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076화
[리치 파멸의 대검이 리치 계열에게 235%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10배의 피해를 입히는 치명타!]
[죽어서도 괴로울 통한의 타격!]
[황색대륙의 지배자에게 역대 가장 치명적인 공격을 선사했습니다.]
대검이 아크 리치를 강타하자 귀청을 찢을 것처럼 둔탁한 타격음이 퍼졌다.
리치 계열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특성을 지닌 리치 파멸의 대검!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일격에 치명타까지 터지자, 파괴력이 폭등했다.
아크 리치의 뒤통수가 완전히 갈라지며 산산이 부서진다.
“크흐아아악!”
“큭!”
하지만 나도 온전치는 못하였다.
팔이 터질 것처럼 끔찍한 근육통이 느껴졌고, 칼자루는 놓치고 말았다.
뒤통수가 부서져 나간 아크 리치의 머리뼈가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안 돼.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어.’
놈에겐 들어야만 할 정보가 있다.
각종 후유증이 터지기 시작하는 몸을 억지로 이끌며 나는 놈에게 접근했다. 놈은 뒤통수가 박살 난 채 커다란 두개골에 아직 음침한 안광이 남아 있었다.
“너는 어째서…….”
놈을 올려다보며 다급히 물었다.
“어째서 나를 필요로 했지? 그리고 왜 회귀할 수 없는 척 연기했냐?”
그러자 아크 리치의 두개골이 딱딱거리며, 천천히 말하였다.
“그게 알고 싶나……? 당연히 어림도 없는……. ……아니지. 그래, 아니야……. 오히려 지금 알려줘야 네놈 앞길이 더욱 참혹해지려나…….”
두개골이 부서지는 와중에도 아크 리치는 조소를 짓는다.
“한 번 사는 자. 네놈은…… 신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실수였지……. 네놈은 이미 나의 편에 들일 만한 것이 못 된다…….”
놈의 목소리에는 후회가 담겨 있었다.
“지금껏 해오던 연기도…… 버텨왔던 인내심도…… 경쟁자를 경계해서 그랬던 거지만…… 결국 모두 수포였다.”
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회귀를 못한 척해온 것이 경쟁자 때문이었다고? 경쟁자는 누구고, 네가 무엇을 위해 경쟁을 하는 건데?”
희미해져가는 안광이 나를 보았다.
들을수록 영문을 모를 대답이었다.
“세상에서…… 전지전능한 신을 꿈꾸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아크 리치의 죽음이 코앞이다.
“숨겨진 진실을…… 알고 싶다면 청색대륙, 너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두개골의 텅 빈 동공이 나를 향하며, 아크 리치가 꺼져가는 안광을 또렷이 태웠다.
최후의 한 마디가 선명히 들린다.
“끝내 네놈에게 담긴 불길함이 실현되는 순간, 너흰 몰락할 것이다.”
[황색대륙의 지배자, 아크 리치를 완전한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향연의 산맥 전체를 둘러싼 회귀 불능의 마법진이 소멸되었습니다.]
[마나 원천의 괴력술의 경지가 2단계로 승급되었습니다.]
[원정에 참여한 모든 대원들에게 공적에 걸맞은 능력치가 상승하며, 개별적인 특별보상이 주어집니다.]
[모든 능력치가 25씩 올랐습니다!]
[체내의 마나를 소진했습니다.]
[마력이 5 손실되었습니다.]
[마나 원천의 괴력술의 대가로 하루 동안 마법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아크 리치의 손상된 뼈다귀(206 개), 진홍색 로브를 획득했습니다.]
[불세출의 검(Lv3) 달성!]
[쥐는 검의 내구력이 오릅니다.]
[불세출의 검(Lv4) 달성!]
[검의 역사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황색대륙의 지배자를 죽여 조력자가 악마의 펜타그램을 재조정합니다.]
[악마의 펜타그램의 문양에 선이 더해지며 특정운명을 뒤바꿉니다.]
[120회차 최초의 살해업적!]
[가장 특별한 보상을 얻습니다.]
[전생의 돌을 획득했습니다.]
이제껏 얻은 적 없는 역대급 보상!
그러나 방금 들은 의미심장한 유언에 머리가 복잡해져 확인할 틈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몸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방벽들이 완전히 무너지고, 살갗에 닿던 차가운 공기가 따스해진다.
그러나 고개를 들 힘조차 없다.
혼자 뒤로 쓰러진다.
산맥을 둘러싼 안개가 깨끗이 사라지고, 환한 햇볕이 내 얼굴에 쏟아져 내렸다.
“……좋군.”
내가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 빗방울이 뚝뚝 얼굴에 떨어졌다.
“좋기는 뭐가 좋나요.”
알고 보니 그것은 눈물방울이었다.
햇빛을 등지고 있어 너무도 눈부신, 아름답게 빛나는 소녀가 지친 나를 힘껏 껴안고는 흐느끼고 있었다.
“대장…….”
“카티에, 너.”
그녀의 몸이 맞닿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소녀에게 안긴 채 지친 얼굴로 웃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언제 오줌 지렸냐. 역시 밴시 때문…….”
빡!
뒷목을 얻어맞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한계까지 지치니까 진솔한 개소리가 막 나오네.
“한 대 더 때려볼래? 기절하고 편한 자리에서 다시 의식을 되찾고 싶은데.”
카티에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씩씩하게 나의 어깨를 걸었다.
“헛소리는 닥치고, 부축해줄게요.”
“치유마법은?”
“기적을 너무 써 힘이 없어요. 나도 방금까지 쓰러져 있다 깼으니까.”
그러고 보니 소녀의 머리칼에 검은 올의 개수가 예전보다 훨씬 늘었다.
나는 힘없이 그 머리칼을 쓸었다.
“나는 흰 머리칼일 때가 좋던데.”
“보통은 검은색 머리칼이잖아요?”
“내가 좀 취향이 조숙해. 성녀님.”
“그럼 좀 들이대 보아요. 연하님.”
“사랑해.”
“말로만?”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군.
아무래도 난 남들처럼 행복하게 연애나 하고 살 팔자는 아닌 것 같아.
나와 카티에는 키 차이가 크게 나 내 하체가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그런데도 소녀는 구슬땀을 흘리며 나를 부축한 채 열심히 걸어갔다.
“고마워서 어쩔까.”
“여러 번 살아도 맨입은 싫네요.”
“내가 뭘 해주면 좋겠는데?”
“내 신체나이가 성인이 되면…….”
카티에가 뺨을 수줍게 붉힐 때.
콰아앙!
“으아아악!”
“도, 도망쳐!”
굉음과 비명이 난자한다.
아크 리치가 죽고, 승리의 함성이 들려와도 모자랄 판인데 웬 비명?
피로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건 또 뭔 날벼락이냐.”
“수녀상이 폭주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저것과 싸우는 틈에, 내가 대장을 구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원래 피로했지만, 급격하게 지친다.
“왜 세상은 나를 그냥 두지 않지?”
“재수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
“…….”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고서 그 광경을 보자, 글귀가 떠올랐다.
[고위성물 천사의 시종이 피눈물을 모두 소진해 타락하였습니다.]
[아크 리치가 남긴 흑마법의 자취가 시종의 자아를 성장시킵니다.]
[천사의 시종이 사악한 이를 부활시킬 방도를 찾고 있습니다.]
[아직 산맥 곳곳에 강력한 흑마법의 도구가 남아 있습니다. 천사의 시종이 저주받은 물품을 삼킬 때마다 지능이 오르며 강대해집니다.]
“#%#%&@!”
크리스탈 수녀상이 까맣게 물들고, 온화하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수녀상은 기도를 하며 굳게 쥐고만 있던 양손을 펼치고 맹수처럼 마구 날뛴다. 광휘가 흘렀던 뒤편에서 까만 채찍을 꺼내며 원정대를 공격하고 있다.
“수녀상을 서둘러서 파괴해라!”
“놔두면 후환이 되어버릴 것이다!”
“크라아아!”
용들도 파괴하려 들었지만, 수녀상은 거대한 몸집으로는 따라잡기 너무 재빨랐고 원정대 주위만 쏘다녔다.
무엇보다 용들이 지쳐서 브레스를 내뿜지 못한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이런, 제기랄.
‘생각보다 상황이 너무 심각한데.’
천사의 시종에 관한 설명은 정상회의에서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가장 강하지만, 가장 위험한 성물.
원래 피눈물을 소진하기 전에 미리 파괴해 뒀어야 할 성물이었는데, 아크 리치와의 결전 때문에 늦고 말았다.
타락한 천사의 시종을 지금 가만히 놔뒀다간 점차 힘이 강력해진다. 오랜 시간 방치하면 리치 수준의 괴물이 탄생해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왜 몸이 움직이지를 않냐.’
눈꺼풀은 어떤 개자식이 힘껏 누르고 있나. 왜 이렇게 무겁고 난리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만큼 빈사라서 무언가 할 기운조차 없었다.
“움직임부터 봉쇄하겠습니다.”
헤르탄이 땅바닥에 손을 짚고는 성물의 난동을 나무뿌리로 속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지쳐 있었다.
원정대가 피로에 지친 그사이에, 천사의 시종은 속박된 뿌리를 끊었다.
“안 돼!”
누군가 소리를 질렀지만, 천사의 시종은 발 빠르게 도망쳐 버린다.
저 수녀상을 놓치면 아크 리치와 맞먹을 만큼 강해져 돌아올지 모른다. 사악한 이를 되살릴 방도를 찾는다니, 어쩌면 리치 부활이 목적일 수도 있다.
지금껏 겪어왔던 온갖 개고생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 여성이 수녀상 앞을 막아섰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수녀상이 고대어 비슷한 말을 내뱉으며 여자를 채찍으로 찢으려 했다.
원정대조차 막지 못한 타락한 성물의 가시 돋은 채찍은 날카로웠다. 살짝 스치기만 하여도 살점이 뜯겨 나가고 잔혹하게 상처 입게 되리라.
그러나 수녀상을 막아선 여자는 그 예리한 채찍질을 선 채로 견뎌내었다.
‘……비늘?’
여자는 맨몸이었지만 노랗고 밝은 비늘이 얇은 옷처럼 몸을 감싸고 있었다.
수녀상은 돌진했으나 여자는 맨손으로 성물의 머리를 꽉 붙잡았다.
“$#[email protected]$&$&!”
타락한 수녀상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녀의 표정은 무자비했다.
“주제 모르고 덤빈 죄인 것이야.”
콰작!
[여왕의 딸, 퀸소히니베가 타락한 고위성물을 깨부쉈습니다.]
타락한 성물을 혼자서 파괴해버린 그 여성은 다름 아닌 퀸소히니베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전쟁 내내 앓기만 했던 퀸소히니베의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왼쪽 손등의 펜타그램이 피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퀸소히니베! 특수한 피를 타고난 그녀는 불행히도 본래 성체가 되기 전에 죽고 말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색대륙의 지배자가 사망함으로써 악마의 펜타그램이 용의 주어진 운명을 완전히 뒤바꾸었습니다.
퀸소히니베는 성공적인 성체식을 치렀습니다. 그녀에게 돋아난 비늘 색상은 찬란한 샛노랑입니다. 현존하는 용 중 유일한 빛깔이며, 혼혈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비늘의 빛깔은 ‘샛노랑’입니다.
*낙뢰의 브레스를 쓸 수 있습니다.
*힘, 마나가 대폭 상승합니다.
*성욕, 식욕, 수면욕이 오릅니다.
*인간 상태에서 날개 활공과 제한 횟수의 브레스를 쓸 수 있습니다.
*퀸소히니베가 성장할수록 해금되는 숨겨진 능력들이 나타납니다.]
[*해당 문구는 그녀와 높은 호감도를 쌓은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비늘이 돋았다는 것은…….’
그녀가 성체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원래 그녀가 성체가 되기 전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다고?’
놀란 눈으로 퀸소히니베를 살핀다.
옷이 찢겨 보이는 곳에서 몸의 비늘은 사라지고, 똑같은 색상의 머리칼만 찰랑거렸다.
‘원래 그녀의 머리칼이 샛노랬었지.’
햇빛에 반사되며 고아하게 빛나는 저 머리칼을 왜 이제야 인식했을까.
비늘이 돋으며 성체가 된 퀸소히니베는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성물을 파괴하고 도도하게 걸어오는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퀸소히니베가 짐짓 걱정스러워하며 가장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내 노예가 아픈 것이야?”
“됐고. 이제 너는 열은 다 내린 것이냐?”
“몸이 아주 가벼워진 것이야.”
“그러면 나한테 은혜나 갚아라.”
“그게 무슨 소리인 것이야?”
“목숨을 살려줬잖아? 병간호해라.”
퀸소히니베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나의 이마를 조심스레 훑었다.
“노예가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머리를 다친 게 분명하단 것이야.”
하여간 다행히 수녀상은 파괴됐다.
모든 위험요소가 제거된 뒤에야 원정대는 온전히 기뻐할 수가 있었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아크 리치를 죽였다!”
“영웅들도 포기하고 자살한 대륙의 지배자 살해목표를 우리가 이뤘다고!”
승전으로 절정에 이른 분위기.
수녀상을 속박하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헤르탄이 물었다.
“몸은 성하십니까, 범철?”
지금은 그저 딱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쉬고 싶어요. 혼자서. 아주 푹.”
카티에가 나의 귓등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속삭여줬다.
“정말 고생했어요. 대장.”
* * *
눈을 떴을 때는 천막 안이었다.
“내 노예가 깨어난 것이야?”
퀸소히니베의 거만한 목소리였다.
나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려다 통증을 느꼈다.
간이침대에 누운 채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얼마나 잤냐.”
“하루 내내 잠만 잤다는 것이야.”
“뭐 하고 있냐.”
“노예의 물수건을 짜주는 것이야.”
“……진짜로 병간호를 해줬냐?”
“그럼 가짜로 해달라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물수건을 세게 올리다가 내 눈을 철퍽 때리고 말았다.
“……인마.”
“비늘이 돋으면서부터 힘이 넘쳐나서 걱정인 것이야.”
“내 간호에다 그 힘을 꼭 써야겠냐?”
“흥. 세상 어떤 노예도 나처럼 다정한 주인은 만나지 못할 것이야.”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어째 상황만 보면 노예랑 주인의 주종관계가 역전된 것 같단 말이지.
퀸소히니베가 주저하며 허벅지 위에 얹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니 이제 함부로 다른 주인을 섬긴단 말은 하지 말라는 것이야.”
“왜. 친구 뺏길까 봐 겁나냐?”
“하! 내가 한낱 노예를 친우로?”
그녀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고, 나도 픽 웃음이 나왔다.
“간호해줘서 고마워. 너뿐이다.”
“곁에만 있어 줬을 뿐이란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충혈된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고는 천막을 나갔다.
“주인이 필요하면 부르란 것이야.”
“어련하겠냐.”
천막에 홀로 남은 나는 근육통으로 몹시 쑤시는 몸을 풀려고 해보았다.
‘알긴 했지만, 진짜 죽을 것 같네.’
조금만 움직여도 마구 쑤신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야.’
하루를 내리 잤는데도 피곤하군.
어찌 됐건, 몸은 고될지라도 마음은 편안하다.
‘전쟁이 끝났다.’
단순히 종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나 가슴이 벅차고 희망차다니.
왜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제야 알겠다.
‘최소한 가슴의 짐은 덜었네.’
이제 원정대의 누군가가 헛되게 죽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침대에서 조심히 내려선다.
“윽!”
나는 한 발짝 걸어 보려다가 엎어지고 말았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찡그린다.
‘아직 걷는 것까진 조금 힘든가?’
문득 쭈그려서 옆을 돌아보다가 나의 고개가 멈춰버렸다.
간이침대 밑에 카티에의 시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