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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84화 (84/200)

나만 1회차 084화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물은 부정할 수가 없다.

가슴에 상처 입은 자들이 얼마나 많이 종교에 의지해 구원받았을까?

그러나 회귀자의 세상에선 다르다.

“아, 깨어나셨습니까요?”

나는 방금 깨어난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둘러보았다.

덕돌은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도마 위에서 채소를 칼로 썰고 있었다.

내 몸은 옴짝달싹할 수 없게 오두막 기둥에 밧줄로 동여매져 있다.

일부러 기운 없고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놈의 방심을 유도한다.

“……왜 날 재우고 묶었지?”

“먹으려고요.”

“…….”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더니 덕돌은 당황해하며 코를 긁적였다.

“범철 님과 동침하겠다는 천박한 의미가 아닙니다요. 그냥 먹겠다고요.”

“알아. 그래서 얼굴 구긴 거야.”

“주무시느라 못 들으셨지요?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편식 안 할게요.”

덕돌은 천연스럽게 말하곤 국물 맛을 살리기 위해 무를 통통 썰었다.

내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청색대륙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식인을 하는 미친놈이었다니.”

배는 난파당하고 동료는 잃고.

어떻게 재수가 이렇게도 없냐.

그런데 덕돌은 도리어 당황했다.

“아, 아뇨? 제가 어떻게 인간을 먹습니까요? 그런 야만스러운 짓을.”

“그런데 나는 왜 먹으려고 하냐?”

“범철 님은 신이잖습니까? 그러니 먹어도 식인은 아니게 되는 거죠.”

내 청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궤변.

새삼 신앙심이라는 것에 감탄했다.

누가 봐도 반인륜적인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단 것이 소름 끼친다.

“신을 그렇게 믿고 숭배하면서, 왜 지금 나를 잡아먹겠다는 건데?”

“신의 눈알을 먹으면 솔개보다 뛰어난 시력을 얻습니다. 신의 고환을 먹으면 밤잠 못 이룰 정력을 얻습니다. 신의 힘은 먹어야 흡수됩니다.”

탕.

덕돌이 흙 묻은 양파를 식칼로 내려쳐 두 동강 내고 나를 마주 보았다.

“그렇다면 신 그 자체를 모두 먹은 인간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

“예. 신을 먹은 자는 신이 됩니다.”

“그래서 나를……?”

다시금 칼질이 시작된다.

비쩍 마른 당근이 송송 썰렸다.

“범철 님이 늘 부러웠습니다요. 모두가 숭배하고, 강하며, 재능 있지요. 저도 그걸 갖고 싶습니다. 비상하고 싶습니다. 전능해지고 싶어요.”

덕돌의 눈빛은 진솔하고 진지했다.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신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범철 님, 지금 당신을 먹겠습니다.”

“미친 새끼.”

나는 기어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동료들도 제법 미치긴 했는데, 너만큼 끔찍한 수준은 아니었다.”

“어, 음. 칭찬이십니까요?”

“……그래. 너 참 잘났다.”

내 헛소리에 순진하게 얼굴을 붉히는 저 자식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오늘로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일생신교를 믿는다는 청색대륙의 놈들은 죄다 너처럼 극성이냐?”

“지금은 탈퇴했지만, 제가 신식회에 속한 전적이 있긴 했습니다요.”

“신식회(神食會)라고?”

“범철 님을 잡아먹고 신과 하나가 되겠다는 결의를 품은 집단입니다.”

망할, 전생의 원수들은 양반이었네.

최소한 황색대륙의 원수들은 그나마 나를 멀쩡하게 죽이려 했었다.

그런데 청색대륙의 극렬 신자들은 나를 잡아먹기 위해서 움직인단다.

이쯤 되자 오히려 헛웃음 터진다.

‘진짜 미쳤네. 돌아버린 세상이야.’

덕돌은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에 숨이 죽은 야채를 모두 털어 넣었다.

내 신자는 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양념은 어느 쪽으로 해드릴까요?”

나는 그 끔찍한 질문에 이를 갈았다.

“……뭐가 있냐.”

“마늘과 계피가 있습니다. 말린 멸치도 있긴 한데 비린내가 싫어서.”

“마늘. 잡내 잡기엔 그게 좋겠네.”

“역시 범철 님이십니다. 맛을 아세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큭큭 웃었다.

“핏물은 미리 안 빼냐? 육류 잡냄새가 원래 핏물에서 나오는 건데.”

“그, 그런! 제가 어떻게 감히 범철 님의 귀한 피를 뺄 수 있겠습니까? 피와 살을 삼켜야 제 것이 되죠.”

그냥 가마솥에 산 채로 집어넣고 끓이겠단 말을 잘도 돌려 말하네.

놈은 식칼을 내려놓고 소매를 걷는 덕돌이 엄격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가마솥에 들어가시기 전, 옷은 모두 벗어주셔야겠습니다.”

“왜? 머리칼은 안 깎아주냐?”

“머리칼도 범철의 일부 아닙니까. 머리칼까지 전부 씹어 먹어야 비로소 완전한 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쪽으론 또 아주 철저하시군.

덕돌이 나의 옷깃에 손을 댔을 때.

내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덕돌.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못 맞춰주겠다.

나는 끝내 그에게 아주 슬픈 충격이 되어버릴 고백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신이 아니야.”

“아니요? 맞습니다. 범철 님은 신이세요. 정점 위에 올라선 1회차.”

너무 확고한 믿음이 담긴 목소리.

도대체 어디서부터 반박해야 할까.

내가 진지하게 설명했다.

“내가 정말 신이라면 너에게 잡혔을까? 그리고 네가 끓인 탕의 고기가 될까? 봐라. 나도 너처럼 먹고, 술 마시고, 우는 인간이야. 난 검으로 벼락을 찢거나 하늘을 가를 수 없어. 그저 남들보다 칼을 유독 잘 쓰도록 태어난 인간일 뿐이라고.”

그러나 덕돌은 완고히 고개를 저었다.

“120회차 세상입니다. 120회차요. 모두 죽고 회귀하고, 죽고 회귀하고…… 싹 다 미쳤어요. 하지만 범철 님만은 다르지요. 유일하게 맑은 인간성을 지키고 계십니다. 피폐한 이곳에서 범철 님이 신이 아니라면 누굴 감히 신이라 칭하겠습니까요?”

내가 인간성을 지키니까 신이라고?

모순적이고, 해괴한 논리로군.

‘어찌 됐건 저놈은 이미 끝났어.’

설득이고 뭐고 돌이키기엔 늦었다.

뭐, 애당초 갱생시키고 싶지 않다.

저렇게까지 미친 새끼를 뭣 하러.

나는 문득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옷 벗기면 천벌 받는다.”

“채소가 다 익었습니다. 지금 들어 가셔야 푹 익으실 겁니다. 범철 님.”

덕돌은 거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의 상의를 벗기려고 손을 댔다.

그리고 천벌이 시작되었다.

“익게 될 건 너지.”

“어?”

그때 굵은 밧줄이 칭칭 얽매인 손목으로부터 매서운 불길이 솟구쳤다.

“으악!”

덕돌이 뜨거운 화기에 놀라서 뒷걸음질 치며 물러선다.

화염에 속박된 밧줄을 태워버리고, 나는 양쪽 손목을 가볍게 풀었다.

“버, 범철 님께서 어떻게 마법을?”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다.

나는 화염이 휘감긴 손으로 덕돌의 머리채를 사납게 끌어 잡았다.

“아악! 뜨, 뜨거워! 내, 내 머리!”

지글대며 익는 두피를 그대로 붙잡고 물이 끓는 가마솥에 밀어붙인다.

덕돌이 비명을 내질렀다.

“설마!”

“아마.”

꽉 쥐었던 놈의 머리칼을 놓는다.

끓는 물에 떨어지는 몸뚱이.

간발의 차.

덕돌은 허리를 급격하게 비틀어 가마솥에 빠지는 죽음을 모면했다.

“허억! 허억!”

놈이 불탄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

나는 마당을 살폈다.

“고깃국은 내 취향이 아니야. 너로 끓인 육수는 맛도 없을 것 같고.”

식칼을 주워든다.

지금 썰 것에 도마는 필요가 없다.

“걱정하지 마. 남김없이 썰어줄 테니까. 회귀자는 수없이 해체해봤거든.”

“이, 이런!”

덕돌이 허겁지겁 도망치려 했다.

내가 칼을 던졌고, 정확하게 놈의 왼쪽 다리에 날이 꽂혀 들어갔다.

서퍼억!

“아악!”

바로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덕돌.

난 놈의 다리에서 식칼을 뽑았다.

“버, 범철 님! 제발 자비를!”

“날 먹으려 할 땐 거리낌 없었으면서, 왜 내게 죽는 것은 싫어하냐?”

“주, 죽이시려거든 부디 단칼에!”

“그저 단칼에 죽일 거면 너한테 왜 칼침을 놓았겠어.”

식칼은 조리용, 살해용, 그리고 고문용 도구도 되는 만능의 검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용도는 세 번째였다.

“아아악!”

덕돌은 오른쪽 다리에 여러 번 칼침을 맞고는 마구 식은땀을 흘렸다.

나에 대한 공포가 극을 넘어섰는지 눈물을 쏟으며 바락바락 악을 쓴다.

“모, 못 들었어? 전생에서부터 난 당신을 섬겨온 독실한 신자였어! 아무리 그래도 목숨까지 해치진…….”

덕돌이 말을 멈칫한다.

식칼이 목덜미를 긁어댄다.

나는 이를 드러내고 낮게 말했다.

“그게 이번 삶이랑 뭔 관계인데.”

전생으로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은.

살해한 아내 한 명으로 충분하다.

“눈을 빼먹으면 시력을 얻고, 고환을 뺏어먹으면 정력을 갖는다고?”

평안한 일상에만 안주하던 과거가.

이제는 희미해졌다.

나는 더는 무던한 하루를 즐기던 그 사람이 아니다.

“어디 너도 같을지 시험해 보자고.”

“끄아악!”

초승달이 뜬 겨울밤.

욕심 많은 사냥꾼은, 그렇게 신으로 모셔왔던 남자에게 죽었다.

**  *

시체가 보기 싫어 땅에 묻고 나서.

아침햇살이 따갑게 쏟아질 때까지 그저 멍하니 오두막에 앉아만 있었다.

뺨에 묻은 핏자국을 문지른다.

‘피폐해진다.’

유일하게 맑은 인간성이라 했던가.

‘내가?’

피가 말라붙은 입꼬리가 힘없이 올라간다.

과연 이 여정이 끝날 때까지 인간성을 지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미 혼탁해졌는지도.

요즘 들어 가끔씩, 퇴폐해져 가는 정신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전생의 원수 중 하나가 그랬었지. 나도 언젠가 회귀자처럼 될 거라고.’

그 말이 이런 의미였던 것일까.

미친 세상에 살아가다 보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고되다.

특히나 호의를 베푼다고 믿었던 회귀자가 나를 죽이려 했을 땐 더더욱.

“캬앙! 캬앙!”

그때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멍해져 있던 시선이 갑자기 또렷해진다.

피에 젖은 마당을 뛰어온 생물체는 그대로 내 품에 안겨들었다.

나는 녀석을 황당한 얼굴로 보았다.

“……넌 뭐냐.”

“캬앙!”

희고 보드라운 솜털과 짤막한 수염, 푹신푹신해 보이는 뭉툭한 꼬리.

거기다 왼발에 어설프게 묶인 붕대까지.

내가 어제 낮에 덫에 걸린 걸 풀어줬던 새끼 여우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놈이 날 왜 찾아왔지?’

냄새를 맡으면서 내 뒤를 쫓아온 것이 틀림없다.

마당과 내 몸에 피가 흥건한데도 새끼 여우는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보통 짐승이라면 피 냄새를 맡고 으르렁대야 정상인데.’

내게만 너무나도 순종적인 새끼 여우의 태도에 의아해하던 찰나.

[어린 영물을 길들였습니다.]

[조련 재능을 개척했습니다.]

[본인의 조련 재능은 SSS급입니다.]

[‘1,000년 동안 몬스터를 길들인 조련사’를 뛰어넘을 재목!]

‘새로운 재능.’

나는 눈이 번뜩 뜨였다.

조련의 재능이라니!

평소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분야였다.

‘그냥 평범한 재능이 아니야.’

여러 소질을 찾고 수련하며 느낀 건데, 최정상 재능도 계급이 나뉜다.

가령 잠금 해제와 보물탐색은 활용도는 좋지만, 영역이 한정돼 있다.

물론 훌륭하지만 재능이 쓰이는 일은 지극히 한정돼 있다고 봐야 했다.

‘낚시 또한 한정된 지역에서만 가능하고, 어디까지나 생산 활동이다.’

회귀자 살해 재능 또한 뛰어나지만, 아크 리치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몬스터에게 쓰일 수 없다.

내게 가장 잘 맞고 높이 평가하는 재능은 단연코 검술, 마법이었다.

‘재능의 범위도 넓고, 전투와 연관성도 높아서 요긴한 일이 많다.’

검술은 단검, 장검을 포함한 모든 검의 영역을 다루고, 마법 또한 모든 계열의 마법 수련에 도움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조련 또한 내게는 아주 폭이 넓은, 좋은 재능이었다.

‘무엇을 길들이더라도 조련의 재능이 발휘될 테니까.’

어쩌면 내가 흉악한 몬스터나 강력한 맹수도 조련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전투에도 써먹게 될 것이다.

방금까지 우울했던 기분이 그나마 만족스럽게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새 대륙을 여행하니 확실히 새로운 재능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군.’

내 무릎 위에 앉아서 몸을 기대어 앉은 새끼 여우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빨라 살가워지더라니.’

그러나 지금 내게는 딱히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일행을 찾고 청색대륙의 지배자를 죽이러 가는 길만 해도 험할 지경이다.

더군다나 새끼 여우는 연약해 전투라도 벌어지면 금방 위험해지겠지.

“안됐지만…….”

아쉽게도, 헤어짐을 결심하던 찰나.

[배낭 안의 어떤 소지품이 영물과의 이별에 민감히 반응합니다.]

마법 배낭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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