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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44화 (44/200)

나만 1회차 044화

……아니, 꽂혔다고 생각했다.

팅!

화살이 내 옆에서 멈칫하더니 날아왔던 자리로 빠르게 되돌아갔다.

화살만 부분적으로 시간이 되감기는 광경에 나는 작게 감탄하였다.

카티에가 걸어준 화살보호의 기적!

하여간 벌써 식은땀이 흐른다.

‘제기랄. 첫발부터 재수 없게 함정 타일을 밟았군.’

각진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덜컥 내려앉고 화살 한 방이 날아들었다.

초반 느낌이 별로 좋지는 않다.

‘기적의 효과는 10분뿐이야.’

출구까지의 거리는 대략 30분.

10분 안에 출구까지 나가려면 최대한 시간을 단축해 달려야만 한다.

‘다들 30분 후에 따라오기로 했지.’

재를 채운 주머니를 살짝 열어놔 걸을 때마다 타일에 재가 떨어졌다.

내가 출구까지 가면 일행은 무사히 내가 밟은 길을 뒤따라올 수 있다.

나는 멈칫하지 않고 달렸다.

잠시나마 무난하게 가려나 싶었을 때, 발목에 뭔가 걸렸다.

지익!

와이어 함정!

가느다란 와이어가 발목에 걸려 당겨지며 화살이 정면에서 쏘아졌다.

피잉-! 팅!

갑옷을 맞고 튕겨 나가는 화살.

만일 불멸자의 갑의를 걸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가슴이 꿰뚫렸을 거다.

‘정말 쉽지가 않군.’

길목 곳곳에 함정이 도사린다.

거기다 투명한 와이어는 질주하면서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함정 하나하나에 일일이 신경 쓰다간 10분이 지나가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피하지 않겠다.’

보통이라면 함정을 조심히 해체하거나 화살을 회피하며 지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방식은 달랐다.

변수를 극복하려면 정해진 상식을 벗어나야 한다.

‘가보자.’

갈림길이 나오자 왼쪽으로 틀었다.

새로운 길목에 들어서자 나를 감지하고 일제히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하면 늦는다.

나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맞으면서 과감히 뛰어갔다.

불멸자의 갑의 성능!

평범한 갑옷이었다면 진즉에 깨졌겠지만, 실금 하나 가지 않는다.

나는 새삼 갑옷이 놀라웠다.

‘이거 진짜 부서지긴 하는 건가?’

지옥의 시련 보상이자, 어느 회귀자도 갖지 못한 유일한 갑옷.

내구력은 무한에 가까우며 따로 수리를 할 필요조차 없다.

평범한 서사시 같았으면 여정의 끝에서나 얻었어야 했을 아이템이었다.

물론 갑옷이 가리지 못하는 목과 머리, 발등, 손목 따위는 약점이다.

그러나 노출된 신체 부위는 카티에의 기적이 방어를 해주고 있었다.

화아악!

갑옷에서 초록색 불길이 치솟는다.

명계의 잔불은 나한테 다가오는 화살 중 대부분을 집어삼켜 태웠다.

악천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뚫고서 지나면서 능력치가 마구 올랐다.

[화살의 장맛비를 뚫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민첩이 1 올랐습니다.]

[42발의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았습니다. 체력이 2 오릅니다.]

[무수한 함정을 마땅한 회피조차 없이 당당히 통과하고 있습니다.]

[패시브 스킬, ‘철의 육체(Lv1)’를 깨달았습니다. 육체의 맷집과 고통에 대한 인내력이 상승합니다.]

심지어 스킬까지 생성되었다.

단순히 행동을 통해서 스킬을 습득한 것은 지금의 경우가 최초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그만큼 무모한 미친 짓이라는 의미였다.

‘아예 한 바퀴 더 돌고 갈까?’

나는 쏠쏠하게 오르는 능력치를 보자 괜스레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다.

여유 부리다 기적의 제한시간이 지나면, 나는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

‘여기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갈림길을 선택하고 계단을 높이 올라갈수록 화력이 거세졌다.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피잉!

화살이 미친 듯이 쏟아져 제대로 앞을 보고 나아갈 수가 없을 지경!

그러나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평소 내가 뛰는 속도보다 빨라.’

산들바람이 실린 요정장화!

실수를 하면 속도가 30% 오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30%라는 속도상승은 체감이 어마어마했다.

‘할 수 있어. 무사히 나갈 수 있다!’

머리나 발등에 스치는 화살들이 역행되는 반응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서서히 효과가 다해가는 기적!

숨은 턱 끝에 차오른 지 오래이다.

마지막 갈림길을 돌아서 출구까지 불과 500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멈춰 섰다.

‘잠깐.’

그저 숨이 차 힘들어서가 아니다.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

지체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내가 멈춰 선 것은 수상한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한데.’

이대로 그냥 가서는 안 된다.

분명 눈에 밟히는 뭔가가 있었다.

재 흐르는 주머니를 굳게 잠근다.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임에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돌아섰다.

‘여기, 여기 근처 어디였어.’

미친 짓 속의 또 다른 미친 짓.

빨리 출구로 나가도 모자랄망정.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미친 짓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의 본능은 길을 돌아가라고 외쳤다.

지나쳤던 갈림길 중에서 들어가지 못했던 길목을 택하여 들어선다.

‘그래, 바로 이곳이야.’

어김없이 화살이 쏟아져도 나는 굶주린 짐승처럼 눈알을 마구 굴렸다.

달리고, 살피며, 훑어서, 만져본다.

바닥을 두드려 소리가 다른 곳이나 벽에 숨겨진 공간이 있나 확인했다.

삐그덕……!

수상한 타일을 차례대로 누르고, 벽을 때리자 천정이 세게 진동했다.

처음에는 화살 함정인 줄 알았다.

그러나 희뿌연 연기가 흐르더니 불현듯 처음 보는 상자가 나타났다.

‘숨겨진 상자?’

찬란하게 화려한 황금색 상자.

상자에 잠금이 걸려 있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큐라아악!”

황금상자에서 솟구쳐 나온 것은 보상이 아니라 기괴한 생물체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황금 미믹!’

평범한 미믹은 상자로 위장하여 모험가를 잡아먹는 독특한 몬스터다.

그러나 황금 미믹은 전혀 달랐다.

일반 미믹에서 진화한 종이며, 진귀한 보물 상자에서만 서식을 한다.

상자 속에 든 보물을 아주 아끼며, 누군가 자기 보물을 가져가려 하면 반드시 쫓아가 먹어버린다고 한다.

나도 그 흉악하다는 황금 미믹을 실제로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큐라아악! 보화를 탐내는 어리석은 애송…… 꾸에에에에에에에엑!”

정체를 드러낸 황금 미믹이 수백 개의 화살이 박혀서 즉사해 버렸다.

아직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이 벌 떼처럼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미믹이 함정에 걸려 내가 살았군.’

그런데 이 상자는 대체 무엇인가.

창천의 여제가 숨겨놨을 리는 없으니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상자이다.

어째서 내가 은밀하게 숨겨진 상자를 본능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을까?

그러한 의문에 해답이라도 주듯이 글귀가 곧바로 떠올랐다.

[영원히 감춰졌어야 할 모놀칸의 상급 비밀상자를 찾아내었습니다.]

[당신의 보물탐색 재능은 SSS급입니다.]

[‘1,000년을 방황한 보물사냥꾼’을 뛰어넘을 재목!]

새로운 보물탐색의 재능!

놀랍지만 감탄할 새가 없다.

나는 시간을 너무 지체해 버렸다.

‘서둘러 나가지 않으면, 나도 미믹처럼 화살꽂이가 되어버린다.’

기괴한 황금 미믹을 치워 버리자, 상자에서 황금빛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가벼워진 철 상자를 통째로 들고 출구를 향해 죽어라 내달렸다.

재가 담긴 타일 끄트머리에 닿자 난 재 주머니 입구를 빨리 풀었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 빛이 보였다.

밖까지 300미터를 앞두던 그 순간.

[10분 유지시간이 지났습니다.]

[발라진 기적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젠장!”

나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직 출구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다.

상자를 방패처럼 들고 머리를 보호하며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었다.

명계의 잔불이 대부분의 화살을 태워내도 몸에 화살촉이 파고들었다.

[화살이 네 발 꽂혀 버렸습니다!]

[철의 육체(Lv2) 달성!]

[함정에 연속으로 걸렸습니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철의 육체(Lv3) 달성!]

화살이 꽂힐 때마다 쓰라린 고통이 몸을 휩쓸었지만, 이득도 존재했다.

철의 육체가 3레벨까지 레벨업!

‘이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상자를 밖으로 힘껏 던진다.

맨살에 마구 파고드는 화살에 입술을 씹고, 햇빛을 향해 뛰어든다.

피잉-!

나에게 쏘아진 마지막 화살.

바로 뒤통수에 화살이 날아든다.

나는 죽자 살자 몸을 뒤틀고 화살이 꽂힌 손으로 레이피어를 뻗었다.

콰작!

칼끝이 화살촉을 갈라낸다.

화살이 정확히 쪼개져 떨어진다.

나는 햇빛에 몸을 적셨다.

[불가능 난이도, 총 992개의 화살 함정 구간을 혼자서 통과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놀라운 업적!]

[모든 능력치가 1씩 오릅니다.]

[몸에 박힌 화살을 다 뽑아 묻으면 희귀 등급 칭호를 얻게 됩니다.]

***

“내가 걱정돼 일찍 오지 않았다면, 대장은 출혈로 죽어버렸을 거예요.”

“알았으니까 목에 건 밧줄은 치우지 그러냐. 보기에 좀 그렇다.”

카티에가 몸에 박힌 화살을 세차게 뽑았고, 나는 곡소리를 내었다.

“끄어억!”

“안에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면, 밖에 먼저 나와서 나한테 기적을 새로 받고 다시 들어가면 됐잖아요.”

그 말이 맞기는 하다.

사실 출구로 나와서 카티에가 다시 내게 기적을 걸어주는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키지 않았다.

“내가 위험해도 네가 생명 깎이는 기적을 많이 쓰길 바라지는 않아.”

“……흥. 듣기만 좋은 위선.”

“회귀해 100번을 같이 다녔으면, 내가 진심이란 것 정도는 알잖아?”

그러자 소녀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지고, 새하얀 뺨이 약간 붉어졌다.

“대장은 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련하시겠냐.”

“무릎 꿇고 청혼하면 받아줄까요?”

“일단 스무 살부터 되고 말하지?”

카티에가 새침하게 고개를 틀었다.

“내가 산 세월은 4천 년이 넘어요.”

“나는 육체 나이도 봐요. 어르신.”

“대장의 그런 면이 나는 좋네요.”

소녀가 작게 웃자, 나는 괜스레 낯설 만큼 따스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때 정찰 간 헤르탄이 돌아왔다.

“거물의 사병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화살함정을 통과하며 타일의 재를 지워 버렸으니, 저희를 추적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입니다.”

“역시 헤르탄입니다. 믿음직해요.”

나는 그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헤르탄이 주섬주섬 속주머니를 뒤졌고, 나는 눈썹을 올렸다.

“설마 산야초는 아니겠죠?”

“아니요. 오크들에게 받았던 라임입니다. 씹으면 정신이 날 겁니다.”

“그럼 같이 먹게 설탕이나…….”

헤르탄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시게 먹어야 정신이 맑아집니다.”

“…….”

헤르탄은 다 좋은데 간호식에 관해서는 이상한 고집이 있단 말이야.

나는 괴악한 표정으로 그 시큼한 라임을 혀끝이 알알하도록 씹었다.

그런데 퀸소히니베가 불만이 담긴 눈빛으로 다친 나를 보았다.

“날 짐으로 만들진 말란 것이야.”

“네가 언제 배려도 할 줄 알았냐?”

“너에게만 위험한 짓을 떠맡기다간 나는 귀한 노예를 잃게 될 것이야.”

그녀는 그렇게 톡 쏘아붙이고 고개를 휙 돌리면서 가버렸다.

얼씨구, 저 용이 옳은 말도 하네.

하룻밤을 새우고 나와서 바깥은 빛이 완연하고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그러나 꾀죄죄한 튜크는 지하도의 어둠 속에서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내가 지금 유령을 보고 있나. 정말 혼자 그 함정을 뚫고 나오다니.”

나는 대답 없이 반지를 던졌다.

한 손으로 가볍게 그것을 잡아챈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뭐야? 이렇게 갑자기 청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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