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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66화 (66/200)

나만 1회차 066화

질척대는 늪지보다 꺼림칙한 음성.

그 뜻밖의 경고에 모두가 당황하였다.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었어?”

“관문을 넘어가 죽으면 우리 모두 회귀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난 이곳에 온 게 다섯 번째야. 하지만 저런 소리…… 처음 듣는데.”

자살기도회가 소란스레 웅성댔다.

나는 바로 히사네에게 다가갔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황색대륙의 지배자가 경고한 것입니다.”

히사네의 눈빛이 유독 푸르렀다.

나는 금방 눈치를 채고 말했다.

“일레아흐입니까?”

“예. 지금 히사네의 몸을 빌려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크 리치가 이런 경고를 하는 것은 최초입니다.”

“최초라고요?”

“예. 아크 리치는 지금껏 말상대 따위는 하지 않고 침입자를 쓸어버렸으니까요. 먼저 대화를 걸어온 것조차도 처음 있는 경우입니다.”

그녀의 어조는 몹시 부정적이었다.

“더군다나 회귀할 수 없다니. 저 또한 산맥에서 죽었던 경험이 있지만, 이제껏 잘만 회귀했습니다. 120회차에 이상한 변수가 생겨났군요.”

산맥에서 죽으면 회귀하지 못한다.

즉, 그건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 회귀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저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지금은 판가름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120회차의 아크 리치가 경고할 만큼 경계심을 높였지?

나는 원정대의 분위기를 살폈다.

너무 많아서 파악이 잘 안 됐지만, 당황하는 것은 분명 인간뿐이었다.

오크들은 어서 안 가고 뭘 하냐는 듯 시큰둥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하기야 회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니까, 저들은 상관없지.

‘뭐, 어차피 나도 원래 회귀를 하지 못하니까 정신적 충격 따윈 없지만.’

회귀를 하지 못해서 이득 본 경우는 처음이지만, 상황이 난감하다.

회귀자는 경험상 목숨을 내건 전투라는 행위 자체를 몹시 낯설어한다. 모두 어떻게 죽더라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일상처럼 여겨왔으니까.

‘하지만 산맥 너머에서 회귀할 수 없다면, 다들 과연 싸우려고 할까?’

인류의 회귀를 멈추려는 이유는 평범했던 세상을 되찾기 위해서다.

인류가 마지막 삶이란 것을 인지하고 제대로 살아가는 평안한 일상!

그러나 관문 너머에서 죽는다면 그저 개죽음으로 인생이 끝날 뿐이다.

거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회귀자 특유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미친 전투는 벌일 수가 없다.’

가령 예전에 내게 복수하려고 좀비가 돼 자폭해오던 전생의 원수들처럼.

회귀자는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아군이 죽더라도 사기를 잃지 않는다. 누가 죽더라도 픽 웃으며 맹렬하게 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회귀자다.

그러나 저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 그러한 회귀자의 강점은 사라진다. 저곳에서 사망해 회귀할 수 없다면, 목숨은 하나로 한정되어버리니까.

도둑 수장 튜크가 콧날을 찡그렸다.

“리치답게 교활한 술책이로군. 고작 말 한 마디로 전군을 흔들다니.”

“아니. 방금 아크 리치는 아주 멍청한 짓을 한 거다.”

히사네의 푸른 눈빛이 날카로웠다.

영혼을 공유한 일레아흐가 흥분한 것인지 눈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모두 저 말이 두렵나? 명확한지조차 판명 나지 않은 저 말 한 마디가?”

본래도 우렁찬 히사네의 목청이 일원의 마법으로 강화되어 울렸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전 아크 리치의 경고보다 훨씬 날카롭고 장엄했다.

“거짓이라도 좋고, 진실이라도 좋다.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자살기도회 병사들이 본부장의 목소리를 군기 잡힌 상태로 경청했다.

오크들도 히사네의 소신 있는 연설에 호기심을 표하며 귀를 기울였다.

“회귀가 가능하다면 우리는 또 과거로 돌아가 복수를 준비할 것이다. 회귀를 할 수 없다면, 오히려 우리는 하나뿐인 목숨을 바칠 것이다.”

우리 일행도 그 연설을 경청했다.

나 역시 그녀의 말이 흥미로웠다.

헤르탄만은 어째선지 그립다는 눈빛으로 그녀의 연설을 지켜보았다.

“왜냐고? 회귀자에겐 목적이 필요하다. 미쳐 버리는 회귀 속에서 살아가는 목적. 우리에겐 그것이 바로 저 오만한 아크 리치의 죽음이다!”

회귀자들의 눈빛이 뜨거워진다.

히사네의 어조가 더욱 격앙되었다.

말하고 있는 여자가 히사네가 아니라 일레아흐로 겹쳐 보일-물론 말이 되지 않지만, 단지 느낌상-정도다.

그녀가 오른팔을 높게 들어 올린다.

“전진! 이번 삶이야말로 우린 아크 리치를 죽이는 데 성공할 것이다.”

연설을 마치고 히사네가 가장 먼저 당당하게 산맥의 관문을 넘어섰다.

“일레아흐 본부장님…….”

“망설인 내가 부끄럽다. 적의 확실하지도 않은 발언에 흔들리다니.”

지도자의 발걸음에 회귀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그 뒤를 따라나섰다.

나는 팔짱을 끼고서 내려다봤다.

“너는 괜찮냐?”

“대장이 가겠다면 따라가야겠죠. 내가 곁에서 꼭 지켜줘야 하니까.”

“저기서 죽으면 회귀하지 못하는데도?”

“설령 내가 죽어도 다음 회차에서 나의 일행이 대장을 도울 거예요.”

나는 회귀 시점 초반에 종탑에서 자살한 카티에의 일행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줄곧 나와 함께 다녔다는데, 이번 삶에서는 인연이 없군.

나는 또 다른 일행을 올려다봤다.

“헤르탄은 어때요?”

헤르탄은 가볍게 고개를 조아렸다.

“어디든 따르겠습니다. 범철.”

자기 주변에서만 윙윙대는 날벌레 떼를 보며 퀸소히니베가 울상을 지었다.

“뭐라고 말하든 유언만 되어버릴 분위기이니, 어서 가자는 것이야.”

원정대가 다 함께 관문을 넘어섰다.

* * *

새하얀 산이었다.

눈이 내린 것은 아니지만, 우거진 산에 흰 가루가 얇게 산재해 있다.

잎사귀에 묻은 하얀 가루를 털어내서 혀에 대어본 헤르탄이 평가했다.

“이것은 인간의 뼛가루입니다.”

“그걸 어떻게 단박에 알아냅니까?”

“인간의 뼈 맛을 기억하니까요.”

“…….”

나는 온통 새하얀 산등성이를 살펴 보고는 비위가 상해버릴 지경이었다.

‘죄다 뼛가루로 뒤덮인 산맥이라니.’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 나갔을지 상상도 하기 싫군.

“으앗!”

“암론. 조심해요. 완전히 풍화되지 않은 뼈가 땅바닥에 얽혀 있습니다.”

“괘, 괜찮습니다. 범철.”

암론은 검을 제 몸뚱이처럼 쥐고 몸을 일으키려다 또 넘어져 버렸다. 그러자 크레스 시 일원 하나가 혀를 차며 다가가 상관을 일으켜 주었다.

“그러다 제일 먼저 죽겠습니다. 지부장님.”

“고, 고마워. 컨돈.”

암론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세밀히 보았다.

암론의 손아귀는 떨리고 있었다.

“긴장됩니까?”

“……아무래도요. 이곳에서 죽으면 회귀도 하지 못하고 진짜 죽어버리니까.”

“오히려 자살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주받은 회귀에서 벗어날 기회인데.”

“아, 아뇨. 여기 온 사람들은 각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곳에서 죽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바라던 죽음이 전혀 아니에요.”

“최소한 인생의 마무리는 그동안 바라던 대로 짓고 싶다는 겁니까?”

암론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회귀를 멈추고 싶어요.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죽기 위해서 회귀를 멈춘다니.

회귀자의 심정이란 것은 복잡하군.

암론의 등짝을 가볍게 쳤다.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목숨이 하나면 다들 최선을 다할 테니까.”

우리는 하루 종일 산맥을 올랐다.

산맥 군데군데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서 활동하기가 몹시 불편했다.

‘평범한 안개와는 뭔가 다르군.’

안개는 바람에도 걷히지 않았고, 들이마실 때 몹시 불쾌하단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전생에 이곳을 탐사했던 자살기도회가 자연스레 앞장서 걸은 것이다.

‘역시 회귀자는 최고의 길잡이군.’

비가 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땅이 젖지 않았다면 행군 시에 휘날리는 뼛가루를 삼켜야 했을 것이다.

밤이 되자 불을 지피고 야영한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될까.’

바보가 아니기에 앞일이 보인다.

본군의 숫자를 압도하는 원군은 더 이상 원군이라고 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특히 언어조차 거의 통하지 않는 이종족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데도 연합이 유지되는 것은.’

동일한 목적을 향한 확고한 의지. 그리고 나에 대한 오크들의 애호.

‘오크들은 내가 아니었다면, 이런 전쟁에 참전까진 안 했을 테니까.’

도끼병이나 관심병 환자로 오해할진 몰라도, 이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내가 짐작하는 불안요소를 일레아흐 역시 모르지 않았다.

“범철이 죽으면 이번 원정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고 봐야 합니다. 오크가 등질 확률이 높을 테니까.”

원정대에 오크 병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90%를 거뜬히 넘어선다.

그래서 그만큼 이번 원정에는 나의 생존과 역할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후열에서 머물며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 이 원정 역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이다.’

오늘 아침에 관문을 통과한 이후, 적이 습격해온 일은 전무했다.

그러나 사방이 어두워지자, 산맥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카학! 인간! 침입해온 인간!”

“키히이잉!”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울음소리가 퍼진다.

원정대 모두 횃불을 높이 들었다.

나는 뼈로 된 대검을 손에 쥐었다.

‘밤이 시작되면, 습격도 시작된다.’

* * *

지난 회의에서 아크 리치의 패턴과 능력에 관해서 모두 설명을 들었다.

산맥에서는 대낮에는 건드리지 않지만, 밤이 되면 즉시 습격이 들어온다.

‘아크 리치는 강력한 몬스터지만, 인간이 아니기에 회귀할 수 없다.’

생명그릇을 제외하고도 가장 큰 약점!

약간의 변화가 있더라도 큰 패턴은 정해져 있기에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이 회귀자의 군세가 몬스터를 상대로 유독 강력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크 리치는 이 산맥의 정상에 있다. 직접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수하를 보내서 침입자를 습격하지.’

나는 일레아흐가 회의에서 발표했었던 아크 리치 정보를 되뇌었다.

탁 트인 장소에서 야영을 하던 우리를 아크 리치의 부하가 노려왔다.

‘우선, 첫 번째 습격은 해골기사.’

향연의 산맥에서는 사냥 난이도가 높은 상급 언데드만이 출현한다.

나는 야영지를 향해서 빠르게 접근해오는 수백의 해골기사를 살폈다.

보통의 스켈레톤은 잡졸이지만, 저 녀석들은 특히 크고 뼈가 두껍다. 거기다 해골마를 탔을 뿐만 아니라 두터운 갑옷까지 착용한 상태이다.

‘그저 칼만 쓰는 것이 아니라 3서클까지 마법을 활용할 수 있다지.’

하지만 걱정할 수준까진 아니다. 그래 봤자 적군은 수백이고, 아군은 수만이다. 이 숫자의 차이는 단순하지만 압도적으로 전장의 기세를 뒤바꿀 것이다.

“전군! 맞서서 돌격하라!”

히사네의 외침에 몸이 근질근질해져 있던 오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원정대가 돌진하자 해골기사들이 숫자에 밀려 마구잡이로 박살 났다.

‘수적 차이, 그리고 오크들의 강한 화력이 언데드를 압도하고 있다.’

나는 가장 전열에 나서서 싸웠다.

해골기사의 칼과 마법이 직격했으나 내 갑옷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허헉! 너무 딱딱해!”

칼이 부러지자 갑옷을 깨문 해골기사의 이빨이 온통 부서져 나갔다.

나는 대검을 내려쳐 해골들의 두개골을 단박에 아작내고 부숴버렸다.

‘아크 리치가 점점 가까워진다. 위험해도 머뭇거리다간 시간이 소모된다.’

헤르탄이 적들을 속박하고, 퀸소히니베가 주먹으로 적의 뼈를 부쉈다. 카티에는 막대한 신성력으로 아군을 치유하며 언데드를 녹여냈다.

언데드는 각 개체가 약하진 않았지만, 숫자의 차이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원정대의 매서운 진격에 해골기사는 생각보다 손쉽게 격퇴되었다.

[첫 번째 습격을 막아냈습니다.]

[힘이 2 올랐습니다.]

[불세출의 검(Lv2) 달성!]

[대검의 이해도가 늘었습니다.]

불세출의 검 스킬 레벨이 오르자 대검을 잡는 것이 훨씬 능숙해졌다.

그러나 감탄할 시간이 없었다.

첫 번째 습격을 막은 것을 자축할 새도 없이 두 번째 군단이 몰려왔다.

‘두 번째 습격은 오우거 좀비다.’

팔십 마리의 오우거 좀비는 해골기사들보다 훨씬 버거운 몬스터였다. 놈들은 어지간한 공격에 맞아도 밀리지 않았는데, 느릿하게 원정대원을 집어 들고는 통째로 한입에 씹어 먹었다.

“끄아아악!”

“으어어, 맛, 있, 다!”

첫 번째 인간 사망자 속출!

그와 동시에 일제히 글귀가 떠올랐다.

나는 눈앞에 표시된 빛나는 문구를 읽다가 입술을 꽉 씹었다.

[회귀자 컨돈 레파스크가 향연의 산맥에서 사망했습니다!]

[향연의 산맥에 황색대륙 지배자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륙 지배자의 뿌리박힌 힘으로 사망자의 회귀가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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