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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54화 (54/200)

나만 1회차 054화

“……기사단이 전멸을 각오했던 상황을 겨우 10초 만에 역전시켰군.”

나를 바라보는 세그라의 눈빛은 이전하고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는 내가 지금껏 보아왔던 전생의 범철과는 전혀 다르다.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력이 빨라.”

나를 위아래로 살피는 부단장의 시선은 날카로웠지만, 나는 태연했다.

“그러냐?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전생의 기억이 전혀 없어서.”

나는 굳이 새로운 재능에 관해 언급하지 않고 간단히 얼버무렸다.

자연스레 화제를 다르게 돌렸다.

“그나저나 사망한 백인장의 숫자로 봐서는 병력의 규모가 꽤나 큰데?”

가노어까지 합하면 거물에게 소속 된 백인장의 숫자는 13명이었다.

창천의 여제가 최소한 1,300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다는 의미였다.

그에 반해 우리의 숫자는 기사단을 포함하여도 고작 24명에 불과하다.

‘정면승부는 죽도 밥도 안 돼. 암살이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높다.’

상식적으로 1,300명의 병력이 모두 비행능력을 갖췄을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간부가 나설 필요 없이 잡졸만 떼거리로 몰려왔을 테니까.

‘1,300명의 병력이 저 성채로 드나들 수 있는 이동수단이 있을 거야.’

카티에도 나와 똑같이 추리한 모양이었다.

“우선 백인장의 시체부터 뒤져봐요.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고글과 가죽헬멧을 써서 인상이 가려진 시체들 유품을 뒤졌다.

다들 비행하느라 무거운 소지품은 그다지 갖고 있지 않은 편이었다.

기껏해야 건조식량과 쌍안경 정도.

그런데 모든 백인장이 공통적으로 소지하고 있는 물품이 발견되었다.

‘이건……?’

동일한 백합무늬 성냥갑이었는데, 겉으로 봐선 특이할 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헤르탄이 척 보고 말했다.

“위장해 뒀군요. 성채로 귀환하는 데 쓰이는 수단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게 이동수단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서 나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돌에 긁어서 불까지 붙여봤는데도 평범하게 타오를 뿐이었다.

“그냥 흔한 성냥인데요?”

“불을 붙이는 데만 쓰이는 성냥은, 반대로 젖을 일이 전혀 없겠지요.”

헤르탄이 한 개비를 뽑아서 성냥 머리를 입에 물고 침을 듬뿍 적셨다.

그러자 붉었던 성냥 머리가 노랗게 변색되며 황금색 불꽃이 붙었다.

퀸소히니베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환히 불이 붙은 성냥을 바라보았다.

“젖었는데도 불꽃을 피워내는 성냥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야.”

“본진에 귀환하는 마법물품은 적을 들일 수 있기에 위장되곤 합니다. 전란의 시대에 자주 쓰인 술수죠.”

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 성냥으로 저 하늘을 날아다니는 성에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 가령 이런 식으로.”

헤르탄이 바위에 불붙은 성냥을 던지자, 황금불에 휩싸여서 사라졌다.

금세 순간이동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감탄하는 동시에 백인장 시체들의 여러 빛깔 날개를 돌아보았다.

“귀환 물품을 지녔단 것은, 저 날개에도 한정시간이 있다는 거군요.”

“추리력이 발전하고 있군요. 범철.”

헤르탄이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백합무늬 성냥갑을 주워들고 성냥을 뽑아 든 카티에가 그것을 살폈다.

“이동 전후의 위치가 확정적인 순간이동 포석과 달리 이 물품은 어느 위치에 도달할지 알 수가 없어요.”

소녀의 눈빛에는 특유의 불안한 심리가 잔뜩 담겨져 있었다.

“설령 하늘의 성에 간다 해도 성의 어느 위치에 도착할지 모른다구요. 자칫 잘못하면 적진의 한가운데로 떨어지게 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어떻게 할 거예요?”

세그라가 답답해하며 가슴을 쳤다.

“제기랄.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

백인장 전원을 학살했으니 이 자리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었다.

거기다 간부를 파견한 것은 위니아가 이미 침입을 눈치챘단 의미다.

자칫하면 후속부대가 뒤이어 우리를 습격해버릴 시간을 주게 된다.

“고민할 여유 따윈 없어. 당장 성으로 가도 시간이 부족할 판이야.”

“누구는 그걸 몰라서 그러는 줄 아냐? 이동 위치가 불확실하다잖아!”

“어디로 이동되든지 어쨌든 간부들이 쓰는 물품이잖아? 일단은 안전한 장소일 거고, 성에는 지상에 내려올 수단도 있겠지. 계속 시간을 버릴 바에는 성냥 써버리는 게 낫겠다!”

기사들의 말다툼이 격앙되어, 성냥을 멋대로 쓰려는 지경까지 갈 때.

침을 적시고 노랗게 변색된 성냥 머리를 살피던 내가 나직이 말하였다.

“손에 들고 있는 성냥, 당장 버려.”

“네?”

카티에가 나를 의아하게 올려봤다.

난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버리며 말했다.

“이 성냥, 함정이다. 이걸 쓰면 소각로에 태워지고 말아. 당장 버려.”

***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형씨. 그게 무슨 소리야? 성냥을 쓰면 소각로에서 태워질 거라니?”

“함정이었어. 창천의 여제는 여기까지 전부 계산을 해뒀던 거야.”

내가 불확정한 마법성냥의 순간이동 위치를 알아낸 이유는 간단하다.

[고급 감정(Lv2)으로 인해 황금불 성냥의 이동 위치가 드러났습니다!]

모놀칸의 왼쪽 눈동자를 먹고서 깨우친 고급 감정 스킬!

일반 감정 스킬과는 궤를 달리하는 관찰력을 통해 나는 황금불 성냥의 이동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였다.

『황금불 성냥』

젖어야 불이 붙는 마법성냥. 일회성 순간이동의 효력을 지녔다.

+대상에 불붙여야 순간 이동된다.

*이동 위치: 창공성 3번 소각로.

‘하늘의 성 이름이 창공성이었군.’

소각로에 이동되는 황금불 성냥!

비단 내가 들고 있던 성냥 한 개비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성냥갑에 채워진 성냥개비 수십 개가 소각로에 귀환되는 물품이었다.

‘만약 고급 감정 스킬 레벨이 높았다면 성냥갑만 척 보아도 곧바로 함정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됐든 큰일이 날 뻔했다.

내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일행 전원이 소각로에서 태워졌을 것이다.

나는 성냥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이런 함정은 전혀 예상을 못 했어.’

귀환물품의 이중함정!

황금불 성냥을 잘못 썼다가는 용광로에 이동되어 곧바로 타죽는다.

하지만 누가 간부 주머니에 이런 함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할까.

‘창천의 여제. 보통 치밀한 적이 아니군. 긴장을 늦춰선 안 되겠어.’

애당초 백인장이 사망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걸 지니게 한 것이다.

우리가 소지품을 강탈하거나 유품을 뒤질 것까지 예상했단 의미였다.

헤르탄이 침착하게 질문했다.

“모든 성냥개비가 소각로에 순간이동 되는 용도인 것입니까, 범철?”

“아니요. 아주 작게 흠집 난 성냥 개비만 ‘창공성 비행장’에 이동됩니다. 아마 이게 진짜 귀환용이겠죠.”

성냥갑마다 올바른 성냥이 딱 2개비씩만 있고 나머진 함정이었다.

백인장 12명의 성냥갑에서 나는 24개의 흠집 난 성냥을 찾아내었다.

나는 일행에게 각자 안전한 성냥을 쥐여주고 나도 성냥을 손에 들었다.

‘후, 다행히 인원수에 딱 맞는군.’

카티에는 아직도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옷깃을 꼭 붙잡았다.

“정말로 괜찮은 거겠죠, 대장?”

“이젠 이것 말고는 시간이 없어.”

“하지만 너무 불안해 두려워요. 회귀도 못 하는 대장이 죽을까 봐요.”

“나는 걱정 말고, 너부터 믿어라.”

일행 각자가 성냥에 물고 불을 붙이자 온몸이 황금불에 휩싸였다.

이윽고 일행들은 사라져 버렸다.

나도 성냥불을 몸에 붙이려 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악마의 펜타그램이 빛납니다!]

[숨겨진 기연을 접하게 됩니다.]

……손등의 펜타그램이 빛났다.

***

나는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황하였다.

‘망할, 갑자기 지금 이게 왜 이래?’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붉은 빛만 뿜어대는 것이 아니었다.

손등을 칼로 베인 것처럼 화끈한 고통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으윽!”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거두자 불붙은 성냥이 바닥에 떨어졌다.

‘안 돼!’

저 성냥을 놓치면 나는 창공성으로 갈 방도가 없어져 버리고 만다!

서둘러 꺼져가는 성냥을 주우려고 할 때 성냥갑 밑 칸이 철컥 열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성냥갑에 그런 구조가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감춰진 성냥개비?’

교묘하게 이뤄진 이중구조.

성냥갑 밑 칸에는 성냥 한 개비가 딱 하나 의도적으로 숨겨져 있었다.

『황금불 성냥』

젖어야 불이 붙는 마법성냥. 일회 성 순간이동의 효력을 지녔다.

+대상에 불붙여야 순간 이동된다.

*이동 위치: 창공성 기밀서고.

‘기밀서고로 통하는 성냥개비.’

내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바닥에 떨어진 성냥은 꺼져 버렸다.

서둘러 다시 불을 붙이려고 해봤지만 침을 적셔도 무용지물이었다.

“이런, 망할…….”

나는 입술을 씹으며 손등의 펜타그램을 원수처럼 쏘아보았다.

이따금 광채가 날 땐 있었지만 실제로 통증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도 조력자가 바라는 것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때려주고 싶다.

펜타그램 때문에 창공성에 이동하는 마지막 성냥을 놓쳐 버린 것이다.

‘그럼 남은 것이라곤…….’

나는 성냥갑에 숨겨져 있던 성냥개비 하나를 손에 쥐었다.

다른 성냥갑도 살펴보았지만, 성냥개비가 숨겨진 것은 이것뿐이었다.

아무래도 붉은 날개의 백인장만 지니고 있던 물품인 것 같다.

기밀서고로 순간이동하는 성냥.

‘……하는 수 없지.’

결국 짧은 고민 끝에 나는 기밀서고 성냥개비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이미 창공성으로 이동해 버린 일행과 만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성에 가 일행을 찾아봐야지.’

나는 성냥개비를 물고 불을 붙여 온몸에 황금색 불꽃을 둘렀다.

‘……생각보다 뜨겁지는 않은데.’

그저 따스함만을 느끼던 순간, 주위 경관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

“어억!”

난 먼지가 쌓인 공간에 떨어졌다.

손으로 엉덩이를 쓰다듬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책장이 가득히 보였다.

‘여기가…… 창공성의 기밀서고?’

햇빛이 드는 창가에서 바깥을 보고 싶었지만, 완벽히 폐쇄된 장소였다.

퀴퀴한 서고에는 낡아빠진 장서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나는 주위를 살피다가 그중 두꺼운 책 한 권을 뽑아서 펼쳐 들었다.

‘기밀서고에 있는 책이라면…….’

[화염작렬의 강]

6서클 화염마법. 광범위 전화戰禍의 마법에 관하여 서술돼 있다.

나는 책의 내용에 기겁하였다.

화염작렬의 강!

일백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시전하여 맹화를 휩쓰는 광역마법 아닌가.

나 같은 문외한도 알 만큼 끔찍한 화력으로 악명을 떨쳤던 마법이다.

나는 놀라서 서고를 둘러보았다.

‘설마 여기 있는 책이 전부……?’

직접 한 권씩 펼쳐 살펴보니 전부 너무 강한 탓에 대륙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마법에 관하여 적혀 있었다.

‘잠깐. 흥분하지 말고.’

나는 숨을 느리게 고쳐 쉬었다.

우선 일행도 찾아야 하지만 이 행운을 지나치면 미련한 짓 아니겠는가.

‘이건 기회다. 절대 놓칠 수 없어.’

괜히 기밀서고가 아니다.

평소 남들은 꿈에도 꾸지 못할 마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물론 거물이 소유한 서적이겠지만 그깟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암살하러 온 마당에 양심 따위를 가릴 처지가 아니지.’

간신히 진정하고 내가 익힐 만한 마법들을 위주로 책들을 선별하였다.

마법을 습득할 때마다 케케묵은 마법서들이 빛을 내며 소멸되었다.

[해당 4서클 마법을 익히려면 최소 화염계 마법 여섯 개를…….]

[SSS급 마법재능이 생략합니다.]

[화기의 뱀을 익혔습니다!]

[해당 마법습득조건으로 서리설인의 심장을 포식해야만 합니다.]

[SSS급 마법재능이 생략합니다.]

[한기숨결을 익혔습니다!]…….

‘……횡재했다.’

재능은 갖췄지만, 나는 아직 1서클 마법밖에는 익히지 못한 채였다.

마법을 배우려면 스승의 밑에서 수련하거나 마법서를 이해해야 한다.

상급 마법을 익힐 수 있는 마법서는 그 가치를 감히 매길 수도 없다.

‘그런 마법서가 가득한 서고라니.’

다만 내 재능으로도 단숨에 취득할 수 있는 마법은 수어 개뿐이었다.

‘나머지는 페널티가 높거나 내게는 아직 수준이 아득할 만큼 어렵군.’

나는 섬에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대재앙 마법서를 보며 아쉬웠다.

이런 마법을 이해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르면 두려울 게 없을 텐데.

“눈감아주는 것은 딱 거기까지야.”

나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날 선 인상의 여인이 뒤편에 앉아 독서 중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녀가 오른쪽 눈에서만 눈물을 흘리고 있단 것이다.

‘슬픈 책이라도 읽나? 저렇게 한쪽 눈에만 눈물이 날 수도 있다니.’

내가 의아해할 때, 여인이 무심하게 책장을 넘기면서 말하였다.

“그 이상 책 훔치면 처형시킨다.”

“그럼 날 처형할 당신은 누구지?”

“위니아. 이 성의 주인.”

나는 칼을 뽑아서 그녀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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