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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65화 (65/200)

나만 1회차 065화

비록 반투명하나 귀가 길쭉한 엘프 유령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양손에 방패를 두 개나 착용하고 있었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숲에서 쫓겨나고 화살 맞아 죽은 엘프기사요.」

“엘프들이 술도 좋아했던가?”

「어허. 이 친구, 상당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 내가 유령만 아니었어도 술로 흠뻑 혼내줬을 텐데.」

어째 내뱉는 말투만 보자면 배불뚝이 드워프라고 해도 믿겠는데.

엘프 기사의 유령이 손을 내밀었다.

「쌍방패 엘프라고 불러주시오.」

“유령이라 악수는 못하지 않나?”

「거, 기분이라도 내보자는 거지.」

악수를 나누는 모양새였지만 허공에 손만 흔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릴 무슨 목적으로 불렀는가?」

“그냥 인원 점검해봤다. 돌아가.”

「뭐? 나 참, 싱겁기는.」

“걱정하지 마라. 다음번에는 아크 리치의 영역에서 소환할 테니까.”

「뭐, 뭐라고? 그게 무슨……?」

그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나는 유령기사단을 곧바로 돌려보냈다.

아크 리치 출정에 앞서서 나는 전투 관련해 모든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갑옷의 정중앙 가슴을 두드린다.

‘여전히 갑옷 상태도 나쁘지 않고.’

불멸자의 갑의!

사실 이 최상급 갑옷은 상태가 좋고 나쁜지 점검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험하게 굴렀는데 녹이 슬지도 않았고, 금이 간 적조차 없으니까.

‘공간왜곡은 연습은 하고 있지만.’

마법과 잠금 해제 재능의 합성!

SSS급 재능의 합성답게 강력한 스킬이지만, 응용이 무척 어려웠다.

지금 마력을 담아서 써보자 칼날이 중구난방으로 뻗어 나가고 말았다.

“으악! 허공에 칼날이 날아든다!”

“여기 놔둔 냄비 누가 쪼갰어!”

“방금 뭐가 내 머리를 스쳤는데?”

하마터면 칼에 썰릴 뻔한 뒤편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는 긴박해서 얼떨결에 됐었지만, 능숙해지려면 수련이 필요해.’

그러나 아쉽게도 원정까지 얼마 남지가 않아서 수련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공간왜곡 사용은 보류하고.’

나는 다음으로 쉼 없이 대련하고 있는 밀밭기사단에게 다가갔다.

“이봐. 대검 수련이 필요한데.”

“대규모 원정을 앞두고 칼을 바꿨어? 그렇게 현명한 판단은 아니군.”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내가 주로 써오던 장검보다 무거운 대검은 전투법이 확연히 틀리니까.

하지만 아크 리치에 대항키 위한 무기로 이만한 대검이 없으니까.

나는 밀밭기사단에게 벼락치기로 대검에 관하여 집중교육을 받았다.

“대검은 검 중에서 가장 무식하고 강력하지. 그만큼 빈틈도 많지만.”

“대검 쓸 땐 어쭙잖게 피하려 들면 안 돼. 전부 받아치면서 가라고.”

“상대가 막으면 물러서지 마. 정면 승부로 밀어붙여 방어를 무너뜨려!”

나는 세그라와 대련하며 뒤에서 단원들이 건네는 조언을 새겨들었다. 특히 세그라는 파괴력이 높은 대검을 상대로도 능숙히 대련을 해주었다.

직접 세차게 칼을 부딪치며 모든 가르침을 효율적으로 흡수해간다.

“허 참. 또 봐도 놀랍다! 저게 어딜 봐서 대검을 처음 쓰는 손놀림이야?”

“삶마다 느끼지만 괴물이라니까.”

기사들은 혀를 차면서 감탄했다.

대검을 매섭게 휘두르며 나아갔다.

내 검은 느렸지만, 또 느리지 않았고, 궤도는 일렁이는 뱀처럼 유연했다.

세그라는 내가 펼치는 칼부림을 보면서 뒷걸음질까지 쳐야만 했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세 발짝!

챙!

마침내 그가 칼을 놓쳐 버렸을 때, 나의 체력은 거기서 바닥이 났다.

“허억! 허억!”

무릎 꿇고 숨을 몰아쉬는 날 보며 세그라가 기가 차서 입술을 씹었다.

“대검이 하루에 익힐만한 검술이 아닌데. 정말 재능은 타고났군.”

그의 목소리에서는 감탄보다 유독 질투가 깊게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기사들의 시기 어린 감탄에도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나마 기본기만 익혔을 뿐이야.’

하루 만에 기본기를 다지는 것도 일반인이라면 꿈도 못 꿀 경지이다.

그러나 나는 인류의 회귀를 멈추기 위해서 세 지배자를 살해해야만 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앞서야만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새로운 문구가 떠올랐다.

[검술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최소 세 종류 이상의 칼을 다루며 전문적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불세출의 검(Lv1)’이 발현되었습니다! 오직 인류에서 인정받은 세 검사만 습득 가능한 검술입니다.]

‘불세출의 검?’

난생처음 듣는 전투기술이다.

나는 방금 생성된 검술 스킬의 설명을 확인해보았다.

스킬: 불세출의 검(Lv1, 패시브)

현재 숙련도: 0.00/0.00%

설명: 인류에서 오직 세 명만 이해할 수 있는 검의 경지. 모든 칼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살려낸다. 검사의 성향에 따라 방향성이 갈린다.

*마스터 시 독자적 검술 창조 가능.

‘이계에서 오직 세 명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검의 경지.’

나는 칼자루를 꽉 쥐었다.

새로운 검술이 발현된 걸 보면 정점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그러나 고작 이것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단계가 아니었다.

‘소드마스터도 갖고 놀았다던 전생의 내 경지에 오르려면, 한참 멀었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칼의 정점을 찍어야만 할 것이다.

밀밭기사단과의 대검훈련까지 마치자 어느덧 자정이 되어 있었다.

모두 잠에 들었거나 몇 시간이라도 자기 위해서 천막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남몰래 움직여 본부에서 떨어진 협곡의 바위에 올라섰다.

약속된 시간에 도달하자 협곡 저편에서 세 마리의 생명체가 날아들었다.

드래곤에게 사역 당하는 노예 와이번!

그중 가장 앞선 와이번에 탄 소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대장은 내가 보고 싶었나요?”

“보기 싫었다고 하면 갈 거지?”

“뛰어내릴 테니, 받아서 안아줘요.”

“허리는 침대에서만 과로할 거라.”

“흥. 야밤에 비싸고 고아한 척은.”

“어르신. 어서 다가오지 않으면 앞에 있는 연하가 떠날지도 몰라요.”

“……칫.”

카티에는 삐친 얼굴로 볼을 부풀리며 착륙한 와이번에게서 내렸다.

헤르탄은 능숙히 땅에 낙법으로 착지해서 내게 무릎을 꿇었다.

“범철. 예정대로 황색대륙을 뒤지며 득이 될 아이템을 모았습니다.”

“밤에 무릎을 꿇지는 맙시다. 우리가 딱히 나쁜 짓 하는 조직도 아닌데.”

“가져온 아이템의 대부분은 소유주가 있어서 패버리고 훔쳐왔습니다.”

“……계속 꿇어 있어요. 악당 맞네.”

퀸소히니베는 그냥 땅에 냅다 뛰어내렸는데, 별로 충격도 받지 않았다.

패인 바닥에 떨어진 그녀가 태연히 몸에 묻은 돌가루를 털고 일어났다.

“땅에 추락하면 아픈 것이야.”

“부럽네. 인간은 목이 부러지거든.”

“내 노예의 목은 온전히 나의 소유이니 간수 잘하고 있으란 것이야.”

도도하게 내 목젖을 콕 찌르며 그녀가 커다란 꾸러미를 내밀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목을 쓰다듬고는 꽤나 무거운 그것을 받아들었다.

계속 무릎을 꿇고 있던 헤르탄이 엄숙히 말했다.

“전생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히든 피스를 수집했습니다. 다만 손에 넣은 것은 오직 보조용품뿐입니다.”

히든 피스!

일반적으로 발견되지 않고 숨겨진 희귀하고 강력한 요소의 아이템들.

회귀자의 특권으로 황색대륙에 흩어진 히든 피스를 갈취해온 것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회귀자이니만큼 히든 피스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회귀자는 어느 정도의 전생 지식을 겸비했느냐에 따라 수준이 갈린다.

한동안 이들과 함께하며 확신했다.

‘카티에, 헤르탄은 다른 회귀자들과 겪어온 모험의 빈도가 다르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그러하다.

보통 회귀자라면 소시민처럼 일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카티에와 헤르탄은 달랐다.

두 사람은 다른 회귀자에 비해 전생에서 월등히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래서 그만큼 회귀자들 사이에서도 희귀한 전생 지식을 알고 있다.

“아니요. 짧은 시간에 이만한 아이템을 준비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하죠.”

나는 헤르탄의 손을 잡고 무릎 꿇은 그를 일으켜줬다.

퀸소히니베는 팔짱 끼며 말했다.

“내가 손수 인간들을 기절시키고 그것들을 강탈해온 것이야. 전생 지식은 없더라도 짐은 되지 않았지.”

“그래, 참 잘해줬다. 머리라도 쓰다듬고 턱이라도 간질여줄까?”

“흥. 나를 고양이로 보는 것이야?”

카티에가 힘이 깃든 목소리로 장담했다.

“내가 기억을 되새기며 리치 원정에 유용한 히든 피스만 모은 거예요. 수는 적지만 성능은 확실해요.”

나는 꾸러미에 담긴 아이템들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무구나 비기 서적 따윈 없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쓸만해 보였다.

‘원정을 나가는데, 회귀자의 전생 지식을 활용하지 않으면 아깝지.’

120회차, 아크 리치와의 싸움.

이 정도면 준비는 최대한 맞춘 셈이다.

* * *

싸아아아…….

장대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씨였다.

그렇지 않아도 을씨년스러운 곳인데 하늘까지 제대로 뒷받침을 해주는군.

분배된 판초우의를 눌러쓴 카티에가 자꾸만 재채기를 했다.

“에취!”

“엄청나게 쏟아지네. 여름날에도 그다지 비는 안 내렸던 것 같은데.”

나는 판초우의를 풀어서 몸을 떨고 있는 카티에에게 덧대어 입혀줬다.

“대장은 괜찮아요?”

“감기가 나랑 원수졌는지, 그 자식이 어릴 때부터 잘 안 찾아오더라.”

“역시. 고마워…… 에, 에취!”

아크 리치 원정대가 자살기도회 본부로부터 출정한 지 어느덧 10일째.

약 6만 1천이 조금 넘는 병력의 원정대는 향연의 산맥에 도착했다.

‘아크 리치가 서식하는 위험지역.’

향연의 산맥은 본래 발을 디딘 모험가는 실종되는 장소로 유명했다. 더군다나 사라진 사람들은 뼛가루가 되어 토양에 뿌려진다는 꺼림칙한 소문까지 도는 음침한 곳이다.

하여간 그래서일까?

‘아무리 비가 내린다고는 하지만…….’

가을이 끝나갈 시기임을 감안해도 뺨에 닿는 공기가 너무 차가웠다.

산맥의 코앞에 들어서자 선봉 부대를 이끌던 히사네가 말을 세웠다.

마법수정구를 지닌 그녀는 본부의 일레아흐와 시선, 영혼을 공유한다.

‘물론 믿음직한 사람이 아니라면 함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지만.’

영혼을 공유하면 한쪽이 죽으면 나머지 다른 한쪽도 같이 죽게 된다.

즉, 히사네가 죽으면 본부에 있는 일레아흐 역시 죽게 되는 것이다.

‘어찌 됐건 다소 위험부담은 클지라도, 상당히 현명한 처사야.’

아기인 일레아흐가 직접 이렇게 험준한 곳에 온다면 짐만 될뿐더러 자칫 지휘도 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히사네가 자살기도회 본부장 일레아흐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했다.

“결계가 이 앞입니다. 전군 정지!”

멀리서 빗물에도 씻겨 내리지 않는 희끄무레한 안개 지대가 보였다.

향연의 산맥 관문에 위치한 결계.

아크 리치가 도사리는 영역에 가기 위해선 성물로 결계를 뚫어야 한다.

‘무려 4,000개의 성물.’

자살기도회는 그 많은 성물을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전부 모았을까?

그런데 자살기도회 일원들이 가져온 건 큰 단지가 담긴 수레였다.

그들이 단지 뚜껑을 열자 빛나는 물속에 바늘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단지 속에 바늘만 담겨 있잖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다.

4,000개의 성물을 준비해야 할 텐데, 저게 무슨 헛짓거리를 하는 거지?

그런데 헤르탄의 반응은 내가 들었던 의문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과연 일레아흐군요. 저렇게 효율적으로 결계를 풀 꼼수를 쓰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헤르탄?”

“저것은 교회 본당의 진귀한 성수입니다. 무엇이든 저 성수에 오래 담그면 20분간 성물과 동등한 신성을 얻지요. 저 단지 하나만큼의 본당 성수를 구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대륙에서 4,000개의 성물을 모으려면 막대한 인력과 시간이 소모된다. 그래서 교회 본당의 성수를 입수해 바늘을 잔뜩 담가놓은 것이다.

겨우 20분만 성물로 판정되더라도 결계를 풀 용도라면 상관없으니까.

아크 리치에게 계속 도전해온 일레아흐이니 고안할 수 있는 전략이다.

자살기도회 일원들이 단지에 담긴 바늘을 꺼내 전부 결계로 내던졌다. 저편에 던져진 바늘은 모조리 안개 속에 빨려들 듯이 사라져 버렸다.

[4,000개의 성물을 바쳤습니다.]

[산맥 관문 결계가 풀렸습니다!]

보이지 않던 장벽이 걷히면서 저편의 광경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곳은…….’

그런데 그 풍경을 눈에 담기도 전에,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넘어올 인간만 새겨들어라. 너흰 산맥에서 죽으면 회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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