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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73화 (73/200)

나만 1회차 073화

칼날이 뒷목 위를 치는 순간, 붙어 있던 검은 형체가 나가떨어졌다.

헤르탄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에서 떨어진 생물체를 내려다보았다.

“범철. 저건……?”

“여기서만 살아가는 생물체입니다. 몸에 기생해 힘을 흡수한다던데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 이유야 간단하다.

회귀자 살해 재능에서 도출된 두 번째 최고급 변수정보!

[생명그릇이 숨겨진 장소에선 이형의 생물체가 서식합니다.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생물체에 집어 삼켜지면 명계로 끌려가 버립니다. 기생된 생물체를 떼어줄 일행을 데려가는 것을 가장 추천합니다.

*심리가 불안정해질수록 이형의 생물체가 더욱 세게 들러붙습니다.

*이형의 생물체는 스스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일격에 떼어내지 못하면 생물체가 분노해 흡수의 힘이 세집니다.]

헤르탄이 나를 보며 감탄했다.

“과연 놀라운 재능이로군요. 1회차인데도 정보에서 우위를 점하다니.”

“칭찬입니까? 하여튼 움직이죠.”

공간에서 새까만 생물체들이 거머리처럼 꿈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먼저 파괴하려 했지만, 놈들은 오히려 칼날을 타고 내게 달라붙었다. 이목구비 없는 슬라임 같은 생물체인데, 감촉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 붙어도 무게감이 별로 없군.’

기생에 특화된 기분 나쁜 생명체!

[이형의 생물체 4마리가 몸에 들러붙어 영혼을 흡수합니다.]

[체내에 있는 기력이 빨려가고 있습니다!]

기력이 빨려 나가자 확연히 몸의 생기가 줄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들은 사람한테 기생하고 있을 때만 처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눈치 빠른 헤르탄은 몸에 붙은 생물체를 관찰하며 침착히 대응했다.

그러나 몸에 붙은 생물체는 스스로 떼어내려 해도 미끄러질 뿐이었다.

결국 다른 이가 떼어내 주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형의 생물체가 기생한 생물에게 불안의 위액을 주입합니다.]

[심리적 불안감이 배가 됩니다.]

[마음이 흔들릴수록 이형의 생물체에게 많은 기력이 빨려갑니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주위 배경에 예민해지고 무언가 나를 찌를 것처럼 불안하고 무섭다.

……미칠 것 같네.

불안증이란 증세가 이렇게나 힘겹고 심각할 줄은 전혀 몰랐다.

‘카티에가 항상 이런 심정이었나.’

나는 괜스레 고개를 세차게 휘젓고 헤르탄과 서로 마주 보며 섰다.

“이놈들, 일격에 떼어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더 세게 들러붙어요!”

“문제 될 게 전혀 없습니다.”

내가 대검을 휘두르자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헤르탄의 살갖을 향했다.

팍!

이형의 생물체가 팍, 터지며 떨어져 나갔고 헤르탄이 달려들었다. 곰발로 변한 그의 주먹이 나의 어깨를 스쳤고, 생물체가 후두둑 떨어졌다.

팍! 파악!

누가 보면 우리 둘이 목숨을 걸고 혈투라도 벌이는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나서면 헤르탄은 맞아줬고, 헤르탄이 들어오면, 내가 받아줬다. 우리는 사선을 유지하며 기생하는 생물체를 공격해 죽였다.

‘역시 잘 데려왔어. 호흡이 맞아.’

내가 굳이 헤르탄을 골라서 데려온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긴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동료를 타격할 수 있는 자는 헤르탄뿐이다.

우리는 각자 완벽히 호흡을 맞추며 서로에게 흉악한 공격을 난사했다.

“범철. 칼을 꼭 써야만 합니까?”

“손보다 칼이 훨씬 편해서요. 내가 휘두르는 칼날이 빗나갈까 봐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헤르탄은 강한 충성심답게 한 마디로 수긍하고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라고 생각을 하던 찰나.

“으억!”

“죄송합니다. 조금 빗나갔습니다.”

“괜찮아요, 헤르탄. 그럴 수 있죠.”

“크허!”

“아, 약간 검의 궤적이 흐트러졌습니다. 피가 조금 나서 다행입니다.”

의도치 않게(?) 잔부상을 조금씩 입히며 우린 완벽한 친목을 다졌다.

그렇게 1시간쯤 흘렀을까.

우리는 서로의 몸에 붙은 생물체를 모두 털어냈다.

[이승에서의 생명을 탐하는 이형의 생물체를 전부 처치했습니다.]

[이승과 명계 사이의 공간에 있을 때 총합 능력치가 8% 오릅니다.]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형의 여왕을 사냥하러 가거나, 이공간 창고에 갈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나는 주저 없이 이공간 창고를 털어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이형의 여왕을 사냥하면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명계 관련 아이템을 습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생명그릇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창고로 향하는 길을 택하자, 불현듯 주변을 메운 어둠이 걷혔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거칠게 흐르는 다섯 종류의 강물!

[이곳에는 명계로 흘러드는 다섯 개의 강이 존재합니다. 잘못된 강물에 몸을 담그면 명계로 흘러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특정 강물 속으로 뛰어들면 명계 대신, 이공간 창고로 가게 됩니다.]

‘어느 강물에 창고로 가는 비밀 길목이 숨어 있는지 유추해야 한다.’

창고위치의 정확한 정보는 회귀자 살해 재능으로도 알아내지 못했다. 만일 잘못된 강물에 들어서면 명계에 빨려가 돌아올 수가 없게 된다.

‘최대한 조심히 추리해야겠군.’

난 물살에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다섯 개의 강을 세밀히 살폈다.

‘아크 리치의 세 번째 최고급 살해 변수에 강에 관한 정보가 있었지.’

첫 번째는 비통의 강.

으흐우우우……!

소름 끼치는 울음이 울려 퍼지며 근처에만 가도 비탄한 기분이 든다. 거기에는 가장 물결이 거셌는데, 물방울 대신 고통스러워하는 영혼이 튀었다.

‘이곳은 아니야. 생명그릇을 숨기려면 좀 더 얌전한 강을 택했겠지.’

두 번째는 시름의 강.

평범한 강물처럼 보이지만, 가장 비통했던 과거를 비춰준다고 한다.

강물에 아로즈를 살해하는 내 모습이 비치자, 얼굴이 찌푸려졌다.

내가 고개를 휙 돌리고서 물었다.

“헤르탄. 저기서 뭐가 보입니까?”

“온몸이 깨지고도 웃어주는 그대가 있습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예?”

“됐습니다. 되새기고 싶지 않군요.”

헤르탄은 드물게 설명을 줄이고 다음 강물을 향해서 무심히 걸어갔다.

세 번째 강은 불길의 강.

영혼마저 정화시키는 사나운 불꽃과 이글거리는 화염이 파도를 친다.

‘잘못 빠지면 제일 고통스럽겠군.’

네 번째 강은 망각의 강.

이곳은 가장 조심해야 할 강이다. 만일 강물을 한 방울이라도 삼키게 되면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니까.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 몰라서 좀 담아갈까 생각했었는데.’

망각의 강물을 수통에 담으려 했지만 그대로 통과해 흘러내릴 뿐이다.

확실히 증명 불가능한 현상이 많군.

‘이제 이곳이 마지막 강.’

다섯 번째 강은 증오의 강이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떤 강인지는 최고급 정보에도 나오지 않았다.

강물 속에는 검은빛의 궁전이 보였는데,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을 듯했다.

‘이렇게 모든 강은 살펴보았고.’

이 중에 어느 강에 들어가야 생명 그릇이 숨겨진 창고로 갈 수 있을까.

“범철. 어느 강으로 가시겠습니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처음 봤던 비통의 강으로 가죠.”

내가 예상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리자 헤르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결단이 빠르군요. 어째서입니까?”

“처음에는 생명그릇이 그곳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강 근처에서 들었던 비명 소리를 계속 들어보고 나서야 확신이 들었어요.”

우리는 비통의 강으로 다시금 걸어가 아주 세찬 물살을 바라보았다.

“저 강 속에 생명그릇이 있어요.”

“그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비통의 강에서 울리는 울음소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헤르탄은 눈살을 찌푸리며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으흐우우우……!

이윽고 울음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그가 굳은 얼굴로 주먹을 떨었다.

“……밴시의 울음소리군요.”

“밴시가 꼬인다는 것은 대형 언데드가 지나갔던 길이란 의미입니다.”

밴시가 꼬이면 강력한 언데드가 지나갔거나 대학살이 벌어진 장소다. 아크 리치가 지나다닌 길목이라 자연스레 밴시들이 꼬이게 된 것이다.

‘회귀자는 밴시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나처럼 밴시들에게 둘러싸여 울음 섞인 합창을 들어본 경험도 없으니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겠지.’

내가 회귀자가 아니라, 1회차라서 금세 추리해낼 수 있었던 결과였다.

헤르탄이 감탄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 진득한 비명 사이에서 밴시 울음소리를 알아채다니. 굉장하군요.”

“낯간지러운 말은 관두고, 헤르탄은 강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알겠습니다, 범철. 지금도 자살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군요.”

헤르탄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팔뚝을 피나게 손톱으로 긁어대었다.

회귀자는 특성상 밴시가 오가는 것만으로도 행동력이 마비되고 만다. 밴시에게 당하면 회귀하더라도 영원히 백치가 되어버리니까.

“후.”

심호흡을 하고 뒷걸음질 친 뒤, 나는 비통의 강에 뛰어들었다.

첨벙!

강물 속에는 밴시를 비롯한 온갖 잡다한 유령들이 쏘다니고 있었다. 시커먼 물속에서는 비명 소리가 바깥에서보다 훨씬 크게 전달되었다.

까아아아욱……!

끄후우욱……! 영호오온……!

‘귓구멍이 찢어질 것 같아. 망할!’

유령들의 비명이 끔찍했지만, 수영을 하느라 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유령과의 쓸데없는 전투는 피한다.’

다행히도 선공을 해오진 않는다.

싸우지 않고, 조심히 헤엄쳐간다.

‘시간을 끌 수 없어. 진로만 찾는다.’

비명이 시끄럽던 상부에 비해, 내려갈수록 유령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강물 깊숙이 내려선 순간, 숨 쉴 수 있는 통로가 나왔다.

“푸하!”

[올바른 강을 찾아냈습니다!]

[아크 리치가 개설한 이공간 창고는 이승과 명계의 에너지가 맞닿는 이차원(異次元)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직 한 명만 출입 가능합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가 추리해낸 강이 정답이었군.’

통로바닥에 내려서자 강물에 젖었던 옷깃이 금세 바싹 말라버렸다.

‘여기가 생명그릇이 있는 창고인가?’

나는 무거운 대문을 열어젖히고 혼자서 걸어 들어갔다.

들어선 순간, 이질적인 기분이 들며 기묘한 감각이 몸을 사로잡았다.

‘이곳도 명계에 근접한 곳이라 그런가? 절대 평범한 장소는 아닌데.’

그러나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공간의 끝에서 생명력을 품고서 환히 빛나고 있는 그릇.

‘아크 리치의 생명그릇이다.’

확실했다.

저것만 파괴하면 아크 리치의 불사도 완전히 소실되어버리고 만다.

‘드디어 이곳까지 왔군.’

아크 리치를 통해 미리 최고급 변수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생명그릇까지 절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정보의 덕만 보진 않았지만.’

발 빠른 결단과 밑받침되는 재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거침없이 가서 그릇을 훔치려는 찰나.

[인과율이 교차한 공간입니다.]

[미래시간의 파편이 나돕니다.]

[무차별적 사건 예지에 이끌려 의식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미래시간의 파편?’

눈앞에 떠오른 문구를 읽으며 창고에서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의식이 잠깐 희미해졌다.

* * *

‘음악과 촛불의 공통점은?’

‘세상을 밝히지.’

* * *

“흡!”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휘젓는다.

‘……뭐야? 방금 그 대화는.’

낯선 두 목소리가 나누었던 일문일답이 머릿속에 각인되듯 남았다.

‘속이…… 이상해.’

나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바닥에 쓰러질 뻔한 것을 간신히 견뎌냈다.

“크흡……!”

그대로 서 있기조차 너무 힘들다.

갑자기 잔뜩 술을 퍼마신 것처럼 머리가 당기고 속이 울렁거렸다.

‘안 돼. 생명그릇이 코앞에 있다. 이제 와서 의식을 잃을 수는 없어.’

난 이를 악물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것들은 언젠가 벌어질 사건일까?

걷는 동안, 뭔지 모를 수수께끼 같은 미래가 폭풍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범처럼 용맹하게!’

‘철처럼 강고하게!’

* * *

얼굴을 붉힌 퀸소히니베가 내 귀를 핥으며 순종적으로 몸을 조아렸다.

‘주인님……!’

* * *

헤르탄은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간 모실 수 있어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범철, 나의 왕이시여.’

* * *

카티에가 나의 허리에 타고 있다.

단검이 나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가 굳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 * *

‘명계를 다스리는 왕인 내가 어째서 그대의 앞에 나타났는지 아나?’

* * *

유랑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결국, 우리가 또다시 만났군.’

* * *

고독하게 앉아 있는 내가 보였다.

쓸쓸하고, 괴로웠다.

혼자여서.

* * *

“흐악!”

식은땀을 느끼며, 눈을 떴다.

수많은 사건이 혼란스럽게 머릿속에 들이닥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너무 희미하게 보여서, 과정 없이 결과만 기억나는 미래들도 있었다.

‘이거…… 이것들은 대체 뭐야?’

어지럽고 생각이 뒤죽박죽이지만, 지금 나아갈 목표는 정해져 있다.

길의 끝에 놓인 그릇까지는 네 걸음.

그러나 기어코 정신이 혼미해졌다.

‘제……기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의식이 점멸하며 쓰러진다.

생명 그릇을 향하여 손을 내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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