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67화 (67/200)

나만 1회차 067화

“지, 진짜였어!”

“이곳에서 죽으면 회귀란 없다.”

“죽게 되면 정말…… 죽는 거야.”

회귀자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로써 완전히 증명되고 말았다. 관문에서의 경고가 사실이었음을.

‘이곳 산맥에서 사망한 인간은 회귀할 수 없다. 아크 리치에 의해서.’

비록 영역은 한정되지만 사망한 인간의 회귀를 멈춰버리는 힘이라니, 고작 일개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초월적인 권능이다.

아크 리치는 지금껏 싸워온 적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대였다.

‘특정 지역의 사망 회귀까지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힘이 끔찍한 거지?’

칼자루를 쥔 손에 핏줄이 솟는다.

과연 신의 경지에 가까운 몬스터.

설령 대마법사라 해도 저렇게 막대한 권능을 발휘할 순 없을 것이다.

‘대마법사 이상이 그린 마법진은 본인이 아니면 함부로 지울 수 없다.’

즉, 원정대가 회귀능력을 되찾기 위해선 회귀할 수 없는 이곳을 벗어나거나 아크 리치를 죽여야 한다.

어쩌면 회귀자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때 푸른 눈의 히사네가 원정대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고함을 내질렀다.

“오우거 좀비는 육중한 무게에 비해 한쪽 발이 짧다. 짧은 발부터 공격해 중심을 일제히 무너뜨려라!”

여기서 회귀자 집단의 또 다른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전생에서 싸워본 몬스터의 전투에서의 약점을 속속히 꿰고 있다는 것!

안도니크를 비롯한 여러 부족의 영리한 오크가 명령을 통역했다.

각 부족의 족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크들이 매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로나키수! 레탈카챠!”

오크들이 휘두른 둔기에 좀비의 살점이 타격감 있게 찢어지며 떨어졌다.

“단검의 매력은 효율성에 있지.”

정예도둑들은 전장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단검을 날렸는데, 던지는 족족 기가 막히게 급소에 꽂혔다.

“오크들은 전방에 두고, 말을 탄 녀석들은 측면에서 날 따라와라!”

저마다 돌격부대를 이끄는 밀밭기사단원이 나서자 좀비가 엎어졌다.

“아, 프, 다!”

“아악!”

오우거 좀비가 기울자 좀비 떼가 하나둘씩 연달아 부딪쳐 쓰러졌다.

특히 대활약을 한 것은 카티에였다.

신성력을 담은 마법과 축복으로 소녀는 누구보다 많은 적을 해치웠다.

나는 대부대에 짓밟혀서 내장이 찢기는 좀비 떼를 보고서 깨달았다.

‘6만의 오크보다 1천의 회귀자가 전쟁에서 훨씬 중요하고 강대하군.’

이전 회차에서 향연의 산맥에서 싸워봤던 경험을 간직한 자살기도회. 이들이 보유한 정보 하나하나가 전장에 무지막지한 도움이 되고 있다.

‘새삼 회귀자가 1회차에 비해서 얼마나 우월한 존재인지 알겠군.’

강력한 화력을 지닌 오크조차도 정보에서 밀리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만큼 회귀자의 전생 지식은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마지막 한 마리의 오우거 좀비까지 깔끔히 전멸하자, 글귀가 떠올랐다.

[두 번째 습격을 막아냈습니다.]

[힘이 4 올랐습니다.]

[첫날밤, 아크 리치 세력의 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냈습니다.]

[향연의 산맥에서 하루씩 생존할 때마다 안개 환경에 적응합니다.]

[원정대 전원이 안개에서 호흡할 시 기력재생이 3% 상승합니다.]

그 문구를 읽고 나서야 원정대원들은 한숨을 쉬며 털썩 앉을 수 있었다.

아침이 되었지만 먹구름이 몰려온 통에 햇빛은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크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는 반면, 자살기도회 일원들은 모두가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가라앉았군. 승리했는데도 초상집 분위기라니.’

역시 산맥에서 죽으면 회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정됐기 때문일까.

내가 아군의 사기를 걱정하고 있을 때, 암론이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범철.”

“아, 마침 잘 왔어요. 암론, 회귀자들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요. 이러다 자칫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요?”

내가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군요. 어떻게 회귀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죠?”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이전에도 암론은 나를 존경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색은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는 마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질적인 표정이다.

“혼자 회귀할 수 없다는 것…….”

암론이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 동료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시체더미 사이에서 암론의 부하이던 크레스 시 일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

불행히도 저 다섯이 전부 죽었군.

나도 저들과 인연이 있었다. 내가 직접 칼을 가르쳐주기도 했으니까.

암론은 부하가 전멸하고도 혼자만 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새하얘진 얼굴로 나지막이 말한다.

“범철이 항상 이런 기분이었군요. 죽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나와 암론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냉혹한 전장에서는 회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전생의 원수들이 나를 노리는 것만큼이나 말이지.

말문을 잇지 못하던 그가 되뇌었다.

“첫 번째 삶 이후로 처음입니다.”

암론, 비로소 회귀 불능을 체험하게 된 이 회귀자가 창백해져서는 몸을 떨었다.

“죽는 것이…… 너무 무서워요.”

회귀자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첫 번째의 세상 이후 처음으로 죽으면 죽게 되는 순리를 겪으며,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더 이상 듣기만 하기는 싫었다.

나보다 오래 살았음에도 동생처럼 느껴지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니까.”

“범철…….”

“나도 죽음이 무서워요.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강해지려고 기를 쓰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되새겨본다.

내가 어째서 발을 들여놔선 안 될 이곳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지.

“다만 우리만 무서워해선 안 돼요.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모든 인류가 우리 같아져야 합니다.”

나는 그 때문에 세 지배자를 죽여야만 한다.

바꾸고 싶으니까.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회귀자로만 가득 찬 이 버림받은 이계를.

그의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았다.

“그것이 내가 되찾고자 하는 평범한 세상입니다.”

암론의 핏물과 뼛가루로 얼룩진 뺨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놓는다.

위로는 구차하다. 그런다고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니 내가 반드시 바꿔내겠다.’

낮술이 당기는 아침이다.

* * *

이튿날, 처음으로 탈영병이 나왔다.

탈영하려던 그들은 숨겨진 샛길-참 회귀자답다-에서 붙잡혔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잡아 왔는지 튜크가 다섯 회귀자를 묶고서 뒷짐을 졌다.

“어떻게 할까?”

“원정에서 정해진 규율에 따라라.”

“이, 일레아흐 본부장님!”

다섯 탈영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자 히사네가 마법수정구를 땅에 떨어뜨리고 본래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함부로 그 이름을 부르지 마라. 너희는 감히 일레아흐 님을 본부장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것들이다.”

히사네의 일갈에 탈영병들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줄곧 명령을 전달만 하던 그녀가 직접 말을 내뱉는 것은 처음 봤군.

다시 수정구를 주워들고 히사네가 푸른 눈빛을 빛내며 명령을 전했다.

“이 시간부로 너희를 영원히 자살 기도회에서 추방한다. 또한, 전쟁 중 이탈은 규율대로라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아야 하나, 현재 상황을 감안하여 단순한 사형으로 끝낸다.”

“자, 자비를…… 커헉!”

새파래진 탈영병이 항의하기 전에 히사네의 손이 그의 목을 꺾었다.

“아, 안 돼! 회귀할 수 없다고!”

“살려줘! ‘진짜’ 죽고 싶지 않아!”

회귀자들이 울며불며 애원했으나 히사네의 손아귀는 자비가 없었다.

뚜둑!

간결한 사형.

완전한 죽음.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모두가 씁쓸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공개처형이 벌어진 이후 원정대에서 탈영병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 * *

처형 뒤의 무색한 분위기 속에 젖은 나를 일깨운 것은 퀸소히니베였다.

“……내 몸이 좋지 않은 것이야.”

구부정하게 땅에 쭈그려 앉은 그녀의 얼굴빛이 붉고 초췌해 보였다.

나는 주위에 날아다니는 날벌레를 피해서 그녀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열이 조금 있는 것 같은데? 비가 오고 추워서 그런가?”

이상한데. 용이 춥다고 감기에나 걸릴 만한 종족은 아니지 않나?

퀸소히니베가 나를 울적한 얼굴로 올려다봤다.

“내 노예는 몸 아픈 주인을 위해서 병간호를 해줘야만 하는 것이야.”

“전쟁 중에 병간호는 무슨. 너는 오늘 전투에서 후열에만 있어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용이니 쉽게 쓰러지진 않겠지.

아침에 처형 이후 원정대는 말없이 짐을 꾸리고 물자를 점검했다.

나는 카티에가 소매에 단검을 챙기는 것을 보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너, 단검도 쓸 줄 알았냐?”

“회귀는 헛했는지 알아요? 대장만큼은 아니지만 단검 하나만으로 목 여러 명 그을 실력쯤은 있어요.”

내 질문의 의도를 오해한 카티에가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우연일까? 꺼림칙한데.’

가끔 꾸는 악몽에서 카티에가 날 죽이려 할 때의 무기가 바로 단검이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목을 매만지자, 카티에가 픽 웃었다.

“왜요, 내가 대장을 찌를까 봐요?”

“의심스럽기는 해.”

“뭐가 그렇게 진지해요? 내가 지키려는 대장을 내 손으로 죽일 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말이 맞다. 그런데 왜 마음 한편이 찜찜할까.

고개를 휘저었다.

‘털어내자. 잡념에 말려 있을 새가 없다.’

오늘 하루도 원정대가 어김없이 산맥을 올랐으나, 나는 고심에 잠겼다.

‘몬스터가 출현하지 않는 대낮이야말로 생명그릇을 찾아낼 적기이다.’

사실 산맥의 관문을 넘어섰을 때부터 나는 그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크 리치의 생명그릇!

리치의 생명력을 담아낸 그릇을 찾아내야지만 놈을 죽일 수가 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이계에서 몹시 희귀하고 가치 있는 보물로 취급된다.’

내겐 SSS급 보물탐색 재능이 있다.

그래서 난 정예도둑보다도 생명그릇을 먼저 찾아낼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전생에서 누구도 찾지 못한 보물일지라도 걸리는 족족 내 눈에 띄었으니까.

사실 어제, 오늘만 해도 산기슭에서 숨겨져 있던 보물들을 파내었다.

『불행스러운 흑색마력의 허리띠』

싸구려 허리띠였으나 아크 리치의 기운 탓에 타락한 마력이 깃들었다.

+날마다 심각한 자해를 하게 된다.

+모든 흑마법 경지 한 단계 상승.

『비명을 마구 내지르는 연초』

백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담뱃잎으로 꼬아 만든 연초. 피우는 순간 하루 종일 환상적 이상향을 꿈꿀 수 있다.

+피우는 순간, 흡연에 중독됨.

+환각의 비기를 깨달을 수 있지만, 끔찍한 환시, 환청이 매일 찾아옴.

『악마가 될 수 있는 마법서』

표지를 여는 순간 저주받는 마법서. 8서클을 달성한 흑마법사에게만 서적을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 한다.

향연의 산맥에 묻힌 값비싼 보물!

그러나 지금의 내겐 쓸모가 없었다.

정작 내가 찾고 있는 생명그릇은 어디에도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흑마법을 써서 숨겼다고 가정해도 내 재능이라면 뭐라도 보여야 했다.

‘아크 리치가 평범한 장소에 생명 그릇을 숨겨놨을 리는 없을 텐데.’

결국 그날 소득은 없었다.

이윽고 두 번째 밤이 찾아온다.

안개가 녹색으로 변하며 지독한 악취에 모두가 코를 막고 찡그렸다.

“이틀째부터는 아크 리치가 안개에 독을 풉니다. 호흡기 질병에 걸리고 능력치가 현저히 떨어지게 되죠.”

일레아흐에게 빙의된 히사네가 해결책으로 횃불을 꺼내서 쥐었다.

하루 종일 성스러운 불꽃을 태우는 그 횃불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자살기도회 창고 맨 아래층에 보관되어 있던 고위성물 중 하나!

‘회의 때 잠깐 언급됐었지. 꺼지지 않는 성화(聖火)라고 했던가.’

푸른 눈의 히사네가 걸으며 성화를 휘젓자 안개의 독기가 사라졌다.

‘오늘 밤에도 전투가 벌어진다.’

성스러운 횃불에 독기는 물러갔어도 몬스터까지 물러가지는 않는다.

회의에서 언급됐던 대로라면 오늘도 몬스터의 습격이 있을 것이다.

어젯밤을 잊지 못한 원정대는 모두 긴장을 잔뜩 하고서 적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습격이 없다.”

누군가 중얼거렸고, 나는 동감했다.

기다려도 산맥은 고요할 따름이었다.

“이상하군. 원래 이튿날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시간이 한참 지났어.”

“딱히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 중에서 아크 리치의 패턴에 영향을 끼칠 만한 것은 없었을 텐데?”

예상치 못한 변수에 모든 회귀자가 의아함을 표했을 때.

불현듯 모든 이가 멈춰 섰다.

‘……뭐야?’

나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미리 호흡이라도 맞춰둔 것처럼.

모두 동시에 하고 있던 동작을 멈추고 가느다랗게 숨만 쉬고 있었다.

“이봐요. 다들 왜 그러는 겁니까?”

멈춰있는 사람을 붙잡고 흔들거나 크게 소리쳐 물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다들 눈동자의 초점조차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채 가만히만 있었다.

‘전부 의식이 없어. 왜 이러지?’

당황한 나는 암론의 뺨을 후려갈겨 봤지만, 그는 깨어날 기색도 없었다.

방수포에 쏟아지는 빗줄기가 여전하고, 밤바람도 계속 불어대고 있다.

그러나 다들 굳어버린 것처럼 제자리에 발을 붙이고 서 있을 뿐이다.

‘설마.’

한참 살피고서야 나는 상황을 파악했다.

수만의 원정대가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누군가의 힘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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