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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93화 (93/200)

나만 1회차 093화

“……야, 이 나쁜 언니야!”

솔이가 울며 절규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의 목에 칼을 세웠다.

회귀자들은 냉소적이고 대담한 그녀의 인질극에 크게 당황해버렸다.

가장 화려한 복장의 청년이 이를 갈았다.

“훗날 백룡의 무녀로 자라날 최상급 재목이다! 절대 손대지 말고 가만히 놔둬! 저걸 놓치면 우린 교주님 손에 회귀 당해 버릴 테니까!”

“하, 하지만 어떻게 해야……?”

상당히 방법은 해괴했지만, 어찌됐든 적 세력과의 대치 구도가 형성 됐다.

문턱을 넘어서며 회귀자가 들이닥쳤고 우리는 순식간에 포위당했다.

‘상황이 별반 좋지는 않군.’

수백의 검이 우릴 겨눴고 인질극으로 시간을 끄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오백이 넘는 회귀자를 뚫고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맞서 싸운다고 한들 저 많은 적들을 전멸시키는 건 더욱 힘겹다.

그럼 택할 선택지는 하나뿐이지.

“인질을 손에 쥔 것은 우리다. 그러니 지금 요구사항을 따라야겠지?”

전형적인 악당의 대사를 내뱉자, 화려한 복장의 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들한테 죽은 우리 쪽 신도만 스물이 넘어간다. 철파 놈들인가?”

그 질문에 대답할 가치가 없었다.

나는 촌장의 자택에 밀집한 모든 회귀자를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너희 중 누가 제일 검을 잘 쓰냐? 내게 이기면 인질을 풀어주지!”

순간 그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간 쥐죽은 듯 침묵이 맴돌았다.

“푸하핫!”

회귀자들이 입술을 한껏 일그러뜨리고서 비웃음을 킬킬 터뜨렸다.

“엘프를 구하는 영웅행세를 하려나 싶었더니, 아예 정의감에 취해버렸군.”

“그래. 자만심을 가질만해. 우리 쪽 애들 쓸어 넘기는걸 보니까 보통은 넘더라고. 그런데 이걸 어쩌나? 여기서 제일 검 잘 쓰는 양반은 이제껏 죽인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데.”

“쯧! 회귀하다 보면 꼭 저런 놈들이 있다고. 다 같이 회귀했는데 지 혼자 과거로 돌아온 줄 아는 머저리.”

회귀자들의 반응을 보자니 상당히 검에 자신 있는 놈들만 있나 보다.

하기야 주무장으로 검만 장비한 놈들이니 자신감은 말할 것도 없겠지.

‘숫자에서 밀리지만 두려울 것 없다. 우리에겐 인질이 있으니까.’

인질이 붙잡히면 범죄자의 요구에 응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요구조건에 화려한 복장의 청년이 오만하게 칼을 뽑았다.

“하필 범파를 상대로 검을 쓰다니. 넘치는 회귀자라도 급수가 있는 법인데.”

청년의 자세는 올바르고 빈틈없다.

쥐는 자세부터가 잡졸과는 달랐다.

“네가 여기서 제일 검을 잘 쓰냐?”

“당연하다. 그러니 지휘를 하겠지.”

“이름이 뭐냐?”

“오삭. 내게 죽으면 다음 회차에서 내 악명이나 퍼뜨려라. 네 이름은?”

“검을 마주 대면 알게 될 거다.”

“하, 가르쳐주지 않으시겠다. 상관 없어. 쥐어패서 뱉게 하면 되니까.”

승부의 개시 신호는 필요치 않았다.

오삭은 산보하는 것처럼 걸어왔고, 나는 발도 떼지 않고 가만히 있다.

숙련자에게만 보이는 반경까지 들어왔을 때, 양측 모두 검이 뻗는다.

챙!

우선, 일 검을 주고받는다.

일단 칼싸움이 시작되자 오삭의 칼부림은 과연 매섭고 공격적이었다.

산보하던 발걸음이 빨라지고 손놀림은 발걸음보다도 훨씬 신속하다.

챙! 채앵! 챙!

간결하고 현란한 검의 연속 동작!

범파라는 종파의 명칭과 어울리는 폭발적이고 호전적인 검술이다.

내가 검을 받아치며 뒷걸음질 치자 회귀자들이 여유롭게 비웃어댄다.

“저놈 저거 밀리는 것 좀 봐라!”

“오삭 장로님. 갖고 놀지 말고 후딱 끝내버립시다! 저놈 불쌍하네!”

그러나 모든 자가 비웃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은 웃지 못하였다.

검을 맞부딪치고, 내가 뒷걸음질 칠수록 오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대체 뭐냐?”

검의 하수가 언뜻 본다면 내가 밀리고 있다고 속단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검을 그리 많이 맞대고 시간이 흘러갔으나 난 기력손실이 거의 없다.

오히려 내가 한 발짝 뒷걸음질 칠 때마다 오삭은 눈에 띄게 지쳐갔다.

“크앗!”

기합을 불어넣고 힘을 넣은 일격.

적절한 속임수를 가미한 일 검이지만 그 흐름은 내 검에 차단당했다.

마침내 오삭은 땀에 흠뻑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검을 멈췄다.

“이, 이런…… 빌어먹을 새끼!”

“끝이냐? 그래도 꽤 버텼다.”

마구 악을 쓰는 솔이에게 손아귀를 깨물린 블라이넨이 넌지시 말했다.

“가지고 노는 건 그쯤에서 관둬.”

“이제 막 관두려 했어. 좀 심했냐?”

“…….”

우리 둘의 태연한 대화에 오삭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이었다.

힘을 뺐으니 방어는 관둘 때였다.

“이제는 나도 공격에 치중해볼까.”

칼을 양손으로 꺾어 쥐고 기력을 소진한 오삭을 거세게 밀어붙인다.

그는 막기에 급급했지만 나의 검은 괴물처럼 놈의 방어를 무너뜨렸다.

우리의 승부를 지켜보던 회귀자들의 눈동자가 점차 휘둥그레 커졌다.

“장로님께서…… 밀리시잖아?”

“뭐야, 장로님의 검술을 어떻게?”

“수없이 살았지만…… 장로님께서 칼로 저만큼 밀리는 것은 처음 봐.”

관객의 반응이 웅성거리며 진지해지더니 점차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오삭은 수하들 앞에서 자존심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그것과 검술 승부는 완전히 별개였다.

결국 마음이 급해진 그는 상황을 제대로 재지 않고 검을 들이밀었다.

“크아앗!”

칼부림이 시작된 이후로 놈과 나의 거리가 가장 가깝도록 좁혀진다.

숨결이 닿도록 놈이 다가왔으나.

나의 최종 평가는 변함이 없다.

“너는 블라이넨의 발끝도 안 돼.”

챙!

상대가 쥐고 있던 검이 날아간다.

“큭!”

오삭이 삐어버린 손목을 쥐고 경련을 호소하자, 나는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꿇어.”

“윽!”

무기를 잃고 승부에서 패배한 오삭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무릎 꿇었다.

그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거라 예상한 승부가 일방적으로 끝나버렸다.

회귀자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에 경악했다.

오삭이 손으로 흙바닥을 짚으려다 힘이 없어 고갤 처박고 악을 썼다.

“네놈…… 네놈은 대체 뭐 하는!”

“내 이름을 알고 싶다고?”

“크…… 크윽!”

그가 떨면서 숨을 멈춘다.

내가 뻗은 검이 놈의 목에 닿았다.

“그 범파의 교주란 놈한테 전해. 네가 모시는 신께서 여기 있다고.”

* * *

“장로님!”

“저놈이 감히 겁도 없이 범파의 장로를 무릎 꿇리고 목에 칼을 겨눠?”

“인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장로님을 꿇린 저 이단을 처치해라!”

명령권자가 정면승부에서 몰락하자, 범파 일원들은 이성을 잃었다.

인질이고 뭐고 회귀자들의 검이 모조리 나를 향해서 솟구친다.

하나 앞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전부 멈춰라!”

회귀자들이 주저하며 검을 멈췄다.

방금 크게 명령을 내린 것이 다름 아닌 패배한 오삭 본인이었으니까.

그는 승부에서 패배한 것보다 나의 정체 때문에 더욱 겁에 질려 있었다.

“다, 당신이…… 서, 설마, 당신이?”

그랬다.

구태여 내가 마법을 쓰지 않고 칼로만 싸워 대결한 것이 이래서였다.

앞서 이름만 밝히는 것보단 검으로 신분 입증하는 것이 효과적이니까.

오삭은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지 힘이 풀린 무릎을 덜덜 떨었다.

“처, 처, 처음 봤어. 마, 말로만 듣고, 그, 그림으로만 저, 접했었는데, 시, 실물은 처음으로 마, 만났다고.”

내가 몸소 신분을 밝혀서 얻는 이점은 몹시 많다.

우선, 우리에 대한 범파의 공격을 강제로 멈추게 만들 수 있다.

“무기를 겨누지 마라! 다들 공격하지 말라고! 이, 이분이 바로……!”

오삭이 창백한 얼굴로 감히 내 시선도 마주하지 못하고 더듬거릴 때.

핑!

“으억!”

갑자기 날아든 화살이 오삭의 뺨을 스치고 피를 주르륵 흐르게 했다.

화살이 쏘아진 곳을 보니 사격수가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인간보다 훨씬 시력이 뛰어난 솔이가 반색하며 펄쩍 뛰었다.

“아버지!”

나는 내심 놀라고 말았다.

‘그 산중턱에서 이 먼 곳까지 가늠하고 목표물을 맞혔다고?’

궁술에 재능이 없는 나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적인 사격술이다.

그저 화살은 한 대로 끝이 아니다.

고을에서 회귀자들에게 농락당했던 엘프들이 마을에 놓인 활을 쥐고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겨눴다.

엘프들이 시위를 당기는 족족 화살이 회귀자의 가슴에 정확히 박혔다.

“끄아악!”

“에, 엘프들이 어떻게?”

눈앞의 대결에만 집중하던 회귀자들이 그제야 모두 하늘을 올려봤다.

초음파를 쏟아내며 엘프를 무력화시키던 박쥐 떼가 깨끗이 사라졌다.

‘시간을 딱 맞췄군.’

나는 뻐근한 손목을 쓰다듬었다.

내가 구태여 별 이득도 없는 칼싸움까지 해가며 정체를 밝힌 이유.

그것은 바로 엘프들이 초음파로부터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자기 고향은 자기들이 지켜야지.’

내가 무슨 영웅도 아니고, 굳이 먼저 헌신할 의무 따윈 없는 것이다.

엘프들이 회귀자를 압도해버리는 이유는 비단 사격술만이 아니었다.

거칠게 이를 갈며 반격하려던 회귀자들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처, 처녀귀신이다!”

“도, 도망쳐! 백치가 되어버린다!”

“저리 가! 어서 꺼지라고!”

겁에 질린 꼬마들처럼 회귀자들은 혼비백산하며 고을로부터 도망친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블라이넨이 옆에서 넌지시 설명했다.

“밴시를 청색대륙에서는 처녀귀신이라고 부르지.”

그러나 막상 회귀자들이 무서워하며 손가락질한 허공에 아무도 없다.

‘회귀자들이 엘프를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이래서였군.’

엘프 특유의 환술!

맨손을 펼치고 주문을 외우는 엘프들이 회귀자들에게 암시를 걸었다.

그래서 현실에 없는 처녀귀신의 환상을 보고 겁에 잔뜩 질린 것이다.

“후퇴, 후퇴하라!”

회귀자들은 화살비와 처녀귀신 허상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도망쳤

도주하는 와중이라 오랏줄에 속박당한 몇몇 엘프들도 납치되는 것을 면했다.

되도록 도망친 잔당도 처리하고 싶었지만, 지도 외의 경로로 온 놈들이다.

숲으로만 도망쳤어도 엘프들의 추격을 벗어나지 못했을 텐데, 회귀자들은 각자 도망치며 부적을 찢었다.

그러자 그들의 몸이 거짓말처럼 스르륵 사라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놓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내 정체를 알게 됐으니, 다신 복수하러 오지도 못할 테지.’

하늘의 박쥐 떼를 처리한 퀸소히니베도 지상으로 내려와 복귀했다.

그녀는 마구 브레스를 쏟아내서 속이 아픈지 가슴을 쓸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벼락을 내뿜으니 박쥐들이 모두 놀라서 도망쳐 버린 것이야.”

“잘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흥. 그건 주인이 노예한테 해줘야 하는 행위인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려 버렸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지금 머리칼에 피 묻었는데.”

“내 손에는 땀이 묻었단 것이야. 역시나 내 노예는 피와 땀으로 젖었을 때가 가장 값져 보이는 것이야.”

“…….”

엘프 촌장이 서둘러 돌아왔고 솔이가 울먹이며 얼른 뛰어가 안겼다.

“으아앙! 아버지!”

“괜찮다. 솔이야.”

엘프 촌장은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우리한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회귀자로부터 고을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상황을 파악해보니 고을에서 엘프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회귀자들은 납치가 목적이었기에 목숨을 끊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자 엘프들의 시선은 나를 처음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처음엔 경계했지만 인간들이 있어 줘서 다행이야. 저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고을도 무사하지 못했겠지.”

“특히 저 남자, 아주 강해. 게다가 그런대로 선하기도 한 것 같아.”

[고을에 침입한 일생신교 신도(범파)들을 모두 쫓아냈습니다.]

[엘프 고을 공헌도가 쌓여 무기, 의복, 씨앗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촌장으로부터 아주 특별한 보상을 선물 받게 됩니다.]

“저희 고을을 지키는 데 힘써주시고 딸을 보호해주셨으니 여러분께는 최고의 보상을 선사해드리겠습니다.”

“무엇으로 말입니까?”

엘프 촌장이 나에게 활을 겨눴다.

“죽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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