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103화
그래, 냉정하게 보자면 이게 맞다.
애당초 먹이 좀 줬다고 모시던 주인을 바꾸는 애완수는 필요 없다.
거기다 죽이라고 명령했다고 망설임 없이 이전 주인을 살해해버렸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이다.
나중에 똑같은 상황에서 유혹에 홀리면 나도 배반할지 모르는 것이다.
“끼이이에.”
대왕지네가 메밀묵을 먹기 위해서인지 거만하게 나에게 접근해왔다.
나는 녀석의 비늘을 쓰다듬어주는 체하며 애완수의 능력치를 살폈다.
『대왕철강지네(이름 없음)』
특이사항: 소형 미궁의 지배자, 300년 살아온 영물.
힘: 314 체력: 427 민첩: 313 마력: 13 행운: 9
소지 스킬: 독니 깨물기(Lv7), 돌진(Lv5), 금속껍질(Lv8), 맹독(Passive)
주인에 대한 충성도: ‘배고프니까 먹이부터 내놔라. 허약한 인간.’
현재 건강상태: 배고픔(식욕 왕성)
잠재력: B급(꽤 훌륭함)
1,000년을 넘게 살아온 대왕지네. 어느 사악한 신선의 도술에 말려 애완수로 지낸 경험이 있다. 대왕답게 오만하며 유혹에 잘 흔들리는 성격.
+아직 주인에게 신뢰를 주지 않아서 어느 정보도 확인할 수 없음.
*호감도를 쌓을수록 대형철강지네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힘, 체력, 민첩의 합이 1,000을 넘어선다니. 정말 덩칫값을 하는군.’
대략적 능력치를 보니 과연 소형 미궁의 지배자란 호칭이 아깝지 않다.
“너를 ‘왕철’이라고 부르겠다.”
어차피 사냥할 녀석이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선 호감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름부터 지어주고 먹이를 주는 것이 적격이다.
내가 메밀묵을 감질나게 조금씩 꺼내주자 대왕지네가 더듬이를 떤다.
[SSS급 조련재능이 왕철의 호감도를 보다 빠르게 올려줍니다.]
[애완수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합니다.]
호감도가 오른 애완수의 정보를 나는 다시금 확인했다.
『왕철』
특이사항: 소형 미궁의 지배자, 300년 살아온 영물.
힘: 314 체력: 427 민첩: 313 마력: 13 행운: 9
소지 스킬: 독니 깨물기(Lv7), 돌진(Lv5), 금속껍질(Lv8), 맹독(Passive)
주인에 대한 충성도: ‘배고프니까 먹이부터 내놔라. 허약한 인간.’
현재 건강상태: 배고픔(식욕 왕성)
잠재력: B급(꽤 훌륭함)
1,000년을 넘게 살아온 대왕지네. 어느 사악한 신선의 도술에 말려 애완수로 지낸 경험이 있다. 대왕답게 오만하며 유혹에 잘 흔들리는 성격.
(새로운 정보 두 개 추가!)
+두 더듬이는 방향감각을 다루는 몹시 중요한 부위. 무척 예민해 조금만 건드려도 몹시 화를 낼 수 있다.
+허리 부근의 비늘이 유독 허약해 깨지기 쉽다. 신선한 맹수의 사체를 먹이면 비늘이 견고함을 되찾는다.
*호감도를 쌓을수록 왕철에 관해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사실 과거에 겪어봤던 경험으로 나는 한 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
‘내 애완수는 몹시 죽이기 손쉽다.’
반항심이 세더라도 일단 길들여졌기에 야생 때만큼 능력발휘를 하지 못한다.
거기다 일단 애완수로 길들인 덕에 세밀한 약점까지 파악한 것이다.
헤르탄과 퀸소히니베는 이런 나의 행동에 여러 의미로 감탄했다.
“그물로 묶어도 우리의 생존조차 확신할 수 없는 몬스터인데, 범철은 회귀한 저보다 앞서 걸으시는군요.”
“자기 애완수를 친다니. 내 노예는 적으로 두지 말아야겠단 것이야.”
뒤늦게 기절해 있던 블라이넨도 깨어나 그간 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블라이넨.”
“헤르탄. 네가 노화의 악신이었다니. 예상하지 못한 내가 멍청했군.”
황색대륙에서 반역자였던 헤르탄은 밀밭기사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거기다 헤르탄은 소년왕이 백치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연히 기사단장인 블라이넨과도 사이가 나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둘은 악수까지 나누었다.
“또 범철을 죽이러 왔습니까?”
“이번 회차는 잠시 휴전이야.”
“종전은 아니라는 의미군요.”
“언제든 깨질 가능성 있긴 하지.”
“블라이넨을 죽여도 됩니까?”
“언제든. 나도 네게 그럴 테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난 할 말을 잃었다.
“…….”
하여간 어찌 됐든 생물이 가장 방심할 때는 식사를 하고 있을 때이다.
‘진홍색 로브를 착용하면 강력한 화력의 마법을 쓸 수가 있겠지만.’
리치를 죽이고 얻은 진홍색 로브를 오래 쓰면 자칫 해골이 되어버린다.
위험한 순간까진 아끼는 게 좋다.
‘맹독이 퍼져서인가. 감각이 무뎌.’
어느새 팔뚝까지 검게 변색되어가는 오른팔 대신, 왼손에 칼을 쥔다.
사전회의를 마치고, 난 대왕지네의 몸뚱이를 재빨리 타고 올라 단도로 왼쪽 더듬이를 싹뚝 잘라버렸다.
“끼이에에엑!”
조금만 건드려도 화낸다는 더듬이를 잘라내자 대왕지네가 격분했다.
그러나 나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대왕지네가 이리저리 벽에 부딪혔다.
내가 쥔 것은 절명환각의 단도!
엘프 고을에서 획득한 보상으로, 적에게 높은 확률로 환각을 일으킨다.
거기다 방향감각을 담당하는 더듬이까지 잃자 대왕지네가 혼란스러워 했다.
“끼이에에에!”
귀청을 찢을 듯한 괴성을 지르며 대왕지네가 날 떼어내려 마구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대왕지네의 뒤통수를 꽉 붙잡고,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헤르탄!”
헤르탄이 아까와 같은 씨앗과 나무 뿌리를 올려 그물망을 생성했다.
평상시라면 절대 같은 함정에 두 번 걸리지 않겠지만, 혼란한 대왕지네는 넝쿨그물에 묶여 버리고 말았다.
[대왕철강지네가 상급 기력손실의 그물에 걸렸습니다.]
[대형 몬스터의 저항이 평소보다 심각해 함정효과가 감소합니다.]
[최소 15초간 무력화 상태가 되며, 20%의 기력을 손실합니다.]
“후웁!”
퀸소히니베가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 묶인 대왕지네를 겨냥했다.
“콰아아악!”
그녀의 입에서 쏟아진 벼락이 허리 부근의 비늘에 정확히 적중한다.
어떤 전투마법으로도 흠집조차 없던 대왕지네의 비늘이 갈라졌다.
블라이넨이 검기를 휘두른 쌍검을 휘둘러 갈라진 비늘을 박살 내었다.
“끼이에에엑!”
대왕지네가 또다시 비명을 토했고, 나는 쉴 틈 따윈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양다리를 비늘 틈에 고정한 내가 오른쪽 더듬이를 세차게 베었다.
[왕철이 마지막 남은 더듬이를 소실했습니다.]
[애완수가 방향감각을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책임감 있는 주인이라면 당장 애완수를 보살펴 치료해야 합니다.]
“끼이에에엑!”
대왕지네가 자신의 비늘이 다친 것도 생각하지 않고 벽에 마구 부딪혔다.
“크윽!”
결국 나는 놈에게서 떨어졌다.
대왕지네는 벽에 여러 번을 비틀대며 부딪치고는 자세를 크게 낮추었다.
헤르탄이 소리쳤다.
“놈이 땅속으로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물에서 벗어난 대왕지네가 재빠르게 흙을 파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만 놔두면 저놈을 놓친다!
“퀸소!”
내가 짧게 외치자 퀸소히니베가 대왕지네의 갈라진 비늘에 돌진했다.
그녀가 지네의 허리 부근을 꽉 붙잡았지만, 좀 느리게 끌려갈 뿐이었다.
퀸소히니베는 다급히 외쳤다.
“혼자서는 힘이 부족한 것이야!”
힘? 그거라면 적당한 기술이 있지.
내가 마나를 불태우자 양손이 푸른 빛으로 휘감겼다.
[마나원천의 괴력술(2단계)을 사용해 비기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재능의 영역이 광범위해 현 마법 경지에 맞는 괴력이 선택됩니다.]
[‘오래 산 지네를 집어삼키는 괴조의 힘’이 육체에 깃들었습니다!]
[체내의 모든 마나가 태워질 때까지, 상승한 괴력이 유지됩니다.]
[괴력술 비기 2단계의 효과로 일격이 오연격의 피해를 입힙니다.]
아크 리치를 죽이고 2단계로 승급한 마나 원천 괴력술의 비기!
내가 달려가 힘을 보태자 그 커다란 대왕지네가 구멍에서 쑥 뽑혔다.
“끼이이에엑!”
땅속으로 도망치는 데 실패한 대왕 지네가 지하통로를 부수며 나아갔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비늘이 까진 대왕지네의 허리에 올라타 단도를 뽑았다.
‘마나원천 괴력술 2단계.’
일격이 오연격으로 변화한다.
공격 한 방을 때려도 다섯 방 연이어 때리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단도로 일격을 입힐 때마다 무려 네 번의 타격이 복제해서 입혀진다.
서걱! 팍! 팍! 팍! 팍!
[20연격에 성공했습니다.]
[막대한 환각피해를 입힙니다.]
비늘이 파괴된 부위는 맨살이 드러나서 치명타를 입히기가 손쉬웠다.
거기다 비기로 확장된 괴력!
그렇지만 아직도 대왕지네의 숨통을 끊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체력이 400을 넘으니 죽이기도 쉽지 않군. 오래 살려두면 해가 된다.’
급소를 연속공격하고 있지만, 덩치가 덩치이니만큼 생명력이 질기다.
거기다 육체에서 허리는 급사를 할 만큼 치명적인 급소까진 아니었다.
그러나 내 계획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헤르탄이 흙 묻은 손으로 소리치자 그곳엔 붉은색 꽃이 피어나 있었다.
엘프 고을에서 획득한 폭화초 씨앗!
그가 그 씨앗을 완벽하게 급속성장 시켜 피워낸 것이다.
“이제 물러나!”
나와 퀸소히니베가 떨어지자, 대왕지네가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놈이 나아가는 진로에 이미 폭화초 한 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크 폭발을 일으키는 위험한 꽃!
콰아아아앙!
지하가 미친 듯이 흔들린다.
벽이 갈라지고 흙이 튀어나온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센 폭발에 멀리 있던 나조차 풍압에 밀렸다.
“끼이이……에에엑!”
폭화초의 폭발을 정면서 맞은 대왕지네는 머리 비늘이 산산 조각났다.
‘2단계에 오르고 나니 마나원천 괴력술의 마나 소모가 훨씬 빨라졌어.’
나는 사그라지는 마나를 느끼며 재빨리 대왕지네의 몸을 타고 올랐다.
“내가 머리!”
“허리를 맡지.”
블라이넨은 허리에 올라타 쌍검을 내리찍었고, 나는 머리를 도맡았다.
비늘이 깨진 머리를 향해 단도를 쥔 손을 높이 들고 고양시킨다.
[순간가속이 활성화됩니다.]
[요정장화가 가속 강화합니다.]
[속도 +95%! 지속시간 +3초!]
[6초 간 공격력 500% 증가!]
순간가속!
잠시 세상의 모든 것이 느려진다.
단도로 미친 듯이 내려찍자 마나원천 괴력술 효과가 겹쳐져 흡사 내 팔이 여러 개인 것처럼 보인다.
[연속되는 치명타를 입힙니다.]
[155연격에 성공했습니다!]
[영물의 질긴 생명을 뒤흔들만한 충격적인 연속 피해를 입힙니다!]
숨이 가빠져 온다.
칼을 쥔 손이 부서질 것 같다.
그러나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헤르탄, 퀸소히니베도 다가와 느려지는 공격에 참여했다.
이윽고, 내가 단도를 내려쳤을 때 생명이 끊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왕철이 수없는 환각피해를 입으며 절명합니다.]
[300년을 살아온 영물 사냥에 성공하였습니다!]
[고작 네 명에서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해 칭호 자격을 습득합니다.]
[영물의 독니를 모두 깨뜨리면 각자 고급등급 칭호를 얻게 됩니다.]
[마지막 일격을 선사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씩 오릅니다.]
상태창이 쉴 새 없이 떠오른다.
[애완수 왕철을 죽였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애완수를 두 번째로 살해해 큰 악명이 쌓입니다.]
[해당 행위를 반복하면 애완수들을 공포로 충성시킬 수 있으나, 유대감이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곤충 계열 애완수와의 호감도가 오르기 몹시 어렵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살해행각이었습니다.]
[애완수들이 호리병에 있어서 주인의 범죄행위를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영물 사냥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 기뻐할 틈이 없다.
순간가속으로 인한 탈진이 오기 전에, 얼른 쟁취해야 할 것이 존재했다.
나는 재빠르게 대왕지네의 허리를 단도로 파헤치며 해체했다.
[SSS급 보물탐색 재능이 몬스터 시체에서 희귀부위를 찾아냅니다.]
[항독의 핵을 손에 넣었습니다.]
맹독에 썩어가는 오른손에 항독의 핵을 터뜨리자, 빛이 휩싸였다.
[대왕철강지네의 항독소가 오른팔의 맹독을 완벽히 치유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나는 간신히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하다가 오른손 자를 뻔했네.
미리 SSS급 보물탐색 재능으로 대왕지네의 몸에 숨겨진 항독의 핵을 보지 못했다면 독니를 쓰다듬는 미친 짓 따윈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쳤어.’
이윽고 지쳐 버린 몸이 넘어진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날 받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