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50화 (50/200)

나만 1회차 050화

내가 툭 치자 그가 정정하였다.

“오해 마라. 게오르킨이 길 잃은 것을 범철이 찾아 데려온 것이다.”

“그 말은 믿을 수 없다. 특히 반역자인 헤르탄 라페큐셀 네놈은!”

세그라는 이글거리는 눈빛을 뿜으며 뜨거운 분노에 젖어 들어 있다.

그래서 내가 찬물을 끼얹어줬다.

“그럼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시지?”

게오르킨이 펄쩍 뛰었다.

“삼촌 괴롭히지 마!”

“저들이 전하를 납치했습니다! 당장 참수해 회귀시켜야 마땅합니다!”

부단장이 으르렁거리자, 카티에가 냉소적인 눈빛을 띠며 바라보았다.

“어리석네요. 세그라. 지금 당신은 주군의 명령을 어기려는 것인가요?”

“그, 그건! 전하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셔서 함부로 내뱉은…….”

“그럼 우리가 아이를 납치했단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 보시겠어요? 그리고 우리가 폐위된 왕을 납치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뭐가 있죠? 지금 심증만 물고 늘어지시는데요.”

세그라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얼굴만 붉혔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기사단원들도 하나둘씩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저 말이 맞기는 맞는데요.”

“부단장님. 아무래도 전하께서 저들을 적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납치했다면 분명 미워하셨겠죠.”

“단장님이 자리를 비우셨다지만 너무 열정을 태우시는 것 아닙니까?”

부하 단원들까지 그렇게 말을 하니 세그라는 화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납치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나는 팔짱을 끼고 눈썹을 올렸다.

“그 말로 끝낼 건가?”

“……오인한 것을 사죄하겠다.”

그래도 회귀자치곤 인성이 바르군.

그가 입술을 깨물고 사과한 뒤에야 나는 게오르킨을 보내줬다.

“가봐라.”

“삼촌, 더 놀자!”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아이는 나랑 더 놀고 싶어 하였다.

기사들이 억지로 미소년을 떼놓고서야 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들, 왕정의 밀밭기사단인가?”

“그렇다. 황색대륙의 색상을 정의하는 누런 밀밭이 우리 상징이다.”

아하, 그래서 밀밭기사단이었군.

황색대륙은 대지에 넓게 분포한 곡창이 누런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 가장 많은 밀밭은 황색대륙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표상이었다.

그래서 밀밭은 어떤 영험한 생물보다 권위적인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대륙을 대표하는 최강의 기사단!

회귀하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반 회귀자들과 달리 밀밭기사단은 회귀 시점에서부터 이미 극한까지 단련되어 있는 육체를 지녔다.

회귀의 시작부터 능력치 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어쩐지 더럽게 세더라니.’

불멸자의 갑의를 입지 않았더라면, 나는 할턴에게 크게 당했을 것이다.

갈 길 멀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직 대륙을 대표하는 강자들과 싸울 만큼 나의 힘은 여물지 못했다.

‘최소한 나의 총합 능력치가 놈들의 8할…… 아니, 7할만 되었더라도 그렇게 손쉽게 당하진 않을 텐데.’

물론 7할이어도 불리한 조건이나 나는 갖가지 변수, 재능을 조합하여 충분히 비등하게 싸울 자신이 있다.

그만큼 싸움에선 재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능력치 성장이 중요했다.

“대장. 손목 줘봐요.”

가까이 걸어온 카티에가 나의 꺾인 손목을 어루만지며 치유해 줬다.

난 금세 멀쩡해진 손목을 풀고서 땅에 떨어진 레이피어를 주웠다.

“죄송합니다. 정황 없었지만 무고한 자를 폭행한 변명은 되지 않죠.”

할턴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머리가 부서질 일격이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왼쪽 뺨에 멍만 들었다.

‘헤르탄 못지않은 맷집이로군.’

부상을 벌써 회복한 퀸소히니베가 입가를 쓸어내리고 그를 노려봤다.

“그럼 빨리 한 대 대보란 것이야.”

“기꺼이요. 레이디.”

할턴이 픽 웃으며 오른쪽 뺨을 내밀자, 단박에 후려 맞고 날아갔다.

“끄아악!”

“뭐야, 할턴? 너 동네북이었냐?”

“휘유! 저 레이디도 꽤 하시는데?”

기사들이 놀라 퀸소히니베를 보았으나, 그녀는 매몰차게 고갤 틀었다.

“흥. 이제야 분이 풀리는 것이야.”

“입가나 좀 제대로 닦아라, 인마.”

내가 핀잔을 주며 입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자 그녀가 미소를 머금었다.

“말은 거칠어도 나부터 챙겨주는 것은 역시 내 노예뿐인 것이야.”

“알면 좀 잘 싸우기나 하시지?”

“너쯤은 보호해 주겠다는 것이야.”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픽 웃었다.

그러자 카티에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나의 허리를 꼭 붙잡았다.

“대장이 저 용에게 홀려서 나를 버리고 떠나갈 것만 같아요. 그리고 날 비웃으며 함께 알을 만들겠죠.”

“……넌 무슨 망상을 하고 있냐?”

결국 헤르탄이 눈치 있게 끼어들어서 산만해진 대화를 정리하였다.

“그보다는 밀밭기사단에 관하여 정보를 얻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나는 기사들을 향해서 물어보았다.

“게오르킨의 곁에는 항시 밀밭기사단이 대동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혼자 숲에서 길을 잃고 있었지?”

“한눈판 사이 전하께서 도망치셨다. 단장님만 계셨어도 이런 우스운 사달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세그라는 통탄하는 표정이었고, 그래서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너희 단장이 지금 자릴 비웠나?”

“단장님은 회귀하자마자 청색대륙으로 떠나셨다. 전하의 백치를 낫게 하는 명약을 구해온다고 하셨지.”

하, 이계에는 그런 명약도 있나?

나는 솔직히 감탄하였다.

“솔선수범하는 단장이군. 왕을 위해서 다른 대륙까지 갈 정도라면.”

“우리 단장님은 너처럼 불세출의 검사로 불리는 3인 중 한 명이시다.”

세그라는 자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얼굴로 극찬하였다.

“블라이넨. 황색대륙 칼의 정점! 범철, 너 따윈 금세 찢어 죽이시지.”

……블라이넨, 들어봤던 이름이다.

나와 비슷한 실력을 지녔다는 검사가 무려 왕실기사 단장이었다니.

이걸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놔! 범철 삼촌이랑 놀 거야!”

게오르킨이 자꾸만 내 이름을 불렀으나, 기사들이 간곡히 막아섰다.

나는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백치가 보통 이름도 잘 외우나?”

“이상하게도 전하께선 너의 이름만은 항상 기억하신다. 전생부터 네가 상당히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지.”

세그라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어찌 됐건 전하를 찾아준 것에 관해서는 감사한다. 예를 표하지.”

다혈질이지만 상당히 된 놈이군.

거칠긴 해도, 회귀하며 저만큼이나 기사도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맞서 대꾸하려던 순간이었다.

“삼촌!”

게오르킨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나를 애타게 부르는 아이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나 해주려 하던 참인데.

소년이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뭐야.”

나는 잠시간 내 시력을 의심했다.

슬프게도 내 눈에는 별 이상이 없었고, 게오르킨은 비상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저편 하늘을 향해서.

“뭐냐고.”

잠시 뒤에야 날뛰는 게오르킨을 붙잡고 있는 인간, 그리고 조금 후에는 휘날리는 적색 날개까지 보였다.

즉, 게오르킨은 날개 달린 인간에게 납치당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붉은 날개 인간은 고글, 가죽 헬멧을 써서 인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깨버린 것은 바로 세그라의 고함이었다.

“전하!”

고막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고함을 쏟아낸 부단장은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고작 칼 한 자루로 하늘로 도망치는 인간은 상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세그라가 택한 방법은 원시적인 전투의 일환, 바로 투척이었다.

“크하아앗!”

강직한 기사가 기합을 뿜으며 칼을 던졌고, 하늘을 향해서 솟구쳤다.

나는 또다시 내 눈을 의심하였다.

저 칼이 정말 납치범에게 맞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게오르킨이 떨어지면 도리어 다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장면이 떠올랐을 때, 칼은 납치범 언저리에서 아쉽게 떨어졌다.

“이런 개 같은!”

세그라는 욕설을 내뱉었고, 상황을 파악한 기사들 또한 당황해 버렸다.

“전하! 전하께서 납치당하셨다!”

“이번엔 진짜야! 망할, 눈앞에서!”

“부단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그라는 초조하게 이만 갈 뿐 곧바로 명확한 명령을 내리진 못하였다.

회귀자라고 한들 비행 납치범에 대한 또렷한 대안이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전생에 없던 변수가 일어나면 오히려 당황해 판단력이 느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금 같은 1분, 1초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었다.

‘회귀하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왕만은 죽게 하고 싶지 않나 보군.’

할 수 있으면 납치범이 되도록 낮게 날 때 마법으로 격추하고 싶다.

그러나 마나원천의 파괴술을 쓴 직후라 하루 간 마법을 쓸 수가 없다.

“카티에. 너라도 마법을 써서…….”

내가 말을 걸던 바로 그때. 카티에가 옆에서 멍하니 말하였다.

“대장. 폭탄이 날아와요.”

“뭐?”

“저기…….”

카티에가 하늘을 가리켰고, 나는 세 번째로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맙소사.”

폭탄 세례가 우리를 향해서 내려오고 있었다.

대포로 쏘아진 게 아니었다.

폭탄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벌새처럼 바쁘게 퍼덕이는 폭탄 떼가 고공에서 신속히 날아들고 있다.

‘날개 달린 인간에, 폭탄까지?’

폭탄이 쏟아지는 광경은 기괴하다 못해 마른 침이 삼켜질 지경이었다.

당장에라도 몸을 피하려던 찰나.

우리의 불길한 짐작과 다르게, 날개 달린 폭탄들은 우리 주변의 대지에 얌전히 내려앉기만 할 뿐이었다.

“……터지지 않는 건가?”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회귀자들조차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을 때.

오만한 목소리가 내려왔다.

“후우. 너희를 찾느라 고생했지.”

하늘에서 또 다른 인간이 날아와 날개를 접으며 땅에 쭈그려 앉았다.

게오르킨을 납치한 녀석과는 달리 저 남자의 날개 빛깔은 녹색이었다.

“정체가 뭐냐? 그 날개는 뭐고?”

기사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으나, 녹색날개 인간은 태연한 얼굴이었다.

“강자들과 만나 영광이군. 가노어다. 창천의 여제 소속 백인장이지.”

창천의 여제.

황색대륙 거물의 이름이다.

자신을 가노어라 소개한 남성은 팔이 길고 야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너희가 전하를 납치한 것이냐!”

세그라가 칼 없이 그를 제압하려 했으나 가노어는 오히려 싱긋 웃었다.

“날 죽이면 너흰 숲에서 못 나가.”

“그게 무슨 소리냐!”

“지금 날아든 일백의 폭탄은 그대로 땅속으로 들어가 지뢰가 되었다. 밟는 순간 너희에게 허약의 저주가 걸릴 테지. 피나게 쌓아 올린 능력치가 줄 것이다. 설령 그 밀밭기사단일지라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백 개의 폭탄이 내려앉은 주변을 살펴봤다.

땅을 파고 안착한 날개 폭탄이 금세 모습을 감춰 버리고 말았다.

“함정해체 전문가라도 절대 폭탄들은 찾아내지 못해. 땅에 심기면 투명화가 걸리는 최고급 보물이거든.”

세그라가 코웃음을 쳤다.

“우습지도 않은 사기를 치는군. 능력치를 감퇴시키는 폭탄? 그런 물건은 회귀하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

“글쎄? 우리가 대륙 최강 기사단을 상대로 아무런 방비도 안 했을까?”

가노어가 손가락을 튕기자, 땅에 심어졌던 폭탄의 날개가 솟구쳤다.

수십 개에 가까운 폭탄들이 날아들어 근접한 기사들을 덮쳤다.

“하! 이런 것 가지고. 어, 어……?”

“히, 힘이 빠지고 있……?”

“뭐, 뭐야, 이거! 의…… 식이…….”

기사들은 저항했으나 몸에 붙은 폭탄들이 전격을 터뜨리자 쓰러졌다.

그런 수하들을 지켜보고서 세그라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돌격했다.

“네 이놈!”

“회귀자면서 참 배우는 게 없군. 역시 단장이 없을 때를 잘 노렸어.”

가노어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세그라에게 폭탄들이 붙었다.

“아아악! 이 찢어 죽일 자식이!”

부단장은 가장 격렬히 저항하였으나 전격에 휘감겨 기진하고 말았다.

밀밭기사단이 발치에 쓰러졌다.

우리 일행 모두가 긴장하였다.

가노어가 눈매를 좁히고 웃었다.

“자, 이제 폭탄 64개가 남았어. 생각보다 기사단한테 많이 써버렸군.”

***

‘뜬금없이 끔찍한 상황이 됐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하였다.

우리는 현재 64개의 폭탄이 묻힌 숲에서 발이 묶여버리고 만 것이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나도 능력치를 잃고서 기사들처럼 쓰러질 것이다.

‘그런데 무슨 저런 폭탄이 있지?’

대륙최강의 기사단을 제압하고, 능력치까지 손실시키는 성능이라니.

사기적이어도 너무 사기적이다.

“높이 뛰어가거나 방해물을 미끼로 던져도 소용없어. 지뢰의 발동 범위는 드넓고, 생물에게만 터지니까.”

가노어가 손가락을 집어 올렸다.

“저 폭탄들은 소유자에게 순응해. 뭐, 탐나면 파내서 가져가든가. 물론 그 전에 폭탄을 밟고서 터지겠지만. 너희가 이 지뢰밭을 무사히 나가려면, 지금부터 내 말에 복종해라.”

녹색날개의 가노어가 우리를 대충 훑고는 나와 카티에를 척 가리켰다.

“범철, 그리고 카티에였나? 너희는 나와 함께 여제님에게 가줘야겠다. 되도록 멀쩡한 몸 상태로 말이야.”

카티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 없어요. 어째서 거물이 우리 둘을 만나려고 하는 거죠?”

나도 소녀와 같은 의견이었다.

“창천의 여제가 명령한 일이냐? 그 거물의 목적은 도대체 뭐지?”

우리들은 모놀칸 시에서 거물의 시체를 모으는 비밀사업을 방해했다.

그러나 백 개나 되는 최고급 보물을 쓰면서까지 우리를 추적하는 동기로는 합당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질문은 받지 않아. 괜히 설명만 해주다 죽고 회귀했던 적이 많지.”

가노어가 턱을 긁적였고, 나는 칼자루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날지 못하는 새가 쓸모없지.”

“뭐?”

헤르탄이 바닥에 주먹을 짚었다.

굵은 나무뿌리가 가노어의 온몸을 속박한 것은 곧바로 순식간이었다.

“망할!”

날개를 펼치려 해도 그럴 수 없다.

가노어가 곧바로 손가락을 튕기려 했으나, 나의 동작이 훨씬 빨랐다.

“아악!”

나는 가노어의 손등을 칼로 꿰뚫고 퀸소히니베가 양손가락을 비틀었다.

“……크하하! 날 지금 죽이려고?”

속박당한 가노어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도리어 간악하게 비웃었다.

“멍청한 1회차 놈! 넌 나 없이 절대 지뢰밭에서 빠져나가지 못…….”

“그건 너만의 착각이고. 등신아.”

나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다.

땅에 투명해져 묻힌 수많은 보물조차 탐색해낼 수 있는 SSS급의 재능.

나는 놈의 머리를 힘껏 잡아챘다.

“네가 아는 전부를 털어놔라. 아, 그리고 저 보물들은 고맙게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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