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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48화 (48/200)

나만 1회차 048화

사건의 발단은 아침에서 시작됐다.

“저것들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냐?”

“소멸시켜 달라고 알아서 왔네요.”

“썩은 뇌는 조리할 수 없습니다.”

“귀엽고 미약한 시체들인 것이야.”

내 일행의 전체적인 평가를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아침부터 무슨 날벼락이야?’

따사롭고 평화로운 아침 여행길.

우리는 오십의 적에게 포위당했다.

대범한 회귀자들은 나를 향해서 고래고래 협박하고 쌍욕을 퍼부었다.

“범철! 네놈 목이 떨어질 회차다!”

“동료 없인 못 다니는 1회차 놈!”

“순순히 투항하고 몸을 바쳐라!”

나를 살해하려는 전생의 원수들.

한 가지 특이할 사항이라면 저들은 육체가 썩고 있는 좀비라는 것이다.

헤르탄이 감탄하였다.

“자발적으로 좀비가 되었나 보군요. 통증이 사라지고, 힘이 강화되지요.”

“하나 더. 움직임은 엄청 느려져요. 원래가 둔해 빠진 놈들이었겠지만.”

카티에가 우스운지 코웃음을 쳤다.

나는 한숨 쉬며 놈들을 노려봤다.

‘한동안 뜸하더니, 이젠 원수들이 좀비가 돼서 날 죽이러 오는구나.’

이쯤 되면 내가 궁금할 지경이다.

도대체 복수심이 얼마나 깊기에 언데드로 변하면서까지 날 쫓는 걸까?

퀸소히니베가 턱을 쳐들었다.

“참 가소로운 잡졸들인 것이야.”

사실 나도 별반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선한 발상이긴 한데, 회귀자들 치곤 너무 멍청해 보이는데요.”

나를 기습할 것이라면 차라리 느려 터진 좀비보다는 인간이 유용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카티에가 있다.

성녀에겐 최악의 상성이나 마찬가지인 언데드로 변해서 습격하다니.

이건 1회차인 나도 아는 상식이다.

“회귀자라고 바보가 없지는 않겠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로군요.”

거기까지 대화를 나눴을 때 투구를 쓴 회귀자 좀비가 어눌하게 외쳤다.

“돌격해…… 치워라!”

오십의 회귀자 좀비가 일제히 우리에게 맹렬히 달려들며 포효했다.

하지만 그 공격진은 크게 느렸다.

나는 기름 바닥을 생성해 원수들을 미끄러뜨리고, 화염구로 태워 버렸다.

“어억!”

“기, 기름에 불이 붙는다, 망할!”

“버, 범철이 무슨 수로 마법을!”

순식간에 태워지는 열 명의 좀비!

카티에가 주문을 외우고 축복을 내리자 좀비들이 엿처럼 녹아내렸다.

“꾸어어억!”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복수자들.

헤르탄이 나무뿌리로 전신을 죄었고, 퀸소히니베가 좀비를 휩쓸었다.

이변이 벌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회귀자 좀비 하나가 목이 부러지면서도 질기게 그녀의 손을 깨물었다.

곧장 투구 쓴 좀비가 소리쳤다.

“터뜨려라!”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퀸소히니베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

손을 깨물었던 좀비가 터져 버렸다.

콰앙!

“꺄아아악!”

무지막지한 폭발!

어지간한 마법의 화력과 비교도 되지 않는 폭발에 그녀가 튕겨 나갔다.

“제길!”

내가 나가떨어지는 그녀를 받으려 했지만 강한 충격에 나도 넘어졌다.

서둘러 일어나 그녀를 살펴보았다.

외상이 심했고, 의식은 잃어버렸다.

용의 강력함이 아니었다면, 팔다리가 찢어졌을 만큼 강력한 폭발이다.

회귀자 좀비들이 비소를 터뜨렸다.

“우리를 우습게 봤나? 미안하군.”

“함께 멸하여 없애주마, 범철. 물론 우리는 다음 회차로 회귀하겠지만!”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회귀자 좀비들은 우리를 물기 위해서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니었다.

놈들은 우리와 근접한 반경에 접근할 때마다 마구잡이로 폭발했다.

카티에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상급 시체 폭발이에요!”

폭발하는 좀비들이 마구 뛰어온다.

헤르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좀비를 폭사시키는 마법사가 근처에 있습니다! 어서 찾아야 합니다!”

돌격해 오며 폭사하는 좀비 떼!

사망하면 과거로 돌아가는 회귀자들이기에 가능한 미친 전략이다.

‘젠장, 어쩐지 쉽게 풀린다 싶었지!’

주변 일대가 폭발로 휩쓸어진다.

퀸소히니베를 조심스레 내려뒀다.

난 회귀자 중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투구 쓴 좀비에게 재능을 발휘했다.

《상급 좀비 막터》

설명: 저주받은 변이종자를 삼켜 좀비가 되어버린 회귀자. 자아는 남아 있으나 모든 감각을 손실하였다.

*고급 감정(Lv1)을 사용해 대상에 대하여 조금 더 정보를 입수합니다.

+오로지 범철에 대한 복수심만 가득하다. 수하의 언데드가 햇빛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게 해주는 투구를 착용했다. 좋아하는 색깔은 분홍색.

하루 1회만 사용 가능한 회귀자 살해 재능!

지금껏 살해한 회귀자 숫자가 많고, 나보다 강한 회귀자를 목표할수록 상위변수가 창출될 확률이 높다.

[해당 회귀자가 기피하는 변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나는 곧바로 속으로 동의했다.

회귀자가 기피하는 변수 위주지만, 황당한 정보가 넘쳐나서 문제였다.

제발, 써볼 만한 변수가 나타나라!

[펜타그램에 덧칠된 색채에 의해 상위변수 창출 확률이 높아집니다.]

[최하급 변수 3개 획득!]

『머리칼을 깨끗이 밀면 막터가 동질감을 느끼고 약간 여려집니다.』

『막터의 첫 아내는 분홍색 튤립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눈앞에서 튤립을 찢고 짓밟으십시오!』

『좀비는 불과 은을 무서워합니다. 촛불이 가득 켜진 식장에서 그를 따로 불러 은반지를 끼워주십시오.』

[중급 변수 1개 획득!]

『투구를 벗기면 수하의 좀비들이 햇빛에 크게 약화가 될 것입니다.』

[고급 변수 1개 획득!]

『영악한 마법사가 막터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있습니다. 그가 죽으면 막터도 허약해집니다.』

……떴다!

나는 곧바로 칼을 뽑고 달렸다.

“헤르탄! 그림자입니다. 투구 쓴 좀비 그림자에 마법사가 숨었어요!”

“카아악! 범철! 네놈이!”

막터가 주춤거리다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헤르탄은 놓치지 않고 막터의 발목을 나무뿌리를 옭아매었다.

내가 뛰어가는 동안 카티에가 주위 좀비를 폭발 못 하게 녹여 버렸다.

막터에게 근접한 그 순간!

그림자에서 대뜸 전격이 솟구친다.

치지직!

예상치 못한 마법기습!

끔찍한 낙뢰가 나의 가슴에 직격했으나, 갑옷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 어떻게!”

나는 높이 뛰어올라 착지하며 막터의 그림자에 칼을 내리꽂았다.

희미한 음영에서 피가 촥 튀었다.

[그림자 마법사를 죽였습니다!]

[마력이 1 오릅니다.]

[주변 좀비들이 약해졌습니다.]

나는 곧바로 칼을 뽑고 휘청대는 막터의 가슴 한가운데를 내찔렀다.

“크아아악! 네, 네노오옴!”

좀비는 허약할지라도 머리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쉽게 죽지 않는다.

나는 놈의 머리를 걷어차 투구를 벗기고, 정수리를 세차게 쑤셨다.

[상급 좀비 막터를 죽였습니다.]

[힘이 1 오릅니다.]

[피를 쏟는 파멸의 망토 효과로 능력치 성장 효율이 증대합니다.]

[마력이 1 추가로 올랐습니다.]

피를 쏟는 파멸의 망토는 가끔씩 무작위 능력치를 추가로 올려줬다.

막터가 죽자 햇빛에 비틀거리는 좀비들을 카티에가 바로 소멸시켰다.

나는 칼을 뽑아 휘둘러 좀비의 잔해를 치우고,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퀸소히니베는 어떻습니까?”

“용이란 놀랍군요. 살아 있습니다.”

“그저 잠깐만 기절했을 뿐이에요.”

카티에가 회복력을 쏟으며 말했다.

“응급조치했고, 금세 부상이 낫고 있어요. 휴식만 취하면 될 거예요.”

휴, 그거 다행이로군.

내 원수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면 가슴에 평생 남는 한이 됐을 거다.

두 눈을 감은 퀸소히니베가 무의식 중에 우물거렸다.

“노예는 발을 핥으란 것이야…….”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그녀의 안위를 살펴보고 나서야 나는 막터가 흘린 투구를 살펴보았다.

『패잔병의 투구』

전장의 용병이 쓰던 오래된 투구.

+힘 3 증가.

+햇빛에 반감하는 특성을 지워준다(부하 포함).

‘그냥저냥 평범한 투구로군.’

약간이지만 힘을 올려주는 투구.

그리 만족스럽진 않지만 머리를 보호할 방어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투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작스레 글귀가 떠올랐다.

[고급 감정(Lv1)으로 인해 아이템의 숨겨진 기록이 드러났습니다!]

[고급 감정(Lv2) 달성!]

‘숨겨진 기록?’

나는 다시금 투구를 확인하였다.

『발카돈의 투구(감정됨)』

3급 용병 발카돈이 애용하던 투구. 빛이 바랬지만 도끼날도 버텨냈다.

+힘 3(+7) 증가.

+햇빛을 받고 있으면 힘 10 증가.

‘……장난 아닌데?’

고급 감정 스킬에 의해서 투구가 완전히 다른 장비로 탈바꿈되었다.

대낮에만 쓴다면 무려 힘을 20이나 올려주는 상급 투구!

모든 감정이 이런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한 이득이었다.

‘횡재했군.’

나는 투구를 툭툭 털고 장비했다.

좀비가 쓰던 무구를 착용한다는 것이 거슬리기는 하나 감수해야지.

아크 리치를 죽이기 위해 난 전생의 원수들보다 강해져야만 하니까.

하여간 설마 종족을 바꿔 나한테 복수하려는 회귀자도 있을 줄이야.

나는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휩쓸리는 좀비 잔해를 보다가 의문이 생겼다.

“인간이 좀비가 되면 종족이 바뀌잖아. 그래도 회귀할 수가 있냐?”

“물론이에요. 회차 시작 당시에는 인간이었으니까. 나도 한때는 스켈레톤으로 살았던 회차가 있었어요.”

카티에가 스켈레톤으로 살았던 삶?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걸.

“성녀가 어쩌다 스켈레톤이 됐냐?”

“흑마법 교주로 귀의해서 기뻐 날뛰다가 실수로 염산에 빠졌거든요.”

“…….”

“내가 철없을 때 일이에요, 대장.”

카티에가 수줍게 얼굴을 붉혔고, 그래서 난 기분이 심히 괴악해졌다.

길을 따라서 하루를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불가에 모여앉아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편히 쉬었다.

헤르탄이 장작을 지피며 말했다.

“우리가 자살기도회를 떠나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갔군요.”

“일레아흐가 아크 리치 토벌 준비를 잘하고 있을까요?”

“아직 놋쇠반지가 뜨거워지지 않았어. 원정까진 시간이 남은 것 같아.”

아크 리치가 서식하는 향연의 산맥 결계를 뚫기 위해서는 성물만 무려 4,000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륙 각지에서 그만한 성물을 긁어 모으는 일이 짧게 걸릴 리 없었다.

카티에가 나에게 물었다.

“대장. 앞으로 어떻게 할래요?”

나는 불가를 나뭇가지로 쑤셨다.

“우선 아크 리치 원정을 떠나기 직전까지 나는 계속 성장해야만 해.”

대륙 지배자를 죽이기 위해선 회귀자보다 훨씬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러자 소녀가 지도를 펼쳐 들었다.

“당장 이 주변에서 강해질 수 있는 루트는 많아요. 장비를 찾아도 되고, 숨겨진 던전에 다녀와도 괜찮구요.”

회귀자랑 동행하면 이런 부분에서 참 편리하단 말이야.

각종 히든 피스에 해박해 나아갈 수 있는 여정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내가 고민하던 찰나, 줄곧 잠들어 있던 퀸소히니베가 기지개를 켰다.

“한낱 좀비한테 당한 것이 분하지만, 기절한 김에 푹 자버린 것이야.”

나는 식사를 건네며 핀잔을 줬다.

“야. 네가 잘 때 깨길 싫어해서 헤르탄이 널 여기까지 업고 와줬다.”

“역시 헤르탄은 믿음직한 것이야.”

“과찬입니다. 퀸소히니베.”

헤르탄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젠 남에게 고마움도 표하는 퀸소히니베를 카티에가 새침하게 봤다.

“나한테는 별말 없어요?”

“네년 보고 뭘 어쩌라는 것이야?”

“내가 당신을 치료해 줬거든요?”

“흥. 네년의 잔재주에도 조금은 고마워하겠다는 것이야.”

“성의는 없지만, 받아는 줄게요.”

아리따운 두 동료가 언젠간 절친해지길 바라며 나는 자리서 일어났다.

불가를 떠나 멀리서 볼일을 본다.

‘이젠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나.’

앞으로의 행선을 진지하게 계획하다가, 문득 왼쪽 손등을 바라보았다.

‘악마의 펜타그램.’

기연과 변수를 낳는 붉은 별 문신.

이 펜타그램 덕분에 퀸소히니베가 살았고, 나는 기연을 접해 성장한다.

유랑자는 어딘가 내가 목표를 이루길 바라는 조력자가 있다고 말했다.

‘세 대륙의 지배자가 사망하고, 회귀가 멈추길 바라는 자.’

이 펜타그램을 통해 날 돕고 헌신해주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조력자의 정체에 관해서 고민해 보던 찰나, 숲가에서 수풀이 떨렸다.

‘저게 뭐지? 짐승인가?’

내가 의아해하며 바지를 추스르고 걸어가자,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와악!”

“어?”

나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얹는데, 튀어나온 대상이 킬킬거렸다.

“놀랐지? 내가 나와 엄청 놀랐지?”

어둠에 적응됐더라도 폴짝이는 상대방의 모습을 추정하긴 어려웠다.

난 화염구를 생성해 불을 밝혔다.

“불! 엄청난데. 엄청 밝아졌네!”

내 마법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자는 우습게도 잘생긴 소년이었다.

열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외견인데, 어울리지 않게 키는 큰 편이다.

하지만 남루한 옷차림과 경박한 행동거지가 산만하고 모자라 보였다.

‘길 잃은 아이인가?’

잠깐이나마 그렇게 생각했던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인류 전체가 120회차 회귀자인데.’

겉모습은 갓난아기인 일레아흐조차 알맹이는 시꺼먼 어른 아니었던가.

이젠 더 이상 순수한 어린아이를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이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뭐냐?”

“게오르킨. 나는 게오르킨이야!”

거참, 희한하고 괴상한 이름이군.

‘게오르킨이라…….’

언젠가 들어봤던 이름 같은데.

기억을 더듬다가 나는 당혹하였다.

‘잠깐만. 혹시.’

나는 미소년을 다시금 보았다.

‘게오르킨 2세.’

인류가 회귀해 돌아오기 전, 황색 대륙 현왕이었던 남자의 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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