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101화 (101/200)

나만 1회차 101화

원예가 시절, 나의 단골이 말했다.

사기꾼이 웃으며 자기 진실을 털어 놓을 땐 이미 함정에 걸린 거라고.

그렇다면 함정에 빠졌다면 몸에 피를 묻혀서라도 뛰어나와야지 옳다.

“크헉!”

어차피 얻을 정보는 모두 얻었다.

간석이 고문당하기 싫어서 모든 죄를 고백했지만, 그건 명백한 착오였다.

놈은 모든 죄를 고백하더라도 어차피 죽도록 고문당할 것이었다.

“이, 이놈이! 커헉!”

대륙지배자의 숨통조차 끊어버린 나의 주먹은 아가리와 천적이었다.

주먹을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이빨이 보상처럼 한 개씩은 부러진다.

내 주먹에 피가 흥건히 묻자 퀸소히니베가 곁에서 염려했다.

“내 주먹이 훨씬 세단 것이야.”

“네가 잘못 치면 죽을 것 아니야?”

“과연 내 노예는 현명한 것이야.”

“개, 개자식들아! 큽, 커헛!”

회귀자에게 욕을 먹을 때마다 내가 바르게 살고 있단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왜, 왜! 언제 네놈을 죽인댔나?”

간석이 악을 쓰며 원성을 토했지만, 나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뻔하잖아. 우리를 없앨 생각이니까, 순순히 네 비밀을 털어놨겠지.”

“이……익……!”

내게 깔려서 처맞던 간석이 갑자기 뭐라 중얼대더니 안개가 피었다.

희뿌연 안개를 걷어지자 어느새 나는 볏짚을 깔아뭉갠 채 때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순간 나는 당황했다.

“뭐야? 어디 갔어?”

“중급 도술이야. 정신 차려.”

청색대륙 신선의 도술!

난생처음 상대하는 동쪽의 마법은 괴상하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위쪽.”

기척 감지가 예민한 블라이넨이 칼을 세우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간석은 박쥐처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개자식.”

그가 코에서 흐르는 피를 도포 소매로 깔끔히 닦으며 중얼거렸다.

나 때문에 이빨이 나가서인지 발음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났다.

“잠깐 방심했던 것은 인정하지. 그리고 네놈들은 여기서 죽을 거다.”

목소리에서 잔인함이 배어나온다.

내가 화기의 뱀을 쏘았지만, 간석은 도술을 부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그는 천장에서 한 걸음을 걷자, 수십 걸음의 거리를 이동했다.

‘제기랄! 움직임을 잡지 못하겠네.’

내가 이를 갈며 마법을 계속 쏘자, 블라이넨이 보다 못해 나를 말렸다.

“마나 낭비 그만해. 저만한 축지법은 일반 사격술로는 못 따라잡아.”

“낭비해도 넘쳐나는 마나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으니 네 말에 따르지.”

나는 손에서 불길을 사그라뜨렸다.

후, 진정하고 머리 좀 식혀보자.

녀석이 지하에서 가짜 나를 만들려는 목적이 악신의 소환을 위해서라고?

“노화의 악신이 그렇게나 강하냐?”

“소문만 들어봤어. 다만 일단 소환이 되면 그 회차가 끝나버린다지.”

“이번 회차가 끝난다니?”

“세상이 멸망한다는 의미지.”

간석이 부러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세계의 모든 것이 늙게 될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노인이 될 것이고, 노인은 유골로 쇠하며, 유골은 백토로 변할 것이다. 세상에서 늙지 않는 것은 오로지 악신을 숭배하는 내 집단뿐일 것이고!”

“아, 그거 말 참 더럽게 많네. 이빨 털린 주제에 입은 털고 싶냐?”

내가 짜증을 내자 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옳군. 서론이 참 길었다.”

“어엇?”

간석이 손을 뻗자 내 허리춤에 달린 호리병이 흔들리며 뚜껑이 열렸다.

그리고 흰색의 뭔가가 튀어나왔다.

[상급도술 ‘강취(强取)’가 발동됐습니다.]

[일생사의 신선이 호리병에서 애완수 ‘백야’를 강탈해갔습니다.]

“캬앙?”

호리병에서 강제로 탈출해 어리둥절한 백야가 간석의 손에 잡혀갔다.

내 애완수를 품에 끌어안은 간석이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킬킬 웃었다.

“내가 왜 네놈들한테 입문을 권유했겠나. 이 흰색 여우. 틀림없이 영물이겠지? 이것만 있으면 드디어 완전한 범철을 만들어낼 수 있어!”

그 완전한 범철께서는 네놈에게 아주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시다.

내가 놈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그 여우. 내려놔.”

“하, 너라면 순순히 내려놓겠나?”

“그랬겠지. 지금 말로 해주잖아.”

그러나 놈은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다.

“이 지하엔 나조차 무서워 손끝 하나 대지 못하는 것들이 도사리지.”

놈이 안개를 흩뿌리고 사라지며 남긴 것은 광기에 젖은 웃음소리뿐이었다.

“어디 한번 미쳐봐라. 회귀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한테 당해서!”

그와 동시에 지하의 외벽이 울리며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흐우우우……!

블라이넨이 흠칫 어깨를 떨고서는 새하얘진 얼굴로 두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곧바로 그녀가 칼을 거꾸로 쥐고 팔뚝을 피가 나도록 후벼 팠다.

하나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자존심 높은 그녀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오지 마. 제발 부탁이야. 제발.”

블라이넨이 식은땀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120회차 세상은 잔혹하다.

「크우흐으으……! 겁쟁이들!」

외벽에서 영체들이 튀어나온다.

회귀자를 백치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절대적인 천적.

밴시. 이곳, 청색대륙에서는 처녀귀신이라 부른다던가.

「흐흐흐, 나약한 인간이야……!」

「우리도 이제는 알게 됐어. 우리가 회귀자의 천적이란 것을……!」

「저 강한 검사가 우리한테는 쪽도 못 쓰고 당해버리네? 으흐흐…….」

「자아, 너희 두 인간도 저 검사처럼 우리한테 벌벌 기어보렴……!」

기고만장한 처녀귀신 떼가 우릴 향해 지극히 오만한 태도로 날아든다.

그리고 나와 퀸소히니베가 말했다.

“상황 급하니까 빨리 끝내자.”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것이야.”

* * *

「꺄아아악……! 아, 안 돼……!」

「미안해, 잘못했어어어어……!」

「소멸되고 싶지 않아아아……!」

처녀귀신이 비명 지르며 소멸된다.

마법은 영체를 처치하는 데 제격이었고, 퀸소히니베는 벼락을 뿜었다.

“콰아아악!”

콰가광!

용의 숨결은 단숨에 유령들도 처치할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보였다.

애당초 처녀귀신은 하급 몬스터다.

회귀자가 아니라면 그리 커다란 피해를 입을 만한 유령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처치를 해도 처녀귀신은 계속해 지하에서 도사렸다.

“아으……아아. 흐……흐흑…….”

블라이넨은 어찌나 두려운지 쏟은 눈물도 닦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유령에게 몸을 떠는 그녀는 불세출의 검사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었다.

“……으아……아으으……! 히끅!”

입 밖으로 말조차 잇지 못한다.

평상시 그토록 냉정한 그녀가 악몽을 꾼 소녀처럼 몸을 마구 떨었다.

뺨이 붉고 앳되게 딸꾹질하며 울먹이는 그녀가 나는 오히려 살가웠다.

매사 완벽하던 그녀도 결국 연약한 면이 존재하는 인간이란 것이니까.

“블라이넨?”

퀸소히니베가 불렀지만 블라이넨은 울음에 목이 막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떨리는 그 어깨를 손이 짚는다.

“우리가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야.”

놀랍게도 퀸소히니베가 떨고 있는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며 꼭 안았다.

그런 그녀가 나는 제법 의외였다.

여정에서 처음 만날 당시 퀸소히니베라면 시도조차 안 했을 행동이다.

‘그녀도 성숙해지고 있단 거겠지.’

퀸소히니베가 블라이넨의 눈물을 닦아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정신이 무너지면 포옹이 즉효란 것을 어느 성녀에게 배운 것이야.”

“미, 미안해요…… 흐흑…… 히끅!”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단 것이야. 우는 게 왜 부끄러운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미소 지으며 블라이넨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굳센 얼굴로 날 돌아본다.

“내 노예를 믿겠다는 것이야.”

블라이넨이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고, 퀸소히니베가 그녀를 보호한다.

그러니 가진 모든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여기, 오직 나뿐이다.

‘죽을힘 다해야겠군. 늘 그래왔듯.’

간석한테 백야가 납치를 당했다.

최대한 빨리 놈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야는 실패작들처럼 모습이 바뀌고 세뇌당할 것이다.

‘제아무리 도술을 썼더라도 지하에서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을 텐데.’

망할, 나도 회귀자처럼 도술 관련 전생 지식이 많다면 쫓기 쉬울 텐데.

우선은 지하부터 샅샅이 뒤져보려 할 때, 호리병 뚜껑이 또 열렸다.

자력으로 호리병에서 튀어나온 초화가 내 바짓단을 끌어당겼다.

“……아빠. 백야 없어졌어.”

“납치당했으니까. 지금 쫓아야 해.”

“……!”

초화가 조그만 눈썹을 비틀더니 아주 화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도와줄래.”

“네가?”

초화가 손을 뻗자 작은 마법진이 그려지며 통통한 꿀벌이 소환됐다.

“……내 동생 찾아줘.”

명령을 들은 꿀벌 떼가 백야를 쫓아서 윙윙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했다. 초화야. 가자!”

내 어깨 위로 초화가 올라탔고, 퀸소히니베는 블라이넨을 업었다.

꿀벌이 이끄는 대로 달려가고, 처녀귀신을 퇴치하며 아래로 내려간다.

그렇게 마침내 지하의 최하층.

사방에서 각종 시체 썩은 내와 소독약 비슷한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위이위잉!

“……꿀벌들이 여긴 못 오겠대.”

지독한 약초 냄새에 벌레를 내쫓는 성분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바닥에 나뒹구는 짐승의 뼈와 가죽, 살덩이들을 발로 차며 걸어간다.

저편에 유일한 방문이 존재했는데, 열린 문틈 사이로 빛이 뿜어졌다.

“저곳이 수상한 것이야.”

“쉿. 조용히 해.”

문틈을 바라보자 독특하게 쌓인 제단과 간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놈! 가만히 있지 못해!”

“크르르!”

간석이 백야에게 재갈을 물리려 했고, 백야는 휙휙 피하며 반항했다.

조용히 접근하려 했지만 방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제단의 종이 울렸다.

따라랑!

[소환의 제단이 침입자를 눈치챘습니다.]

간석이 바로 백야를 움켜잡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지하에 풀어놓은 처녀귀신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왔지?”

“총각귀신과 짝지어줘서 한을 풀어줬더니 금방 명계로 물러가던데.”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나는 대답 없이 방에 들어섰다.

나는 등 뒤 복도를 가득 채운 맹수의 시체들을 가리키며 걸었다.

“차라리 이렇게 고생스럽게 범철을 복제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진짜 범철을 찾아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라고 신을 찾으려고 안 해봤겠나? 그간 범철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회차 날린 회귀자가 한둘이 아냐.”

“그러냐? 하여간 됐고. 내 애완수나 내놔.”

“다시 대답하지. 내가 어째서?”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제안하지.”

“무엇을 말이지?”

“그 여우를 내게 돌려준다면…….”

내가 검지로 내 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신이라 여겨도 된다.”

“네놈을 써서 신을 창조하라고?”

간석이 픽 웃으며 나를 평가했다.

“네놈이야 머리칼이 밤색이니 따로 염색할 필요도 없겠군. 그저 수염만 기르면 돼. 인상이야 좀 다르지만.”

“내가 범철과 그렇게 닮았나?”

바로 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양심도 없나? 외형은 그다지 닮지도 않았어. 그 범철이면 좀 더 풍채가 좋으셔야지. 눈썹도 짙고 인상도 험악한 구석이 있어야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날 닮지 않았단 소릴 듣다니.

도대체 얼마나 신격화가 된 건지.

“제안을 수락하지 않겠다면, 주젤 바꾸지.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네 엉터리 일화를 지적해주려고. 1회차 시절의 범철 이야기 말이야.”

“엉터리라고? 허, 내가 지어낸 범철과의 일화에 얼마나 많은 이가 속았는데. 개연성은 이미 완벽하다고.”

“아니, 그 얘기는 완전히 틀렸어.”

나는 싱긋 웃었다.

“나는 붉은 머리칼의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용을 겁탈한 적도 없거든.”

“무슨 말도 안 되는…… 어?”

조금씩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간석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어느덧 표정이 갑자기 확 일그러졌다.

“칼을 잘 쓰고 처녀귀신조차 뚫어버리는 인간은…… 설마, 네놈.”

“지금!”

내가 외치자 퀸소히니베가 뒤쪽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벼락을 토했다.

“콰아아악!”

제단실이 빛으로 가득 찼고 기겁한 간석이 백야를 놓고 움츠러들었다.

그 사이, 내가 돌진해 백야를 빼앗아 품에 안았다.

“잠시 초화랑 함께 있어라.”

나는 초화를 어깨에서 떼어놓았다.

“……백야야!”

“캬아앙!”

초화가 얼른 가 백야를 꼭 안았다.

간석은 백야를 빼앗긴 것에 분해하지 않고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크흐…… 크하하하핫!”

그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범철. 네가 바로 범철이었어.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그러게. 안 됐어. 네가 그 확률이 적은 우연 때문에 죽을 테니까.”

내 주먹이 간석의 멱살을 잡고서 놈의 얼굴을 마구 후려쳐 때렸다.

얼굴이 곤죽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 가는 간석이 피를 토해냈다.

“크윽…… 일격에 끝내지 그래?”

“회귀자는 일격에 죽이지 않아. 너한테는 고통스러운 죽음이 최고지.”

간석이 피를 흘리며 비웃음 지었다.

“그게…… 네가 패배하는 이유다.”

그 순간, 제단실 바닥이 흔들리며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간석이 소형 미궁 지배자, 대왕철강지네를 땅속에서 불러왔습니다.]

[300년을 살아온 강력한 영물!]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대왕철강지네가 침입자를 처단합니다.]

“끼이이엑!”

길이가 5미터는 될법한 커다란 영물, 철강지네가 제단실에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대형 몬스터의 등장에 나는 간석을 놓치고야 말았다.

“이 근방 지하에서 제일 강력한 영물이다! 덩치가 너무 크고 강력해 세뇌하지는 못했지만, 그간 내게 맹수를 잡아와 준 것이 이놈이지. 조련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그가 킬킬 웃으며 대왕지네 뒤편으로 숨었고 나는 마법을 쏘았다.

‘빌어먹을, 저놈이 저렇게 강력한 영물을 애완수로 두고 있었다고?’

설마 저놈도 나처럼 영물을 조련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덩치에 비해서 민첩한 대왕지네가 나의 화염마법을 원천 차단했다.

불꽃이 지네비늘에 맞을 때마다 실금도 갈라내지 못하고 사그라진다.

“제기랄!”

“간석이 제단으로 가는 것이야!”

우리 일행 전원이 대왕지네를 공격했지만, 딱딱한 비늘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크하핫! 아둔한 자식! 막상 마주치니까 신이란 것도 별것 없잖아!”

간석은 걸레짝이 된 몸을 끌고 비틀대며 질기게도 제단에 도달했다.

그리곤 내가 말릴 새조차 없이 작게 주문을 외우자 제단이 빛났다.

[범철이 제단 방에 존재합니다.]

[본인과의 동화율 100%.]

[모든 조건이 갖춰졌습니다.]

[일생신교가 적대하는, 노화의 악신이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합니다!]

제단이 사악해 보이는 잿빛 안개를 불러오고 불길한 기운을 휘감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렁이는 그림자.

장대한 형체의 그것이 일어선다.

“신이시여!”

간석이 무릎을 꿇고서 통곡했다.

나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서로 죽게 될 때까지 싸우게 된다는 괴물.

노화의 악신이 이곳에 강림하였다.

나는 이를 꽉 악물었다.

‘빌어먹을!’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몰려 버렸다.

대왕지네만으로도 미치도록 버거운데, 악신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니.

제단에서 악신이 걸어서 내려왔다.

“오오, 오오오!”

간석은 엎드려서 감히 악신을 쳐다보지도 못했고, 나는 경악해버렸다.

끝내 완전히 드러난 악신의 자태.

선을 멸하고 태산도 멸한다는 지대한 악신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퍽 오래간만입니다. 범철.”

“……여기서 다 보네요. 헤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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