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1회차-38화 (38/200)

나만 1회차 038화

샤라펠 미궁 B3층은 음험했다.

사자의 부름이 쓰인 영역은 평소보다 어둡고 기온이 내려가게 된다.

카티에가 눈썹을 찡그렸다.

“언데드가 출현하는 장소는 변함없이 기분이 나쁘네요.”

“나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야.”

강대한 종족이어서인지 퀸소히니베는 별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B3층]

[탐사대의 숫자 1,097명에 걸맞은 무작위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B3층에서 출현한 것은 스켈레톤!

그러나 평범한 맨 뼈는 아니었고 세찬 방패와 칼을 착용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 들며 전투에 임하려는 순간.

난 칼집으로 바닥에 못을 박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건가?”

안도니크가 황당해하며 바라볼 때 못을 박은 바닥이 빛을 발산했다.

[성스러운 못을 박았습니다!]

[반경 500미터 영역 내의 언데드가 크나크게 약화됩니다.]

나는 전장을 뛰어다니면서 벽면에다가 골고루 못을 박았다.

그러자 B3층 전체가 눈부신 신성력을 발산하였다.

“딱딱딱!”

약화된 스켈레톤은 뼈가 부식된 것처럼 고작 일 합에 썰려져 나갔다.

우리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고 손쉽게 B3층을 격파해 버렸다.

“많은 오크들이 네게 감탄하고 있다. 네가 우리 족장님보다 낫다.”

안도니크가 뼛가루를 털어내곤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편 헤르탄은 내가 박았던 못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것은 레펠서스 교단의 물품이군요. 어디서 가져오신 것입니까?”

“일레아흐 허락하에 받아왔죠.”

나의 배낭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자살기도회 창고에서 챙겨온 각종 교단의 물품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언데드를 위한 대항병기!

“계속 이런 식으로 가겠습니다.”

B4층 역시 오크 사령술사들이 먼저 내려가 사자의 부름을 사용했다.

무장한 좀비들이 대거 출현했으나 못을 박고 약화되자 심하게 쉬웠다.

순식간에 B4층 클리어!

[B5층 휴식처를 발견했습니다.]

[투지력이 회복되었습니다.]

[탐사를 관두고 나가겠습니까?]

B5층의 휴식처.

휴식처에서 미궁입구로 돌아가면 전리품을 그대로 가져갈 수가 있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자들은 그냥 가게 놔둬요.”

“아군 숫자가 줄어도 괜찮겠는가?”

“예. 어차피 미궁의 몬스터는 탐사자 숫자에 맞춰져서 출현하니까요.”

첫 탐사에서 쓴맛을 봤던 오크들 중 기백이 대거 이탈했다.

투지력을 전부 소진하면 전리품을 잃게 되니 적당히 만족한 것이다.

충분히 휴식하며 하룻밤을 보낸 뒤, 우리는 B6층에 도전하였다.

“인간! 먹는다! 살점! 맛있다!”

B6층부터는 단순히 성스러운 못만 박는 것으론 언데드들을 처리할 수 없었다.

나름 지능을 가진 푸른색 구울들!

잇몸이 녹아버릴지라도 이빨로 못을 뽑아 신성력을 무력화시킨다.

“캬아악! 컥!”

나는 구울들의 머리를 칼로 팍팍 꿰뚫었다.

영광스러운 영애의 레이피어!

언데드나 유령을 찌를 때마다 50%나 피해를 더 입힐 수가 있다.

거기다 공격 시 적은 확률로 빛의 축복을 얻으면 추가피해를 넣는다.

‘칼 찌르기가 효율적이긴 하군.’

벨 때만큼 크게 상처를 입히진 못하지만 급소만 잘 노리면 끝이다.

한편 카티에는 바삐 빛을 뿜었다.

성녀의 축복은 우리를 회복해 주지만 언데드에겐 맹독이나 다름없다.

“캬아아아악!”

그녀의 손가락만 닿더라도 언데드는 터져 버리거나 녹아내려 버렸다.

B7층의 출현 몬스터는 암흑 임프!

오크들 사이에서도 특히 헤르탄과 퀸소히니베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헤르탄은 막강한 맷집을 바탕으로 돌진을 하며 적들을 뭉개 버렸다.

그에 반해 퀸소히니베는 최소한의 몸놀림으로 적의 심장을 터뜨렸다.

“너희들 심장은 쓸모없는 것이야.”

“크아아옥!”

그렇게 마침내 B8층.

첫 도전에서 전멸했던 장소였다.

[B8층]

[탐사대의 숫자 347명에 걸맞은 무작위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마침내 B8층에 발을 디디자 핏빛 몽둥이의 흡혈 트롤들이 출현했다.

일반 트롤과 달리 눈빛이 붉고 창백하며 어금니가 몹시 길쭉하다.

“크와아악! 죽여서 빨아먹는다!”

오크와 트롤이 맞부딪쳤다.

함성을 내지르며 무기를 휘두르는 오크는 거셌지만 차이가 여실했다.

트롤들은 몽둥이로 오크들 머리를 부수고 그 시체의 피를 빨아먹었다.

‘정말 쉽지 않군.’

일반 트롤조차도 생명력이 질기다.

살결은 죽지 않을 만큼 베여도 금방 재생하며 거칠게 일어선다.

그런데 거기다 흡혈로 기력까지 보충하니 그야말로 불사에 가깝다.

‘아끼지 않고 퍼부어야만 이긴다.’

나는 성수를 부어대고 축복의 향수를 흩뿌려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세찬 신성력에 괴로워하면서도 트롤들은 생명력을 끝없이 재생했다.

다음으로 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마법배낭에서 꺼냈다.

‘카르탈 교단의 은십자가.’

항시 신성력을 발산해 교단에 몸담은 자가 쓰면 광역 축복을 내린다.

그러나 나는 믿는 종교가 없다.

그래서 그냥 십자가로 때려 했다.

“끄아악! 괴롭다!”

내가 십자가로 후려칠 때마다 트롤들의 재생력이 완전히 멎어버렸다.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 오랜 싸움 끝에 마침내 모든 트롤이 쓰러졌다.

[B8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힘이 4 상승했습니다.]

[탐사자 전원에게 각자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나에게 주어진 보상은 신발이었다.

발 사이즈가 나한테 딱 맞는 데다가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가벼웠다.

『산들바람이 실린 요정장화』

바람의 요정이 제작한 장화. 산들 바람처럼 가볍게 뛰어다닐 수 있다.

+질주할 때 속도가 30% 증가.

+백만 걸음을 걸으면 강화된다.

+산들바람이 실린: 민첩 10 증가.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괜찮은 보상이 나왔군.’

내가 얻은 신발은 다른 이들의 보상보다 무척 월등한 편에 속했다.

힘과 체력은 뒷받침이 되지만 민첩은 지금 내게 가장 낮은 능력치다.

그러한 민첩을 10이나 올려줄 뿐만 아니라 이동 보정도 추가된다.

질주 시에 속력이 30%나 증가!

거기다 백만 걸음을 걸으면 아이템이 강화되는 효과까지 있다니.

백만은 많아 보이는 단어지만 그저 걷다 보면 자연히 채워질 숫자다.

지금도 상당히 괜찮은데 강화되면 어떠한 성능일지 예측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모든 투지력을 잃으면 전리품은 깨끗이 소멸된다.

휴식처를 통해 미궁입구로 무사히 되돌아갈 때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나는 B1층, B3층 보상으로 얻었던 당밀막대와 흑사탕을 씹어 먹었다.

[투지력이 100 회복되었습니다.]

[투지력이 300 회복되었습니다.]

미궁에서 보상으로 나온 음식은 일정한 투지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퀸소히니베가 스스로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 몸은 금방 지치는 것이야.”

“초콜릿입니다. 제 보상으로 얻은 음식이라 투지력이 오를 겁니다.”

그녀는 반색하며 초콜릿을 씹었다.

“헤르탄은 무척 탐이 나니 서둘러 내 노예나 되라는 것이야.”

헤르탄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회상에 잠겼다.

“저는 실제로 용의 노예로 살았던 삶이 있었습니다.”

“호오, 그 삶은 어땠던 것이야?”

“좋았습니다. 달마다 알을 훔쳐서 쪄먹었더니 몸보신에 최고더군요.”

“……네놈은 아주 돌은 것이야.”

한편 나는 쉬는 동안 카티에와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넌 어느 교단이냐?”

“성녀는 교단에서 독립된 존재예요. 그래서 소속된 교단은 없어요.”

“그럼 어느 신을 믿는데?”

“이젠 딱히 없어요. 신이 존재하면 세상이 파탄 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저게 성녀가 할 소리냐.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은 1,200이 넘어갔지만, 지금은 기십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각자 보상으로 나온 음식을 배분했다.

그러자 다들 많지는 않더라도 어느 수준의 투지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하지만 전투의 한계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온다.

전투 난이도를 봐서는 5층 간격으로 휴식처가 배치됐을 확률이 높다.

즉, B9층만 돌파하면 전리품을 갖고 유유히 귀환할 수 있는 것이다.

유일하게 마지막으로 생존한 사령술사가 먼저 내려가고, 내가 말했다.

“확실히 이겨, 보상을 쟁취합시다.”

안도니크가 내 말을 전달해 줬다.

“카반 모톨, 샤비르카트!”

“와아아아!”

우리는 함성을 쏟아내며 B9층으로 향하였다.

[B9층]

[탐사대의 숫자 37명에 걸맞은 무작위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그러나 도착한 B9층에서는 아무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어?”

한 오크가 의아해하던 순간 천정에서 내려온 전격이 그를 태워냈다.

“끄아아악!”

“천정입니다! 적이 위에 있어요!”

어두운 천정 위로 조그만 붉은 눈동자들이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선혈을 내놓아라. 잡종들아.”

“이 미궁은 너무나 좁고 찝찝해.”

퓨어 뱀파이어(Pure Vampire).

강력한 힘과 물리내구력, 마나와 마법저항을 가진 상급 몬스터.

긴 칼을 착용한 뱀파이어들이 신속히 날며 오크들의 목을 따버렸다.

뱀파이어가 가장 무서운 점을 수준급 마법을 단체로 사용한단 것이다.

[서른의 퓨어 뱀파이어가 ‘지옥염화’ 영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최악의 몬스터.

그러나 최후까지 생존한 오크들은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나는 배낭에 남은 모든 교단 물품을 쓸어 담아 마지막 싸움에 임하였다.

“이, 이건 성수? 윽, 괴롭다.”

“크윽. 신성력 때문에 대형마법을 준비할 수가 없구나.”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군. 저 십자가 든 놈부터 죽여라!”

나는 레이피어로 찌르고, 은십자가로 내려치며 뱀파이어와 맞섰다.

그러나 태생부터 강인한 뱀파이어들은 신성력조차 깡으로 버텨냈다.

적 전원이 빈사 상태로 비틀거렸으나 우리 측은 대개 쓰러져 버렸다.

‘제길. 여기까지인가.’

유령기사단을 소환하는 수도 있었으나, 신성력이 넘쳐서 역효과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투지력이 매섭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칼에 베였습니다.]

[98의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흡혈주문에 당했습니다!]

[85의 투지력이 소멸되었고, 빈혈 상태에 돌입합니다.]

눈앞이 희미해지며.

투지력이 밑바닥을 보이던 순간.

“쓰기 싫지만, 어쩔 수 없네요.”

카티에의 손이 불현듯 하얘졌다.

[최상위 기적을 발휘했습니다!]

[흰 손아귀가 적을 끌어갑니다.]

바닥에서 끔찍한 빛이 솟구친다.

빛으로부터 튀어나온 수백의 흰 손아귀가 날뛰는 적을 마구 붙잡았다.

“크아아악! 이거 놔!”

“나, 날 놓아줘! 거긴 가기 싫어!”

필사적으로 저항하더라도 무의미!

징그러운 흰 손아귀가 뱀파이어 수십을 모조리 빛으로 끌고 가버렸다.

그리고 모든 적을 삼키자 빛은 깔끔히 사라지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나는 괜스레 마른 침을 삼켰다.

“너, 저런 것도 할 줄 알았냐?”

“기적의 일종이에요.”

“기적? 저거 색깔만 하얗지, 흑마법보다 훨씬 불길해 보이던데.”

“흰 손아귀는 나보다 약하거나 허약해진 생물만 끌고 갈 수 있어요.”

“어디로 끌려간 거냐, 저놈들?”

“나도 모르고 대장도 모르는 곳. 저승과 연관된 장소가 아닐까요?”

성녀는 기적을 쓰다가 모든 머리칼이 검게 변색되면 죽어버리고 만다.

나는 소녀의 검어진 머리칼 수백 가닥을 눈으로 훑었다.

“자주 쓰진 마라.”

“내가 죽으면 울어줄 거예요?”

“뭐, 웃진 않겠지.”

나는 남아 있는 투지력을 확인했다.

[현재 투지력: 3/1,000]

‘진짜 아슬아슬했군.’

남은 생존자는 고작 다섯 명!

그 많던 오크들 중에서 생존한 자는 안도니크 단 한 명뿐이었다.

나, 카티에, 헤르탄, 퀸소히니베 역시 미궁 마지막까지 생존하였다.

퀸소히니베가 거만하게 말했다.

“한낱 뱀파이어에게 쓰러졌다간 용의 체면이 살지 않는 것이야.”

“처음 미궁에 들어왔을 때는 너도 용암도마뱀한테 당했었잖아?”

“흥. 그건 투지력이 깎여서이지 결코 내가 패배한 것이 아니야.”

그게 그거 아니냐.

하여간 우리는 보상을 획득했다.

[B9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민첩이 4 상승했습니다.]

[탐사자 전원에게 각자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카티에는 브로치를 얻었고, 헤르탄은 덩치에 걸맞은 방패를 획득했다.

“회복력을 강화시켜 주고 새 축복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장신구네요.”

“제 것은 나무뿌리 제어주술을 강화시켜 주는 옵션이 붙어 있습니다.”

퀸소히니베가 입을 벌려 감탄했다.

“너무 예쁜 보석인 것이야.”

그녀가 손에 쥔 것은 둥글고 푸른 보석이었는데 값어치가 비싸 보였다.

그리고 내가 획득한 보상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