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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1회차-41화 (41/200)

나만 1회차 041화

차마 대놓고 고함치지는 못했다.

누군가 술잔에 독을 발라놓았다는 것은 적이 근처에 있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퀸소히니베는 술잔을 전부 비웠는데도 멀쩡히 입맛을 다셨다.

“인간의 술맛이 궁금했던 것이야.”

“……괜찮은 거냐?”

퀸소히니베가 코웃음을 쳤다.

“이깟 독 따윈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야. 내가 그것도 모를까?”

나는 눈썹을 찌푸리자 헤르탄이 부연설명을 해줬다.

“용은 어지간한 독에 내성이 있습니다. 전생에서 용들의 먹잇감에 독약을 탄 경험이 있어서 압니다.”

“술잔에 독이 묻어 있던 것이 확실합니까?”

“희미한 박하향이 나더군요. 마비독입니다. 마시는 순간은 모르나 점차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합니다.”

카티에는 빈 잔에 남아 있는 향기를 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르탄의 말이 맞아요. 피뢰말벌의 벌침에서 채취한 독이네요. 쉽게 구할 수 있는 독은 절대 아니에요.”

나는 새삼스레 두 사람을 보았다.

“그저 향기만 맡고도 술에 어떤 독이 들었는지 알 수가 있는 겁니까?”

“저희는 똑같은 독에 당해본 기억이 꽤 되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카티에가 흘깃 주방을 곁눈질했다.

“여관주인이 독을 바른 걸까요? 대장의 원수한테 사주를 받고서?”

“그럴 확률이 높겠지요. 주방에서 음식과 술을 준비하는 사람이니까.”

헤르탄이 굳은 얼굴로 일어설 때.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말렸다.

“잠깐만요. 뭔가 이상합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범철?”

나는 주위 탁자로 턱짓을 했다.

“나만을 노린 독살이 아닙니다.”

여관 1층 홀에는 우리를 제외한 테이블에도 취객들이 꽉 차 있었다.

“크허허! 이놈아! 농담도 정도껏 해라. 지난 삶에서 용궁을 다녀왔다고? 무슨 동화책을 참고한 거냐?”

“아, 글쎄. 진짜라니까! 용궁에 갔더니 인어들이 헤엄치고, 온갖 생물의 간이 담긴 궤짝이 있더라니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회귀자들.

그런데 술에 취한 그들의 얼굴이 굳더니 하나둘씩 픽픽 쓰러진다.

“어어……?”

“몸이, 이상흐으으억……!”

후각이 뛰어난 퀸소히니베가 코를 찡그렸다.

“저들의 술잔에서도 똑같은 박하향이 나는 것이야.”

모든 취객이 쓰러졌고 여관에서 의식이 남은 것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어느새 무섭도록 고요해진 1층 홀.

카티에가 한숨 쉬며 도로 앉았다.

“주방에 다녀왔는데 여관주인도 쓰러져 죽었네요. 술을 점검하다 독을 먹은 것 같아요. 누구 짓일까요?”

“모르겠습니다만, 누군가 여관 사람들을 독살하려 한 것은 분명합니다.”

시체로 찬 여관에 긴장이 감돈다.

상황을 살피던 내가 제안했다.

“누가 왜 이랬는지 알아내야겠습니다. 독을 마신 척하고 쓰러져 있죠.”

“좋은 생각입니다. 독을 바른 회귀자라면 결과를 보러 올 테니까요.”

“혹시 뒤늦게 올지도 모르니까, 정확히 15분만 기다려보기로 해요.”

“죽은 척은 용의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투덜대면서도 내 말을 따라서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나는 일부러 술잔을 엎질렀고, 카티에는 접시를 떨어뜨려 깨뜨렸다.

그리고 헤르탄은 아예 거위구이에 얼굴을 처박고 고꾸라져 넘어졌다.

그러자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우리는 훌륭한 시체로 위장되었다.

끼익.

그리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여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야. 오늘 대목이네. 몇 놈이나 털린 거야? 족히 서른은 되겠는걸.”

“뒷골목에서 담배 좀 더 태우다 가자니까.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

“멍청아. 신선한 시체가 얼마나 비싼 줄 몰라서 그래? 마탑, 변태, 금단학자. 수요가 넘친다고. 여유 부리다 다른 놈들이 채가면 어쩌려고?”

나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남자를 살펴보았다.

깡마른 남성과 퉁퉁한 남성이었다.

쓰러진 취객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퉁퉁한 남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봐. 술잔에 독을 바르길 잘했어. 역시 나는 암살에 재능이 있나 봐.”

그러자 깡마른 남성이 기막혀했다.

“술잔에 독을 발랐다고! 멍청아. 그러면 술을 안 먹는 놈들은 죽일 수가 없잖아! 음식에 넣었어야지.”

“하지만 독액 양이 적었다고.”

“아오, 수프에 타면 되잖아. 답답한 자식. 이딴 놈이 꼴에 회귀자라니.”

깡마른 남성이 화를 내자 퉁퉁한 남성이 머리를 긁으며 변명하였다.

“그래도 봐. 전부 뒈졌잖아. 이 여관이 맥주 맛 하나는 죽인다고.”

두 남자는 능숙히 시체를 뒤졌다.

깡마른 남성이 비싸 보이는 팔찌를 발견하자 퉁퉁한 남성이 감탄했다.

“그것도 여제한테 넘겨줘야 해?”

“돌았냐? 뭣 하러 일일이 가져다 바쳐? 이런 부수입이 얼마나 짭짤한데.”

깡마른 남성은 잽싸게 팔찌를 품에 챙기고 다른 시체들을 뒤졌다.

퀸소히니베는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고 아주 조금씩 꿈틀댔다.

하필이면 나와 밀착될 만큼 가까이 누워서 귓가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으윽, 간지러워 미치겠군.

“너무 답답한 것이야.”

“조용히 하고 가만히 좀 있어 봐.”

이윽고 두 남성이 이쪽에 왔다.

깡마른 남성이 쓰러진 퀸소히니베를 살펴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와, 이년 좀 봐. 겁나 예쁜데? 가슴도 커다랗고 엉덩짝도 탐스럽고.”

“…….”

퀸소히니베의 인내심이 극에 달하는 것은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퉁퉁한 남성은 침을 질질 흘렸다.

“흐, 나는 작은 년이 마음에 든다. 쇄골 하얀 것 보여? 핥고 싶다.”

썩을,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네.

놈들이 충분히 다가오자 나는 벌떡 일어나며 곧바로 칼을 뽑았다.

퉁퉁한 남성이 기겁하며 날 봤다.

“뭐, 뭐야? 죽은 것 아니었어?”

“되살아났지. 너는 못 하길 바랄게.”

나는 레이피어를 치켜세워 퉁퉁한 남성의 이마를 단숨에 꿰뚫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동료가 죽어 버리자 깡마른 남성이 흠칫했다.

난 칼을 뽑아 놈에게 들이밀었다.

그런데 깡마른 남성이 놀라기는커녕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이야, 여기서 다 보네! 예전에 우리들 만났을 때 기억나긴 하냐?”

난 찌르려던 칼을 순간 멈칫했다.

설마 이 녀석이 전생에서 나랑 아는 사이였나?

내가 잠깐 보인 빈틈에 깡마른 남성은 날쌔게 나이프를 던졌다.

‘젠장, 그러면 그렇지!’

챙!

내가 나이프를 쳐내자 깡마른 남성은 이미 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소리쳤다.

“헤르탄!”

거위기름 탓에 얼굴이 반질반질한 헤르탄이 바닥에 주먹을 내려쳤다.

그러자 나무뿌리가 여관바닥을 뚫고 올라와 남성을 속박해 버렸다.

“으윽! 제기랄!”

다리가 속박당해 도망칠 수 없자 남성은 소매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자기 가슴에 꽂았다.

푸욱!

“크윽……!”

피가 분수처럼 튀어도 남성은 거침 없이 자해를 멈추지 않았다.

‘움직여서 도망치지 못하니, 자살해서 도망치려는 거군.’

실로 회귀자답게 용맹스러운 행위.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자살해 봤자 너는 못 행복해요.”

카티에가 손을 뻗어 축복을 내리자 남성의 상처가 순식간에 나았다.

아무리 나이프로 쑤셔도 회복되어 버리니 남성도 결국 포기해 버렸다.

“으억!”

헤르탄이 조종하는 나무뿌리에 칭칭 묶인 남성은 바닥에 쓰러졌다.

퀸소히니베는 깡마른 남성을 그야말로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봤다.

“한낱 하찮은 인간이 감히 나에게 발정한 것이야.”

“거, 미안하게 됐수다. 역겨우면 당신도 내 몸에다가 성희롱하든가.”

“당장 옷을 벗기라는 것이야.”

“……진짜로?”

깡마른 남성이 당황해했지만 퀸소히니베는 한다면 하는 용이었다.

결국, 속옷차림으로 너덜너덜해진 남성에게 내가 쭈그려 앉아 물었다.

“너는 뭐냐?”

“……카할. 시체팔이요. 말 그대로 시체를 팔아서 한몫 챙기지.”

“여관 사람들을 독살한 것도 시체를 내다 팔기 위해서였나?”

“물론. 그 밖에 뭐가 있겠소?”

카할이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나는 놈의 뺨을 후려쳤다.

“어억!”

“넌 우리에게 잡히자 곧장 자살하려고 했어. 그러면 자백해선 안 될 정보를 숨기고 있단 말이 되는데.”

“……보기보단 추리력이 있으쇼?”

카할은 피 묻은 입술을 핥고는 피식 웃었다.

“당신들, 당장 떠나는 것이 좋소.”

“그게 무슨 소리지?”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나는 사실 여제의 소속이오. 모놀칸 도시 바닥이 그녀의 산하 아래 놓여 있거든.”

“여제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명칭이었다.

왕정이 사라진 황색대륙에서 황제를 지칭하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그때 헤르탄이 인상을 찌푸렸다.

“창천蒼天의 여제 위니아인가?”

“저 친구는 얘기가 좀 통하는군.”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카티에도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주 좋지 않네요. 설마 그녀가 벌써 황색대륙 동부까지 손을 뻗었을 줄이야. 예상치 못한 속도에요.”

“누가 멸살군주를 죽여줘서 영역을 넓히기 편했다지. 범철이라던가?”

카할이 뺀질거렸고, 범철이란 남자는 놈의 턱주가리를 발로 걷어찼다.

“커헉!”

“위니아가 누구인데 그럽니까?”

“그녀는 멸살군주와 같은 거물입니다. 무시 못 할 세력을 지녔지요.”

거물.

과거로 돌아와도 유지되는 능력을 가진 여섯 명의 회귀자라고 들었다.

가령 멸살군주는 회귀할 때마다 강한 부하를 10명씩 늘려, 120회차에서 천 명이 넘는 군단을 이끌었다.

그냥 회귀자도 만만치 않은 수준인데, 회귀하며 강해지기까지 한다니.

“위니아는 자신의 영역에서 소란을 일으킨 자는 가만두지 않습니다. 이 도시가 평화롭고 치안이 유지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군요.”

“그래서 우리가 이놈을 방해하면 그 거물의 표적이 된다는 겁니까?”

“예. 간략히 보자면 그렇습니다. 이 자는 거물의 소속원이니까요.”

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여관에서 서른 명을 독살한 것이 소란이 아니면 대체 뭡니까?”

“위니아에게 소속된 자는 그녀의 구역에서 권력을 얻습니다. 한낱 말단도 당당히 범죄를 행할 수 있죠.”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완전히 독재가 따로 없군.

“우리가 쓴 독도 그분이 주셨소. 대신 시체는 전부 넘겨줘야 했지.”

처맞고도 뻔뻔히 주둥이를 놀리는 카할을 보며 나는 짜증이 일었다.

“죽이고 범행 흔적을 숨기면 됩니다. 바로 도시를 떠나서 도망치죠.”

젠장, 이런 말을 바로 내뱉는 걸 보면 나도 변하기는 너무 변했어.

헤르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현재로써 그 방법이 불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갑자기 거친 말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 규모로 봐서는 고작 한 둘이 아니었다.

“이제야 도착했나 보군.”

“뭐가 말이지?”

카할이 기분 나쁘게 히죽거렸다.

“고작 두 명이서 이 많은 시체들을 다 옮길 거라고 생각했소?”

***

“조금이라도 더 다가오면 이 자식의 가슴에다 벌집구멍을 놔주겠어!”

“죽일 거면 죽여라. 여제님의 기밀을 함부로 발설한 놈은 쓸모없다.”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카할의 가슴에 칼을 여러 번 쑤셔 벌집구멍을 놔주었다.

“이, 이 자식! 커허헉!”

기세를 잡기 위해 시체를 발로 찼지만 놈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투구를 눌러쓰고 흰색의 갑옷을 착용한 스무 명의 사병들이 보였다.

그중에 한 명이 나서서 소리쳤다.

“겸허히 자비를 베풀겠다. 너희 네 사람, 비밀을 엄수하고 자결해라.”

“자살을 하라고? 지금 여기서?”

내가 황당해서 묻자 앞장선 갑옷사병이 우스울 만큼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처벌한 회귀자는 죽음보다 처참한 꼴을 맞는다. 심지어 정신적 피해가 다음 삶까지 이어지지.”

“그래서 자살하란 거냐? 여관에서 서른 명 독살한 놈을 방해했다고?”

“너희 전부는 여제님의 중대사업에 물의를 일으켰다. 그것은 중죄다.”

“시체팔이가 중대사업이냐? 매음굴 포주도 그거보단 깨끗하겠네.”

내가 끝없이 빈정대자 사병의 목소리에 불쾌한 기색이 끼었다.

“자비를 거절했으니, 처벌하겠다.”

사병들이 칼을 빼 들었고, 우리 일행도 그에 맞서 전투태세를 갖췄다.

“전부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야.”

어느덧 중립과는 완전히 벽을 쌓은 퀸소히니베가 마구 으르렁거렸다.

반면에 나는 칼을 집어넣었다.

‘칼로 싸워서는 안 돼.’

레이피어는 찌르기용 세검이다.

그래서 철제 방어구와 상성이 좋지 않다.

갑옷 이음새라도 노리면 모르겠지만, 놈들은 전부 방패를 들고 있다.

‘그렇다면 마법으로 맞선다.’

내가 화염구를 생성해 날리자 예상치 못한 이변이 벌어졌다.

방패로 막지조차 않은 사병의 갑옷을 맞고 마법이 가볍게 튕겨 나갔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마법저항의 갑옷?’

성스러운 강철로 제작된 방어구.

최소한 내가 쓰는 1서클 마법들은 전부 튕겨내서 피해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칼로 찔렀다간 방패에 막혀 버려서 칼날이 부러질 것이다.

칼과 마법이 통하지 않는 강한 적.

‘그저 그런 잡졸들이 아니로군.’

화염구를 튕겨낸 사병이 가볍게 목을 뚜둑거렸다.

“자비를 거부하기에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더니만, 고작 이 수준인가?”

나는 말없이 책을 꺼내었다.

과거 마법의 시련을 깨고서 획득했던 흉내쟁이 마법서.

두꺼운 책에 푸른빛이 휘감겨졌다.

사병이 가소롭다는 투로 비웃었다.

“저런, 백치였군. 잡급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은 네 눈으로 봤을 텐데.”

그것이 놈의 유언이었다.

퍼걱!

내가 마법서로 후려치자 투구가 단숨에 박살 나며 찌그러졌다.

목이 돌아가며 시체가 쓰러진다.

“대, 대장님!”

“뭐, 뭐야? 어느 틈에?”

“마법서로 투구를……. 부쉈어?”

흰 갑옷의 사병들이 1초 만에 벌어진 광경에 스스로 눈을 의심했다.

“책이 어떻게 갑옷을 부순 거야!”

“뭐, 뭐야? 책으로 사람 후려쳐 죽이는 건 회귀하면서 처음 봤다고!”

“네, 네놈. 대체 뭐냐?”

실로 간단한 질문이다.

“그건…….”

나는 책에 묻은 피를 툭툭 털었다.

“죽고 나서 알아서들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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