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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61화 (61/200)

나만 1회차 061화

분명 들어본 적 있는 몬스터였다.

그러니까, 저걸 뭐라고 부르더라?

내가 궁금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카티에가 말했다.

“용아병은 정말 오랜만에 봐요.”

맞아, 용아병!

용의 이빨을 심으면 자라나는 거인으로, 용의 명령에만 절대복종한다.

용아병은 그저 용의 수하지만 밀밭기사단조차 압도할 만한 능력치가 엿보였다.

‘과연 용의 소굴이군.’

이곳에서 나는 그저 쥐새끼다. 저 졸병에게도 상대가 안 되니까.

저것만 봐도 용의 소굴이 얼마나 위험한 영역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지기 용아병이 창을 위협적으로 겨누며 물었다.

“너흰 뭐냐?”

긴장될수록 태연하게 굴어야지.

나는 팔짱을 끼고서 소개했다.

“1회차 칼잡이와 울보 성녀, 산적 겸 드루이드, 그리고 히스테리 용.”

카티에는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아니요. 아리따운 성녀와 동행하는 두 명의 벗. 거기에 애완용이죠.”

퀸소히니베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신화에 남겨질 위대한 용과 그 노예, 나머지 노예 후보 둘!”

헤르탄이 한숨을 쉬며 결론지었다.

“레샬피티에께서 집회에 소집하셨습니다. 들어가게 해주시겠습니까?”

“허, 너희처럼 하찮은 미물들을? 용이라면 본모습으로 들어왔겠지.”

문지기 용아병이 어림도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우릴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퀸소히니베가 차갑게 말했다.

“물구나무를 서서 머리를 박으란 것이야.”

“으억!”

그녀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용아병은 곧바로 거꾸로 머리를 처박았다.

확실히 용의 명령에 절대복종이군.

퀸소히니베는 물구나무를 선 용아병을 스치며 웃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감히 여왕의 딸도 못 알아보다니. 저러니 문지기나 하는 것이야.”

용의 소굴의 내부는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드넓고 쾌적하기까지 했다.

삼림욕을 할 때나 맡을 수 있는 상쾌한 공기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분명 마법으로 유지되는 것이겠지?’

용의 무서운 점은 강력한 힘과 숨결, 그리고 마법까지 쓰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지능까지 높지. 그나마 인간이 아니라서 회귀는 못하지만.’

흠, 혹시 잘못 온 건 아닌지 몰라.

안에 들어갈수록 퀸소히니베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핏기조차 없었다.

“나는 틀림없이 어르신들께 사형당하고 말 것이야.”

“퀸소히니베. 사형당해 본 경험으론 사지가 당겨질 때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추면 덜 아프게 찢깁니다.”

헤르탄은 그렇게 조언함으로써 퀸소히니베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집회장은 새하얀 석판 위에 있다.

새하얀 뼈의 용아병들이 회장 내부를 깨끗이 치우고 정돈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집회가 열린단 말이지.’

퀸소히니베에게 설명으로 들었던 바에 의하면 용의 집회는 간단하다.

다섯 장로가 해당 피고의 죄목을 듣고서 처형할지 그 여부를 결정한다.

권위 높은 장로들의 판결은 용의 여왕조차 함부로 관여할 수가 없다.

‘참 쓸데없이 민주적이군.’

집회장에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용아병들이 성큼 다가왔다. 문지기 용아병에 비해 장골인 데다 큼지막한 금속도끼를 들고 있었다.

헤르탄이 속삭여 설명해줬다.

“여왕의 용아병입니다. 용아병들 중에서 가장 강해 처형을 도맡죠.”

“내가 죽으면 그 뼛골은 내 노예가 수습해서 예쁘게 묻어달라는 것이야.”

“걱정하지 마라. 아, 그런데 용의 뼈로 장비 제작하면 끝내준다고 하던데.”

“…….”

퀸소히니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암소처럼 처량하게 끌려가 버렸다.

“재판이 금방 시작되려나 보군.”

“여기에 관중도 모여들고 있어요.”

집회장은 광활해 많은 용들이 관전할 수 있게끔 설계가 되어 있었다.

집회장에 모여든 수십 마리의 용!

“……저게 다 몇이야?”

“최소한 오십 마리는 넘어가네요.”

“용족의 전체집결. 집회에서만 볼 수 있는 드문 풍경이지요.”

황색대륙에서 살아가는 모든 용들이 전부 집회장에 집합한 것이다.

웅장한 관객석에 날개를 접고 눌러 앉은 용들이 우릴 보며 수군거렸다.

“감히 건방진 인간들이 집회장에 있다니? 저들은 누구의 노예인가?”

“노예치고는 구속구가 없는데.”

“그래도 함부로 먹지는 마라. 성스러운 집회장에서 식사는 할 수 없다.”

……사람 앞의 가축이 된 꼴이군.

용들이 들어찬 집회장은 그 분위기만으로 땀이 흐를 만큼 압도적이다.

곧 집회장에 레샬피티에가 입장해 앉자, 청중이 바로 침묵하였다.

다섯 용의 장로가 따라서 입장했다.

“얼마만의 집회인지, 참 지겹군.”

“무난히 끝내고 식사나 걸치지.”

“점심은 조개호수에서 어떤가?”

장로들의 자태는 위엄이 넘쳤다. 비록 흉터로 비늘이 갈라졌지만 덩치가 월등해 언뜻 봐도 백전노장 같았다.

여왕의 목소리가 집회장에 울렸다.

“집결해 주어서 고맙군. 오늘 집회에서는 엄청난 중죄를 저지른 세 용과 일곱 노예를 재판할 것이다. 본래는 장로들의 결정에 맡기지만, 오늘만은 내가 특별히 재판을 진행한다.”

레샬피티에가 재판의 개최를 선언하자 용아병들이 녹색의 용을 끌고 왔다.

“우선 첫째로 죄지은 용은 노예와 불륜을 저지른 아카쿠라스다. 아내는 자살했고, 증언할 친우는 없다.”

장로들의 판결은 빠르고 간략했다.

“사형.”

“처사를 다시금 고려해주십시오!”

아카쿠라스가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즉시 여왕의 용아병들에 의해 끌려갔다.

여왕의 용아병들은 처형되는 용의 말에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았다.

어딘가로 끌려간 녹색의 용은 그저 참담한 비명만을 남기고 말았다.

“끄아아악!”

나는 그 비명에 마른침을 삼켰다.

“처형은 어떤 식으로 당합니까?”

“노예는 그냥 온몸이 찢겨서 죽지만, 용은 강제로 미물로 변하게 되어 사지가 찢깁니다. 본모습일 때는 죽이기 힘드니까요. 용 자신에게도 굴욕적이고 비참한 죽음일 겁니다.”

피고의 죄에 대한 장로들의 판결은 그야말로 칼과 같았다.

다음으론 거칠게 반항하는 푸른 용이 용아병들에게 붙잡혀 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로 죄지은 용은 다른 용의 알을 깨뜨려 파괴한…….”

“사형.”

“이, 이거 놔! 크라아악! 누가 감히 이 나를 죽인단 말이냐!”

푸른 비늘의 용은 급속빙결의 숨결까지 뱉었지만, 허공에 사그라졌다.

나는 흰색 석판을 내려다봤다.

‘집회장에는 용의 마법을 억제하는 힘이 있나 보군.’

하기야 그러니까 재판 장소겠지.

그나저나 천하의 용들조차 속전속결로 처형되어버리는 집회장이라니, 살벌해서 숨쉬기 어려울 지경이군.

노예들은 용과 다르게 한꺼번에 구속되어 줄지어서 끌려 나왔다.

“다음은 노예들이다. 이 인간 노예는 용의 알을 훔치고 부화시켜 훗날 자신의 권속으로 길들이려 하였다.”

“사형.”

“이번 삶에서까지 죽고 싶지는 않아!”

사형이 결정된 회귀자의 절규는 처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 오크 노예는 야심을 품고 용을 세뇌해 종으로 삼으려 했는데…….”

“사형.”

“엿이나 먹어라, 이 썩을 용들아!”

퀸소히니베를 제외한 모든 용과 노예가 앞서 사형을 선고받고 말았다.

“마지막 죄용(罪龍)이여, 입장하라.”

마침내 잔뜩 긴장한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심판대에 올라섰다. 용으로 변하지 못하는 퀸소히니베는 장로들에 비해 너무 작아 보였다.

심판대에서 모습을 드러낸 퀸소히니베의 모습에 청중이 술렁였다.

“퀸소히니베?”

“여왕님의 자식 아니던가.”

“경솔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렇게 일찍 심판대에 오르다니.”

좌중의 용들조차 혀를 찼다.

그래서 퀸소히니베는 불쌍하게도 더더욱 기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퀸소히니베, 자백해라. 너는 무엇 때문에 중립을 어기고 만 것이지?”

“이, 인간들의 편에 서서 싸웠어요. 그리고 나쁜 인간들을 직접 죽이기도 했고, 인간과 함께 여행했고 어, 또 어머니의 보물을 훔쳐 가출도…….”

그녀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용의 장로들은 크게 노하였다.

“아직 비늘도 돋지 않은 것이 율법 엄한 줄 모르고 중립을 어겼단 말인가.”

“새끼 용 때부터 오냐오냐 귀여워 해줬거늘, 기어코…… 쯧쯧!”

“저런 것엔 답도 없다. 사형이지.”

감히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태도.

……이거 너무 여론이 압도적인데.

“이번 역시 판결은 같다. 사형.”

장로들이 떠나려고 날개를 펼쳤다.

그녀의 잘못도 크지만, 판결을 대충 마치고 가려는 태도가 왠지 불성실해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레샬피티에가 떠나려는 장로들을 엄격한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잠깐만. 아직 판결은 이르다.”

“어째서 말인가. 여왕이여?”

“퀸소히니베에게는 그녀를 위하여 변호해줄 친우가 있다.”

“허! 그녀의 엄청난 중죄를 합리화시켜 줄 친우도 됬단 말인가!”

한 장로가 신랄하게 비꼬았고, 퀸소히니베는 말없이 고개만 푹 숙였다.

“그래서, 그 친우가 누구인가?”

장로들이 좌중을 살폈으나 레샬피티에는 고개를 저었다.

“용이 아닌, 다른 종족이다.”

용들이 의아해하자, 레샬피티에가 우리를 가리켰다.

“바로 저 셋이다.”

순간 귀청이 나갈 것만 같았다. 방관하던 용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집회장이 비웃음 소리로 메워진다.

“크하핫! 인간을 친우로 뒀다고?”

“아무리 외로워도 그렇지, 참 불쌍할 지경이군. 머리가 어떻게 됐나?”

“어디 그 우정이 얼마나 진하고 다정한지 구경 한 번 꼭 해봐야겠군.”

장로들조차 헛웃음을 머금는다.

“한낱 인간과 위대한 용이 친우가 되었단 말인가? 우정이 깊기는 깊나 보군.”

“재판에서 흔히 있는 감성팔이다. 종족을 초월한 우정? 참 진부해.”

“무엇보다 인간이 변호를? 집회 역사상 그런 사례는 없었다, 여왕.”

“사례가 없었을 뿐이지, 율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레샬피티에가 일축하자, 흥분한 용들의 눈빛이 기대감을 품었다. 마치 우리가 얼마나 체면을 구기며 신파극을 벌일지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친우의 대표는 나와서 변호해라.”

사전에 논의했던 대로 나는 대표로 나가 집회장 정중앙에 똑바로 섰다.

친절하게도 그곳에 서자 집회장에서 나의 목소리가 크게 확장되었다.

내가 황색대륙의 용들에게 선언했다.

“변호를 포기하겠습니다. 중립을 어긴 용은 과감히 사형시켜 주십시오.”

* * *

나의 발언에 집회장이 고요해졌다.

몇 초의 무거운 침묵이 유지된 뒤, 장로들은 찬사를 금치 못하였다.

“……인간이라고 얕봤더니, 공과 사의 구분됨이 지극히 참되었구나.”

“보아라! 친우에게 사형을 청했다. 저것이 진정한 율법 지향이 아니겠나.”

“율법을 따르는 저 단호한 태도야말로 용들이 본받아야 할 것이다.”

객석의 용들 또한 나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반성했다.

“우정에도 불구하고 변호를 포기하다니. 스스로 얼마나 힘든 선택이었겠는가? 솔직히 나라도 버거울 거다.”

“저 인간의 발언이 뻔한 재판에 익숙해져 있던 내 뒤통수를 깨버렸다.”

“우리가 숲을 보지 못하고 옹이구멍만 봤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찮은 인간이라고 함부로 편견을 가진 것이다.”

어찌나 나의 발언이 감명 깊었는지, 치솟은 평판이 글귀로 표시되었다.

[황색대륙 용의 진영에서 당신의 평판이 ‘참된 율법인’이 됐습니다!]

모두가 나를 다시 보게 된 집회장.

오로지 억장이 무너져 내린 퀸소히니베만 얼굴이 흙빛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기가 찬 배신감에 뭐라 말도 꺼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사형! 괜히 번복할 것도 없이 무조건 사형이다. 저 인간의 소신 있는 발언을 감히 헛되게 하지 말라.”

장로들이 최종적으로 내린 판결에 용아병들이 퀸소히니베를 붙잡았다.

그녀가 처형되기 일보 직전.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장로들을 향해서 이의를 제기했다.

“왜 퀸소히니베만 사형시킵니까?”

“그것이 무슨 소리이지, 인간?”

“중립을 어긴 용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로들이 주름진 눈매를 찌푸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소리지? 네 말은 어딘가 중죄를 저지른 용이 또 있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중립을 어긴 또 다른 용은 바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나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용들이 당황하며 술렁거렸다.

“지금 저 인간이 뭐라고 한 거지?”

“중립을 어겨? 그러고도 멀쩡히 집회장에 있는 용이 있을 리가 있나.”

“모두 조용!”

레샬피티에가 소란스러운 집회장을 정리하고, 대표로 물어봤다.

“이중 누가 중립을 어겼단 거지?”

내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곳 전원이 중립을 어겼습니다. 그러니 퀸소히니베를 사형시킬 것이면, 여러분 모두 죽길 간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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