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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110화 (110/200)

나만 1회차 110화

바닷물에 빠지는 순간 척추골까지 시린 추위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온몸이 파도에 휘말려서 흔들린다.

아주 잠깐 눈앞이 새하얗게 아득해졌으나, 곧 사방은 아주 어두워졌다.

내가 마법으로 불을 밝히자 블라이넨이 뾰족한 뭔가를 잡고 말하였다.

“우리는 먹힌 것 같군.”

“……그런가 보네.”

미끄덩거리고 요동치는 혓바닥, 사방에 날카로운 이빨들, 그리고 악취.

우리 둘은 바다에 빠지는 순간 심해아가리에게 잡아먹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난 이빨을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블라이넨의 행동을 이해했다.

‘잘못 미끄러지면 바로 삼켜진다.’

헤르탄처럼 뱃속에서 생활할 자신이 없는 이상 삼켜지면 죽음이다.

나는 잇몸에다가 절명환각 단도를 힘껏 쑤셔 박고 자세를 고정했다.

“방법은 두 가지겠네. 탈출하거나, 이대로 둘이서 오붓하게 살거나.”

“전자가 나을 것 같군.”

블라이넨이 한껏 숨을 삼켰다.

심해아가리의 입 밖에서 쏠려오는 바닷물이 계속 우리를 괴롭혔다.

거기다 온갖 잔해물이 흉한 혓바닥이 마구 요동쳐서 중심 잡기 어렵다.

“그냥 나가는 건 자살행위겠는데.”

사납고 매섭게 부딪치는 이빨들!

신체 어느 부위도 잘리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천운에 가깝겠다.

“이것과 비슷한 크기 괴물한테 먹혀본 기억이 있어. 탈출은 간단해.”

블라이넨이 목구멍 저편을 보았다.

“식도로 뛰어든다. 목젖을 베어야 해. 그럼 토해져서 나갈 수 있어.”

“실수로 목젖을 베지 못한다면?”

“위장으로 삼켜져서 소화되겠지.”

“…….”

블라이넨은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회귀하면 되니까.”

“제발 가끔은 나 좀 신경 써가면서 말하면 안 되겠냐?”

“마땅한 이유가 머릿속에 없는데.”

하여간 저 얄미운 자식.

녀석은 위험천만한 일도 괜찮겠지만 불행히도 내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러니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목젖을 베려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 혓바닥이 치솟을 때 뛴다.”

블라이넨이 자세를 고치며 검을 쥐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뭐가?”

“네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날 봤다.

“그게 무슨 소리지? 혼자 뭘…….”

“검은 쓰지 않을 거야.”

굉장히 불편한 자세였지만, 진홍색 로브를 껴입었다.

***

[착용자의 수준이 낮아서 로브의 완전한 힘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마나회복속도와 전체적인 마나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모든 계열, 원소, 종류의 마법 파괴 경지가 3단계 상승합니다.]

[압도적인 투기를 발산합니다.]

진홍색 로브!

아크 리치를 죽이고 획득한 장비.

심해아가리만 한 초대형 몬스터를 상대로 꺼내 들 무기론 제격이었다.

[SSS급 마법재능이 진홍색 로브의 위력을 배가시킵니다.]

[육체의 해골화가 시작됩니다.]

[가멸찬 학살을 자행할수록 해골화가 신속하게 진행이 됩니다.]

진홍색 로브를 입는 순간, 전에 입었을 때보다 훨씬 느낌이 강렬했다.

그저 몸속에서부터 힘이란 것이 한 없이 폭발하는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마나가 모여져 나의 발이 한 뼘쯤 공중으로 떠올랐다.

[1서클 마법 ‘기름바닥’이 4서클 마법 ‘기름범람’으로 승급됩니다.]

[‘기름범람’은 붉은 사막에서 어느 랍비가 신비한 기름을 마시고 직접 고안해낸 독특한 마술입니다.]

“안 미끄러지게 꽉 잡아.”

내 손아귀에서 검은색 기름이 물줄기처럼 식도를 향해 콸콸 쏟아진다.

아무것도 모를 심해아가리의 목구멍은 기름을 꿀꺽꿀꺽 잘도 넘겼다.

몇십 통이 넘을 기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만큼이나 먹였으면 되겠지.’

나는 진홍색 로브를 다루는 데 이전보다 조금씩 능숙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해골화도 빨라지는 기색이지만.’

해골화를 피하기 위해선 들썩이는 투기를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순간 광명이 솟구친다.

[4서클 마법 ‘화기의 뱀’이 7서클 마법 ‘진혼말소’로 승급됩니다.]

[‘진혼말소’는 영혼마저 불태워버리는 악마적인 화염의 창입니다. 고대 시절, 아스크라 백작의 고유한 마법이었으며 이명은 불벼락입니다.]

양손에서 상급 마법진이 그려지는 동시에 이글거리는 창이 소환됐다.

블라이넨은 달아오른 화기에 시선을 돌리고 땀을 흘리며 입 벌렸다.

“너는…… 도대체……?”

말없이 타오르는 쌍창을 든다.

내던진다.

그야말로 악마처럼 타오르는 불꽃의 쌍창이 식도에 직격타를 먹였다.

화아아아악!

강렬한 빛이 어둠 저편에서 터지더니 뜨거운 화염의 파도가 밀려왔다.

마을 하나쯤은 남김없이 태워 버릴 불꽃의 학살이 저편에서 벌어진다.

빗물이 내려 온몸이 얼고 추운 바깥과 다르게 이곳은 고열 지옥이다.

“크어오아아워!”

심해아가리의 비명이 이곳까지 들리며 입속이 끔찍하게 요동쳤다.

블라이넨이 불길에 휘말리려고 하지 않으며 애를 쓰며 기막혀했다.

“난 목젖이나 베려고 했는데 넌 장기를 깡그리 불태워 아작 내는군.”

“나를 삼켰으면 최소한 그만한 위험은 감수해야지.”

어찌 됐건 몸속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심해아가리는 입을 활짝 벌리고 바닷물을 집어삼켰다.

그래 봤자 불타버린 장기를 수복하기에는 이미 늦었겠지만 이빨이 활짝 열린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물살이 거세기는 하지만, 역류를 타면 금방 나갈 수가 있어.’

다행히도 우리는 심해아가리의 입 속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가 있었다.

한참을 헤엄쳐서 수면으로 오른다.

“푸하!”

차가운 수면 위로 머릴 내밀고 손아귀에서 신호탄처럼 불꽃을 쐈다.

멀리서 부서진 쪽배가 다가온다.

“범철! 무사하십니까?”

“뭐, 괴물 아가리에 삼켜진 몸 상태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나는 배 위로 올라타자마자 곧바로 로브를 벗어젖혔다.

[해골화가 약간 진행됐습니다.]

[체중이 5킬로그램 줄었습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언데드의 기운이 강화되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번에는 체중감소로만 끝났군.’

마법을 쓸 때마다 살점이 소멸되어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은 끔찍했다.

조금만 더 로브를 오래 썼다면 체중이 심각하게 급감했을지 모른다.

배에 타서 고개를 돌리자 심해아가리가 입 밖으로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해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돌풍해역의 포식자, 심해아가리 단독학살에 성공했습니다.]

[마력이 10 오릅니다.]

[초대형 몬스터를 화염으로 작살 내 마법 경지가 크게 성장합니다.]

[최대 마나가 크게 상승합니다.]

[삼지창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우리가 산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눈물도 닦지 못하고 양손으로 블라이넨을 꼭 껴안았다.

그녀가 빤히 쳐다보자 퀸소히니베는 얼굴을 붉히곤 후다닥 떨어졌다.

“……그저 기뻐서 그랬던 것이야.”

“아는걸요.”

블라이넨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퀸소히니베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지긋지긋한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이 해역에서 낚시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용궁 가는 거북이를 찾아보죠.”

“아니요. 찾을 필요 없어졌습니다.”

“예?”

헤르탄이 저편을 가리켰다.

웬 동글동글한 생명체가 해수면 위로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요란해 와봤다 깜짝 놀랐구먼…… 심해아가리가 타죽다니…… 저놈아가 여기 지날 때마다 요란스럽게 굴더니…… 아주 경사여, 경사…….”

아주 늙은 거북이가 혼잣말을 중얼대며 수면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평범한 거북이라면 말을 할 줄 알 리가 없다.

“설마 저놈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해역의 포식자를 잡은 것이 도리어 행운이 됐군요.”

헤르탄이 노를 저어 다가가자 거북이가 화들짝 놀라선 흠칫했다.

“아이구우!”

“도망치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저 용궁으로 가려 하는 여행자입니다.”

헤르탄이 말하자 바다로 도망치려던 거북이가 멈칫하며 돌아봤다.

“여행자…… 시라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쪽 용왕님의 손거울도 직접 소유하고 있는데.”

내가 배낭에서 손거울을 꺼내 보여 주자 늙은 거북이 천천히 다가왔다.

노쇠하고 통통한 거북이가 아주 느릿느릿한 말투로 조곤조곤 말했다.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수정대궐에 초대를 받으신 분들이셨습니까요……? 참 반갑습니다요…….”

내가 좀 황당해서 물었다.

“말투가 좀 느려서 알아듣기 힘든데. 빨리 말할 수 없어?”

“그렇습니까요……? 참 죄송합니다요……. 제가 원래 물 밖으로만 나오면 말투가 호되게 느려서리…….”

늙은 거북이가 우리가 탄 쪽배를 보더니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아이구우……. 무슨 놈의 배가 완전 고물이 다 됐습니다요……. 얼른 이것으로 갈아타고 가시지요…….”

거북이의 느릿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포가 끊더니 무언가 올라왔다.

큼지막한 해마 두 마리가 이끄는 마차였는데 외양이 아주 화려했다.

보석을 좋아하는 퀸소히니베가 마차의 장식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아주 화려한 마차인 것이야.”

“다들 탑시다.”

우리는 해양마차에 승차했고 타고 있던 쪽배는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바다의 심층까지 헤엄쳐가는 마차 속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감탄했다.

“바다가 이렇게 넓은지 몰랐는데.”

마차를 끄는 해마들은 신기하게도 어두운 바다에서 밝은 빛을 뿜었다.

그래서 저 밖의 풍경이 잘 보인다.

무리 지어 다니는 정어리, 바닥을 기는 갑각류, 발광하는 산호초까지.

퀸소히니베도 내 곁에 가까이 붙어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신기한 광경인 것이야.”

반면에 우리와 달리 두 회귀자는 별 감흥도 없이 건조할 따름이다.

“용궁에선 어떻게 숨을 쉰다 했지?”

“공기와 압력을 조절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활, 수압, 호흡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만.”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나 보군.”

“예. 이제부터 긴장해야 합니다.”

내가 헤르탄을 돌아보았다.

“어째서 말입니까?”

“이전에 용궁에 도착하면 전투부터 치러야 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 기억하고 있어요.”

“먼저 묻겠습니다. 범철은 용왕이 어떤 인물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약간 날 시험하는 질문이군.

구미호를 포섭하기 위해 우린 용왕을 죽이고 간을 적출해 가야만 한다.

그럼 용왕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나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말했다.

“용왕은 우리가 죽일 악인입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죽일 만한 악인이 아니라면, 구미호가 용왕의 간을 가져달라고 했을 때 헤르탄이 귀띔해 줬을 테니까.”

헤르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범철의 추리력도 순조롭게 성장해가고 있군요.”

가끔은 언제나 침착한 헤르탄이 내 선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단 말이지.

“그 말대로 용왕은 악한 자입니다. 불로장생에 미쳐 육지생물이라면 모조리 간부터 빼먹는 작자니까요.”

회귀자와 여행할 때 장점이자 단점은 항시 스포일러를 듣는단 것이다.

최소한 지금만은 장점이 되겠지.

우리는 그에게서 미리 용궁에서 벌어질 전투에 관한 대비책을 들었다.

“처음에는 꽤 호의적이겠지만 속내는 적대적일 겁니다. 도착한 날 낮에는 기습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육지생물 간을 노리는 용왕이라니.

어째 쉬운 관문이 하나도 없군.

“용궁에 사는 심해민은 무척 강합니다. 마물도 마찬가지지요. 수중전투가 익숙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헤르탄은 수중전투에 관해서 간략히 설명했고 나는 의지를 다졌다.

‘용궁으로 온 이유는 간단하다.’

용왕의 간을 훔쳐 구미호를 포섭하고, 회차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즉.

‘불멸아귀가 사는 ‘천지’. 그곳에 가려면 꼭 용궁을 들려야만 한다.’

해저로 깊이 들어갈수록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숫자가 점점 적어진다.

가끔 머리에 발광체를 달고 있는 기괴한 심해어만 돌아다닐 뿐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환한 빛이 쏟아지더니 어두운 심해를 밝혔다.

“저곳이 바로 용궁입니다.”

거북이가 말한 대로 수정대궐을 중심으로 작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경관을 기대했던 나의 예상은 깨져 버렸다.

“완전히 개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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