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1회차 037화
젊은 오크들이 나를 경외심이 담긴 눈길로 보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오크들이 너야말로 진정한 회귀자라면서 엄청 좋아하고 있다.”
“……아, 글쎄 난 1회차라니까.”
오크들이 난공불락처럼 여기던 자물쇠는 내 손에 허무하게 풀렸다.
카티에가 경악한 눈으로 물어왔다.
“대장. 도대체 그 자물쇠를 어떻게 연 거예요? 봉인돼서 평범한 실력으로는 절대 열 수가 없다구요.”
“그야…….”
내가 아무도 부수지 못한 자물쇠를 풀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쉽던데?”
[봉인된 자물쇠를 칼로 따버렸습니다.]
[당신의 잠금 해제 재능은 SSS급입니다.]
[‘1,000년 동안 근무한 열쇠공’을 뛰어넘을 재목!]
“잠금 해제 재능이라니.”
헤르탄조차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봉인된 자물쇠를 손으로 따는 것은 대도大盜나 가능한 일입니다.”
카티에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전투와 관계없지만 유용하겠네요. 하여간 미궁에 갈 거예요, 대장?”
“폐성의 파티까지는 여유가 있어.”
오크 부족의 미궁은 120회차 회귀자들조차 발을 들이지 못한 곳이다.
이른바 미개척 영역!
회귀자들이 손에 넣지 못한 보물이나 전리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전생에 와보지 못했던 곳이라 저희에겐 따로 예비지식이 없습니다.”
나는 헤르탄을 향해서 씩 웃었다.
“상관없습니다. 처음으로 가보죠.”
그는 날 보며 가볍게 마주 웃었다.
“지나온 삶에 겪어보지 못했던 곳이니 도전하며 알아가야겠습니다.”
신이 난 오크들은 주거지로 가 미궁탐사에 필요한 물품을 챙겨왔다.
미궁탐사에 자원한 오크전사들의 숫자만 무려 1,400명!
그중에서 너무 어리거나 병약한 자는 빠졌지만 그래도 1,200명이었다.
“인원이 엄청 빨리 모였는데요?”
“미궁탐사는 우리 흰 사슴뿔 부족이 애달프게 고대하던 숙원이었다.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안 남는다.”
오크들은 정말 태생이 전사로군.
미궁 앞, 대규모 인원이 북적였다.
“라빌타! 오모로코! 칼카리마나!”
오크족장이 크게 명령하였다.
열기가 달아오른 오크들은 앞다투며 거대한 미궁으로 쳐들어갔다.
[샤라펠 미궁에 입장했습니다!]
[1,000의 투지력이 주어집니다.]
[모든 투지력을 잃으면 미궁 입구로 강제 소환됩니다.]
[미궁 탐사 기회는 2회입니다.]
‘투지력?’
이게 정확히 어떤 수치인 거지?
하지만 흥분한 오크들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서 무작정 돌격했다.
[B1층]
[탐사대의 숫자 1,247명에 걸맞은 무작위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캬라락!”
미궁 B1층에서는 조그만 고블린들이 수백 마리씩 튀어나와 날뛰었다.
그러나 오크들은 몽둥이를 휘젓고 발로 밟으며 고블린들을 터뜨렸다.
오크세력의 우월한 화력!
‘인간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군.’
으크는 일반적으로 인간보다 체력이 많고, 힘도 월등히 강력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감정이 격하고 전략보단 임기응변으로 움직인다.
개인이라면 몰라도 집단전투에선 상당히 해가 될 수 있는 단점.
거기다 오크는 사령술을 제외한 마법은 종족특성 상 배우기도 힘들다.
[고블린의 단검에 스쳤습니다.]
[3의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투지력은 미궁 안에서의 생명력!
‘적의 공격을 받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일정한 투지력이 손실된다.’
나는 뒤쪽에서 오크들 전투를 관찰하며 미궁에 관해 조금씩 학습했다.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는 미궁.
혼자서만 앞서 나가다간 금세 투지력만 소진할 확률이 높았다.
[B1층을 클리어했습니다.]
[힘이 1 상승했습니다.]
[탐사자 전원에게 각자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크와아아아!”
오크들이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안도니크가 나의 옆에서 생생히 그들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카파콜은 전격마법이 걸린 나뭇가지를 자랑했다. 그에 반면 나파보는 재수 없게 조각난 검이 나왔다고 성을 냈다. 그리고 바얀은 청결한 기저귀 가방을 얻고 좋아하고 있다.”
“계속 상황을 통역해 주십시오.”
B1층의 무작위 보상!
나는 닳고 닳은 주사위를 얻었다.
『엄청나게 오래된 주사위』
멸망한 도시에서 발견된 주사위. 한 번 던지고 나면 가루가 된다.
+던져서 6이 나오면 체력이 오름.
주사위를 던지자 3이 나왔고, 내 전리품은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
“내 노예는 운이 없는 것이야.”
퀸소히니베가 마시멜로우를 우물거리며 놀리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먹을 거나 나온 네가 할 소리냐?”
“흥. 이건 달콤하기라도 한 것이야.”
딱히 반박할 말이 없군, 젠장.
미궁 탐사를 하고 있는 도중에는 밖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막혔다.
“입구가 닫히는 경우는 흔해요. 어딘가에 나가는 길이 있을 거예요.”
“우선 계속 내려가 봅시다.”
한 층씩 내려갈 때마다 더욱 강력한 몬스터와 훌륭한 보상이 나왔다.
내가 레이피어를 송곳처럼 내찌르자 날뛰는 하이에나 머리가 뚫렸다.
‘얇고 가벼워 찌르는 데 특화된 검.’
레이피어는 이전의 아밍 소드나 양손검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 있었다.
내찌를 때마다 관통시키는 손맛!
나는 빠르게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어느새 B4층까지 돌파!
천하의 오크들조차 4분의 1은 투지력을 소진하거나 죽음을 맞았다.
투지력이 남아 있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바깥처럼 똑같이 사망!
B5층으로 내려서자 몬스터는 없고, 거대한 청록의 나무가 보였다.
[B5층 휴식처를 발견했습니다.]
[투지력이 회복되었습니다.]
[탐사를 관두고 나가겠습니까?]
나무의 잎사귀에서 흘러나오는 상쾌한 공기가 몸의 부상을 치료했다.
그러나 B5층에서 미궁 밖으로 돌아가려는 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라펠쿠는 몸이 멀쩡해졌으니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했다. 리탈도 그 말에 동의했다. 바얀은 몰래 육포를 혼자 먹다가 걸려서 처맞고 있다.”
오히려 열의를 불태우는 오크들.
사실 나도 조금 욕심이 나긴 한다.
B5층까지 내려오며 내가 얻은 전리품은 평균에 비해 훨씬 소박했다.
오래된 사탕, 고문서, 그리고 목상.
‘전부 그저 그런 데다가 쓸모가 적은 물품뿐이야. 조금만 더 가보자.’
휴식처가 이곳만 있진 않을 거다.
우리는 휴식처에서 하룻밤을 노숙한 뒤, 다음 층을 향해서 내려갔다.
B6층에선 식인 검치호 무리, B7층에선 흡혈 무쇠박쥐 떼가 출현했다.
[식인 검치호가 할퀴었습니다!]
[43의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무쇠박쥐가 피를 빨아냅니다.]
[초당 11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모두 내 주위로 모이게 해요.”
카티에의 회복력 덕분에 죽진 않았지만, 투지력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회복마법으로 상처는 나았지만, 투지력만은 복구되지 않았던 것이다.
[B7층을 클리어했습니다.]
[민첩이 3 상승했습니다.]
[탐사자 전원에게 각자 무작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슬슬 버거워지는데.’
나조차 땀을 훔치고 피를 쏟았다.
마침내 B8층에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우리의 살갗을 따갑게 했다.
타오르는 수십 마리의 용암도마뱀!
천정에 머리가 닿을 만큼 몸집이 거대하고 화산재를 마구 토해낸다.
쉬이익! 콰아앙!
[숨결이 원거리 피해를 줍니다.]
[97의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열기 속에서 투지가 깎입니다.]
[초당 32 투지력이 감소합니다.]
내가 7인의 유령기사단을 소환하여 맞섰지만 적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B8층에서 우리는 전멸하였다.
[모든 투지력을 소진했습니다.]
[미궁 입구로 재소환됐습니다.]
[미궁 전리품이 소멸됐습니다.]
[남은 미궁 탐사 기회: 1회]
우리는 미궁 입구로 되돌아왔다.
주어진 투지력이 소모되면 다시 미궁의 입구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힘들게 탐사하며 획득한 전리품들도 전부 소멸!
‘설마 전리품까지 없어질 줄이야.’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전리품의 질은 확연히 좋아지지만, 투지력을 전부 잃을 확률도 높아서 위험했다.
투지력을 소진하면 결과물까지 잃 게 되니 욕심은 적당히 부려야 했다.
“샤말타르! 카오도롬!”
“카오도롬! 카오도로오오옴!”
과한 욕심을 부리던 오크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입구로 소환됐다.
나 역시 모든 전리품을 잃었다.
‘다만 헛짓거리를 한 것은 아니야.’
그나마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던 것은 아니어서 잃어도 후회가 없었다.
그리고 미궁의 몬스터를 사냥해서 획득한 능력치는 그대로 유지됐다.
‘무엇보다 샤라펠 미궁이 어떤 사냥터인지 파악할 수가 있었으니까.’
나는 안도니크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 말을 오크들에게 통역해 주십시오. 모두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크들은 은인인 네 말이라면 꼭 따를 거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 지휘를 제게 맡겨주십시오.”
***
120회차 최초로 탐사하는 미궁.
그저 사냥만 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내부를 관찰해 공략법을 고안했다.
“대장. 정말로 괜찮을까요?”
카티에는 불안한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앞일을 장담하지 못했다.
반면에 헤르탄은 내 말을 듣는 즉시 짐을 챙겨 탐사 태세를 갖췄다.
한편 퀸소히니베는 아직도 소멸한 전리품을 잊지 못하고 우울해했다.
“내 보물들이 사라진 것이야……!”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용을 따라올 생물은 이 세상에 없다.
난 그녀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야, 가자.”
“지금 싸울 기분이 아닌 것이야.”
“나도 너랑 사귈 기분이 아니다.”
“내 노예가 아주 미친 것이야!”
“이제 싸우고 싶어졌지? 가자.”
미궁의 B1층부터 재도전!
‘남은 미궁 탐사 기회는 단 한 번.’
무한정 도전할 수 있다면 샤라펠 미궁은 천혜의 사냥터였을 것이다.
지금부터 단 한 번의 도전으로 최상의 결과물을 쟁취해내야만 했다.
오크 족장의 허가 아래에서 나는 미궁의 전투를 진두지휘하였다.
“무작정 달려들지만 말고 양옆과 보폭을 맞춰 열을 유지해야 합니다.”
“전달하겠다.”
말이 거창해 진두지휘지, 실제론 간단히 열을 맞춰 싸우는 것뿐이다.
교습서만 봐도 아는 전술의 기본!
내가 딱히 지휘전술에 특출한 것은 아니지만, 주워 읽은 책은 많았다.
‘복잡한 명령은 오히려 독이 된다.’
감정적인 오크들은 군사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혼잡을 싫어한다.
그러나 단지 내 명령만으로도 희생되는 오크들 숫자가 크게 줄었다.
“오크들이 싸우고도 다치지 않은 동지가 많다며 신기해하고 있다.”
B2층까지 가볍게 격파!
그러나 사상자가 본격적으로 속출하기 시작하는 것은 B3층부터였다.
나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특이한 오크들을 찾았다.
“이들이 네가 찾던 자들이다.”
오크 부족의 사령술사들!
그들은 죽은 자의 뼈를 흔들어 혼령들을 부르거나 내쫓을 수 있다.
부족의 땅을 배회하는 밴시로 영역을 지키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혹시 ‘사자死者의 부름’을 쓸 수 있는 사령술사가 여기 있습니까?”
내 말을 전해 들은 그들이 어리둥절해하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난 10년 동안 도시에 박혀서 살았지만, 주워들은 잡지식만큼은 많다.
사자의 부름.
일정 시간 동안 언데드 몬스터 출현확률을 크게 높이는 하급기술이다.
보통 사령술사가 계약할 혼령을 찾는데 쓴다지만 내 목적은 달랐다.
“그럼 사령술사들만 B3층으로 먼저 내려가 그곳에서 사자의 부름을 써주십시오. 탐사자 전원이 내려가야만 몬스터가 출현하니까요.”
사령술사들이 뼈지팡이를 들고서 내려가자 안도니크가 의아해했다.
“하지만 언데드 몬스터가 출현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이득이 있는가?”
언데드 계열 몬스터는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놈들의 체력은 바닥이 없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다.
그러나 난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아주 많은 이득이 생깁니다.”
오로지 이익만을 독점할 계획이다.