.”

오징어 대가리가 장검을 올려쳤다.

궤도를 읽힌 나의 단검이 검의 끄트머리에 처맞고 튕겨져 흐려진다.

나는 경계하며 몇 발짝 떨어졌다.

“혹시나 했더니, 예상대로입니다.”

오징어 대가리가 턱에 수염처럼 나 있는 다리들을 쓸면서 말했다.

“스승님의 검은 무뎌지셨습니다.”

저 평가를 들은 것은 두 번째다.

지금 단검만 들고 있어 평상시의 완전한 전투력을 낼 수가 없다지만.

강자의 관점에서 보기엔 확실히 내 검술은 전생보다 부족하다는 건가?

오징어 대가리가 넓적한 눈알을 굴려 나를 냉담히 바라보았다.

“고작 이래서야 제게서 팔다리를 지킬 수 있으시겠습니까?”

“생선 주둥이로 그딴 개소리해 봐야 비린내만 풍기니까, 아가리 여물어.”

“말투가 거칠어지셨군요. 심적으로 꽤나 몰리셨나 봅니다.”

흐음, 전생의 제자라서 그런가. 내 신경을 꽤 사납게 긁을 줄 아는데.

그러나 나도 눈치란 것이 있다.

‘강하다.’

확실하다.

놈은 검을 쓸 줄 아는 해산물이다.

확실히 내가 그간 맞서 싸워본 오징어 대가리 중에서 가히 최강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저놈보다 강한 검사를 상대해 본 전적이 있다.

‘블라이넨보다는 못한 검이로군.’

일전에 비록 완전한 승부는 아니었지만 블라이넨을 꺾었던 경험 있다.

그렇다면 당연한 것은 나답게 치졸하고 더러운 암수를 쓰는 것이다.

“인정해. 넌 내가 지금껏 검을 맞댄 오징어 중 최강이다. 왜냐면 직접 싸워본 오징어가 너밖에 없어.”

“참으로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하십시오.”

“너랑 범파 교주는 실력이 같냐?”

오징어 대가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연히 제가 우세합니다.”

“그럼 이상하군. 너보다 강한 검사랑 겨뤄본 기억이 있는데. 네가 내 ‘수제자’라더니 뭘 덜 배운 거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오징어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기에 나는 오징어의 심리를 파악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의 말에 오징어 대가리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간단히 눈치챌 수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분명히 스승님의 ‘수제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이 자식, 아니나 다를까 나의 ‘수제자’라는 호칭에 엄청 집착하는군.

그렇다면 심리를 무너뜨리긴 쉽다.

내 도발과 궤변은 격이 다르니까.

“그럼 아까 그게 너의 전부인가? 내 ‘수제자’치곤 꽤 실망스러운데.”

사실 나는 지금 꽤 긴장하고 있다.

이 자식은 확실히 실력자니까.

절대 내 뒤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카티에가 죽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도발은 어이가 없을 만큼 쉽게 먹혔다.

녀석이 칼을 꽉 쥐기 시작하였다.

저 자식, 침착 냉정한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열등감이 끔찍한가 본데?

“그 말,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놈이 칼을 내세우며 달려온다.

그러나 난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간격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범위에 들어왔을 때.

“물고기 대가리를 상대할 때에는.”

나는 단검을 집어던졌다.

당연하게도 놈은 간단히 쳐낸다.

그러나 내가 단검을 던진 것은 살해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장비를 바꾸기 위한 약간의 틈을.

“역시 이게 최고겠지.”

등에 멘 낚싯대를 손에다 쥐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 줄을 감아올리며 재빠르게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준비해!”

낚싯줄이란 얼마나 얇고 가는지 정신이 팔리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유일하게 걸리는 것은 낚싯바늘 끝에 달린 미끼이지만, 위장하면 그만.

특히나 거북이 등딱지는 용궁의 흔하디흔한 시체로 위장하기도 좋다.

“아이구우우우!”

곡소리를 내며 등껍질에 숨어 있는 거북이가 금세 딸려서 떠밀려 온다.

‘이걸로 뒤통수를 친다!’

낚싯줄에 딸린 거북이 등딱지로 적을 후리려면 높은 자질이 필요하다.

바로 SSS급 낚시 재능처럼 말이지.

낚싯줄 끝에 걸린 거북이 등딱지가 철퇴처럼 어인 뒤통수를 가격했다.

터격!

끔찍하고 둔탁한 타격음이 울린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뒤통수가 산산조각이 나고도 남았을 일격이다.

그러나 오징어 대가리는 비정상적이게 고개가 앞으로 꺾였다 수복됐다.

놈이 어이없어하며 비웃음 지었다.

“오징어는 연체동물입니다. 뒤통수 맞는다고 머리가 부서지겠습니까?”

“웬 헛소리냐? 네 머릴 왜 부숴?”

오징어 대가리는 그제야 자기 뒤통수를 거북이가 물고 있단 걸 알았다.

“크윽!”

오징어 대가리가 통증을 느끼며 거북이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떼어내려고 애를 쓰더라도 거북이의 무는 힘은 끔찍이 강하다.

나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오징어 대가리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설마?”

“아마.”

마나원천괴력술!

마나가 태워지며 힘이 솟구친다.

내가 낚싯대를 힘껏 당기자 거북이가 꽉 문 오징어 대가리가 낚여졌다.

낚싯줄이 팽팽해지며 오징어 대가리가 하늘 높이 솟구쳐 내게로 온다.

“이, 이런!”

놈이 내게 칼을 휘둘렀지만 공중에서는 검의 궤도가 격하게 한정된다.

또한, 놈은 공격을 피할 수 없지.

나의 주먹이 오징어 지느러미를 꽉 잡고 몸통을 걷어차서 찢어버렸다.

“크헉!”

오징어 대가리가 일부 파편이 날아가며 칼을 놓치고 뒤로 쓰러졌다.

내가 먹물 섞인 피를 털었다.

“말했잖아. 안주는 네 대가리라고.”

단검을 줍고 쓰러진 놈에게 간다.

머리 한쪽이 찢긴 오징어 대가리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꿈틀댄다.

“으어아…… 으아아억……!”

“꺼져. 기억도 안 나는 제자 놈아.”

놈의 대가리에 칼을 내리꽂았다.

***

철파 교주를 죽였다.

그렇게 확신하던 찰나.

오징어 대가리 시체가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펑, 하며 사라져 버렸다.

‘머리카락?’

어인의 시체가 있던 곳에 검은 머리칼 몇 올이 나풀거리며 날아갔다.

‘마법? 아니, 그런 것치곤 마나의 기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결국 본체가 아니었던 건가.

‘역시나. 어쩐지 회귀자 살해 재능이 아예 발동되지 않더라니.’

전에도 이 같은 경우가 있었다.

아크 리치도 마법을 쓴 분신에게도 회귀자 살해재능이 통하지 않았다.

‘회귀자 살해재능은 본체한테만 통한다. 이놈은 분신이었단 거겠지.’

철파의 교주.

결국 도대체 그놈은 뭐였을까.

그러다가 난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

카티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쯤 그녀의 수술도 끝났으리라.

“캬아…….”

배가 찢어진 백야가 점점 기운 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초화는 크게 훌쩍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빠. 백야가 너무 아파해.”

“카티에는 백야를 금방 치료할 수 있어. 지금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황급히 백야를 품에 안아 들고서 초조하게 저장고로 내려갔다.

마침 내려가니 양손에 핏자국이 흥건히 묻은 퀸소히니베가 딱 보였다.

“어떻게 됐어?”

퀸소히니베가 머리칼을 헝클었다.

“그 성녀의 간이 부서진 것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