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058화
나는 고민하지 않고서 말했다.
“우선 동일한 갑옷을 입은 저 사병 전원을 꼼짝 못 하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였다.”
벌써?
내가 사병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몸이 위압되어 발치가 굳어져 있었다.
근처에 다가서도 움직이지 못한다.
‘과연 용의 여왕은 격이 다르군.’
난 락픽을 사용해 내 일행, 밀밭기사단, 그리고 게오르킨을 풀어줬다.
“우와, 삼촌! 우와!”
“봐라. 내가 구해준다고 했지?”
나는 발랄하게 방방 뛰는 소년왕을 밀밭기사단에게 안전히 맡겼다.
카티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게 턱을 꼿꼿이 들고는 내게서 고갤 돌렸다.
“대장은 나 따윈 거들떠보지 않네요. 하기야 헤르탄이 훨씬 좋겠죠.”
“동료애는 나중에나 나눌까?”
“동성애로 변심하진 않겠죠?”
저 불안에 반박해 줄 여유가 없군.
나는 압수당한 소지품을 입수하고 본래의 장비를 빠르게 챙겨 입었다.
그리고 다시 본드래곤을 바라봤다.
“적에게 마무리를 지어주시죠. 제가 방금 풀어준 인간들은 빼고요.”
“미물은 골라 죽이기가 번거롭다.”
대형 언데드는 인간들과 전투적 관점에서부터 차원이 달랐다.
“너희는 성에서 떨어져라. 그 성을 박살 내서 죄다 몰살시켜 버리겠다.”
과연 용답게 스케일 한 번 크군.
카티에가 드물게 기에 억눌려서 내 옷깃을 꼭 쥐고는 떨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땅으로 내려갈 수 있는 수단이 없는데요.”
“퀸소가 있잖니. 용으로 돌아와 너의 친우를 감싸 안고서 내려와라.”
그러나 퀸소히니베는 새파란 얼굴로 내 등 뒤에 숨어 있을 뿐이었다.
본드래곤에게는 눈썹이 없지만, 꼭 그녀가 눈썹을 찌푸린 것만 같았다.
“퀸소. 설마 중립을 어긴 것…….”
“범철!”
모두가 소리친 대상을 올려다봤다.
위니아의 눈동자가 불타는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서리가 낀 것처럼 냉랭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계획이 수틀리니 속도 뒤틀렸냐?”
“네놈 하나가 모든 것을 망쳤어. 이번 삶은 포기해 주겠다. 하지만.”
분노한 위니아가 양손을 높이 들고 손가락을 따닥 튕겼다.
“네놈만은 같이 데려가겠어.”
손가락을 튕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저편에서 검은 점들이 날아든다.
시력이 좋은 나는 의아했다.
‘원래 골렘이 날 수도 있었던가?’
하지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현재 날아오는 수백 개의 점은 날개 두 장을 펼친 암석골렘이었다.
날개를 펄럭이며 오는 골렘 군단!
크기, 숫자로 봐선 지상 어딘가 대기시켜뒀다 날아든 것이 분명했다.
‘정말로 끝이 없는 계획성이로군.’
위니아는 혹시나 본드래곤이 명령을 거부할 상황까지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세밀한 그녀의 두뇌도 한 가지만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바로 본드래곤의 초월적인 힘이다.
‘골렘이라도 용에겐 그냥 밥이지.’
그러나 거물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위니아는 마구 손가락을 튕기자 골렘 군단의 날개가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눈살을 찌푸린다.
‘골렘한테 달린 날개가 늘잖아?’
날개 두 장이 열두 장이 되었다.
그러니까 각 날개가 6배로는 것은, 속도가 6배로 늘었단 의미다.
복잡한 비행이론은 알지 못하지만, 위니아의 능력은 대충 그러했다.
‘……미쳤는데.’
고작 두 장만의 날개로도 반응속도가 급격히 오르는데 열두 장이라고?
나는 바람처럼 이동하고, 빛살처럼 주먹을 내리꽂는 골렘을 상상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군.
“레샬피티에! 저곳에 날고 있는 여자가 따님을 괴롭힌 주범입니다.”
내가 고발하자 본드래곤이 즉시 복수를 위해서 매섭게 움직였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씹었다.
‘안 돼. 너무 느려.’
본드래곤처럼 대형 몬스터의 단점을 참 어렵게 고르자면 둔함이다.
인간이 가끔 날파리 잡기 힘들어하듯, 위니아도 용에게 마찬가지였다.
본드래곤이 거슬려 하며 투기를 발산했지만 그녀는 주춤하지 않았다.
“네년은 인간치곤 담이 세구나.”
“인간은 공포에 적응하니까.”
위니아는 열두 장의 날개로 변경하고 피해가며 계속 손가락을 튕겼다.
“끄아아악! 이, 이거 놔!”
“나, 날고 싶지 않습니다!”
“여제님! 고통스레 죽기 싫어요!”
위니아는 굳어버린 사병들에게 강제로 열두 장의 날개를 달았다.
그리곤 두려워하며 저항하는 사병들이 화살보다 빠르게 날려졌다.
우리를 향해 쏘아지는 인간포탄!
“저 여자, 씹어 먹게 미쳐 버렸군! 자기 부하를 저딴 식으로 써먹어?”
세그라가 분노해 혀를 차며 소년왕을 끌어안고 인간포탄을 피해냈다.
우리가 피하면 빗나간 사병들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육편이 되었다.
피와 살이 튀기는 옥상을 우린 종횡무진하며 곡예사처럼 뛰어다녔다.
“끄아악! 우리를 감히 함부로 써?”
“망할! 다음 삶에서 갚아줄 테다!”
죽어가는 사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부하들을 저렇게 멋대로 다루면 회귀하고 세력을 모으기 힘들 것이다.
다음 삶까지 포기할 만큼 나를 향한 살의가 들끓고 있다는 의미였다.
‘상황 참 끔찍하군. 항상 그랬듯.’
나는 턱에 흐른 식은땀을 닦았다.
위니아는 집요하게 나만을 바라보고 집중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대부분의 공격은 나에게 집중된다.
나는 피하지 못하도록 날아든 인간 포탄을 마법으로 불태워 버렸다.
‘잠깐 실수해도 황천길이군! 망할!’
갑옷을 갖춘 사병이 연이어 쏘아지니 불사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미처 막지 못한 사병이 내게 부딪치자 온몸이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크흑!”
내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카티에가 내뻗은 손아귀가 빛났다.
“대장! 도와줄게요!”
끔찍한 빛무리가 활개를 친다.
우리에게 날아드는 인간포탄의 궤도가 마구 굴절되고 비틀어졌다.
그러자 제자리에 서 있더라도 사병이 우리에게 부딪치는 일이 없었다.
‘간신히 한숨 돌렸군.’
성녀의 기적!
남용하면 수명에 영향이 가지만, 막대한 힘을 쓸 수 있는 권한이다.
기적 종류는 공격 외에도 교란, 치유, 회피처럼 용도가 많다고 했었지.
“다음은 저년이에요.”
카티에가 또다시 기적을 사용하려던 순간, 칼이 날아와 손등을 벴다.
“……!”
소녀가 침착히 손을 내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손목이 잘렸을 것이다.
왼손을 다쳐 쓸 수 없게 되면, 성녀는 기적을 쓰지 못하게 된다.
‘……인간만 날리는 것이 아니야.’
사방 모든 것에 날개가 돋아난다.
날개 달린 칼이 앞을 찌르고 비행하는 철근이 곡선으로 돌격해 온다.
간발의 차로 평생 후각을 잃을 뻔한 난 황급히 철 파편을 튕겨냈다.
‘뭐, 저렇게 미친 능력이 다 있어?’
아무리 거물이라지만 너무하다.
심지어 수하를 흡수한 멸살군주조차 이런 전투력을 보유하진 않았다.
그러나 난 곧 속으로 고갤 저었다.
‘아니. 위니아도 무리하고 있다.’
힘을 쓰는 그녀는 눈을 제외한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적대 성향인 우리한테는 날개를 달지 못하는 모양이고.’
나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문제의 해결법은 실로 간단하다.
격노로 폭주한 위니아를 죽여 버려야만 이 사달이 종료될 것이다.
쿠우웅-!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날아든 골렘이 옥상에 내려앉았다.
열두 장의 날개를 지닌 골렘군단!
‘제길, 저게 다 몇 놈이야?’
수백의 골렘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파리의 잔재주가 지겹구나. 거슬리는 미물은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본드래곤이 시푸른 안광을 빛내며 아가리에서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그래서 우리는 기겁하고야 말았다.
“서, 설마 브레스를 내뱉으려고?”
브레스가 성을 파괴하기 몇 초 전.
누군가 황급히 본드래곤을 막았다.
“안 돼요, 어머니!”
움츠려만 있던 퀸소히니베가 처음으로 소리 지르며 뛰쳐나간 것이다.
본드래곤은 들이마셨던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말이니. 퀸소.”
“수, 숨결을 뿜으면 옥상의 인간들이 전부 죽잖아요. 그래선 안 돼요.”
“나의 숨결은 소중한 딸에게만은 절대로 피해를 끼치지 않는단다.”
“그, 그래도 안 돼요! 설령 어머니라도 이 인간들을 죽일 순 없어요.”
퀸소히니베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지만, 그 의지만은 확고하였다.
본드래곤은 그런 딸을 낯설게 바라보더니 재미있다는 어투로 말했다.
“하는 수 없군. 참전하지 않겠다. 이것은 너희의 싸움이라고 했으니.”
그녀의 목소리가 한결 유해졌다.
“다만 뒤에서 조금 돕도록 하지.”
기사단의 몸에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본드래곤의 아가리에 흡수됐다.
“저주란 내게 실로 유한 맛이다.”
[밀밭기사단에게 걸린 대약화의 저주가 본드래곤에게 먹혔습니다.]
[본드래곤의 마력이 충족되며, 대상의 모든 저주가 해금됐습니다.]
‘저주흡수까지 가능하다고?’
잠깐 눈꺼풀을 감았다 올렸을 때.
나는 순간 내 눈을 믿지 못하였다.
눈앞에서 수십의 골렘이 부서졌다.
콰자작!
“암석골렘쯤은 하수 수준이지. 전생에 강철골렘하고도 싸워봤는데.”
호엘이 팔을 가볍게 풀었고, 할턴 이 돌가루가 묻은 칼을 털어냈다.
“이제야 짐짝 신세 벗어났습니다.”
“좋아, 몸이 가벼워 미치겠는데.”
“어디 전하를 위해서 불태워볼까?”
저주가 풀려서 온전한 능력치를 되찾은 밀밭기사단!
기사들은 여유롭게 웃더니 골렘 군단을 향해서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콰아앙!
골렘이 주먹을 내려칠 때마다 바닥이 부서졌고, 꼭대기가 진동하였다.
막대한 힘과 날개로 발현된 비상한 속도가 합쳐진 골렘들은 끔찍하다.
하지만 본래의 힘을 수복한 기사단이 훨씬 더 괴악하고 강력했다.
‘확실히 강자들이 다르기는 하군.’
저만한 반응속도에 대응하고, 칼로 골렘의 핵을 부숴 버리는 기사단!
과연 황색대륙 최강 기사단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전투수준이다.
특히 부단장 세그라의 칼은 보이는 족족 골렘을 점토처럼 썰어버렸다.
“기사단 전원! 골렘을 쓸어라!”
장엄하게 소리치는 부단장의 칼날이 새하얗게 변하며 찬란히 빛났다.
왕에 대한 충성심이 강할수록 강해진다는 왕실부기사단장 고유의 영광스러운 검술.
충성심과 비례해 빛난다는 저 유명한 칼날은 회귀했더라도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소년왕을 수호하라!”
용맹스러운 세그라의 검이 육중한 우두머리 골렘을 단칼에 부숴 버렸다.
‘밀밭기사단과 협력하길 잘했군.’
나는 팔짱을 끼었다.
옥상의 사병들은 전멸하고 골렘마저 휩쓸려 위니아만이 홀로 남았다.
그녀는 입술을 씹고 현실을 부정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나는 혼자 피투성이가 되어 하늘에서 위태로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도 손가락을 많이 튕겨서 관절이 아프겠군. 내가 좀 거들어줄까.”
내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동시에 나의 배낭에서 날개폭탄 수십 개가 튀어나와 그녀를 휘감았다.
위니아는 다급히 도망쳤지만 기력을 소진해 결국 폭격에 뒤덮였다.
“크윽!”
파지직!
[32개의 폭탄이 적중했습니다!]
[대상의 민첩 능력치가 1,000분 동안 절반으로 하락됩니다.]
[전격에 휘감긴 대상이 1,000초 동안 극심한 마비상태가 됩니다.]
폭탄이 터지면서 위니아가 전격에 마비되어 바닥으로 금방 떨어졌다.
헤르탄은 나무뿌리로 그녀를 속박했고, 퀸소히니베가 턱을 후려쳤다.
못해도 석 달간 음식 씹기는 힘들어졌을 위니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질기기도 참 질겼군.”
내가 칼자루를 쥐고서 걸어갔다.
마무리를 지으려 검을 높이 들 때.
순간 위니아가 고개를 휙 들었다.
“대장!”
1초도 안 되었다.
그녀가 나무뿌리를 모조리 끊고서 날아와 나의 몸을 덮친 것은.
‘분명 마비가 됐을 텐데 어째서?’
그런 당혹감이 스칠 때.
팔랑이는 그녀의 날개가 보였다.
가장 처음 보았던 백색의 날개.
‘설마.’
처음 만났을 때 어째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저것은 분명 백색조의 날개였다.
도감에서만 보았던 신비로운 생물.
적에겐 칼날처럼 무기로 쓰이지만 자신은 치유할 수 있는 백색 깃털!
‘저 깃털로 마비를 회복한 거야.’
그녀는 이 순간에서조차 비장의 날개를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위니아는 이미 나를 껴안고 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힘을 짜냈는지 그녀의 깃털이 우수수 빠지며 날개가 사라졌다.
위니아에게 안겨 상공으로부터 떨어지며, 나는 머리에 피가 쏠렸다.
빌어먹을!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크게 당황하던 그런 순간에.
시끄럽고, 위급한 추락 속에서도.
“……내가 알지 못했던 모성애가.”
어째서인지 나와 동반자살을 하고 있는 여자의 유언이 뚜렷이 들렸다.
“이번 삶의 날 죽일 줄은 몰랐어.”
나는 대답 없이 떨어지는 상공에서 거친 바람에 저항하며 칼을 뽑았다.
위니아는 피에 젖어서 한탄하였다.
“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는 것조차 이렇게나 어려워야 하지?”
슬픈 유언이지만 동정은 역겹군.
이제 와 세탁하기엔 죄가 무겁다.
웃고 있는 낯에 칼부림으로 답한다.
“됐고. 유품으로 능력치나 뱉고 가.”
“너는 죽일 놈이야. 범철. 나처럼.”
칼을 깊숙이 내찌르자 나를 감싸고 있던 그녀의 손길에서 힘이 빠졌다.
날개를 잃고 떨어지는 여제이다.
내가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죽어서 승천하면 눈부터 닦아라.”
원래 눈물은 땅으로만 흐른다.
그러나 거꾸로 추락할 땐 다르군.
난 하늘로 오르는 이슬을 보았다.
“왼쪽 눈동자에도 눈물 흐르잖아.”
“등신 같긴. 그저 내가 너보다 몇 초 더 빨리 죽게 되었을 뿐이야.”
위니아는 나를 눈물 어린 시선으로 비웃고는 끝내 최후를 맞이하였다.
“……가족애 참 덧없어.”
[회귀계의 거물, 창천의 여제 위니아를 완전히 처치했습니다!]
[유일 등급 칭호 ‘거물을 멸살하는 자’에 의해 보상이 극대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