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14화
내가 눈살 찌푸리고 상처를 봤다.
“네 회복마법으로도 완치 못 해?”
“간을 다시 집어넣기 위해서 출혈 멈추고 소독, 위생관리만 해놨어요.”
그래도 설마 저런 꼴이라니.
그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군.
카티에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대장. 내가 걱정되나요?”
“네가 그런 꼴인데 걱정 안 하면 내가 사람이냐?”
“내가 죽으면 울어줄 거예요?”
“재수 없게 그러다 진짜 죽는다.”
헤르탄은 간을 쥔 손과 그녀의 옆구리를 번갈아 보다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안 되겠습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틈에 비해서 손이 너무 큽니다.”
“…….”
나도 딱히 작은 손은 아닌데 말이지.
“그럼 카티에를 제외하고 우리 중에서 가장 손이 작은 사람은…….”
모두가 퀸소히니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티에와 퀸소히니베가 동시에 질색하며 경악했다.
“저 용에게 내 간을 맡기라구요?”
“저 성녀의 간을 넣으란 것이야?”
하지만 내가 단호히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네가 손이 제일 작잖아. 대체할 사람이 없다고.”
손이 훨씬 작은 초화도 있지만, 너무 어려 이런 일을 맡길 순 없다.
“제가 곁에서 보조해 드리겠습니다. 용왕의 마법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아주 어려운 작업도 아닙니다.”
“이런 건 해 본 적이 없단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잔뜩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간을 집었다.
“배밖에 간을 놔두는 것은 괜찮지만, 간이 뭉개지면 주인도 죽어요.”
카티에가 공포에 질려서 떨었다.
“저 용이 나를 회귀시킬 거예요.”
“자꾸 그딴 말을 지껄이면 지금 간을 확 부서뜨려주겠다는 것이야.”
“퀸소히니베. 위독한 환자에게 그런 경고는 독이 되고도 남습니다.”
어느새 카티에는 비운의 환자가 되어 있었고 퀸소히니베는 긴급수술을 감행하는 여의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간호사 헤르탄은 그녀의 곁에서 진땀을 빼면서 지도했다.
“간은 횡격막 아래 위치합니다. 우선 최대한 천천히 손을 넣고…….”
“……횡격막이 무엇인 것이야?”
“제발 살려줘요. 기껏 대장과 재회했는데 이제 와서 회귀하기 싫어.”
카티에가 울먹이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고, 사태는 악화되어갔다.
블라이넨은 무심하게 담뱃대 통에 평소와 다른 연초를 톡톡 채웠다.
“물어. 고통을 잊는 데 도움 돼.”
“다, 당신 도움은…….”
“굳이 싫다면…….”
“합!”
카티에가 물부리를 물었고, 블라이넨은 연기를 삼킬 수 있게 도왔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보던 내가 뭐라도 도우려고 움직이려던 찰나.
저장고의 계단 저편에서 통통하고 늙은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아이구, 인간님들! 엄청나게 큰일이 나버렸습니다요!”
“쉿. 조용히 해.”
카티에의 수술(?)에 방해되지 않게 나는 따로 거북이를 끌고 나왔다.
“무슨 일이지?”
어찌나 다급한지 평소 느릿느릿한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애원해댄다.
“지금 누가 용궁에 쳐들어와 있습니다요! 웬 잡것들이 글쎄, 대궐의 보물을 죄다 약탈하고 있습니다요!”
“뭐?”
망할, 그건 우리가 훔쳐야 하는데?
카티에를 찾느라 정신이 없어 보상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 일그러진 표정을 정의감으로 착각한 거북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인간님을 찾아오길 잘했습니다요! 사람 없다고 물건이나 훔치는 도적놈들은 싹 혼내줘야지 옳지요!”
“그놈들은 어디에 있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요! 저장고를 노려오는 것 같습니다요!”
때아닌 도적들이 침범해 우릴 방해하면 카티에의 목숨이 위험하다.
지금 카티에는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하니 나 혼자서라도 가봐야겠군.
“총 몇 놈이지?”
“거의 서른 명은 됩니다요! 그런데…… 혼자 가실 작정이십니까요?”
“아니.”
내가 거북이의 등딱지를 잡았다.
“너도 같이 가야지?”
***
무식하면 용감하다지만, 사실 세상엔 그보다 용감무쌍한 자들이 있다.
그건 바로 여러 번 사는 자들이다.
그러니 저렇게 황당무계한 짓도 아무렇지 않게 벌일 수 있는 거겠지?
“먼저 온 놈이냐? 이곳은 우리가 선점했으니 회귀하기 싫으면 비켜!”
내가 한숨 쉬면서 웃었다.
“물고기 대가리지만 물 나와서도 숨은 쉴 수 있나 봐? 거참 부럽네.”
지하통로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육체는 인간이지만, 머리는 생선 대가리인 어인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물고기 대가리로 변하는 저주서를 쓰면 용궁에 올 수 있다고 하더니.’
참나.
진짜로 물고기 대가리로 변해서 용궁으로 오는 회귀자가 있을 줄이야.
인어들 시체를 보고 난 다음에는 쳐들어온 어인 때까지 조우하게 되네.
“귀가 먹었냐? 비키라고!”
“귀도 없는 놈들한테서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은데.”
내가 태연스럽게 대꾸하자 어인 도적들이 아마도 어이없단 표정(대략 짐작이다)을 지으며 픽 웃어댔다.
가장 덩치가 크고 앞장선 문어 대가리 어인이 빨판을 뒤흔들며 말했다.
“너도 용궁까지 찾아왔다면 꽤나 실력 있는 회귀자겠지. 하지만 우리는 격이 다른 강자다. 어서 비켜라.”
어인이라 성대에도 영향이 가 있는지 인간의 것이 아닌 중저음이었다.
내가 즉시 대답했다.
“안 돼. 뒤에는 소중한 게 있어서.”
내 말을 오인한 어인 도적들이 욕심을 내면서 탐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어서지도 않고 말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너희는 내가 있는 이곳을 넘으려 하면 죽는다.”
어인들 중 누군가가 ‘하!’하고 비웃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횟감이 되고 싶다면 넘어오라고.”
내가 꺼내 든 단검을 보고서 어인들이 일제히 비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초보자군. 다수를 상대로, 탁 트인 정면에서 단검? 그런 검은 거리가 짧아 기습 아니면 힘들지.”
문어 대가리 어인이 단검보다 월등히 공격 범위가 긴 장검을 탁 두드렸다.
확실히 어인 도적들은 보기와 다르게 중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문어 대가리 어인이 걸어왔다.
“좋아, 말을 듣기 싫다면…….”
“일단 한 놈.”
내가 검을 긋자 문어 대가리 어인이 멈칫하더니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어인들이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짓자 내가 싱긋 웃었다.
“물고기 대가리라서 단숨에 목을 짐작해 긋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나는 검만 쥐면 어떤 생물의 급소라도 정확히 벨 수가 있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냥 할 수 있다. 나는.
“두 번째 횟감은 누가 될 거지?”
“이런, 제기랄! 죽여!”
어인들이 검을 뽑고 달려들었다.
내가 미리 호리병 뚜껑을 열자 두 애완수가 팍 튀어나왔다.
“……우엑, 괴물들. 비린내 나.”
“크르르!”
내게 단검을 역수로 쥐고 말했다.
“쓸자.”
두 애완수를 직접 대인전투에 참전 시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은 이전에 이따금 전투 연습을 할 때마다 나는 애완수들에게 말했다.
“전투에서는 신경 써줄 수 없어.”
그저 정신치유로만 애완수를 데리고 다닌다면 차라리 개를 키우겠다.
엄연히 전투원으로서 활동하지 못하면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힘겹다.
그러나 내 염려는 괜한 것이었다.
“……몽땅 비료로 만들래.”
“캬아앙!”
내가 단검으로 어인을 처치하는 동안, 두 애완수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초화가 뿌리로 달라붙어 어인의 기력을 흡수하고 꿀벌이 적을 쏜다.
“으아악! 벌! 벌이야!”
“도술! 도술로 이놈들 좀 치워줘!”
대구 대가리 어인이 후욱, 숨결을 들이마시고는 붉은 화염을 토했다.
그러자 초화가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기생하던 어인한테서 떨어졌다.
“……불타기 싫어!”
땅에 떨어지면 초화는 어인들에게 기가 막힌 먹잇감에 불과했다.
걸음이 워낙 느려 이리저리 옮겨붙으며 기생하는 게 전투법이니까.
‘드리아드라 그런지 불에 약하군.’
“……꺄악!”
어인들이 몰려들고 초화가 머리를 싸맸을 때, 내가 단검을 휘둘렀다.
촤악!
“……아빠?”
비린내 나는 피가 흠뻑 적셔졌다.
초화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대답 없이 어인들을 내그었다.
그러자 곧 초화는 굳은 표정을 짓고 다른 어인들에게 뛰어 기생했다.
“캬아앙!”
특히나 축지법을 익힌 백야는 현란한 움직임으로 어인들을 깨물었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예상 못 한 방향으로 바람처럼 튀어버리니 어인들은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인데 호흡도 잘 맞고 괜찮군.’
아직은 어린 애완수들이지만 충분히 제몫은 철저하게 하는 것이었다.
‘역시 괜히 잠재력 A급이 아니야.’
내가 걸어가 어인들의 목젖을 스치듯 뚫어 기도까지 그으며 생각했다.
‘단검만을 쓰는 전투는 처음 해보는데, 확실히 실용적이고 빠르군.’
단검은 빠르게 다니는 게 귀찮지만 기력의 가성비만큼은 매력적이었다.
어인들은 상당한 보물을 들고 있던 터라 반격 동작이 느렸고, 나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역시 도적질하는 잡놈이라 그런지 전투도 실력도 얼빵한 것들뿐이군.’
내가 피에 젖은 단검을 털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 둘뿐이군.”
“으으, 으!”
후방에서 겁에 질려 있던 어인이 허겁지겁 등을 돌려서 도망쳤다.
“제기랄! 신입! 안 되겠어. 가자고! 우선 지금 챙긴 보물만 해서……!”
신입이라 불린 어인은 유일하게 전투에 참전도 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푹.
어인의 등에 칼끝이 삐져나온다.
신입이라 불린 오징어 대가리 어인은 달려온 어인을 찔러 버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하극상에 어인이 피를 토하며 치를 떨었다.
“커헉! 왜, 왜……?”
“등을 돌리면 약자보다 못해지지.”
오징어 대가리 어인이 동료를 찌른 칼을 무참히 뽑고 피를 흩뿌렸다.
그리고는 인간의 것이 아닌 눈동자를 돌려서 천천히 나를 마주 보았다.
난 마지막 어인을 보면서 느꼈다.
다르다.
저놈은 앞선 놈들과 전혀 다르다.
‘왜일까. 어째서 경계심이 드는 거지?’
백야가 놈을 보며 으르렁댔다.
“크르르!”
내가 본능적으로 백야 앞에 손을 내렸다.
“가지 마.”
그러나 잔뜩 피에 취한 백야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돌격해 버렸다.
“캬아앙!”
축지법을 배운 덕분에 백야의 뜀박질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그러나 신입 어인은 천천히, 어찌 보면 아주 대충 칼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돌격하던 백야의 배가 크게 베이고 말았다.
“깽!”
백야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신입 어인이 백야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칼을 높이 들던 순간.
챙!
내가 달려가 단검으로 놈의 검을 쳐내고 재빨리 백야를 안아 들었다.
절호의 공격 기회였을 텐데 신입 어인은 기분 나쁘게 날 보기만 했다.
“……백야야!”
초화가 화들짝 놀라서 꾸물꾸물 다가와 백야를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뱃가죽이 베이긴 했지만, 곧바로 즉사할 만큼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분명 백야가 베이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몸을 비튼 덕분이었겠지.
“응급처치는 될 거다. 버텨라.”
“캬아…….”
카티에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별빛 회복으로 백야의 상처를 치유한다.
“초화야. 백야를 지키고 있어.”
“……응.”
초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백야의 상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그리고 축지법을 쓴 백야를 간단히 베어버린 녀석에게 시선을 돌린다.
‘놈의 검술은 절대 평범하지 않아.’
내가 마지막 어인을 노려봤다.
“넌 뭐냐?”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오징어 대가리가 조아렸다.
“실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