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40화 (40/200)

나만 1회차 040화

[밴시 대모 샤라펠을 소멸시켰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씩 오릅니다.]

[밴시들의 분노를 사게 됩니다!]

나는 뼛가루가 된 유골을 보았다.

‘잠금 해제 재능이 없었다면 반평생을 노예로 살았겠군.’

상상만 해보아도 등골이 차갑다.

다행히도 저주가 풀리며 검어졌던 양팔의 색깔은 돌아왔다.

그러나 한시름 덜었다고 안심하는 것도 잠시, 밴시들의 비명이 넘쳤다.

「대모님이 소멸됐어어어어……!」

「크우흐으으으으으……!」

「저 인간, 죽여 버릴 거야……!」

「절멸의 예지곡을 불러라……!」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수천의 밴시.

격노한 유령의 떼가 끔찍한 선율로 노래하며 납골당을 뒤흔든다.

「검은 장막이 힘을 원하여……!」

「꼬마는 갈 길 잃었구나……!」

「모든 것은 손아귀 아래에……!」

기괴한 가사가 신경을 자극한다.

아무리 1회차인 나라도 밴시들의 합창은 정신을 마구 갉아먹었다.

“끄흐윽……!”

세상의 온갖 우울한 사념이 떠오르고, 눈알이 후들후들 떨린다.

무릎을 꿇고 우울감에 휩싸인다.

머릿속이 곤죽이 되고 가슴에 염세가 마구 뒤엉켜 혼잡하게 타오른다.

「세상에 뒤엉켜라, 꼬마야……!」

「네가 가는 길은 연극뿐……!」

「진실이란 추할 뿐이나니……!」

닥쳐, 제발 좀 닥쳐라.

귀를 막아도 굉음이 파고든다.

고막이 찢어버리고픈 욕구가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안 돼.’

눈물이 줄줄 흘러 시야가 흐렸다.

나는 토악질을 하다가 관을 잡고서 일어나 입술을 피 나게 깨물었다.

‘그래도…… 챙길 것은 챙겨야 해.’

나는 샤라펠의 관에서 유골과 함께 놓여 있던 유품을 떨면서 챙겼다.

작은 항아리였는데,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밴시 떼가 내 귓가에 몰려와 그 미친 노래를 속삭이기 시작하였다.

“꺼져……! 개자식들아!”

나는 욕설을 뱉으며 밴시들을 제치고 관 위의 황금 장미를 뜯었다.

[미궁주의 장미를 꺾었습니다.]

[미궁 밖으로 소환됩니다.]

***

카티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정확히 나의 배 위에 올라 타고 있었다. 이 녀석이 왜 이래?

어?

그런데 카티에의 외견이 이상하다.

평소보다 훨씬 짧은 단발에, 희었던 머리칼이 거뭇거뭇해져 있었다.

“…….”

소녀가 나에게 무어라 말한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입 모양을 따라갈 수도 없다.

지금 뭐라고 말한 거지?

일단은 몸부터 일으켜야 했다.

난 무사히 미궁에서 탈출한 걸까?

그런데.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말하거나, 표정도 지을 수가 없다.

어째서?

소녀의 모습이 희끄무레하다.

조금 더 미간을 찌푸려본다.

그러자 형체가 약간 명확해진다.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 싸해졌다.

카티에의 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

또한, 손아귀에 단검이 들려졌다.

왜?

움직이려 할 때마다 몸이 아팠다.

나는 피의 정체를 확신하였다.

저것은 나의 피였다.

“……?”

무어라 속삭였지만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의 피로 몸을 적신 카티에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을.

두려웠다.

몸이 마구 떨린다.

저항하려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칼이 내려온다.

***

“아!”

나는 숨을 삼키며 눈을 확 떴다.

여기가…… 여기가, 어디지?

“대장! 괜찮은 거예요?”

누군가 내 이마를 매만진다.

카티에가 걱정스러워하며 날 본다.

난 곧바로 소녀를 세게 밀쳤다.

“아얏!”

카티에가 깜짝 놀라며 뒤로 넘어졌고, 나는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칼자루에 땀에 젖은 손을 얹는다.

“대장……?”

나를 올려다보는 카티에의 표정이 놀라움에서 두려움으로 변하려 할 때.

헤르탄이 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범철. 진정해요. 왜 그러십니까?”

강한 악력이 내 행동을 봉쇄했다.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이곳은 미궁의 바깥이었다.

“아, 아니야. 괜찮아요.”

나는 황급히 칼자루에서 손을 내리며 카티에를 일으켜줬다.

“미안해. 그…… 몬스터랑 착각했다. 방금까지 죽도록 싸웠거든.”

“깜짝 놀랐잖아요! 왜 이렇게 혼자서만 늦게 나온 거예요?”

카티에가 화를 내면서 나를 올려다보다가, 내 가슴에 와락 안겼다.

“……죽었다고 생각할 뻔했어요.”

소녀의 눈물 자국이 옷에 남는다.

그러나 그 말을 받을 여유가 없다.

나는 소녀의 몸을 다급히 살폈다.

“너, 몸에 피 묻어 있지 않았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카티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난 미간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개꿈이었나?

제길, 괜스레 기분만 잡쳤군.

어찌 됐건 내가 미궁으로부터 생환하자 오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버철! 레카팔시타!”

“레카팔시타아아! 범처르!”

그들이 내 이름까지 어색한 억양으로 부르며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카팔시타가 무슨 뜻입니까?”

“오크들의 최고의 극찬이다. 싸우거나 성교하다가 죽으란 의미다.”

거, 빌어먹게 죽이는 덕담일세.

미궁 문을 열고 지휘한 덕분일까?

난 오크들의 호감을 제대로 샀다.

안도니크가 내게 앞다투어 말을 거는 오크들의 말을 전해주었다.

“카파콜은 너를 자기 집에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나파보는 여전히 싫은 체를 하지만 널 남편감으로 점친 것 같다. 바얀은 발가락이 아파 징징대고 있다.”

나는 황당해서 물었다.

“저 바얀이라는 오크는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겁니까?”

“바얀은 내 셋째 남편이다.”

“…….”

“몰랐으니 괜찮다. 나도 그게 궁금하긴 하다.”

오크족장이 인자하게 웃었다.

안도니크가 그의 말을 통역했다.

“족장님께서는 미궁을 열어준 보답을 하고 싶다고 했다. 뭐든지 말해 봐라. 우리 족장님이 이뤄주신다.”

샤라펠 미궁이 개방된 것은 흰 사슴뿔 부족에게 막대한 이득이다.

비록 우리는 미궁 도전 횟수를 전부 썼지만 나머지 오크들은 다르다.

어린 오크들이 성장하면 차후 미궁의 밑바닥까지 탐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서 말했다.

“협력을 구하고 싶습니다.”

“협력이라니?”

“120회차에서 회귀를 멈추려면, 아크 리치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 원정에 오크도 참전을 부탁드립니다.”

“아크 리치! 그런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대륙에 실존하고 있었나.”

안도니크는 깜짝 놀라며 나의 말을 그대로 옮겨주었다.

오크족장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족장님께서는 고민하고 계신다.”

오크족장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오크 전사들과 상의했다.

그리 길지 않은 회의를 끝내고 오크 족장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미쳐가는 세상을 가만히 둘 순 없다. 족장님은 협력하겠다고 하셨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하며 그 손을 맞잡았다.

아크 리치를 죽이는 원정대는 참여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

더군다나 오크는 인간보다 화력이 거센 전사가 많아 도움 될 것이다.

나는 자살기도회에서 가져온 여분의 놋쇠반지를 족장에게 끼워줬다.

“반지가 뜨거워지면, 그것이 집합 신호입니다. 제가 방금 말해드린 협곡의 위치로 출정하면 될 겁니다.”

“족장님은 상황이 되면 다른 부족들도 이끌고 가겠다고 약속하셨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오크들은 우리에게 식량과 여행품을 선물했다.

처치 곤란한 시큼한 라임만 제외하면 나는 모처럼 정말 고마웠다.

회귀자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온정과 배려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안도니크. 통역 정말 고마웠어요.”

“나보다 네가 힘들다. 동족들이 나만 빼고 회귀자라니. 상상도 싫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몸 성하게 잘 가라. 레카팔시타!”

오크 부족의 땅을 떠나면서 카티에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밴시를 다루는 오크가 협력해주다니. 회귀자는 상상 못 할 일이에요.”

“저 역시 놀랐습니다. 120회차는 낯설고 놀라운 사건이 가득하군요.”

한편 퀸소히니베는 새파란 보석을 석양빛에 비추며 미소 지었다.

“어머니의 눈만큼 찬란한 것이야.”

우리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달의 폐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자꾸만 마음이 켕긴다.

내가 밴시에게 홀려 보았던 허상.

나의 배에 올라타서.

나를 죽이려고 하던 카티에.

그게 왜 자꾸 신경 쓰이는 거지?

***

내가 은화를 내려놓자 주인장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바라보았다.

“뭐요? 금화 한 닢은 내놓아야지.”

“하루 숙박에 금화를 내라고?”

“내기 싫으면 모가지를 찌르든가.”

주인장이 얄밉게 목의 핏줄을 두드렸고, 나는 진지하게 고려해 보았다.

“숙박료는 이걸로 낼게요.”

다행히도(?) 카티에가 눈치 빠르게 까치발을 들고 인형을 내밀었다.

미궁에서 얻은 전리품 중 하나였는 데 그다지 쓸모없는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주인장이 반색하는 것 아닌가.

“호오. 네 개의 못을 박으면 악몽을 꾸게 되는 옵션이라. 복수귀들한테 수요 있겠군. 사흘 지낼 거요?”

“오래 숙박할 예정이 아니에요. 식사는 가장 비싼 메뉴로 부탁해요.”

“우리 여관이 120회차 간 음식 맛은 변함이 없지. 금방 준비하리다.”

여관 주인장이 주방에 들어갔고, 나는 황당해서 소녀를 쳐다보았다.

“저 인형이 금화 세 닢 값이냐?”

“회귀자들의 세상에서는 화폐의 가치가 무척 낮거든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물물교환이 거래에 편리해요.”

화폐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다니.

세상이 미치긴 미쳤구나.

카티에는 부연설명을 하였다.

“그나마 화폐가 쓰일 수 있는 것도 회귀자들이 은화나 금화를 녹여 몬스터 사냥에 이용하기 때문이에요.”

“주화를 사냥에다 쓴다고?”

“네. 은화는 잔뜩 녹이면 순도 낮은 은을 장비에 코팅할 수가 있어요. 언데드와 싸울 때 유용하죠.”

“그럼 금화는?”

“보물에 욕심이 많은 몬스터를 유인하거나, 신전에 봉헌하는 용도죠.”

나는 괜스레 입술을 핥았다.

오크 부족의 땅을 떠난 지 7일째.

우리 일행은 처음으로 대도시의 여관에서 숙박하게 되었다.

동부의 교역도시, 모놀칸.

내가 살던 소도시보다는 훨씬 경관이 멋있었고, 거리도 몹시 깔끔했다.

나는 시내를 살피다 갸웃거렸다.

“여긴 시체가 하나도 안 보이네?”

“사람들이 수거해 마탑에 가져간 겁니다. 인간의 뼈와 살과 가죽은 금단실험에 귀중한 재료이니까요.”

나는 혀를 찼다.

시체를 주워 바치면서 보수를 얻는 회귀자들도 꽤나 많은 모양이었다.

‘120회차 세상에서는 시체도 길가에 널린 폐지 수준에 불과한 건가.’

나는 대도시의 회귀자들을 보았다.

분위기는 삭막하더라도 크나큰 사건이나 자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대체적으로 대부분이 소시민이다.

회귀를 할지라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

회귀자라고 전부 모험을 떠나고 몬스터만 사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원하는 장소에 정착해 한적한 삶을 살려는 자들이 더 많았다.

“이제야 살겠네.”

간만에 목욕을 제대로 하고 침대에서 쉬고 나니 몸이 아주 개운했다.

“이제 얼마나 더 가야 하냐?”

“폐성까지는 나흘도 안 남았어요.”

우리는 달의 폐성에 가서 ‘미확인 된 존재’의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

다행히 파티 날짜까지 넉넉하겠군.

우리는 탁자에 둘러앉아 주방에서 나오는 호화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달짝지근하게 끓여낸 감자수프, 레몬즙을 뿌린 훈제송어, 통으로 구운 거위고기, 작고 부드러운 머핀까지.

회귀자라서 제멋대로 장사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헛된 망상이었다.

‘평범한 여관 주인장마저 자기 분야에 고수가 되어버린 세상이라니.’

혼자서 여관을 경영하고도 피곤한 기색조차 없어 보이니 말 다했다.

카티에는 촉촉한 머리칼을 뒤로 묶고 편하게 앉아 누에콩을 까먹었다.

“누에콩은 역시 황색대륙 여관에서 먹어야 제맛이에요.”

“여기 식사는 먹어줄 만한 것이야.”

퀸소히니베는 인간의 식기를 낯설어해 음식을 맨손으로 집어 먹었다.

헤르탄은 그러한 그녀에게 주의 깊게 올바른 식사예절을 가르쳤다.

“포크, 스푼을 번갈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손이 훨씬 편한 것이야.”

“그럼 식기를 노예라 여기십시오.”

“흐음. 이해가 빨리 되는 것이야.”

나는 일행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괜찮네. 이런 것도.’

여관에 취객들이 차서 떠들썩하다.

술에 취해 녹으면 이곳이 120회차 세상이란 것도 잊게 되지 않을까.

내가 맥주잔을 비우려 할 때였다.

“범철, 잠시만.”

헤르탄이 명확하게 판단을 내렸다.

“그 술잔에는 독이 묻었군요. 마시지 말고, 내려놓으십시오. 당장.”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가 눈매를 좁혀 사방을 살필 때.

퀸소히니베가 내가 내려놓은 술잔을 낚아채 맥주를 듬뿍 삼켰다.

“야,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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