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42화 (42/200)

나만 1회차 042화

일주일 전.

나는 밴시 대모의 유골을 부숴 버리고 함께 놓여 있던 항아리를 얻었다.

미궁의 건축자 샤라펠의 유품!

내가 그 항아리 안에서 발견한 것은 낡아빠진 양피지 두루마리였다.

『마나원천의 괴력술』

미궁의 대마법사, 샤라펠이 저술한 마법비전. 고대부터 내려온 마법의 비기에 관하여 서술되어 있다.

+비기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용의 마나심장을 삼켜야만 한다.

+비기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4종류 상위 원소마법을 익혀야 한다.

+비기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6서클 이상의 경지를 달성해야 한다.

+단, 몹시 드문 대마법사의 재능을 가졌다면 위의 세 조건을 생략한다.

내가 두루마리를 쫙 펼치는 순간, 환한 빛이 눈앞에 휩싸였다.

[SSS급 마법재능을 지녔습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책에 담긴 비기를 이해합니다.]

주변의 광경이 새하얗게 변하였다.

나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항상 의문을 가졌다. 어째서 마법사는 늘 허약해야 하는가. 우리 마법사라고 저 황야의 전사들처럼 적의 육체를 찢어버리며 뜨겁게 싸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샤라펠의 살아생전 목소리!

밴시 대모였던 그녀와 조우했을 때보다 훨씬 안정된 음색이었다.

주의 깊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상한 마법사들은 전사들의 싸움을 단순무식하다고 비웃지만, 나의 의견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전사의 싸움법에 마법의 답이 있다.]

두루마리의 빛무리가 나의 몸을 조금씩 감싸기 시작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내가 고안한 비기는 상투적인 마법과 궤를 달리한다. 이 비전은 서클이나 지능과 관련이 없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육체적 힘 그 자체.]

온몸이 마나로 간질거렸다.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

[그러니 이 비기는 오로지 지식만을 위해 몸 바친 마법사들에게 해학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대는 마법사지만, 이제부터 힘을 올려야 한다.]

파앗!

빛이 나의 몸에 완전히 흡수돼 사라지고, 양손에 파란 마나가 흐른다.

추상적이게만 느껴지던 마나가 나의 현실에 푸른빛으로 실체화됐다.

그야말로 힘의 덩어리가 손아귀에서 꿈틀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마나원천의 괴력술(1단계)을 습득했습니다!]

[서클에 포함되지 않는, 현대에서 최초로 밝혀진 고대비기입니다.]

[마법은 실로 강력하나 마나의 본질을 흐리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순수한 마나원천 그 자체를 다루어 파괴적인 힘을 행사하십시오!]

그저 순수하게 마나를 다루는 힘!

비기가 발동되고 있는 순간, 모든 마나가 심장에서 양손으로 모였다.

[마나원천의 괴력술은 힘을 키우고 고되게 수련할수록 세집니다.]

[본인이 타고난 마법재능에 따라 특수한 괴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나원천을 다루어 각종 마법물품에 강한 내구력을 일깨웁니다.]

[마법물품으로 적을 직접 후려치면, 항상 심각한 타격을 입힙니다.]

[특수 페널티가 존재하므로 긴급상황에서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마법물품을 무식하게 쓰라는 비기!

비기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를 위한 호신용 비기로군.’

샤라펠이 말했다시피 마법사는 강력하나 육체적 한계가 명확하다.

불길의 파도를 일구어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마법사일지라도, 육체적인 싸움에선 일개 검사에게도 당한다.

그러나 마법사가 마나원천의 괴력술을 익히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지팡이로 두개골을 쳐부수고, 책으로 창칼을 막아내는 힘의 마법사!

하지만 나는 회의적이었다.

‘마법사에겐 호불호가 갈리겠는데.’

신박하긴 한데, 육체수련에 취약한 마법사가 쓰기엔 난해한 감이 있다.

거기다 광활한 원거리 학살이 가능한 경지라면, 굳이 육체적 전투능력을 키우지 않아도 활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는 최적의 비기야.’

나는 간만에 능력치창을 살폈다.

이름: 이범철

칭호: 크레스의 영웅, 거물을 멸살하는 자.

보유 재능- 검술(SSS), 마법(SSS), 회귀자 살해(SSS), 잠금 해제(SSS)

힘: 21 체력: 27 민첩: 28 마력: 22 행운: 11

내가 지금껏 쌓아온 능력치는 행운을 제외하면 균등한 편에 속했다.

좋게 말하면 다재다능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특화된 분야가 없다.

그러나 마나원천의 괴력술은 균등함을 깨고 그저 힘만을 폭주시킨다.

‘비기를 써 괴력을 얻을 수 있다.’

힘은 그야말로 전투에 만능이다.

칼을 쓰거나 적을 척살할 때 괴력만 있다면 상황을 지배할 수 있다.

그러니 마나원천의 괴력술은 지금 내게 엄청난 효율의 비기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마법서를 손에 꽉 쥐고서 거물의 사병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마나원천의 괴력술을 제대로 써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나원천의 괴력술이 흉내쟁이 마법서를 전투적으로 강화합니다.]

[베이거나 젖어도 훼손되지 않으며 표지가 금속 강도를 지닙니다.]

흉내쟁이 마법서는 매일 무작위 서적으로 변신시킬 수가 있다.

그러나 처음만 빼고 지금까지 쓸모 있는 책으로 변했던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마법서의 용도는 그냥 두드려 패는 것이었다.

“너희에게 희소식이다. 책은 베개나 냄비받침 이외의 용도가 있군.”

나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며 마법서 책등을 힘껏 내리찍었다.

“끄아악!”

그러자 가로막던 방패가 쩌적 금이 가고 사병이 나가떨어져 굴렀다.

마법서로 사병을 가격할 때마다 갑옷 이음새가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마법물품으로 항상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마나원천의 괴력술!

‘효율성은 별론데 손맛은 죽이네.’

책은 단단했지만, 애초에 무기가 아니어서 칼보단 쓰기가 불편했다.

물론 단순히 책의 내구력과 비기보 정만으론 이런 피해를 줄 수 없다.

[재능의 영역이 광범위해 현 마법 경지에 맞는 괴력이 선택됩니다.]

[‘오크가 자기 목숨을 지키려 할 때의 힘’이 육체에 깃들었습니다!]

[체내의 모든 마나가 태워질 때까지, 상승한 괴력이 유지됩니다.]

마나를 태워서 강화되는 괴력!

불타오르는 생존 욕구와 함께, 팔뚝에서 힘줄이 꿈틀거린다.

월등한 화력으로 마법서를 양손으로 휘두르자 사병들이 깨져나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채, 책이 아닐 거야! 책으로 위장한 철판…… 아니, 둔기가 분명해!”

“막아내! 아, 아니, 방패로 막지도 마라. 막아봤자 힘으로 제압당해!”

뒤늦게야 사병들은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방어대책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놈들이 여전히 머저리인 점은 나만 싸우는 줄 안다는 것이다.

콰앙!

헤르탄이 바닥에 주먹을 찍어 나무 뿌리로 적들의 다리를 묶었다.

사병들이 칼로 뿌리를 끊으려 하자, 퀸소히니베가 세차게 뛰쳐나갔다.

“너흰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이야.”

그녀의 팔이 휘둘러 친 머리들이 투두둑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퀸소히니베의 악력은 인간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괴력술로 강화된 나와 걸맞거나 가히 그 이상이었다.

‘용이 정말 사기적인 몬스터군.’

아직은 어려 비늘이 돋지 않은 퀸소히니베가 저만큼이나 강력하다.

새삼 느끼면서 나는 사병들을 후려쳐 갑옷과 뼈를 산산이 박살 내었다.

“우, 우리를 죽이면, 여제께서 바로 너희의 위치를 파악하실…… 어억!”

“끄아악!”

조각난 투구를 던지고 도망치던 사병이 뒤통수에 불덩이를 처맞았다.

“아아악! 회귀하기 싫어! 살려줘!”

“살려주면 복수하러 올 거잖아요.”

카티에는 불덩이를 날리거나 축복을 내려서 우리를 보조해 주었다.

스물의 사병이 사망하고, 나는 몸에서 괴력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체내의 마나를 소진했습니다.]

[마력이 5 손실되었습니다.]

[마나원천의 괴력술의 대가로 하루 간 마법을 쓸 수 없게 됩니다.]

마나원천의 괴력술 페널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기랄. 효과가 대단한 비기이긴 한데, 자주 쓰지는 못하겠어.’

마력 능력치가 5씩이나 손실되고 하루 동안 마법을 쓸 수 없게 된다.

5라는 숫자가 적어 보여도 내가 지녔던 마력의 4분의 1의 수치다.

내가 짜증스러워하자 카티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손을 꼭 쥐었다.

“대장. 내가 업어줄까요?”

“……그게 가능하기는 하겠냐?”

헤르탄이 여관의 밖을 살폈다.

“우선 도시를 벗어나야겠습니다. 여제의 세력이 우릴 쫓을 겁니다.”

“창천의 여제라는 거물이 그렇게 막강한 권력자입니까?”

“약하다면 여제라고 불리지 않겠지요. 서둘러야 합니다. 우린 거물의 사업을 방해하고 수하를 죽였습니다.”

여관 밖으로 나오자 해가 저물어서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도시에서 횃불이 비추는 빛과 땅을 울리는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표적들이 도시 안에 있다!”

“절대 죽이지 말고 생포해라!”

망할, 사병들이 벌써 우리를 찾고 있는 거야?

여기서 지체하면 우리는 궁지에 몰려 사병들의 손에 작살 나게 된다.

“푸르릉!”

마침 여관 기둥에는 죽은 사병들이 타고 왔던 말들이 묶여져 있었다.

나와 카티에, 헤르탄은 곧장 승용마의 안장 위로 뛰어올랐다.

나는 지극히 표준체격에서 벗어난 두 동료를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말들과 솜씨가 뛰어나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퀸소히니베가 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혼자만 가만히 서 있었다.

“야, 안 타고 뭐해!”

“나는 말을 탈 줄 모르는 것이야.”

제기랄, 생각해 보니 그렇겠군.

나는 고삐를 잡아당기고 퀸소히니베를 내 등 뒤에 과격히 태웠다.

시간이 없어 확 끌어안아 올렸더니 그녀답지 않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꺄악!”

“꽉 잡아!”

“절대 떨어뜨리지 말라는 것이야!”

소스라친 퀸소히니베가 내 등에 바짝 붙었다.

어찌나 나의 허리를 세차게 껴안는지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카티에가 안장 위에서 난리를 치는 우리 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제발 대장이 2인 승마에 대한 재능도 찾아내기를 바랄게요.”

“재능 있으면 내가 이러겠냐!”

“갑시다!”

우리 일행은 말을 다그쳐 달렸다.

***

“이쪽 구간에도 길이 막혔어요.”

우리는 말을 타고서 대도시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가는 길목, 밖으로 향하는 검문소마다 사병이 즐비했던 것이다.

카티에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눈살을 찌푸리다가 의견을 내었다.

“하는 수 없네요. 지하도로 가요.”

“지하도?”

“그곳에 도시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어요. 위험하고, 복잡하지만요.”

우리는 사병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다가 말을 버리고 내렸다.

퀸소히니베는 미련 섞인 시선으로 말을 돌아보면서 입술을 핥았다.

“말고기는 참으로 맛난 것이야.”

그러자 헤르탄이 회상에 잠겼다.

“말을 맛좋게 조리하려면 술에 강제로 담그고 연골을 뽑아서…….”

“그만들 하고 갑시다. 예?”

우리는 굴다리 밑으로 가서 밀폐된 지하도로 통하는 구멍을 찾아냈다.

“이쯤은 간단히 부수는 것이야.”

콰작!

녹슨 쇠창살을 퀸소히니베가 후려쳐서 간단히 부숴 버렸다.

“여기에 대도시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고?”

“네. 복잡하긴 하지만요. 심지어 회귀자라도 길을 잃는 곳이거든요.”

우리는 지하로 들어섰다.

악취가 풍기고 시궁창 쥐가 돌아다니는 지하도 내부는 너무 깜깜했다.

“이러면 한결 나을 겁니다.”

헤르탄이 배낭에서 꺼낸 재료로 횃불을 만들자 그나마 걸을 만했다.

전생을 완벽히 기억하는 카티에는 잘 살피지 않고도 빠르게 걸었다.

수십 분을 소녀의 뒤를 따라서 걷다가 나는 갑작스레 뛰쳐나갔다.

“대장, 왜 그러는……?”

카티에가 말을 차마 잇기도 전에 내가 레이피어를 내뻗었다.

챙!

어둠에서 날아든 단도가 튕겨진다.

기습을 막은 나는 눈썹을 세웠다.

“누구지?”

그러자 어두운 저편에서 나른하게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범철. 전생에서처럼 죽고 싶지 않다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