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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71화 (71/200)

나만 1회차 071화

산맥의 정상으로 향하는 그 10일 동안, 나는 귀찮은 시선에 시달렸다. 내가 하룻밤 만에 언데드 5만 병력을 몰살시켰다는 소식이 퍼진 것이다.

‘실제로는 용들이 거의 다했고, 나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지만.’

과장된 명성은 좋아하지 않지만, 원정대의 사기가 오른다면 그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나는 명망에는 그에 상응하는 관심이 뒤따른단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퍼석퍼석한 빵을 씹다가 몸을 옭아 매는 사람들의 시선에 목이 꽉 막혔다.

“저 오크들 뭐 하러 왔습니까?”

내가 묻자, 안도니크는 무기를 든 청년 오크들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각 부족에서 촉망받는 전사들이다. 범철에게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모두 호전적인 열의에 차 있다.”

“전부 꺼지라고 해요. 괜히 힘이나 빼면서 군기 흐리지 말고.”

전쟁 중에 도전이라니, 제정신인가?

상대해줄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되어 말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로골로골! 라크로므날!”

청년 오크들은 내 거만한 경고에 자극되어 더욱 힘을 겨루고 싶어 했다. 이제껏 그들의 부족사회에서 자신들에게 나처럼 말했던 자는 없었던 것이다.

밤잠을 자는 와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오크들 때문에 짜증이 나서 난 칼을 쥐었다.

“너, 너, 너, 너. 덤벼봐라.”

내가 차례로 손으로 가리킨 네 오크가 가장 덩치가 크고 매서웠다.

나의 행동을 이해한 청년 오크들이 무기를 쥐었고, 그들은 그로부터 10초 뒤에 모두 무기를 놓쳤다.

다른 꼼수는 쓸 필요조차 없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오크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커억! 라메쿠르! 오칼타!”

전쟁 중이라 어디를 부러뜨릴 순 없어서, 멍 자국만 열 개쯤 놔줬다.

‘안 졸리면 8초 만에 끝냈을 텐데.’

뒤에 서 있던 오크들은 허무하게 쓰러진 자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나는 하품하며 대검을 바닥에 역수로 박고 왼손으로 불꽃을 피워냈다.

“더 할래?”

“……!”

청년 오크들은 마법까지 다루는 날 보며 경악하더니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렇게 흠씬 혼이 난 청년 오크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않았다.

혈기만 앞서는 오크전사들을 혼내줬단 소문이 나돌며 나를 향한 몇몇 여성들의 눈빛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래서 몹시 심각한 이 문제에 관하여 카티에와 진지하게 상담했다.

“이러다 내가 미녀 대원들한테 밀담쪽지라도 몇 개 받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지 마요. 내가 다 태웠으니까.”

“…….”

나는 말없이 재가 듬뿍 묻은 카티에의 양손을 옷깃으로 닦아주었다.

그러자 카티에가 조금 감동받았는지 볼멘소리로 옷깃을 쥐었다.

“대장이 날 원망할 줄 알았어요.”

“원망하면, 우실 것 같아서.”

“내가 우는 게 싫은가요?”

“괜찮은데, 가끔 조금 피곤하거든.”

“나도 대장이 우는 것이 괜찮아요. 가끔은 울리고 싶을 때도 있어요.”

“…….”

다소 잡음은 있었지만, 원정대의 군기가 딱히 흐트러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철저한 군기 속에서도 나를 향한 열망이 담긴 눈초리는 끝이 없었다.

그만큼, 원정대는 언데드 군단에게 거둔 승리에 흥분되어 있었다.

“설마 그 강력하고 많은 언데드 군단이 벌써 몰락해버릴 줄이야.”

“과연 범철이다. 전생에서부터 쌓아 올린 신화는 거짓된 게 아니었어.”

“이겨서 돌아가자! 해낼 수 있다!”

인간들은 회귀할 수 없다는 공포를 견뎌냈고, 오크들은 나라는 인간상에 열광하며 전쟁에 더욱 고취됐다.

‘전생의 나도 이 과정을 겪었을까.’

사람들의 감탄 어린 시선과 찬양.

관심병자라면 황홀경이겠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다. 추앙받거나 찬양을 받는 것은 그에 맞먹는 참견도 동반하는 법이니까.

‘하여간.’

지금은 그런 관심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크 리치와의 결전이 다가온다.’

향연의 산맥에는 여러 봉우리가 존재하지만, 가장 높은 정상은 한 곳.

원정대는 리치가 살고 있는 산맥의 정상에 날이 갈수록 근접하고 있다.

열흘 동안 모두가 경계했지만, 아크 리치의 습격은 전혀 없었다.

‘그날 밤처럼 리치가 원정대를 멈춰 세우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기서 가장 아크 리치를 잘 아는 일레아흐는 원정대가 멈추었던 그 사건을 그간 경험에 비추어 분석했다.

“5만의 생명체를 멈추게 하는 힘을 썼다면, 아크 리치 본인도 상당히 무리했을 겁니다. 실제로 당시 정지가 그렇게까지 길지는 못했고. 그 부작용으로 다신 원정대 전체를 멈춰 세우거나, 분신을 소환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습격이 없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왠지 아크 리치가 우리를 산맥 정상에서 기다린단 생각이 들었다.

그간 안도니크는 지휘를 맡은 밀밭기사단에게 오크어를 가르쳤다.

“지휘에 필수적인 단어만 우선해 가르치겠다. 진격은 ‘레폴코’다.”

“망할. 역시 언어는 쉬운 게 없군.”

“찢어 죽일. 헷갈려 죽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생에서 좀 배워둘걸.”

기사단이 투덜거릴 때, 튜크는 뼛가루를 유리병에 담고 있었다.

“산맥을 오를수록 인간 말고 맹독 계열 몬스터의 유해가 많나 본데? 죽어서도 독기를 내뿜는 뼛가루들은 독액에 섞으면 어린애도 녹여 버리지.”

도둑길드 정예들은 독에 관한 조합술에 탁월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검의 표면에 고산지대의 뼛가루를 섞으니 독기가 더욱 진해졌다.

그렇게 정상에 가기 전날 밤, 나는 암론이 무덤을 만드는 걸 지켜보았다.

뼛가루를 치우고 맨땅에 죽은 크레스 시 일원의 찢긴 군복을 묻었다. 그리고 나무 십자가를 박아 세웠다.

“크레스 시의 일원들은 모두 미숙한 나를 도와줬어요. 다 함께 일한 삶이 15번이나 될 만큼 오래됐죠.”

암론은 무덤을 바라보며 회상했다.

“바다에서 익사하기도 했고, 마녀의 화덕에서 타죽었던 적도 있었어요. 고통스레 죽더라도 다음 삶에서 모두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됐죠.”

그가 구슬땀을 닦으며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추억도 끝이네요.”

산맥에서 죽은 회귀자들은 이곳에서 사망하며 회귀가 끝나고 말았다.

다시는 죽은 그들을 볼 수가 없다.

암론이 밤새 울어서 부르튼 눈을 비볐다.

“첫 전투에서 용들이 출현했다면, 사망자 없이 이길 수 있었을까요.”

“……암론.”

“우리 전략을 탓하진 않아요. 용이 그때 등장하면 기습의 의미가 없겠죠. 날뛸 수가 있는 평지도 아니었고. 내가 원망하는 것은 아크 리치예요.”

암론은 무덤을 세웠던 손으로 숫돌에 칼을 갈기 시작하였다. 어리숙한 손길이었으나 왠지 분노가 실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걱, 스걱.

숫돌에 칼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도 한 도시의 지부장인데, 너무 나약한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닌가.”

암론은 칼을 들어 보였다.

갈려진 칼날이 별처럼 번뜩였다.

“범철을 보고 깨달았어요. 타고난 재능도 빛나려면, 그에 뒤따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요.”

“…….”

“저는 재능 따윈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암론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복수심을 품은 회귀자는 얼마나 냉혹해지는가.

“죽지 않을 겁니다. 죽일 거예요.”

그의 말에 결의가 담겨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산맥의 정상에 들어섰다.

* * *

산맥의 정상은 산 중턱에 비해서 산소가 희박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며 구토하는 고산병 증상에 시달리거나 오랜 행군으로 기력을 잃고 쓰러지는 이도 많았다.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푸른 눈의 히사네가 성스러운 횃불을 들고 주위를 살피며 행군을 멈추게 했다.

산맥의 정상은 다른 곳보다 안개가 훨씬 짙어 주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 회귀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귓속에 들어왔다.

“휴! 우리가 정말 정상에 오다니.”

“백 번 넘는 전생을 통틀어도 이곳에 왔던 경험은 고작 4번뿐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확실히 이번 삶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야.”

나는 턱에 손을 짚고 산맥 정상의 지대를 세밀하게 살폈다.

카티에가 왼손을 쥐었다가 펴며 말했다.

“기적 쓸 준비를 해야겠어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전멸할 테니까.”

“이곳에서 벌어질 싸움이 황색대륙에서의 최후의 결전이 되겠군요.”

헤르탄의 주먹이 곰발로 변하였다.

반면에 퀸소히니베는 갈수록 컨디션이 나빠져서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난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이 마치 불을 만진 것처럼 뜨겁게 느껴지자 낮게 속삭였다.

“너, 이러다 오늘 죽겠다.”

“……재수 없는 소리.”

“지켜주는 사람 붙여달라고 할까?”

“……흥. 목숨 하나 간수하지 못할 만큼 나는 가녀리지 않은 것이야.”

하여간 저 고집하고는.

내가 퀸소히니베에게 조언했다.

“어지간하면 후열에 있어라.”

“말하지 않아도 그리 할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자기 이마에 얹은 내 손을 조물조물 만지며 슬쩍 물었다.

“……내가 죽으면 울어줄 것이야?”

“그럼 너보다 강한 용이랑 다녀야겠지.”

“감히 주인을 갈아타겠단 것이야?”

“그러면 죽지 말고 살든가.”

“……흥! 너야말로.”

정상에는 위험한 분위기가 감돈다.

푸른 눈빛의 히사네가 장담했다.

“언데드 군단이 일찍 전멸해버린 덕분에 축적된 성물의 물자가 많습니다. 오늘, 그 어느 삶보다 최적의 전투를 벌일 수가 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쪽수 많은 언데드조차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성물의 힘이란 막강하다.

그러나 이번 결전에는 군단 없이 아크 리치, 그 단독 개체와의 싸움이다. 제아무리 아크 리치라도 성물의 신성력에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범철. 모든 준비가 완벽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그릇을 찾지 못하면 전부 수포로 돌아갑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120회차를 통틀어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아크 리치의 생명그릇.

제아무리 싸움이 유리하다곤 해도 생명그릇을 파괴하지 못하면 아크 리치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생명그릇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다만 나는 생각해둔 계획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선 비책이 있습니다.”

막 거기까지 대화를 나누었을 때, 별안간 지축이 요란스레 울렸다. 그리고 안개 저편에서 칠흑색 창이 날아들더니 한 원정대원의 등을 꿰뚫어버렸다.

퍼걱!

“아아악!”

“뭐, 뭐야!”

원정대가 서둘러 무기를 빼 들었지만 창날의 궤도가 마구 틀어졌다. 공격을 회피하려 해도 각도가 뒤틀려 다가오는 창은 피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 수십 명의 원정대원이 가슴이 꿰뚫려서 사망하고 말았다.

히사네가 입술을 깨물고 소리쳤다.

“대규모 학살의 흑마법이다. 모두 제7번 성물을 4열 중앙에 심어라!”

한 병사가 환한 빛을 자아내는 꽃을 들고서 흙바닥에 재빨리 심었다.

[미소 짓는 광휘의 금어초가 남은 네 개의 꽃잎을 떨어뜨렸습니다.]

[신성력의 위력이 4배 늘고 주위 산소의 농도가 4배 짙어집니다.]

[원정대를 향한 흑마법이 무효화되며 시전자가 강제 공개됩니다.]

짙디짙은 안개가 걷히며 흑마법을 쓴 장본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거기에는 굳센 해골이 악마처럼 서 있었다.

황색대륙 지배자의 진정한 본모습.

20미터는 될법한 키와 진홍빛 로브, 산 중턱에서 보았던 분신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위압감!

저것이…… 진정한 아크 리치였다.

[황색대륙의 지배자가 출현했습니다!]

[원정대의 사기가 감소하며, 각종 정신병 발생확률이 크게 오릅니다.]

“아, 아크 리치……!”

“빌어먹을! 분명…… 전생에 봤었는데도 몸이 자꾸만…… 떨려……!”

아크 리치가 뼈 손가락을 까닥이자 방금 말하던 원정대원 둘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아악!”

두 원정대원은 보이지 않는 마력에 사로잡혀 몸이 찢겨 사망했다.

그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마치 파리라도 되는 것처럼 아크 리치는 사람을 죽여 버린다.

“나를 숱하게 귀찮게 했던 회귀자들이여. 이곳에서 끝을 맞이하라.”

원정대원들이 겁에 질려 주춤댔다.

겁이 많다고 욕할 수는 없다. 진짜 죽음 앞에서는 당연한 본능이니까. 이곳에서 죽으면 회귀할 수 없다.

그렇게 모두 공포에 질려 있을 때, 나만이 혼자서 앞으로 나섰다.

“아크 리치.”

내가 앞에 나서자 아크 리치의 태도가 일순간 바뀌었다. 줄곧 음산하던 놈의 목소리가 격앙된 분노로 달아올랐다.

“나를 배반한 네놈이 기어코……!”

“너의 생명그릇은 명계의 문에 숨겨져 있었군.”

난 아크 리치의 말을 끊어버렸다.

* * *

아크 리치가 턱뼈를 달칵거렸다.

“갑자기 무슨 말 같지 않은…….”

“어설픈 연기는 관둬라. 네가 생명 그릇을 문 뒤에 숨겨둔 것을 안다.”

해골이라 표정이 없는데도 아크 리치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지고 있다.

내가 누구도 모르던 생명그릇의 위치를 파악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 앞에 떠오른 문구가 이러했다.

[살의로 회귀자를 관측합니다.]

[지정된 회귀자가 기피하는 변수를 실시간으로 입수합니다.]

[변수는 질에 따라 최고급, 고급, 중급, 하급, 최하급으로 나뉩니다.]

[살해한 회귀자 숫자가 많고, 상대가 자신보다 강할수록 고급변수 정보가 창출될 확률이 증가합니다.]

《아크 리치》

설명: ???

*현재 감정능력이 낮아서 대상의 완벽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펜타그램에 덧칠된 색채에 의해 상위변수 창출확률이 높아집니다.]

[대상과 본인의 능력치 차이가 막대해 최고 상위변수가 창출됩니다.]

[120회차 동안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다섯 정보를 습득합니다.]

[최고급 변수 5개 획득!]

[리치의 생명그릇은 명계의 문 너머에 숨겨져 있습니다. 보랏빛 문의 위치는…….]

…….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던 최고급 변수가 무려 다섯 개!

전부 아크 리치 살해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만한 최상의 변수들이다.

나는 그 정보를 모두 읽어냈다.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그걸!”

경악한 아크 리치가 이를 갈았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차가워졌다.

오히려 놈이 회귀했기에,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하기에 나는 저 자식을 살해할 수가 있다.

나는 아크 리치에게 확고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회귀한 순간, 난 너의 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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