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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80화 (80/200)

나만 1회차 080화

맹렬하게 뿜어져 나온 전격의 섬광이 해적선 뱃전을 강타한다.

“으아아악!”

돛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배 반편이 작살 나며 화염에 휩싸였다. 배에 타고 있던 해적들이 마비가 되어 다리가 풀리고 픽픽 쓰러진다.

그 순간만큼은 승선원과 해적 양측 모두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버, 번개다!”

“입에서 번개가 튀어나왔어!”

“도대체 저게 무슨 마법이야?”

낙뢰의 브레스!

숙련된 용들이 뱉는 브레스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약한 편이다.

그러나 낙뢰의 브레스는 다른 종류의 숨결에 비해 효율적이고 강했다.

배 반편을 작살 내고 화재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해적들까지 순간마비!

‘과연 용족 중에서 유일하게 고유한 샛노랑 비늘을 타고 날만 하군.’

나는 그녀를 다시금 보았다.

“콜록! 콜록!”

퀸소히니베는 목을 감싸 쥐고 쉰 목소리로 기운 없이 투덜댔다.

“목이…… 너무 따가운 것이야.”

용이 하루에 내뱉을 수 있는 브레스의 횟수는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인간 상태에서 브레스를 뿜었기에 제약이 더 많으리라.

하여간 퀸소히니베의 활약으로 해적선 한 척이 반파되며 침몰했다.

보통의 해상전이라면 이쯤에서 당연히 승기를 잡는 것이 정상이지만.

‘문제는 해적 놈들도 회귀자란 것.’

바다는 천혜의 자연을 품었다.

항해에선 육지의 모험보다 강하고 진귀한 아이템을 찾을 확률이 높다.

특히 바다를 자유로이 방랑하는 해적은 히든 피스를 보유했을 것이다.

“아아악! 내, 내 피!”

“익사만은 싫어! 고통스럽다고!”

해적선에서 말라깽이 해적 셋이 검에 베이며 강제로 바다에 떨어졌다.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드는 수면!

해적선장으로 추정되는 삼각모의 남성이 반지 낀 손을 높이 들었다.

“오오! 이곳에서 세 명의 생명을 제물로 바쳤나이다. 해역의 우두머리시여. 부디 여기에 강림하소서!”

해적선장이 크게 고함친 직후, 거대하고 긴 촉수 하나가 백사자호의 갑판을 덮쳤다.

촤아악!

촉수가 내려치며 무너지는 갑판!

카벨 선장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새끼 크라켄이다!”

해양괴물의 소환!

중형선 한 척 크기의 외눈박이 문어가 백사자호에 철썩 달라붙었다.

새끼인데도 끔찍할 만큼 큰 덩치!

선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고, 징그러운 촉수가 승선원을 붙잡아간다.

“으아아악! 도, 도와줘!”

“잘라! 어서 이걸 자르라고!”

새끼 크라켄의 촉수는 질기고 억세서 검으로도 쉽게 베이질 않았다.

“으어억!”

촉수에 끌려간 승선원은 그대로 새끼 크라켄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갑판 위에 침범한 해적 놈들까지 다 함께 가라앉아버리고 말 위기!

“아주 상황이 빌어먹었군. 그 나침반 판 새끼는 꼭 죽이고 말겠어!”

카벨 선장은 럼주를 한 모금 머금고는 본인의 검신에 푸욱, 뱉었다.

그러자 커틀라스가 짙은 초록빛으로 변했고, 촉수들이 뎅겅 베어졌다.

선원들도 선장처럼 럼주 병을 끼얹으며 초록 검으로 촉수를 끊어냈다.

‘저것도 보통 검들이 아닌가 보군.’

회귀자들의 집단전투!

상대와 아군 모두 히든 피스를 겸하고 있어 싸움을 종잡을 수 없다.

‘이젠 정말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해.’

선체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해적선에서 쏘는 대포와 크라켄 촉수가 백사자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일단 크라켄부터 처리해야겠군.’

나는 나이프를 놓았다.

고작 나이프 한 자루로 크라켄을 죽이려 하는 모험은 시도하지 않겠다.

난 배낭에서 붉은 로브를 꺼냈다.

‘이걸로 빠르게 승부를 본다.’

진홍색 로브!

황색대륙의 지배자를 죽이고 획득한 보상을 시연할 차례였다.

* * *

긴 옷깃의 끝이 바람에 나부끼고 피처럼 붉은 궤적이 선명하게 빛났다.

아크 리치가 생전 착용하던 로브.

커다랬던 천 자락은 인간이 착용해도 될 만큼 크기가 축소돼 있었다.

[착용자의 수준이 낮아서 로브의 완전한 힘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마나 회복속도와 전체적인 마나량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모든 계열, 원소, 종류의 마법 파괴경지가 3단계 상승합니다.]

[압도적인 투기를 발산합니다.]

“어어……? 뭐야, 저놈?”

“무릎이 왜 자꾸 떨리지?”

기우는 갑판에서 싸우던 선원과 해적들이 덜덜 떨면서 나를 주시했다.

아군까지 몸을 떨게 하는 투기!

나는 양손을 폈다 움켜쥐었다.

‘기분이 굉장히 상쾌하군.’

[SSS급 마법 재능이 진홍색 로브의 위력을 배가시킵니다.]

[육체의 해골화가 시작됩니다.]

[가멸찬 학살을 자행할수록 해골화가 신속하게 진행이 됩니다.]

온몸의 마나가 폭발적으로 휘감기지만, 그만큼 검은 기운도 생겨난다.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해골이 되어 버리기에 최대한 빨리 끝내야 했다.

시험 삼아 오른손에 마나의 불꽃을 휘감자 이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화력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피어올랐다.

[4서클 마법 ‘화기의 뱀’이 7서클 마법 ‘작열투하’로 승급됩니다.]

[작열투하는 폭주하는 정령의 불꽃을 빌려오는 금단마법입니다. 초마다 대량의 마나가 소모되며 화염 요정왕의 적대도가 늘어납니다.]

“전부 비켜요!”

내가 소리치자 촉수에 검을 내려치려던 승선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내가 한 발짝 나아가며 거대한 불덩이를 투하하자 새끼 크라켄에게 명중!

“케에에엑!”

크라켄의 고통스러워하는 울음!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나며 배에 붙은 촉수가 오그라들며 떨어졌다.

나는 쉬지 않고 작열투하로 새끼 크라켄의 외눈을 태워버리려 했다.

“케에에엑!”

몸에 붙은 불꽃에 몸부림치다가 바다로 도망쳐 버리는 새끼 크라켄.

끝마무리를 짓고 보상을 얻고 싶었지만, 지금은 해적들이 훨씬 급했다.

그때 눈치 빠른 카벨 선장이 녹빛의 커틀라스를 내뻗으며 소리쳤다.

“갈고리에는 신경을 꺼버려! 전원 갑판 위의 해적을 전부 몰살해라!”

그것은 현명한 명령이었다.

지금 다른 해적선의 해적들은 내가 몽땅 태워버릴 예정이었으니까.

화르르륵!

“으아아악!”

무지막지한 3서클의 차이!

화기의 뱀은 요사스러운 불꽃이지만 그래도 진압 가능한 화재에서 끝난다.

그러나 7서클의 작열투하는 중형 해적선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태웠다.

돛과 시체, 나무 파편조차 괴물처럼 깔끔하게 먹어치우는 끔찍한 화력!

‘장관이군.’

바다였기에 오히려 불길이 번질 염려가 없어 나는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막대한 마나가 소모됐지만, 회복속도가 끔찍하게 빨랐다.

내가 혼자 해적선 한 척을 불태워 침몰시켜버리자 해적들은 당황했다.

“뭐, 뭐냐? 저놈은! 마검사인가?”

“낡은 검으로 사람을 학살하던 놈이 저런 고위 마법도 쓸 줄 알아?”

“저놈들, 번개를 토하는 여자에, 괴물 수준의 마검사까지 있다고!”

“평범한 회귀자들이 아니었잖아!”

얼굴이 새파래진 해적들이 배를 반대편으로 몰려 했지만, 갈고리가 이미 걸린 탓에 배가 움직일 수 없었다.

난 한숨 쉬며 로브를 벗었다.

[해골화가 조금 진행됐습니다.]

[팔뚝 살점이 약간 패였습니다.]

[언데드의 기운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역시 자주 입을 로브는 아니야.’

나는 쓰게 입술을 핥았다.

살갗이 팬다니, 극심한 페널티였다.

해골이 되면 당연히 오감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종족도 바뀌게 될 것이다.

어색하게 팔을 내뻗는데, 카벨 선장이 새빨개진 얼굴로 고함을 쳤다.

“이 배는 곧 있으면 침몰할 거요!”

갑판 위의 해적들은 모두 쓰러졌지만, 배는 회생 불가능한 상태였다.

선원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선장님! 어떻게 수리해볼까요?”

회귀자인 선원들은 배를 수리하는 조선술도 제법 뛰어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목숨이 귀한 줄 모르는 회귀자나 내놓을 느긋한 방책이다.

내가 황급히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일부러 해적선 한 척을 남긴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도망치려는 해적의 배를 가리켰다.

“저 해적선을 역으로 훔쳐 버리죠.”

* * *

검을 비틀었다.

내게 가슴이 찔린 해적선장이 금니를 보이며 치를 떨었다.

“너…… 다음 삶에 꼭 복수……!”

“그 이빨, 순금이냐?”

“무슨 개소리를…… 커허헉!”

“척 보니 도금이네. 그냥 죽어라.”

마지막까지 생존해 있던 선장이 쓰러진다.

나는 조각난 검을 바다에 던졌다.

“고맙소. 당신 일행 덕분에 해적들을 전부 격퇴할 수 있었소.”

카벨 선장이 격식 있게 인사했다.

피로 붉게 물든 해적선의 갑판!

우리가 해적선을 뺏을 수 있었던 것은 걸어진 갈고리를 탔기 때문이다.

놈들이 밧줄을 끊으려 할 때마다 나는 마법을 명중시켜 죽여 버렸다. 그리고 자기 꾀에 걸린 해적들은 우리의 검에 모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바람개비 해역의 악명 높은 네 해적선장을 모두 궤멸시켰습니다.]

[금니 해적선을 약탈했습니다.]

[배의 악명 탓에 해적을 만나거나 몬스터가 습격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힘과 체력 능력치가 10씩 오르며 해적 사이에서 악명이 오릅니다.]

승객들에게서 적지 않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다들 충격은 받지 않았다.

“뭐 하는 겁니까?”

“함께 가려던 동생이 죽어서요. 그냥 내친김에 회귀하려고 합니다.”

“시체는 바다에 던져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위생은 철저히 해야죠.”

스스로 독약을 삼키고 자결해버리는 회귀자까지 있었다.

“해적선은 오래간만에 모는군요.”

“이봐! 찢긴 돛을 수리해야겠어!”

“생쥐 잡고 청소 좀 해야겠다.”

몸이 멀쩡한 선원들은 빠르게 해적선에 적응하며 각자의 역할을 도맡았다.

복잡하고 더러운 갑판을 청소하고, 적재된 물자를 간략하게 확인한다.

“청색대륙에 닿을 때까지 현재 인원이 버틸만한 식량은 충분합니다. 원래 배에서 갖고 온 것도 있었고요.”

“잘 됐군. 식량이 부족했다면 우리도 다른 배를 약탈해야 했을 거다.”

금니 해적선은 이름답게 금이 도금된 장식품이 선체에 아주 수북했다.

퀸소히니베는 입을 활짝 벌리며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방이 황금으로 가득한 것이야.”

“이것들은 가짜입니다.”

“흥. 헤르탄은 건방지게 거짓말하지 말란 것이야. 이리 반짝이는데?”

“세상에는 반짝여도 귀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반대로 귀하지만 빛이 없고 흉한 것도 수없이 많지요.”

퀸소히니베가 어린 동생처럼 허리에 손을 얹고 바닥을 발로 쓸었다.

“천박하지만 들을수록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오는 음담패설처럼?”

헤르탄은 성숙한 오빠처럼 엷게 미소 짓곤 끄덕였다.

“예. 우리를 웃게 한다는 점에서는 대충 엇비슷합니다.”

풍덩!

나는 해적선이 해저까지 가라앉기 전에 바다로 뛰어들어 잠수했다.

당연히 익사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해적선의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히든 피스를 보유한 해적의 배를 그냥 가라앉게 하기에는 아깝지.’

바닷속에서 눈을 뜨자 진귀한 보물들이 반짝 빛나며 확연히 보였다.

SSS급 보물탐색 재능!

파도가 잔잔한 덕분에 수영을 하기 좋았고, 나는 보물을 잔뜩 건져냈다.

‘해골반지와 선장의 삼각모. 작은 보석상자도 있군. 아주 짭짤한데.’

어째서 해적이 남의 배를 훔치고 적재된 물자를 빼앗는지 깨달았다.

카벨 선장은 보상을 챙겨 올라온 나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해녀요?”

“남자입니다만.”

“내가 선장이니까, 좀 내놓으시오.”

“타죽고 싶냐?”

“망할.”

은근슬쩍 탐내다가 거절당한 그는 괜히 시선을 선수상으로 돌렸다.

“이깟 놈으로는 멋이 안 나.”

카벨 선장은 거침없이 해적선의 황금해골 선수상을 검으로 깨부쉈다.

흰 사자 선수상은 항해속도를 올려 주는 효과가 있기에 침몰선에서 떼다가 해적선 선두에 장식해 놓았다.

선원 하나가 가장 높은 망루에 올라가 해적 깃발을 백사자호 깃발로 교체하자, 순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다들 해적선에 적응하고 있을 때, 카티에가 울먹이며 걸어왔다.

“……대장.”

“왜 그러냐? 혹시 내가 마법을 너무 잘 써서 또 질투를…….”

“우웨엑!”

“…….”

왜 우리 일행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내 곁에서만 토악질을 해대냐.

항해 초반 거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후로 청색대륙에 닿을 때까지 해적이 우릴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이제야 좀 여정이 여유롭겠군.’

그러나 나의 예상은 틀렸다.

정확히 15일 뒤.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고, 나는 함께해 온 동료를 모두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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